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대공 수사 실록 특별수사본부.
당신은 불나비.
(음악)
주식회사 진로, 신신제약, 삼립식품 공동제공.
(음악)
모란봉 7호 김순옥 사건. 양근승 극본, 안평선 연출, 두번째.
(차 마시는 소리)
- 에고메, 에고메, 에고메 써어라. 에이고 난 참 이 쓰디쓴 커피는 참 싫은디, 아이고 뭐시냐,
- 하핫. 양주요?
- 에이, 그것이나 한 잔 주라.
- 얘, 미스 장.
- 네.
- 거기 양주하고 간단한 안주좀 내와라.
- 네. 언니.
- 아이고, 아이고 야, 안주는 뭣하려고 그냥 그 것만 가지고 오니라. 거시기 뭣이냐 그것이 꼬..꼬.
- 에? 꼬냑?
- 어, 그랴. 꼬냑. 하이고. 입안에서 빙빙 돌면서 영 자꾸 잊어버려.
- 자, 차 다 식어요. 아가씨.
- 네.
- 에잇. 아가씨가 아니라니까. 그런당께.
- 아이, 오빠도 참. 아이, 그럼 젊디 젊은 여자한테 뭐라고 불러요.
- 헤헤. 하기사 그렇구만. 부르기가 참 애매혀이.
애매한 건 오히려 이 집의 묘한 분위기였다. 잘 정돈된 고급 세간이며, 모든게 제대로 갖춰졌는데, 박
사장 부인이 안보인다.
(술 병 따는 소리와 따르는 소리)
- 야, 그냥 모양보지 말고 펄펄 철철 넘치게. 그냥 몽창 부어던져. 응.
- 네. 사장님.
- 그럼. 전 이만.
- 어머나 더 놀다 가시지 않고.
- 아니에요. 차, 잘 마셨습니다.
- 에이, 갈 사람 후딱 가야지.
- 아이, 오빠도. 술은 이따가 마시고 출장을 다녀오셨으면 우선 목욕부터 좀 하세요.
- 아, 목간한지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뭘 해.
- 아이, 오빠.
- 이? 야!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솔직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여. 아 내가 솔직히 말해서 목간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여.
- 아이, 참. 그러니까 여태 홀애비로 살고 있지.
- 야야. 이렇게 혼자 사는 것이 신간이 더 편해. 인생이라는 것이 눈 깜박할 사이인디, 접시같은 것
찾아 뭘 할것이여. 그냥 나 맘대로 자유스럽게 살다가 난 편하게 죽을란다. 진작..
(음악)
김순옥은 박사장이 화를 내는 바람에 도망치듯 거기서 뛰쳐나왔다.
(발소리)
- 후훗. 세상에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지.
그러나 순옥은 울창한 숲을 이룬 고층 아파트에 사이에 끼어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 가만있자, 여기서 한강맨숀으로 가려면은
- 아니, 더 놀다가시지 않고 왜 벌써.
- 어머나.
- 하하하. 우리 사장님이 좀 싱거우시죠?
- 아니에요. 커피랑 잘 마셨어요.
- 하하.
- 이봐, 용국.
- 네?
- 나 지금 가게에 나가봐야겠어.
- 예. 모셔다 드리죠.
- 아, 참 아가씬 어디로 가요?
- 네. 전 한강 맨숀이요.
- 오. 그럼.
- 오. 그럼 마침 잘 됐군. 우리 가게도 그 쪽이니까 같이 타고 가지 뭐.
- 예. 그러시죠.
- 아..
(발소리)
- 아유, 우리 오빤 손님이 곁에 있거나 말거나 왜 그렇게 자기 성미대로 얘길 하는지 원.
- 전 그냥 버스로 가겠어요.
- 아니, 이런 자가용을 놔두고 버스를 왜 타요?
- 같은 방향인데 어때요.
- 그러지 말고 어서 타세요.
- 미안합니다.
- 뭘. 천만에.
(차 문 닫는 소리)
- 가게가 한강 맨숀 근방에 있어요?
- 네. 바로 서부 이촌동 로터리에요.
(차 소리)
김순옥은 서울로 올라온 걸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인심도 좋고.
- 흐흐. 돈만 있으면 뭘해. 돼지처럼 살만 피둥피둥 쪄가지고. 그런 식으로 살다간 정말 나이가 많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면 후회막심일텐데. 아유~ 우리 오빤 그걸 모르고 사시는 거야 지금.
- 하하. 석남이시랍니다.
- 뭐? 석남?
- 예, 돌 사나이시라고요.
- 흐흐흐. 석녀란 말은 들었지만, 석남이란 얘긴 처음인데?
- 아, 여자가 남자를 잘 모르는 걸 석녀라고 하니까,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멀리하면 석남 아니겠어요?
- 아유, 아유, 또 유식한 척 하는구먼.
-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 사장님이시야 보증 수표시죠. 뭐든 거래처에선 박상돈씨 하면 깜박 죽고
못 사는걸요?
- 아이, 글쎄. 그렇게 젊잖으신 양반이 이빨 관상은 왜 봐.
- 아이고, 모르시면 잠자고 계세요. 우리 사장님은 사람을 처음 상대할 땐, 꼭 이빨부터 보신다고요.
아, 그리고 그게 십중팔구 들어 맞아요. 으응. 저 사람은 상대해선 곤란하다고 생각될 땐, 아예 거들
떠도 안보신단 말이에요.
