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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얘기의 샘
얘기의 샘 2 - 이승만 밀사
얘기의 샘 2
이승만 밀사
1968.10.21 방송
(음악)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 얘기의 샘.

(음악)

(광고)

(음악)

오늘은 이승만 밀사의 활약에 관한 얘기를 사학자 이선근 박사와 소설가 서기원 씨의 대담으로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 청년 이승만의 밀사사건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 것 같습니다.

- 네.

- 저도 퍽 흥미 있게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 네네.

- 에, 러일전쟁 진행 과정에서 윤초의 추천으로 국왕의 밀서를 가지고 그 화물선에 말이죠.

- 네네.

- 잠행하다시피 해가지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만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 고저 지금 전에 말씀한 것을 말이면 조금 지가 모릅니다만 그 당시 민영환하고-.

- 네.

- 한규설, 두 분이 추천했죠.

- 아, 네네.

- 윤초가 아니고. 인제 그 저, 그러니깐 드루 1904년에 말이죠. 러일전쟁이 터져서 진행되는 해.

- 네.

- 그해 겨울에 여기서 떠납니다. 아, 요전 시간에 말씀한 대로 거, 한규설, 민영환의 추천으로 고종황제의

밀서를 가지고서 인천에서 화물선 같은 거, 옛날 개발회사 노동자 많이 모집해서 가는 배가 있어요.

- 그 무렵에 벌써 한국에서 노무자를 모집해서-.

- 네, 갑니다.

- 미국으로 보냈군요.

- 네. 그 개발회사라고 그러죠? 옛날.

- 아하.

- 그래서 그 배를 타고 먼저 하와이를 갑니다.

- 네.

- 그러니까 지금 현재 마저 인천에 그, 이 박사가 대통령 당시 세웠던 인하공과대학 있잖아요?

- 예.

- 이것이 인천, 하와이를 갖다가 겸해서 인하공과대학이라고 부른 거죠.

- 네.

- 에... 그러니까 인천에서 맨 처음에 하와이로 갔다, 하와이의 교포 지원을 받아서 인하공과대학 되지 않았어요?

- 네.

- 그런 역사적인 연유를 갖다가 생각해서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이거죠. 그런데 하와이에 가서는 이 양반이 그 당시 그, 거기 그

하와이 재미교포 중에 윤병구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 네.

- 이분은 제가 해방 직후에 어, 잠시 귀국해서 어... 만나 뵌 적도 있어요. 이분이 참 애국자거든. 그래, 그분하고

과거에 여러 가지 난상들이 수일합니다.

- 아하.

- 그래가지고서 거 이 박사가 다시 하와이를 떠나가지고 미국 가설 랍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가지고

에, 워싱턴에 들어간 것이 에... 1905년 정월 초하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 네.

- 그러니깐 드루 직접 대화를 할 수 없지. 그래서 2.3일 지나서 이분이 인제 그 당시 워싱턴에 주재하는 우리

공사관을 찾아갔어요.

- 예.

- 이 당시 공사로는 신태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글 태 자 하고 성할 무 자 였어요.

- 예.

- 신태무, 그런데 인제 신태무를 찾아가서 처음에 얘길 하니까 그 신태무 공사의 얘기가 에, 역시 미국 정부 상대로 해서

여러 가지로 활약을 할려면은 당시 정식으로 그, 본국 정부에서 아, 자유자한테, 공사자한테 훈련이 있어야 된다.

- 네.

- 이렇게 요구를 합니다. 그건 보통 때 같으면 당연한 요구일지 몰라요. 그런데 이 당시 청년 이승만 얘기는

‘내가 이러이러한 경우이설랍네 밀서를 가지고 왔어, 어... 장차 미국에 예정된 포츠머스 회담이 열리게 되면은

반드시 한국의 주권문제가 나올 테니까 현재 본국 형편은 일인들의 감시 감독 아래서 꼼짝할 수 없어,

그러니깐 드루 재외공관의 책임자로서 국가 비상 시기에는 말이면 당신이 독단해가지고 특별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 예.

- 본국 경비의 훈령을 받아야 된다면 말이야, 훈령 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밀서로 왔다. 인제.’

이래가지고 인제 신태무 공사하고 상당히 격론합니다.

- 네.

