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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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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사전대책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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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동경 유학생들이 앞장선 것이 조선독립단 아닙니까?
- 예, 조선청년독립단.
- 조선청년독립단.
- 네.
- 근데 그 2.8독립선언의 기초자 말입니다만.
- 네.
- 제가 흔히 듣기에는 두 분의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아요.
- 네.
- 그런데 어느 분이 주가 돼가지고 기초가 된 겁니까, 그게?
- 네, 내가 듣기엔 말하면 그 당시 동경 유학생 가운데서 문명을 알린 분, 춘원 이광수입니다.
- 춘원 이광수-.
- 주로 춘원한테 많이 부탁을 해서 춘원이 기초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네. 내용이 나중에 나오는 3.1독립선언문하고 -.
- 네.
- 거, 뭐 취지는 거의 같거든요.
- 네.
- 같으면서 인제 조금 다른 점이 있죠. 내가 보면 문장으로 본다든지-.
- 네.
- 더 구체적인 어느 면에서 적진 투쟁이지 이걸 갖다가 발표한 것은 외려 2.8선언이 더 강경하지 않은가-.
- 예.
- 역시 청년들의 기백이 말이죠, 나와 있습니다.
- 네, 그렇습니다.
- 예.
- 아, 따라서 요전 말씀을 잠깐 계속한다면 송계백이라는 이가 여기서 말하면 그 당시 천도교에서 경영하던... 보성학교 출신이에요.
- 네.
- 그래서 송계백은 먼저 아, 그... 참말하면 천도교 측과는 내밀히 연락이 있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 그... 보성학교의 교장이
최린 씨거든요?
- 예.
- 그리고 천도교 측으로 보면은 이때 그... 의암 손병희 선생을 갖다가 영수로 해가지고 그 밑에 그,
에, 말하면 참모로 설랍네 제일 참모장 격 역할을 한 이가 최린.
- 네.
- 고 다음에 세 분이 등장했지. 권동진, 오세창. 최린, 권동진, 오세창하면 말이야. 말하면 참 정말 어,
천도교를 운영하는 데 참모급의 삼 교주라고 볼 수 있어요.
- 네.
- 이런 분들도 늘 비밀리에 회합을 하고 자, 우리가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면 말이야,
반드시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걸 표시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된다. 마, 고런 게 이제
송계백이 국내에 잠입해 들어와 가지고 겨울방학에 들어왔다 이겁니다.
- 네.
- 들어올 때 와세다 대학 학모 있잖아요? 교모, 교모 속에다가 이, 저, 춘원이 초안한 독립선언서를 갖다가
인찰 시 샅샅이 문자를 써가지고 돌돌 말아 설랍네 모자 속에다 감춰서 들어왔다는 거죠.
이분이 들어와 가지고... 참 극적인 얘기가 있습니다만. 천도교 간부들이 묘동에 말하면, 오세창 선생의
사택이 있었어요. 묘동하면은 지금의 단성사, 그 뒤에 아닙니까?
- 그렇죠. 네.
- 거기서 겨울밤에 매설을 밀러 갔는데 바깥에서 갑자기 대문을 두들긴단 말이야. 문 좀 열라고.
그래서 이것들이 형사가 눈치채고 오지 않았나 모두 긴장했는데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깐 유학생들이
뽑아서 파견된 송계백이 들어왔다. 그 자리에 최린 선생도 있었고 다 있었단 말이야.
들어와서 송계백이 여기서 열변을 토하면 설랍네 우리 유학생들이 선봉에서 이런 운동을 일으키기로 했는데
국내에 계신 스승 선배들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 음.
- 마, 그러지 않아도 숙고한 끝에 유학생들이 궐기한다고 그러니까 그것이 국내의 스승이나 선배들에게 큰 자극을 줬다.
그 자리에서 그, 송계백이 유학생의 조선청년독립단의 움직임, 개요를 다 설명하고 에, 우리 자금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로
부족하니 좀 도와주쇼. 그래서 일부에서 자금을 댔다고 합니다.
- 네.