[예전 음성 - 하하하. 아가씨, 아니, 과부여사 치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비만행 이네 그랴. 초비만행
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초년에는 슬픈일이 많아도, 만년에는 행복하겠다 그러한 말씀이여.]
- 후후후.
- 응? 아니, 왜 그래?
- 하핫,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리고 박사장 누이동생이라는 여자는 또 계속 혼자 입에 침이 마르도록 투덜댔다.
- 이렇다할 사업을 하고 계신 분이 홀아비로 살고 있으니, 아 부부동반으로 파티에 나와달라고 해도
짝이 있어야지 글쎄. 짝이. 아, 그래 맨날 그런 자리라면 이 핑계, 저 핑계 피하기만 하고. 에휴~
그 양반은 정말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시는지 원.
(차 소리)
- 아유, 아유 내 정신 좀 봐라. 아, 아가씨 괜히 나혼자 떠들어서 미안해요.
- 아유~ 괜찮아요.
(차 내리는 소리)
- 저, 난 가게 가 있을테니까. 아가씨를 한강맨숀까지 모셔다 드려요.
- 네. 그러죠.
- 아유, 아니에요. 이젠 저 혼자서 갈테니깐 내버려 두세요.
- 아이, 참. 그러시지 말고 그냥 앉아계세요.
- 아, 감사합니다만.
(차 문 닫는 소리)
- 하기야, 여기서 한강맨숀은.
- 어디에요? 한강맨숀이.
- 네. 저기 아파트 단지가 보이죠?
- 아, 네.
- 아니, 그런데 여긴 처음이에요?
- 네. 서울엔 여러번 와 봤었지만.
- 아, 그럼 이리로 그냥 곧장.
- 아. 네. 알겠어요.
- 아 참.
- 네?
- 우리 가겐 바로 저기 사진관이에요.
- 아, 네.
한강 칼럼. 여권사진 전문.
- 저, 사진 찍을 일이 있으면 꼭 우리 가게로 와요.
- 후훗. 네 그러죠.
- 사실은 말이야.
- 네?
- 나 아가씨 사진 한장 찍어 진열장에 다가 걸어 놓고 싶은데. 괜찮겠어?
- 네에? 어머나.
- 하하하. 미인이야. 볼수록. 막상 구하려고 들면 아가씨 만한 모델도 흔치 않다고.
- 하하. 아유~ 아주머니도 제가 미인이긴요.
- 아이고, 아가씨. 아이, 이봐요 아가씨.
- 후훗. 서울은 역시 으음. 역시.
살기 좋은 곳이야.
(음악)
(문 여는 소리)
- 어서오십시오.
- 아유. 나야 나.
- 어휴. 난 또.
- 그래, 오늘 몇 판이나 찍었지?
- 겨우 서너판 밖에 못 찍었는데요.
- 어,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 예. 지금 막 현상 끝냈습니다.
- 필름은 암실에?
- 예. 들어가 보시죠.
- 흠.
(발소리)
캄캄한 암실. 게다가 하이포산 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 어유. 왜 이래?
- 네?
(부스럭 거리는 소리)
- 왜 이렇게 흐릿하게 나왔냐고. 필름이.
- 아, 그거야.
- 노출부족인가?
- 타임도 잘 안맞았고요.
- 아유, 이건 실패작이야. 이번엔 정말 예술작품을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이었는데.
예술작품.
- 이건, 무슨 공사장이죠? 혹시 잠수교 아닙니까?
- 으흠흠흠. 응. 맞았어.
(음악)
(띵동- 벨 울리는 소리)
- 누구세요?
그녀는 마침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
- 아니, 이게 누구야?
- 하하. 얘, 오랫만이다.
- 어머머. 순옥아. 얘, 진짜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 하하하. 얘얘. 그럴수 밖에. 우리가 이렇게 만난건 졸업하고 처음이잖아.
- 으응. 그렇구나. 정말.
- 아이, 얘가 너 답지 않게 어수룩하지? 아이, 그렇지 않아도 너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소식이야 여
기서도 다 들을수가 있었지만 말이야. 아이, 그나저나 어쩌다가 그런 변을 당했지.
- 바다낚시를 갔다가 폭풍을 만났대.
- 아유, 저런.
- 흠. 팔자한번 참 더럽지? 이 나이에 과부가 됐으니 말이야.
- 얘, 그래. 그럼 뭐 좀 물려받았니? 시댁에서 한 밑천 받았어?
- 흐흑..
- 어머. 순옥아.
- 흐흐흑.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마구 함박눈이 아주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 과장님. 대포한 잔 안하시겠습니까?
- 헤헤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한 잔 생각이 간절한데요?
- 이상한 일이야.
- 아니, 뭐가 말입니까?
- 이 노동신문 좀 봐.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 아니, 거기에 뭐가 났기에요?
- 글쎄. 보라고 이 걸.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 어! 어.. 이건.
- 이야, 이거야 원.
- 제법 빠르지 않아?
- 예. 그러게 말입니다.
남산 2호 터널이다. 그리고 그 사진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 북침 준비에 광분하는 남조선. 원 이런 세상에.
(음악)
김영식, 전윤희, 권희덕, 윤병훈, 이완호, 김규식, 김민, 김환진, 이기전, 정경애.
해설 안정국, 음악 김홍철, 효과 심재훈, 장준구
(음악)
특별 수사본부 양근승 극본, 안평선 연출, 모란봉 7호 김순옥 사건. 두번째로
주식회사 진로, 신신제약, 삼립식품 공동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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