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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3.1독립선언과 장안 모습
얘기의 샘 2
3.1독립선언과 장안 모습
1969.01.17 방송
(음악)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3.1독립선언과 장안의 모습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 저, 오늘부터는 3.1운동의 본론으로 들어가서요.

- 네.

- 사건 전개의 경위를 상세히 좀 말씀을 듣겠습니다.

- 네.

- 먼저 독립선언과 서울의 모습, 그런 이름을 붙여가지고-.

- 네.

- 대개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에, 탑골공원에서 모여가지고 말이죠.

- 네.

- 독립선언문을 낭독을 하고-.

- 네.

- 가두에 나가서 시위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데.

- 네.

- 그때 선생님께서 참가, 직접 하신 거 아닙니까?

- 네. 했었습니다.

- 네, 목격자 한 분으로서-.

- 네네네.

- 증언이라고 할까요.

- 네. 마, 고 전에 하나, 잠깐 좀 재밌는 말씀 하나 하고 넘어가죠.

- 네.

- 아, 요전 시간에 말씀드린 2.8독립선언 있잖아요?

- 네.

- 인제 이 운동이 전개되면서 그 당시 일본 정계가 발칵 뒤집힌 거 아니에요?

- 네.

- 에, 그러니까 2.8독립선언 터진 다음에 국내에서 3.1독립선언 터진, 고 중간에 말이죠.

- 예.

- 일본사람들 소위 자기네 제국의회가 개막이 됐거든요?

- 아...

- 그 석상에 총독부 고관들, 예를 들면 경무국장이라든지 이런 패들이 예산획득을 하러 갔단 말이죠.

- 아.

- 가는데 거기서 일본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나왔다고 합니다.

- 아, 예산심의에 대한-.

- 예산심의, 그걸 위해서 갔는데-.

- 네, 질의하러 갔겠죠.

- 네, 순간 질의가 나왔는데 그... 그네들 말대로 일본제국 수도 한복판에서 거, 불량 한국 학생이 이런 큰 사건을 일으켰으니

총독부 고관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했어요.

- 네.

- 그러니깐 그 당시 총독부 고관으로 어, 자기네 국회 출석했던 그자들이 자신만만하게 뭐라고 그랬느냐,

‘거, 대단히 유감입니다. 동경 경시청에서 어떤 경계망을 폈는지 모르겠지마는 일부 소수의 에, 그, 불량 한국 학생들이

불평을 품고 제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을 갖다가 사전에 그, 살펴서 진압을 못하고 이렇게 터진 것을 말하면

대단히 유감천만이다.’

- 네.

- 언제든 말하면 동경 경시청에 루산용을 갖다가 득수적으로 넣어놔서, 그러나 단 한반도 내에서는

총독정치가 좋은 정치도 하면서 일방으로 철통같은 경비태세를 취함으로 한반도 내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안 생길 테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를 꽝 쳤어요.

- 네.

- 그런 일이 며칠 뒤에 국내에서 3월 1일 독립선언이 떡 선포가 됐죠. 어... 마, 그날 광경만을 우선

제가 말씀 드리면은 이 당시에 그, 대체로 내가 들은 얘기는 에... 이때 학생 동원하는 거 있잖아요?

- 네.

- 학생 동원이 된 비밀조직에 대한 책임을 갖다가 지금 생존해계신 이갑성 님이 지셨다고 합니다.

- 네.

- 그래서 대체로 한 50여 일 전부터 이 비밀조직을 해가지고 각 지방으로 밀파했다.

한 200명 조직망 속에 들었다고 합니다.

- 네.

- 그래가지고 그렇게 인제 각 지방으로 비밀연락을 취하는데 다음 주까지 몰랐다 그거지.

나로서는 그 당시 이런 조직선에 직접 관계있는 분들이 내 모교인 휘문중학교를 다녔는데요.

- 네.

- 예, 옛날 휘문고등보통학교지. 거, 고 때쯤 해서 요전 시간에 말씀한 대로 동경에서 2.8독립선언의

내 사백이 관계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거든. 근데 그런 것이 어떻게 연락이 됐든지 상급생 가운데서

날 갖다 가만히 불러가지고 고것이 아마, 에... 2월 27,8일 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 네.