- 그래서 국내에서 인쇄할 자목까지 사가지고 리삽에 걸머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만 궐기하는 거, 봉기하는 거,
요것은 피차에 국내외가 같은 날 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추후로 연락하자, 그렇게 된 모양이에요.
- 예. 그런데 해외나 국내에서 말이죠.
- 예.
- 에, 독립운동의 동향이 뒤숭숭하게 진행이 되니까 일제 측으로서는 눈치를 챘을 거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대책이 없었을 것 같은데-.
- 국내외 동향은 인제 잘 표면에 안 드러났고 벌써 유학생들 동향이라든지-.
- 네.
- 재일교포 동향을 알고 있었거든요?
- 수상하다. 이렇게 생각했겠죠.
- 네. 그래서 이 당시 그, 총독부의 고관대작하고 또 그 당시의 친일유구들, 가령 이완용이라든지 에,
윤덕영이라든지 이런 패들 있잖아요?
- 네.
- 이런 패들이 이 당시 총독은 여기 장욕천이지, 하세가와. 이런 패들하고 숙위해가지고 어떤 대책을 세웠냐.
두 가지 대책을 세웠어요. 하나는 해외 망명 정객들이 으레 파리강회를 상대로 뭐 진정서를 내고 여러 가지
탄원서를 낸 게 틀림 없으니깐도 거기에 대항에서 이편에서는 총독정치를 갖다가 구가하는-.
- 네.
- 그런 그, 말하면 진정서 같은 거, 말하면 반박하는 거지. 그래가지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갖다가 병탄한 이후에
정치를 잘해서 국내의 모든 국민은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 이런 식의 문장을 써놓으려고 백지에다가
설명대량운동을 봤습니다.
- 일진회 재판 비슷한 거-.
- 일진회 재판이지. 일진회 재판을 해가지고 전부 인제 총독부 관리로 그 당시에 우리 한국의 관리는
천상 중천차인패들 쭉 돌아가면서 도장을 받는 거예요.
- 네.
- 그래서 그걸 갖다가 내자. 그러니깐 해외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반박으로 것을 내고.
둘째 계획은 뭐냐, 마, 그것만 가지고는 증거제시가 잘 안 돼요.
- 네.
- 그러니까 아주 물적 증거를 뵈자. 그런 데는 에, 영친왕 있잖아요.
- 네.
- 그, 비극에 말하면, 영친왕.
- 네.
- 이분이 이 당시 결혼 안 했는데 선생도 들었겠지만 국내에선 약혼한 분도 있었다 그거죠.
- 네.
- 그런데 그런 거 다 무시해버리고 일본 황족의 그, 마시모토. 일본 방자 여사. 지금 여사가 됐습니다만.
정략결혼을 시키자, 그래가지고 신혼여행을 갖다가 파리로들 가자. 이거예요. 만국평화회의를 위해서
파리에 모든 사람이 모여 있으면은 신혼여행으로 떡 가서 한국 황실의 영친왕하고 일본 황실의 따님하고
결혼해서 이만큼, 이렇게 잘 산다. 마치 박람회 전시장에다가 전시물, 현저에다 내놓듯이 신혼여행이란 핑계를 대설랍네
신혼부부를 갖다가 똑바로 끌고 가 설랍네 전시를 하자, 이 두 가지 계획을 다 세웠다 그 말이에요. 근데
이 두 가지 계획에서 다 중요한 것은 뭐냐면은 고종황제의 존재입니다.
- 네.
- 그래서 윤덕영이나 이완용. 이 패들이 아까 말씀 드린 그, 총독정치를 구가하는 진정서. 거기 끝에 필두에
제일 넘버원 첫째에다가 고종황제가 설명을 해주쇼-.
- 아.
- 동시에 영친왕의 결혼문제는 뭐냐. 이건 그 당시 구 왕실에서 보면 말이 가장 아니에요? 가장이 승낙을 해서
도장을 찍어야 되는데, 두 서류에 다 도장을 찍어라 그 말이야. 고종황제가 거부했다, 그거를.
- 네.
