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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이완용 저격사건
얘기의 샘 2
이완용 저격사건
1968.11.27 방송
(음악)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이완용 저격사건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사건 후에 빠트릴 수 없는 사건으로서 국내에서 그 이완용 저격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 네.

- 어... 뭐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완용은 숨을 거두지 않고 뭐 중상만 입었습니다마는.

- 네.

- 어... 이완용 습격사건을 전후로 한 국내정세를 곁들여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 요전 시간까지 말씀드린 그, 안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사건이 난 다음에 대체로 그 당시 일제 군부 측에서는

이미 이등박문이 죽기 전에 결정해놓은 대로-.

- 네.

- 빨리 한국을 병탄해 치우자. 그래서 당시 일제 측에서는 이등박문의 장례를 갖다가 국장처럼 굉장히 지내고-.

- 네.

- 그리고 그 이등박문을 갖다가 추모해 설랍네 공작으로 봉하고 굉장히 떠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역시 일제의 그 내각의 중심에서는

한일병합 추진회를 갖다가 만들었어요.

- 네.

- 그리고 우리 국내에서는 그... 연구선병인도당, 이 패들이 한일합방을 갖다가 빨리 해라-.

- 일진회.

- 일진회가, 마, 그런 동시에 역시 이완용내각에서도 이런 점에 대해 설랍네 에, 이면으로 이용구, 송병준이와

이완용이와 더불어서 서로 공로를 다투는-.

- 네.

- 그런 현상을 드러냅니다. 에... 지금 말씀드린 대로 역시 한일병합이 이등박문 저격사건 이후에 불가피하게 나타납니다.

- 네.

- 이렇게 보니까 일반인의 심사들이 격분했습니다. 그 당시에 과가 붙든, 별로든 매국오적에 대한 처단 문제,

이런 것이 의사들 사이에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죠.

- 네.

- 또한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한 것이 누구나 다 애국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닙니까.

- 그렇겠죠.

- 그런 식의 안 의사 저격사건이 난 지 그저 한 달 남짓해서 이 해 12월 초이튿날, 1909년 12월 초이튿날.

이날이 당시에 백의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이 경성천주교당에서 거행됐어요.

- 네.

- 그래가지고 이 추도식에 그 당시 내외귀빈들이 참석하게 되고 종무대신 이완용도 그 추도식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참석하고 나오는 이완용이가 인력거를 타고 나왔어요. 그것을-.

- 그때는 전부 고관들이 인력거를 타고 나왔어요.

- 인력거 탔습니다. 인력거 대령이지. 인력거 타고 나오는 걸 갖다가 무명청년 이재명이라고 하는 청년이

덤벼들어서 인력거 차를 휘어잡고 단도로다가 이등박문의 옆구리 배를 갖다가 찔러 버렸어요.

- 네.

- 그래가지고 이등박문이가 배에 구멍이 나서 피를 토해설랍네 피를 토하면서 뒹굴며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인력거꾼 박모라는 사람이 이등박문이를 부축하게 됩니다.

- 아, 이완용-.

- 아, 네. 이완용을 갖다가. 그러니까 이재명이라는 의사가 인력거꾼 박모라는 사람도 그만 칼로 중상을 입혀요.

- 네.

- 그러니까 호위했던 일본경찰, 순검들이 우르르 덤벼서 체포해올 거 아니에요?

치열한 격투를 하다가 결국은 현장에서 어... 잡히고 맙니다.

- 네.

- 외국 사람들이 많이 거기서 나오니까 그 이재명 청년이 영어로다가 오! 나의 조국이여, 오 마이 컨트리.

- 아하.

- 그러면서 나는 말하면 내 책임을 다했다. 마치, 그 영국에-.

- 넬슨-.

- 넬슨 해군제독이 트라팔카 해전에서 적을 무찌르면 설랍네 적탄에 쓰러질 때 외친 얘기나-.

- 아?

- 네, 에... 이재명 청년이 그리고서 잡혔어요. 아... 이 당시 의사...

- 영어로 한 거 볼 것 같으면 기독교청년횐데.

- 예.

- 회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평양분입니다. 역시 기독교인이고 사전에 에... 역시 비밀결사가 있었어요.

- 네.

- 이재명이 잡힌 뒤에 연루자로서 잡힌 분이 열두 사람이 잡혔습니다.

- 아하.

- 그래가지고 대부분 다 중형을 겪었어요.

- 당시 조직적으로 그런 계획을 꾸민 셈이군요.

- 그렇습니다. 현재, 이 당시 관계된 분에, 관계자 가운데서 살아 계신 분이 있습니다.

- 네...

- 아... 김동하 씨라고 하는 분이-.

- 네...

- 인제 살아 계시죠. 내가 북만에 있을 때 이 양반이 의사 노릇했어요.

- 네...

- 그래서 지난번에 그... 독립유공자 표창에도 이 양반이 표창을 받았습니다.

- 아하.

- 그러니까 이 당시 대체로 20대 청년들이었어요. 어, 이재명, 이 의사가 비록 나중 가서 아까 서 선생

말씀대로 이완용이가 운이 좋았던지, 운이 나빴던지 어... 두 달 동안 그 당시 대한의원, 지금 서울대학병원 전신이지.

