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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2.8독립선언
얘기의 샘 2
2.8독립선언
1969.01.15 방송
(음악)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 저번 시간에는 고종황제가 돌아간 얘기와 국민들이 애통하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만.

- 네.

- 에, 동경 유학생이 2.8선언 후에 어떻게 상정을 했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십쇼.

- 네.

- 요것은 나로서는 이 당시엔 동경유학을 못했고... 요전 시간의 말씀대로 내 육친의 형님이 에, 2.8독립선언문에 소명한 열한 분 가운데 한 분입니다.

- 네.

- 그래서 내 사백, 또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 당시 그, 소명한 분 가운데 몇몇 분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 함자가 어떻게...?

- 어... 백관수, 윤창석, 김도연, 이런 분들. 또, 서춘. 이런 분들. 내가 역시 가끔 내 사백처럼 거 참 실제로도 접촉도 많이 했습니다.

- 네.

- 그래서 이런 분들한테 많이 얘기를 듣고 어, 또 내 사백한테 친히 들은 얘깁니다만 어,

2월 8일날을 본격으로 하고... 그런데 이날은 마침 동경에서 드물게 눈이 왔더래요.

- 네.

- 그래서 간자거리에 눈이 이렇게 말하면 발이 어떻게 묻힐 정도로 상당히 세고

12시를 기해 설랍네 미리 연락을 해가지고 간자에 있는 YMCA회관에 모여 약 5,600명이 모였답니다.

- 지금도 간자에 YMCA회관이 있습니다만.

- 있습니다. 있습니다.

- 그... 한국 사람들이 만든-.

- 네.

- YMCA죠?

- 그렇습니다. 네.

- 예, 벽돌집으로 2층으로 된 건물인가 그렇죠?

- 네. 2층 건물입니다. 네. 근데 요전에 가보니깐, 또 내가 가보니까 옮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요.

그 전에 갔을 땐 내가 홀이 들렸었는데 이번에는 홀을 잘 못 들어가 봤습니다만 역시 아마 그 자리꺼정-.

- 네.

- 아, 거기서 인제 오륙백 명이 모였는데 마, 그 당시로서는 거의 학생 신분인 사람은 거의 다 모였다 해도 괜찮아요.

- 네.

- 어, 처음에는 독립선언 한다고 모이지 않고 웅변대회, 이런 걸 한다고 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웅변대회 같은 건

금지를 안 하니깐 드루 자주 그런 형식으로 해서 토의를 한 모양이에요.

- 네.

- 이날 말하면 미리 사전에 준비를 다해가지고 선언서 인쇄를 하는데 아, 역시 인쇄도 말하면 비밀리에

에, 일본 와세다 옆에 에, 도야마라는 데가 있죠.

- 네.

- 거긴 숲이 많아요. 숲속에 들어가서 비밀리에 인쇄를 했다고 합니다.

- 아.

- 그리고 역시 유학생들이니깐 드루 거... 어학들을 잘하잖아요? 그래서 영어하고 불어하고 몇 가지 외국말로 번역을 해서-.

- 네.

- 에, 전부 다 동경 안에 있는 외국공사관에다가, 외국공관에다 전부 배부하고 사전 오퍼를 띄었다 그거지.

- 네.

- 그리고 2월 8일날은 12시를 기해서 냈다고 합니다. 내가지고 그 당시 사회한 분은 내가 듣기에는

윤창석이라고 하는 분이었어요. 이분이 크리스천 설랍네 인제 이 당시의 조선기독교청년회 원무 과장이었지.

이분이 하고 그리고서 인제 독립선언서 낭독은 내가 들은 것은 백관수 씨가 했다고 합니다.

- 네.

- 어... 그리고 나서는 고 다음에 인제 몇 분, 서춘 씨라든지 내 사백이라든지 몇 분이 나설랍네 인제

요즘 말하면 선동연설 같은 거죠. 참말 강력하고 정중한 논조로다가 연설했다. 그러니깐 입회했던

경성 형사들이 둔기를 들고 해산명령을 하면서 경성 형사대가 쫓아와 설랍네 제지시킨다, 그래서 충돌이 났다고 합니다.

- 네.

- 충돌이 났는데 역시 유학생들의 젊은 의기 하나로 형사들을 뿌리치고 박치기 하고 난투극을 벌리면서

간다거리로 나와 가지고 맨발로 일본 동경 한복판의 간다거리로 갔다가 시위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외쳐나갔다-.

- 네.

- 나중 가서는 경성 형사대가 정부 경관대와 대량출동 해설랍네 수백 명 검거투옥을 하고, 물론 주모자로 됐던 분들

이날로 해설랍네 열한 분 가운데서 아홉 분이 그날로 아마, 즉일로 검거됐다고 난 들었습니다.

- 예.

- 아... 따라서 이 사건이 그 당시에 일본 재야는 물론이고 세계 언론의 비상한 혁을 줬다. 그거지.

어, 요전 시간에 말씀했습니다만 애란 독립운동, 애란의 더블린 폭동 같은 것이 무장봉기를 해가지고, 아주 치열하게 하지 않았어요?

- 네.

- 그 당시 애란의 독립운동자들도 런던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서, 거기서 이런 폭탄적인 독립선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인도의 독립운동자들이 역시 인도 국내에서는 봉기를 했어도 통치국가의 수도 런던 들어가서 해본 적은 없거든.

- 네.