- 근데 그, 신태무라는 이가 역시 관료 기풍으로 그 이상 더 다른 얘기할 수 없다. 이쯤 돼요.

그러자 그, 재밌는 얘기는 이 당시 그, 신태무 밑에 참사관으로 김인경이라고 하는 젊은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 예.

- 이 사람이 인제 그, 역시 청년 이승만하고. 청년끼리니깐 서로 통하잖아요?

- 네.

- 김인경이가 인제 이승만 보고서 하는 얘기가 신태무, 저런 이 가지고는 그런 대담한 일 못한다. 국가가 아무리 위급에 처했더라도

관료적인, 그저 직업으로서 행세나 하지 그런 대담한 짓 할 수가 없으니 저 사람 있는 동안 일 틀린다. 귓속말로 당신 잘해서

신태무 갖다가 본국 정부에서 소환해서 귀국시키도록 해라.

- 으흠.

- 이래서 인제 그, 대체로 지금까지 전해온 얘기로서는 이승만이 본국 정부에다가 비밀편지를 했다 그거죠.

- 네.

- 한규설, 민영환, 이기태. 그래서 이때 그, 신태무가 결국 가서 소환됐다 그겁니다. 물론 다른 점에서 보면은

이 신태무가 소환된 것을 단순히 그 일만은 아닙니다.

- 네.

- 벌써 1905년 접어들면서는 에, 일본 정부가 그 당시 우리나라 정부에 압력을 가해가지고 인제는 외교가 실제

필요 없게 됐으니 한국은 재외공관 돈 쓰면 설랍네 그대로 여러 사람들 갖다가 외국으로 내보낼 필요가 뭐 있냐.

소환하는 게 좋다. 그와 동시에 송금들을 안 해줬습니다.

- 아하.

- 본국에서. 그러니깐 드루 재외공관원들이 전부 다 죽을 지경이지. 그래서 결국 신태무는 나중 가서

그, 이거는 일본 외교문서 같은 거의 기밀문서를 보면은 일본 사람들의 외교차관을 통해가지고 교섭을 해서 간신히 돈 이천 불

송금을 받아가지고.

- 네...

- 그 중에 천불은 남겨놓고 천불 가지고 떠나 들어온다. 이런 것은 일본 외교문서에 나옵니다. 그런데 인제 우리 측에서

지금까지 전해온 사실은 가령 예를 들면은 지금도 에,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있습니다마는. 올리버 박사가 쓴 이승만 전기 있잖아요?

- 예예.

- 거기 보면 제가 지금 말씀드린 대로 어, 신태무가 아주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청년 이승만이 본 국에다가 비밀리에

편지를 해서 한규설이나 아... 민영환, 이런 분들이 움직여가지고 신태무를 소환했다. 신태무를 소환하면 자동적으로 말하면

김인경이가-.

- 네, 대리가 되겠죠.

- 대리가 됩니다.

- 그런데 그때까지도 일제 측에서는 청년 이승만이 밀사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죠.

- 몰랐습니다. 그 일본외교부 문서에 나온 걸 보면 말이죠. 아, 이 해 6월 가서 말이죠.

일본 외교문서에 기록 같은 걸 보면은 일본 정부가 당황해가지고 여기 서울에 있는 일본공사 임권조한테

훈령을 내리죠.

- 하야시 곤스케.

- 하야시 곤스케. 그때, 에,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밀사로 미국 가서 활약을 한다는데 서울서는 왜 니가 몰랐냐.

- 네.

- 이런 저의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상당히 당황했던 건 사실이에요. 어, 외교문서에도 몇 군데 그게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럼 이 당시에 이승만은 어떻게 했느냐? 처음에 워싱턴에 나타나가지고서 공사관의 의뢰로 그런 생각은 아무래도 일이 안 되니까

그래가지고 여러 가지 길을 터 가지고 그 당시에 미 국무장관 말이죠. 존 헤이라고 있어요.

- 네.

- 이 사람한테 접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하도 열심으로 따라다니고 그러니깐 드루 이 존 헤이는 이승만에게 어느 정도의 언지를 줬어요.