- 네.

- 거기 운반돼가지고 두 달 치료하고 나와서 겨우 살긴 살았습니다마는 역시 이재명 의사가 우리 국내 사람으로

매국역적의 거물인 이완용을 갖다가, 아, 칼침세례를 줬다 하는 이 사실은 안 의사 사건, 안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사건 뒤를 이어 설랍네 내외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어...

- 어, 이재명 의사에 대해선 어떻게?

- 사형 당했죠. 사형 당하고, 고, 다른 연루자. 아... 모두, 전부 다 중형을 당했어요.

- 네.

- 아마 10년 이상 줬습니다. 그리고 실형들은 아마 대강 7,8년 받고 나온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대체로 연루자들은 중형을 당하고.

내가 볼 때는 어... 이재명이 이완용을 저격한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

- 네,

- 요즘 말해서 이완용이에 대해서 요 근자에 와서 마저 상당한 지식층의 사람들도 이건 제가 직접 언제 한 번

질문 받아본 겁니다.

- 네.

- 거, 그 시점에 있어서 이완용의 처지로 보면은 인간에게는 무려, 무리한 일이 아니지 않냐? 그만한 일을 다 들추어 보는 것이

엔간한 사람으로선 말이야.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을사조약에다 도장을 찍었다든지, 나중 가서 칠재에다가 도장을 찍었다든지.

- 네.

- 혹은 일제의 거창한 세력 앞에 굴해서 어... 나중 한일병합조약에다가 도장을 찍는다든지, 거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왜 이완용이만 나무라느냐?

- 네.

- 이런 얘기를 상당한 지식계급의 사람들도 직접 나 같은 사람한테 질문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기회에

이 점은 한 사학자로서 밝혀두려고 그래요. 요전에 잠깐 말씀했습니다만 이완용이하고 송병준, 이용구, 이 패들이

제각기 서로 한일합방을 서로 경쟁을 했다 그거예요.

- 네...

- 송병준이는 송병준이대로 이용구와 결탁을 해서 하고 또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두 자가 선뜻 갈라집니다.

- 소위 일진회에서 벌렸던 백만 명 서명운동이라는 게 그 무렵입니까? 시기적으로 봐서.

- 그건 조금 앞섰죠.

- 네.

- 앞섰는데 인제 역시 그런 일련의 운동이죠. 그런데 나중 가서 그 이완용이 한 행동을 보면은 이완용이가 이재명한테

칼 맞고 두 달 동안 입원했다가 나오잖아요?

- 네.

- 나오면서 이 당시에 통감이 바뀝니다. 1910년 들어가지고.

- 네,

- 어, 6월 달에 그 당시 일본 군부대신 육군대장 데라우치가, 사내가 주한 제3대 통감으로 부임해와요.

- 네.

- 송병준, 이용구가 일본 도쿄까지 건너가서 일본 정계에 왕래하면 설랍네 한일합방 촉진운동을 전개합니다.

이완용이는 칼 맞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다가 가닥 잘못하면 말이지 합병시킨 공로를 송병준이한테 뺏길 염려가 있었어.

- 아...

- 데라우치가 제3대 통감으로 부임한 다음에 비밀리에 밀사를 갖다가 데라우치 측근 곁에 파견해가지고

나를 상대로 상의를 해달라, 이런 공작을 합니다.

- 아하.

- 아마, 서 선생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문학사를 쓸 때에는 왜 이인직이라는 사람 있잖아요?

- 네, 신소설의 선조격이 돼 있습니다만.

- 그건 곤란한 얘기지. 내가 볼 때는. 이인직이가 이 당시 이완용이 개인비서입니다.

-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 네.

- 일본 건너가서, 그, 저, 이건 여담이 됩니다마는. 한국문학사에서 말이죠.

- 네.

- 신소설의 선조로서 존경을 받은 것은 좋습니다마는. 일본 건너가서 그 당시 그, 번안소설 있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대중소설들을 번역한, 그래서 일본의 신문이나 이런 데 발표한 거. 어... 그런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고 있는 것 같아요.

- 만주일보 기자를 좀 했습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 일본말을 곧잘 하구요. 친절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잔재주가 있지. 그런데 이 당시 이완용의 개인비서로 말하자면,

에, 왜 이 당시에 그... 통감부에서 외사과장을 맡아가지고 있던 고마츠 미도리라고 있습니다. 소송록이.

- 네.

- 에, 이자하고 늘 접촉을 하면서 전부 배후에 심부름한 것이 이인직이에요.

- 아하.

- 그래가지고 이완용이가 나중 가서는 비밀리에 데라우치하고 에, 합병조약을 조인하고.

일주일 뒤에 가서야 이걸 갖다가 공포합니다.

- 네.

- 그러니까 이완용이를 송병준하고 비교해볼 때, 송병준이는 무식한 사람이에요.

- 네.

- 허나 이완용이는 그거와 다르다 이겁니다.

- 네, 시간 다됐습니다.

(음악)

오늘은 이완용 저격사건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에 관한 얘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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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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