- 아... 내일 모레 3월 1일 날 너 반드시 네 반 학생을 갖다가 될 수 있는 대로 동원시켜 가지고

파고다공원으로 모여라 그거야. 그런데 3월 1일 서울서 폭발된 것은 오후 2시입니다마는 그때 우리들한테 상급생이

지령해준 것은 뭐냐 그러면 말이야. 옛날엔 정오가 되면 오포라는 걸 쏘지 않았어요?

- 네.

- 난 꼭대기에다가 대포를 꼭 걸어두고서 공포를 꽝 한 방 쏘면 이걸 정오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깐 니들이 어느 장소를 가든지, 서울 시내에. 오포를 쏘거든 곧장 바로 파고다공원으로 향해 설랍네 오늘 집합해라.

- 네.

- 내가 당시 속으로 불안불안 하지마는 거 ‘뭣 때문이 이러냐??? 이걸 물었어요. 물었더니, 어...

‘그건 알 거 없다. 참 오면 안다?? 이거죠. 궁금증이 나는데 이 당시 마침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내가 그 당시 YMCA 소년부회를 열심히 댕겼습니다.

- 네.

- 종교예배당을 내가 또 댕기고 그랬어요. 그 당시 인제 YMCA 소년부가 주동이 돼가지고

금주금연회를 만들자, 소년금주금연단. 그래서 인제 나하고 지금 저, 이북에 납치당해간

심우 정경인이란 분 있잖아요?

- 소년들의...

- 금주금연운동이지.

- 어른들에 대한-.

- 아니지. 소년들 자신도 말하면-.

- 아, 담배 피는 학생들이 많았군요.

- 네, 막 그 당시 학생들 가운데-.

- 그렇죠. 장가들고 그랬으니까.

- 네, 울 체통도 없고 나이도 먹기도 많이 먹고 그랬으니까. 마, 그런 의미에서 학생 소년층으로 말하면 술, 담배를 피는 걸 갖다가 안 하도록

자숙하는 의미에서 그런 운동을 전개하자. 근데 날짜 정하기를 그, 3월 1일 날, 오전 10시부턴가 말이죠.

총기도당에 모여서 발기추진서, 규약, 이런 걸 갖다가 초안하기로 몇 사람이 모이기로 했단 말이야.

- 네.

- 그래서 내 자신이 먼저 그걸 하고서 마저 고 다음에 인제 나가도 좋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몇 시간 사람들이 모여서 그걸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시각이 어떻게 됐는지 아마 그것이 오후 2시쯤 된 모양인데

이렇게 된 걸 모르고 그걸 하고 있었어요.

- 네.

- 그 당시 총기도당에 권사 한 분, 전도사, 권사 한 분이 화급하게 뛰어 들어오더군요. ‘아, 니들 학생들이

뭘 하고 있냐? 오늘로 지금 와서 우리가 대한독립 해설랍네 파고다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좀 거창한 시위운동을

벌어지는데 너희 여기 앉아서 뭣들 하고 있냐?’ 이거예요. 왜, 그때 퍼뜩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 아하, 상급생들이

지시내린 게 이거구나! 말이야. 그래 그럼 다 집어치우고 말이야, 같이 있던 7, 8명이 쭉 뛰어나왔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지금 파고다공원을 향하니까 마침, 벌써, 거 시위의 거대한 선두가 말이면 종로 네거리에 딱 걸렸어요.

- 아...

-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종로 네거리와 광화문 네거리. 그 사이에서 시위운동에 뛰어들었지.

그래서 그 파고다공원서 그, 파고다공원에서 선언문 선포하는 장면은 나로서는 못 봤습니다.

나중 가서 자세히 들었습니다만. 마, 그때부턴 참가해가지고 대한문 앞에 들어갔어요. 대한문 앞에 가서는

인제 전부 이틀 남은 국상을 앞두고서 에, 고종황제 말하면 빈소가 에, 지금 덕수궁 안에 돼있으니깐 드루

그 밖에 가설랍네 망국도로 만세 부르고 굉장했죠.

- 네.

- 도로에 꽉 찬 수십만 거창한 시위물결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 설랍네 거리를 행진했는데 마, 그때까지

어디서 감춰뒀는지 말이면 대부분 사람들이 거, 태극기를 갖다가 많이 가졌고-.

- 네.