- 그 당신 참, 당신이 조국을 위해서 애를 쓰니까 앞으로 미국이 알선해서 너희 한국에 강화회담이 전개될 경우,

한국 사람의, 한국 백성의 의사를 갖다가 무시 안 하겠다. 없애고라도 미국 정부가 알선해서 참가시킬 용의가 있다.

- 네.

- 더군다나 포츠머스 회담 같은 데서 한국의 주권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된다면 그거는 당연히 그래야 될 것이 아니냐?

그래서 국무장관 헤이 말이면 상당히 접근해서 어느 정도 얘기가 잘돼요.

- 네.

- 에, 국무장관 헤이하고는 이처럼 얘기가 잘됐기 때문에, 네, 한때는 활기를 띠고, 이승만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 네.

- 그런데 불행하게 말이죠. 이 해 6월 근처쯤께 말이죠. 헤이가 갑자기 급 빈도로 죽어버려요.

- 네.

- 그 다음에 헤이 국무장관 후임으로 미스터 루터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 네.

- 근데 이 사람은 거 배짱이 약하고 이 당시 그, 데오도르 루즈벨트에 대해서는 어, 선생도 잘 아시는

에, 가네코 겐타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 일본 정부에서 밀파돼서 늘 붙어 있습니다.

- 네.

- 에... 데오도르 루즈벨트가 미국 하버드 대학 졸업생이고 금자경태랑도 하버드 대학 졸업생인데

동기생으로 피차 술친구였다 그거예요.

- 네.

- 그래서 일본 정부에선 벌써 5월 하순부터 가네코를 갖다가 밀파시켜 가지고 어, 한편으로는 러일전쟁을

계속하면서, 그러나 일본 이 당시에 전투능력이 거의 맥시멈에 도달했어요.

- 강화조약을 주선해달라고 보낸 셈이죠.

- 보낸 거죠.

- 그러니깐 드루 겉으로는 일본이 러시아에 대해서 전승했다고 기세를 올리지만 실제는 러시아는

아직도 육해군, 이런 면에 있어서 전투능력에 여유가 있고. 일본은 전투능력이 아주 그만 목에 찼습니다.

- 네.

- 그래가지고 이 당시에 그, 예를 들면은, 일본의 그, 만주에 추진한 말하면 육군의 참모처장, 아우기라고 조고다마-.

- 네네.

- 고마다가 헐레벌떡 자기 본국 정부로 뛰어가지고 이 이상 더 우리는 전투력이 없으니깐 드루

빨리 미국 같은 나라를 내세워서 우리가 이겼다고 떠는 이 시기에 말하면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오도록 해다오.

이것이 군부에서 말한 그 소리가 올라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는 이 당시 금자경태를 파견해가지고

루즈벨트하고 딱 붙어 설랍네 루즈벨트는 또 일본에 동경을 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루즈벨트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오도르 루즈벨트가 중간에 나설 랍네 그를 추진하잖아요? 그러니까 헤이는

갑자기 죽어버리고 루터는 뜨뜻미지근하고, 태도가.

- 네.

- 그래서 인제는 신임국무장관 루터하고 담판하는 것은 이건 이승만이 단념을 했어요.

- 네.

- 그래가지고 무슨 수단을 쓰는지, 미국 대통령 데오도르 루즈벨트하고 직접 담판해야 되겠다. 이러면서 고심하고 다닙니다.

근데 요전 잠깐 말씀한 대로 거 하와이로 들어갈 때에, 하와이를 경유해서 갈 때에 윤병구 목사하고 피차 동지적인 결속을 딱 했거든요.

- 네.

- 필히 협력하기로. 그래, 마침 요 시점에 대충 1905년 6월경입니다만. 에, 미국 정부에서 당시 육군장관 태프트-.

- 네.

- 이 사람을 일본으로다 파견해서 일본의 그, 가쓰라 수상하고 어, 극동문제에 대한 비밀협약을 체결하러 갑니다.

- 네, 태프트가 거, 필리핀을 경유해서 들어갔죠?

- 네. 근데 인제 하와이 거쳐서 필리핀에서 왔는데 그 딸들이 봅니다.

- 네, 오늘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됐네요. 벌써. 네.

(음악)

오늘은 이승만 밀사의 활약에 대해서 이선근, 서기원 두 분의 대담으로 들으셨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미국정부와 이승만 밀사에 관한 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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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의 샘. 버들표 유한양행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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