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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얘기의 샘 2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1969.01.00 방송
(음악)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3.1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 전국 방방곡곡에 퍼진 그 독립시위운동, 독립운동의 모습은 다음 시간에 듣기로 하구요.

- 네.

- 먼저 3.1운동의 역사적 성격 내지는 의의라고 할까-.

- 네.

- 에... 그, 가령 주체세력이 어디냐,

- 네.

- 하는 그런 문제 가지고서 더러 논, 논쟁 비슷하게-.

- 네.

-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마는 33인에 선생님의 분석에 의하면은, 에, 천도교하고 기독교가 압도적, 다수고-.

- 네.

- 두 가지 기둥이다.

- 네.

- 거기에 불교가 참가를 했다.

- 네.

- 그런데, 그, 물론 대표의 분석은 그렇습니다만 실제 운동에 나선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 동원된 그, 층이라고 할까요.

- 네.

- 본다면은 에... 농민들이 많이 움직인 거 아니냐, 뭐 인제 그런 판단에서 농민이 주체세력의 중심이다.

- 네.

- 그런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 네.

- 그런 그, 내용분석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떠신지...

- 뭐 저도 말하면 그런 말씀 하는 분들의 얘기를 간혹 듣고, 또 글로 나온 것도 있습니다마는.

- 네.

- 이 당시에 그 전국 인구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다. 그것도 사실이었고. 따라서 동원된 대중 있잖아요?

- 네.

- 전국 방방곡곡을 동원된 대중, 민족 대중의 직업분석을 해보면 농민이 압도적인 다수다.

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또 요전 시간에도 말씀했지만 내 아버지가 말하면, 교육잔데 내 아버지 직업난에도

농업이라고 썼거든요.

- 네.

- 그리고 걸핏하면은 말하면 그 당시에 그 우리나라 애국자들을 갖다가 직업난에다가

무직으로 붙이지 않으면 대개 일인들께는 농업으로 나옵니다.

- 네.

- 마, 그렇게 해서 붙은 건지 몰라도 어쨌거나 과학적인 농민하면은 농민의 의식수준이 그만큼 올라갔냐 말하면

이건 못 올라간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역시 거... 기미독립운동을 주도한 주도세력은 항상 제가 말씀드린 대로

광범위한 인텔리계층이다, 지식층이다.

- 네.

- 에, 종교인, 교육인, 문화인 말하면 이런 분들이 역시 주동이 됐거든요. 그건 세계 어느 나라의 약소민족의

운동을 본다 하더라도 초기운동의 형태는 여기서 글로벌함을 띤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농민이나 노동자의

의식수준, 그분들이 어떻게 조직화됐나, 이것은 난 영영 거기에 못 갔다 봅니다.

- 네.

- 그러나 그 반면에 말하면 천도교나 기독교계통에는, 혹은 불교계통에는 역시 종교 교단을 통한 교외조직이 있고 동시에 거기서 설립한 학교가 많잖아요?

- 예.

- 미션 계통의 학교는 중, 고등학교부터 소학교까지 전국에 굉장한 숫자가 널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런 그 정예부대로 학생대군을 갖다 동원시키기에는 역시 3대종교가 합작한 것이 그건 큰 힘이었다.

- 네.

- 서울에서 우리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지방으로 전부 흩어져 나가잖아요? 흩어져 나가 설랍네 학생들이

정예부대로 자기 고향 가서 말이면 부형을 동원시키셔 만세 부르거든요.

- 네.

- 부형들은 농민들입니다. 장터에서, 혹은 교정에서, 여기서 굉장히 만세를 부르고 나왔으니까 드루

동원된 대중만은 이것은, 농민들이 압도적인 다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주도세력이 말이면, 주체세력이

농민이냐, 그렇게 보는 것은 나는 마,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어요.

- 네.

- 그리고 동시에 인제 우리가 여기서 분석해볼 것은 우리나라의 천도교나 기독교, 두 큰 종교가

그 당시 우리나라 민족운동의 어떤 역할을 담당했었냐, 가령 여기서 33인의 서명한 분들 가운데

몇 분 있지 않습니까?

