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대공 수사 실록 특별수사본부.
당신은 불나비.
(음악)
주식회사 진로, 신신제약, 삼립식품 공동제공.
(음악)
모란봉 7호 김순옥 사건. 양근승 극본, 안평선 연출, 스물 네번째.
-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 내 몸에 돈 떨어지면 친구도 떨어져 버려.
- 여보. 흠.
- (원참, 무슨 영문인지 원.)
[박상돈의 연기는 과연 일류배우 못지 않게 훌륭했었다.]
(문 여닫는 소리)
- 정말 못 말리겠군.
- 어머, 아유, 당신 언제 들어오셨어요?
- 헷! 내가 아주 안들어오면 좋겠지?
- 아유,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에요.
- 또 반포에 갔었다고?
- 하하, 이제 미스 고가 제법 증명사진 정도는 찍을줄 알고 해서 잠깐 다녀온 거에요.
- 아, 미스 고도 당신을 많이 닮은 모양이야. 같은 고씨라서.
- 아니, 왜요?
- 곧잘 외출을 하니 말이야.
- 하하, 아유. 참 당신도. 그 맘때는 으례 그렇지 뭐.
- 아무래도 이상해.
- 미스 고가요?
- 응.
- 에유, 당신은 왜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요? 암실이 지저분해서 널려 있으니까 청소를 좀 한거 가지고, 그거 때문에 아직도 미스 고를 의심하느냐고요.
- 뭔가, 감시를 받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란 말이야.
- 예? 아니, 감시를 받다니요? 우리가 누구한테요? 아, 우리가 감시를 받을 일이라도 있어요?
- 그 젊은이는 누구야?
- 젊은이라니요?
- 왠 젊은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던데?
- 예?
(전화벨소리)
- 네. 한강칼라에요. 에? 아니, 예.
- 어머, 나한테 온거에요?
- 바로 그 사람이야.
- 예?
[사실, 그 쪽에서도 몸이 닳게 되있다.]
- 저에요. 아주머니. 임 회장님 비서라고요.
- 아, 예. 그런데, 왠일이에요?
- 아니, 무슨 그런 여자가 다 있다죠?
- 뭐요?
- 아이, 미스 김 말이에요. 우리 회장님 한테 연락을 하기로 약속을 해놓고서 여태 깜깜 무소식이니 이거,
너무하지 않습니까?
- 예. 그럼. 내가 또 한번.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떻게 됐어?
- 예. 그 사진관 여자가 연락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 흠. 진짜 묘한 계집이야.
- 지나치게 세련된 여자 같았어요.
- 하지만, 난 기어코 미스 김을.
- 네. 틀림없이 연락이 될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 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 아니, 미스 김만 좋다면 난 그 여자와 재혼할꺼야.
- 회장님.
- 원래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붙들기가 힘든 법이라고. 게다가 나하고 나이 차이가 많아 그 쪽에서 자꾸 기피하는 눈치니까 자네가 머리를 잘써서 일이 틀리지 않도록 해줘야 겠어.
- 그 여자가 그렇게도 좋으십니까? 회장님.
- 이것보단 실물이 훨씬 더 매력적이야.
(말타는 소리)
- (겨울. 겨울 여인)
- 흐흐흐흐.
(전화벨소리)
- 응?
- 네. 한남동 입니다.
- 임 회장 댁이죠?
- 예. 그런데요?
- 지금 댁에 계십니까?
- 누구신데요?
- 뵙고 말씀 드리죠.
(음악)
[한편, 이 순간에도. 박상돈의 훌륭한 연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 흑흑, 그렇게 까지 나한테 단단히 약속을 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돈을 못 대주겠다고 딱 시치미를 떼니까 난 말이여.
- 그러니까 세상은.
- 응. 세상은 내가 잘되고 볼일이야. 사업을 하니까 난 그동안에 이 사람 저 사람, 참 돕기도 많이 했어.
- 다 소용없어요.
- 응. 다 소용없더라고. 솔직하게 말해 나는 지금 순옥이 자네 마저 나한테 등을 돌릴까봐 겁이나네.
- 여보!
-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괄시를 받다보니까 나도 그런 약한 마음이 생겨.
- 벼락 맞아요. 그러면.
- 참말인가?
- 난 오히려 당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걸요?
- 미안한 생각이?
- 네.
- 왜?
- 내가. 내가 재수가 없는 여자라서 당신마저 사업이 잘 안되는 거 같아서요.
- 에이, 그 쓸때없는 소리.
- 정말이에요.
- 내가 뭘 볼줄은 알지만, 뭐 그렇다고 무슨 미신을 믿는다는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 여보.