- 거부하고, 거부하니깐 이면에서는 지들도 골머리 아플 거 아니에요? 그러지 않아도 어떻게든 이 혼사날짜는
정해서 어, 1월, 1919년 1월 스무 닷새 날로 내정이 됐습니다. 그래야지 결혼준비를 갖다가, 혼례준비를 갖다가
성대하게 준비하는데 고종황제가 돌아간 것이 언제 돌아갔느냐. 이틀 앞당겨 설랍네, 혼인날짜 이틀 앞인
1월 스무사흘 날 고종황제가 갑자기 돌아갔어요.
- 네.
- 한데 이 내막도 고종황제가 23일 날 돌아가셨는데 24일 날 하루 늦게 총독부에서 발표하는데
이 양반이 뇌일혈로 돌아갔다고 그랬습니다. 뇌일혈로. 그러니까 갑자기 돌아갔다. 그래서
고종황제의 사인문제에 대해서 그 당시 여러 가지 소문이 많이 돌았어요.
- 네.
- 내가 이 당시 참, 말하면 에, 휘문 고등 보통학교 1학년 마치고 그 당시 3월이 신학기 아니에요?
- 네.
- 근데 인제 국상이 났다, 국상 발표하고, 근데 갑자기 이 양반이 돌아갔다. 어디서 어떤 소문들이
낫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양반은 자기 수명을 못 다하고 독살 당했다.
- 네.
- 치욕을 당해설랍네 억울하게 비명에 돌아갔다. 이 소문이 서울 전역에 홱 돌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민족의 설움이 10년 동안 일제 폭압을 당하면서 언제 기회만 있으면 폭발되려고 하는데
고종황제인상 국상, 이 양반 돌아간 사인이 불분명해설랍네 하루 만에 비명으로 돌아갔다고 그러니깐서도
모든 설움이 거기서 폭발이 됐어요.
- 네. 근데 사인의 진상은 어떻습니까?
- 사인의 진상은, 이것은, 문헌으로 나온 것은 지금 와서도 나로서는 잘... 아직도 발견을 못했으나 우리가 어렸을 때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서 돌아가는 얘기는 윤덕영이, 이완용이 이도배가 주동을 해가지고 민 모라고 하는 의사를
시켜서 커피에다가 비상가루를 타가지고 설랍네 고종황제를 드렸다 그거예요.
- 네.
- 그게 뭐 다독사로 재판을 하는 거지. 그래가지고 이 양반이 갑자기 돌아갔는데 이발사를 누가 했냐?
며칠 후에 거 염습하잖아요? 염을 하는데.
- 네.
- 며칠 만에 아주 모두 그냥 시체가 썩고, 불안하고 그 무늬가 나고, 으레 시체가 말이야. 독약 마시고 돌아간 건 다 안답니다.
그래가지고 그 염습할 때 관계했던 상궁나인 두 사람이 독살설을 발설했다. 그 다음에 서울에서 소문난 것은
그 발설했던 상궁나인들도 그만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 네.
- 그래가지고서 참 민족의 설움이 터졌어요.
그러니깐 마지막 하는 국상이고 우리 한국으로 봐서는 비극의 군주였고, 그래서 이 당시에 기미독립운동 터지기 전에
전국에설 랍네 만국운동이 일어났지. 서울로 향해서 곡하고. 서울에서는 뭔가 하니, 종로상인들이 철수하고
대한문 앞에서 곡하고, 그 당시의 우리 학생들도,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제자들 말고 전부 책보는 것보다는
공부 안 하고 대한문 앞에 가서 모두 도열해가지고 망극 하던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네.
- 그래서 고종황제 국상을 갖다가 3월 3일로 정한 거예요. 3월 3일로 정했는데 그 당시 독립운동-.
- 그 당시 일본의 국내에서 결정하게 됩니까?
- 물론 일본 국내에서 결정하죠.
- 네.
- 합의해서. 그래서 국내에서 터진 것은 인산 이틀을 앞두고 3월 1일 날 터졌다.
- 네.
- 이것이 기미삼일운동의 말하면, 꼬투리지.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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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사전대책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을 들으셨습니다.
(음악)
내일 이 시간에는 동경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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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신용 있는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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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 201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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