- 네.

- 우선 천도교 간부의 최고 영수인 손병희 선생이 언제 말씀했습니다만 갑오동학란 때 북접의

통영통예입니다.

- 그렇죠.

- 북접 최고지휘관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딱 나섰으니까 드루 벌써 그... 에... 천도교 안에는 말하면

동학혁명 사상, 동학운동혁명 이래 피나는 투쟁을 전개한 이런 분들이 딱 박혀 있다 그런 말이죠.

- 후기동학혁명의 그, 전략목표라고 할까요. 그것이 역시 초계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 초계가 들어갑니다.

- 네. 그때부터 벌써-.

- 네, 벌써 말하면 그 민족에 말하면 대항전이었잖아요? 그리고 1905년부터 말하면 언제 말씀했죠?

천도교가 두 패로 나뉘었거든요. 동학이.

- 네.

- 하나는 전락을 하고 천도교는 그때 정통파입니다. 이것은 내용으로 말하면 거, 비타협

독립정신-.

- 네.

- 이걸 꽉 지녀왔거든요. 그러니까 그 33인의 인문고 졸업한 자들은 벌써 천도교 계통의 동학혁명의

세례를 받은 훌륭한 민족 분들이 그 주도역할을 담당했다. 고 다음에 지도자 대표들 있잖아요?

- 네.

- 가령 이승훈이라든지, 이명룡이라든지, 양전백이라든지. 이런 분들 말하면 이분들은 105인 사건-.

- 네.

- 지도자 연대 분들 다 거물들입니다. 그러니깐 드루 참 정말 일제 포박을 해서 빛나는 투쟁,

생년 내내 투쟁을 한, 이런 경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그리고 언제 말씀했지마는

105인 사건, 신민회운동은 말하면 연월 쫓아 올라가면 줄잡아서 대한독립운동과 맥락이 다릅니다.

- 그렇군요.

-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뭔고 하니 역사적 성격을 확실히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말의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천도교, 또 근래에 우리가 구미 각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 기독교정신을 통해서 수입한 민주주의.

- 네.

- 이것이 혼연일체가 돼서 일으킨 것이 기미독립운동이다. 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네.

- 그러니깐 드루 역사성격을 볼 때 말하면 심하면 어떤 사람들이 작년인가, 재작년에 맞아

모 외국 젊은 학도 한 분이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 이런 수박 겉핥기로 우리나라에 대한 걸

갖다가 잘 모르고 얼간 남비 모양으로 외국 사람이 와서 뭐 장사를 다하는데 기미독립운동은 거

3.1일 하루에 실패로 끝난 코미디라.

- 아하...

- 이런 혹평을 한 거 얼빠진 외국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사람들이-.

- 한국에 와서 그런 말을 했습니까?

- 네네. 혼자 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패들은 뭐냐. 이런 패들이 말하면 벌써

말씀대로 33인의 초인격, 한 분 한 분 검토해보면 말이죠. 우리는 일목요연하게 벌써

갑오동학혁명 정신을 한 정수 걸쳐왔다. 대한독립운동의 근대적 개혁사상이 있지 않습니까?

가령 독립협회 운동이라든지, 일맥상통해서 맥맥하게 우리는 넉넉히 일본에 대해 알 수 있는데

그런 걸 더듬어보지 못한 패들이 가끔가다 이런 망발을 갖다가 함부로 한다.

- 네.

- 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또 일부에서는 말하면 그저 윌슨 대통령의 요전 시간에 말씀했던,

민족자결주의의 퍼뜩 말하면, 어 쇼크를 받고 일어났다. 어느 정도 그런 점도 있긴 있으나

역시 우리민족. 그, 근세역사를 갖다가 필미변, 그런 혁명정신, 민족의 개혁운동. 이걸 우리가 계승해서,

집대성해서 내놓은 것이-.