- 응. 난 그저 자네만 믿네. 흐흐흐. 나한테는 그저 순옥이 자네만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나. 뭐 비록 사업은 망했을 망정.
- 네. 나만은 믿으세요. 솔직히 말해, 난 처음에 당신이 100% 만족하진 않았어요.
- 응? 아니, 그런데 왜 나하고 살고 있는가?
- 하지만 이렇게 살아보니까 당신이 좋은걸 어떻게.
- 아, 내가 뭣이? 무식한 박상돈이가 대체 무엇이 좋단 것인가?
- 호호. 그저.
- 이제 참말로 내 밑천이라면 이 몸뚱이 하나 뿐인데.
- 글쎄, 아무걱정 말라니까요. 얼마든지 잘 살수 있을테니까 말이에요.
- 하지만, 앞으로 임 회장인가, 늙은인가 그 자 만나서 손벌리면 안돼.
- 네. 이젠 정말로 억지로 만나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만나요.
- 약속하지?
- 응.
- 그저 돈이 모아지면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데.
- 네?
- 자네, 상파울로라는 곳 아는가?
- 아, 브라질이요?
- 응. 상파울로인가, 브자질인가 거기로 이민만 가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 있어.
- 어머, 그래요?
- 그 친구 얘기가 더도 말고, 30만불만 가지고 오라는 것이야. 그러면 평생 아주 아랫묵에 누워서 배 툭툭치면서 편히 살 수 있단 말이야.
- 하지만, 30만불이라면은.
- 1억 5천.
- 그러나 그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디 쉬워요?
- 아, 그러게. 돈이 잘 벌릴때는 그까지꺼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여.
- 이민수속은 제대로 될까요?
- 에이, 그것이야 내가 끝내주는 사람이 아니야. 뭐 준비만 되면 이민수속 밟는 거 쯤은 누워서 떡먹기지.
- 오오. 그래요?
- 상파울로 그 친구는 뭣이냐. 스포츠카인가 뭣인가. 길죽하고 늘씬한 차만 타고서 브라질 전국을 누비면서 관광여행만 즐긴대.
- 여보, 우리 그럼 30만불만 만들어봐요.
- 그런데, 이렇게 된 마당에 무슨 재주로 내가.
- 내가 사기를 한번 쳐볼까?
- 사사사..사사. 응? 사사사기를?
- 네. 까짓 한번 해보는 거지.
- 에구, 무슨 그 사기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 누가 사기그릇이래요?
- 에그. 사기란 깨지기가 쉬운 것이라고.
- 암튼, 이제 당신은 잠자코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순옥은 벌써 거대한 사기극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화벨소리)
- 네. 반포에요.
- 아, 나야.
- 어머, 고 언니.
- 임 회장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
- 네?
- 어떻게 할꺼야?
- 안만날래요.
- 아유, 한번쯤 더 만나가지고 용돈을 뜯어낼 수도 있잖아.
- 호호. 꼬리가 길면 잡혀요.
- 아유, 하지만.
- 글쎄, 싫다니까요. 그러다가 괜히 우리 사장님과 금이 갈 수도 있고요.
- 응. 잘 생각했어.
- 호호. 그런 일이라면 아예 전화도 하지 마세요.
- 이봐, 동생.
- 글쎄, 그만이요.
(수화기 내려 놓는 소리)
- 아이고, 흐흐흐. 순옥이 자네는 매사에 그렇게 분명해서 좋아.
(전화벨소리)
- 글쎄, 싫다는데 왜 이래요?
- 아니, 여보세요?
- 응? 어머나.
- 순옥이니?
- 어머, 아유. 혜란아.
(음악)
[드디어 불나비는 검붉은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 용구.
- 예. 사모님.
-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아.
- 뭘 말씀입니까?
- 우리 사업이 거덜났다는 소리.
- 아유, 사모님도 그게 뭘 자랑거리라고. 제가 그런 소릴 함부로 합니까?
- 그리고 전보다 훨씬 더 깎듯이 대해줘.
- 예예.
- 나한테.
- 예예.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 허풍을 쳐줘.
- 예?
- 내 친구들 앞에선.
- 하아, 예. 알겠습니다.
- 호호. 자, 이걸로 구두나 한켤레 맞춰신고.
- 하하하. 뭘 이렇게 많이 주세요.
- 호호호. 아무소리말고 받아둬.
- 아, 예 사모님.
- (흠, 그래. 멋지게 한 밑천 잡아 날아버리자.)
(음악)
특별 수사본부 양근승 극본, 안평선 연출, 모란봉 7호 김순옥 사건. 스물 네번째로 신신제약, 주식회사 진로, 삼립식품 공동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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