- 필리핀도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에, 근세, 최근세 세계약소민족의 독립투쟁사에 있어서 적의 수도 한복판에서

봉기했다는 사실, 최초로 봉기했다는 사실. 이것이 난 역사적으로 뚜렷이 큰 사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네.

- 전에 없는 사실이지. 에...

- 일단...

- 따라서 일단-.

- 허를 찔렸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 허를 찌르고 따라서 일단 적의 한복판에서, 적의 심장부 한복판에서 터졌으니까 드루 일본 정부가

당황했던 건 뭐 말할 수 없지. 그러면서 이 당시 이 운동이 여기 동남아시아 일대, 아시아 약소민족

독립투쟁에 대해서는 비상한 영향을 줬다. 에, 따라서 2.8독립선언, 또 2월 8일날 항일대의운동을 적의 수도 한복판에서 전개했다.

- 그런 사실이 국내 신문 지상에는 보도가 됐습니까? 그때?

- 보도가 안 됐습니다.

- 네. 일본 신문에는 됐겠죠?

- 일본 신문에는 일부 아마 저게 된 모냥인데 내가 지금 말씀 나왔으니까 하는 얘기지. 내가 이 당시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댕겼어요.

한동안 내 형님께서 편지가 끊어졌습니다.

- 네.

- 웬일인가 궁금했지. 요 정도는 지금이니까 따로 얘기하지마는 내 학급담임 하는 선생님이 하루종일 부르세요.

- 아.

- 근데 이 냥반이 어떻게 아셨거든. 날 부르시더니 ‘너, 선근이. 요즘 니 형제들한테 무슨 편지 받냐? 그거예요. ‘편지 안 왔습니다.’.

그랬더니 ‘음, 편지 안 올 게다.’ 그려면서 이 냥반이 긴장하신 얼굴로 ‘너만 알아. 네 형님이 우리민족을 위해서 큰 운동을

전개해서 지금 고생하고 있다.’-

- 아...

- ‘너 몸조심해라.’. 그래, 그 당시에 그래서 눈치 채긴 했어요.

- 네...

- 그날 밤, 그날 저녁 때 집에 들어와서 보니깐 두루 내가 묵고 있는 집에 와서, 열네 살짜리 집에 들어와설랍네

종로경찰서 형사들이 와설랑 내 책상서랍을 다 뒤지고 갔다는 거예요.

- 네.

- 그래서 속으로 조금 뜨끔했습니다. 아차, 이거 안에다 적어놨구나. 그러니깐 국내에서는 알 수가 없지.

다만 2.8독립선언 한 다음에 전부 탄압을 가하고 그리고 신학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에 대해 설랍네

몹시 인제 참 말하면 형사가 따라오면 감시가 심하니깐 드루 그 당시 유학생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국내로 들어왔어요. 대부분이.

- 네.

- 그래서 유학생들이 국내로 들어와 가지고 3.1운동을 갖다가 더 활발히 전개했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그러니까 어, 2.8독립선언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진 말하면 국내 3.1운동만 얘길 하고

보통 2.8독립선언 얘기는 갖다가 안 했지.

- 예, 종속적인 사건처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네. 그리고 요전 시간에 약간 말씀했습니다만 거 2.8독립선언에서 거 청년단 이름으로 한 말이면, 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내건 결의문 있잖아요?

- 네.

- 이것을 보면은 국내의 3.1독립선언서와 비교해설 랍네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썼다. 에...

- 거 간단히 좀...

- 간단히 말씀드리면은 결의문이라고 그래서 본 단은 한일합병이, 한일합병이 오족의 자유의사에 틀하지 아니 하고, 나오지 아니 하고. 이런 의미죠?

- 네.

오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평화를 교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요게 제1조입니다.

- 네.

- 그리고 제2조는 본 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의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여 회의의 결의로, 그 회의의 결의로

오족의, 우리민족의 운명의 변하는 기회를 부여하기를 요구함.

- 네.

- 요게 제2조. 셋째 가서는 본 단은 만국평화회의에, 말하면 장차 열릴 파리강화회의를 말하는 겁니다.

민족자결주의를 오족에게 적용하기를 청구함.

- 네.

- 파리강화회의도 민족자결주의를 갖다가 우리민족에게 적용시켜라. 그래서 해방을 시켜라. 고 다음에 가서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본에 주재하는 각국 대공사에게 본 단의 의사를 각 회 정부로 전달하기를

의뢰하고 동시에 의원 삼인은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 네.

- 의회에 이미 파견된 오족의 의원과 일치행동을 주장함. 요것은 재미교포가 세운 주장이고-.

- 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청한 거-.

- 네, 그거고. 넷째 항목이 좀 야무진 항목입니다. 전 제안의 오족은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포함.

- 네.

- 피의 항전을 선포한다, 차로서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이 그 책에 응치 아니 함. 책임은 일체 지지 않는다 이겁니다.

어떤 참화라든지. 마, 그러니까 이제 보면 말이지. 물론-.

- 3.1독립선언서보다는-.

- 좀 더 구체적이고-

- 혈기가 왕성한-.

- 혈기가 왕성했죠. 네, 그래가지고 요것이 2월 8일, 에... 재일본 동경 조선청년독립단 대표부에서 열한 분이 나왔습니다.

열한 분의 이름은 다시 말씀 드리면은 최팔용, 백관수, 윤창석, 이종근, 김도연, 이광수, 송계백, 서춘, 김상덕, 김철수, 최근우.

- 네.

- 아마 이분들 가운데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요. 현재 국내에 생존해 계신 분이 두 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음악)

오늘은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3.1독립선언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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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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