- 네, 지금 말씀하신 것 말이죠. 저도 흥미가 좀 있습니다마는. 해외원조라든가 일본 사람들이 내놓은 자료 같은 거

보면은 그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그, 비중을 많이 둬가지고.

- 네.

- 어떤 3.1운동의 내적 필연성이라고 할까.

- 네.

- 민족이 그때까지 10년 동안 축척된 반항의 에네르기라고 할까.

- 네.

- 그런 것을 이제 무시할라고 말이죠.

- 그렇습니다.

- 경시할라고 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 네.

- 또 3.1운동 자체에 대한 독립령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에 있어도 비중을 어떻게 두느냐,

조화를 시키느냐 하는 게 하나의 그, 과제인 것 같습니다.

- 그 점은 말이죠. 지금 선생도 말씀했지만 내가 요즘 와서 가끔 가다가 내 마음을 퍽 쓰라리게 하는 점이

뭐냐, 일인들이 그런 견해를 했거든요. 일인들은 세계 선전할 때 이건 뿌리 깊은 운동이 아니다,

거 미국 대통령 윌슨이 한 데 대해서 그저 자연발생적으로 잠깐 난 거다. 이렇게 역설로 나온 것이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 견햅니다. 또 외국 사람들 있잖아요? 그 당시에.

- 네.

- 영어로 나온 책이든지, 불어로 나온 책이든지. 저 일인들의 선전문서. 그걸 갖다가 중요참고자료로

해가지고서 그네들 책이 또 많이 나왔거든요. 또 특히 말하면 정치평론가라든지 이런 사람들,

한국에 직접 와서 기미독립운동을 보지 못하고 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네 책상에서

연구할 때는 많이 일본 사람들이 의해서 나온 소스. 그걸 가지고 평하니까 그런 망발이 나온다,

전 그겁니다.

- 마침 말이죠. 최근에 모 월간지에 3.1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것을 봤습니다.

- 예.

- 그 안에서 그 어느 중국의 신문기자가 통신을 보낸 게 있는데요. 그 안에 에... 자꾸 아주 동정적으로

잘 소개, 호의적으로 잘 소개했는데.

- 네.

- 그러나 이 운동에는, 이 운동의 배후에는 모 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 음.

- 아마 틀림이 없을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보도한 게 있어요.

- 네.

- 모 국이라는 것이 밝히진 않았습니다마는 나중에 읽어볼 것 같으면은 미국으로 이제 자연 지목이 되는데요.

- 네.

- 거 혹시 미국 선교사라든가 그런 데서 어떤 지원 같은 게 있지 않았나 하는, 마, 기자는 그렇게 봤던 모양이죠?

- 네.

- 근데 이제 그것은 말이죠. 그런 기자들도 어, 여기저기 취재했을 거 아니에요.

- 네.

- 그런데 그 사람들 역시 기자니깐 드루 총독부에도 가서 취잴 했고, 퍽 그런 데서 그런 얘길 들었으리라.

그러나 인제 그에, 그 당시 우리나라에 직접 와서 본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 네.

- 가령 영국신문의 페기 마이서나 아니면 맥킨지 같은 사람-.

- 네.

- 혹은 저... 중국서 간행하던 말하면 대륙보에 말하면 파이버 같은 기자라든지.

- 네.

- 이런 사람들이 본 것은 냉정히 봤습니다. 이 기미독립운동은 정치적으로 볼 때는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을 도저히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한 거다. 또 한국 사람의 자유 독립 애호정신이

이미 그것을 능가하고 앞으로는 한국이 최고도의 그런 능력을 더욱 더 발휘할 거다.

- 네.

- 이렇게 반응한 사람들이 있으니깐요.

- 근데 한편으로 거 미국의 뉴욕타임즈지 같은 건 말이죠. 조선 인민에겐 자치능력이 없다,

뭐 이런 식으로 보도 한 게 나오고 있던데요.

- 그 당시에 그렇게 나온 거죠.

- 네, 감사합니다.

(음악)

오늘은 3.1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3.1운동의 전국적 양상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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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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