- 태극기를 못 가진 학생들은 모자, 모자 가지고 휘두르면서 모자에 간이로 그려 붙이고. 지금도 인상 깊은 것은

벌써 거리마다 몽건히 말한 아낙네들은 물병에다가 물을 떠가지고 나와 설랍네 목이 쉬니까

물들 먹으라고 인제-.

- 네.

- 남녀가 잘 합동이 됐던 거죠. 어... 그래서 대문 앞에 가설랍네 인제 굉장히 만세를 부르고

그리고 일부가 대한문 안으로 뛰어들어 갈려니까 막는 패들도 있고.

- 그때까지 일본 저, 경찰이나 헌병들은 손을 못 댔습니까?

- 대한문 앞까지 못 들어왔습니다. 아, 그리고 거기서부턴 인제 어디서 지시를 내렸는지

두 패로 나뉘었어요. 한 패는 대한문에서 정동으로 들어가고.

- 네.

- 정동은 외국공관들이 많이 있잖아요?

- 아... 네.

- 외국영사관들, 그러니까 정동으로 들어가고. 한패는 지금 소공동으로 했어요. 진고개를 돌파해서

옛날은 총독부가, 어... 지금 방송국자리 있지 않습니까?

- 네.

- 중앙방송자리. 거기였거든요. 그리로 가자.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정동으로 들어가는 그쪽에 끼질 않고

소공동으로 해설 랍네 이... 저... 진고개역으로 닥치는 내가 그 패에 뛰었었거든요.

- 네.

- 어... 마, 그러니까 대한문 앞에서 상당한 시간을 갖다가 허비하고 거기서 인제 다시 설랍네 다시 두 패로

나눠 설랍네 어느 패는 어디로 가라, 그래서 내 기억으론 지금 그, 지금... 저... 신세계 백화점 앞에.

- 예.

- 거기서부턴 진고개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때 해가 안 좋으니까 반짝합니다. 그때 가서야 용산에 있는

일본군 보병부대가 말이면 구보해가지고 인제 1개 중대 병력이 뛰어 들어오고, 그러면서 기마헌병이 뛰어 들어왔어요.

- 네.

- 맨 앞에 이중창 모양으로 남녀 학생들이 스쿼드를 짜가지고 진고개 일본 사람 거리로다가 돌파해가거든요?

거기 와서는 말하면 용산에서 달려온 정규 병력이 거기다가 바리케이드를 치면서 막더군요.

- 네.

- 그리고 거기서 옥신각신하다가 내, 지금도 내 기억에 확실한 것은 이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마는.

진고개 어귀에서 일본 기마헌병이 칼을 뺐어요.

- 네...

- 칼을 빼가지고 내리치는데 그 칼을 갖다가 맨 처음에 여학생이 받았습니다.

- 아하...

- 그래서 여학생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니까 그 순간 남학생들이 중상당한 여학생의 몸을 갖다가

어깨에다 메고 또 돌파하려고 그래요.

- 네...

- 그래서 격투가 벌어지지. 난 그 당시 열 두 살짜리 쫄데기, 쪼그맣니깐 말이야. 뒤에서 따라 가면 설랑

만세를 부르는데 내가 지금 놀란 건 그거야. 앞에서 여학생이 칼 맞았지. 중간에, 아우성 틈에 설랍네

거기서 참 상당한 난투극이 벌어졌는데 그때 벌써 어둡게 됐거든요. 어두우니까 어디서 지령이 내렸는지

어두운데 그대로 계속을 하면 큰 싸움이 난다.

- 네...

- 그러니 이제는 자진해산하자. 그래가지고 인제 해산명령이 내려지니깐 드루 거기서 해산하면서

뿔뿔이 인제 서울 각 곳으로 해산해 나올 거 아니에요? 해산해 나가면서 모두 만세를 불렀거든요.

- 그러고 보면 역시 시위하는 데 지휘본부 같은 게 있었다는...

- 있었던 거죠. 네. 그러니깐 아까 말씀한 대로 그때 학생들은 학생들 자기가 했잖아요?

- 네.

- 에, 그리고 그날의 얘기는 인제 33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태화관에 설랍네 선언을 낭독했다 이거죠.

- 감사합니다.

- 네.

(음악)

오늘은 3.1독립선언과 장안의 모습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내주 월요일 이 시간에는 3월 1일의 민족대표 33인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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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입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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