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피아노社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서른두 번째.
오늘은 대동단 사건과 전협 선생 편을 보내 드립니다.
(음악)
-『대동단 단장 전협, 돌연 중태로 가출옥.』
1927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
-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기미년 당시에 조선 안에 여러 동지와 같이 모모 중대계획을 세운 후
이강공 전하를 모시고 멀리 중국 상해로 가서 활동을 하고자 하다가 신의주역에서 이강공 전하 이하
단원 전부가 잡히어 그 면밀한 계획과 민완한 활동이 폭로되는 동시에 세상의 이목을
놀라게 하고 관헌의 간담을 서늘케 하던 대동단 사건으로 인하야 경성 복심 법원에서
징역 8년의 언도를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중이던 동 사건 주범 전협 씨는 재작 9일 오후 3시경에
관절염이라는 병으로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다 하야 형무소로부터 가출옥이 되어가지고
햇수로 아홉 해 만에 겨우 세상 구경을 다시 하게 되었으나 병세가 원체 침중하야
혼수상태에 있으므로 목하 시내 서소문정에 있는 김탁온 씨 병원에 입원중이라는데.』
대동단 사건. 그리고 전협이라는 사람. 1927년 7월 9일에 병으로 가출옥해서-.
- 『10일 오후에 이르러는 병세가 전연 절망에 빠져서 회생할 희망이 없으므로 그의 친우와 부인 변하 여사는
남의 병원에서 운명케 하는 것이 미안타하야 새 집을 한 채 얻고 오후 8시경에 그 집으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그 집 주인이 없어서 문을 잠궈 두었으므로 그의 가족, 친우는 방금 운명하는 사람을 데리고 어찌 할
도리가 없어서 10일 오전 2시반경에야 창성동 132번지에 있는 전씨종약소에서 가서
작일 오전 1시반경에 드디어 한 많은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는데 그의 오십 평생은
순전히 조선독립운동에 바치었다더라.』
1927년 7월 10일, 오십 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애를 마친 전협.
-『생전에 영어, 장례식까지 감시. 대동단 단장 전협의 장례에 대하여는 그의 친우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의식을 좀 갖추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소간 종로경찰서에서는 전씨종약소에 있는
사람을 소환하야 보통사람보다 다른 무슨 의식을 갖추는 것은 절대로 금지할 뿐만 아니라
빨리 장사를 지내지 아니하면 우리가 가매장에 붙일 권리가 있은 즉, 알아서 하라고 주의를
시키었으므로 할 수 없이 그의 친우와 가족은 초라한 모양으로나마 정성껏 장사를 빨리 지내기로
작정하고-』
일본 경찰이 장례식까지도 감시했던 전협이라는 한국인. 장례식 날 조기와 만장은 물론
영결식도 거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전협,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우선 유광렬 씨의 말씀부터 들어봅시다.
(음성 녹음)
(음악)
1878년, 고종 15년에 전협은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농상공부 주사로 벼슬살이를 시작해서
제주군수, 부평군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한때 일진회에 관계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오점입니다. 일진회라면은 송병준, 이용구 등이 주동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단쳅니다.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을 이룩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매국적인 단쳅니다.
그러나 전협은 비록 일진회의 평의원까지 지냈지만 합방 후에 이를 반대하고 만주로 이민 갔습니다.
그때부터 그 파란만장의 생애가 시작됩니다. 기미독립운동 때는 만주 봉촌에서 대동단을 조직했습니다.
전협이 최익환과 손을 잡고 분산된 독립운동단체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만든 단체가 대동단입니다.
귀족, 관료, 유림, 학생, 의병, 보부상 등 각계각층 인물들을 총망라한 비밀결사로서
구한말 법무대신을 지낸 김가진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활동을 계시했습니다.
일본 통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대동단은 우리나라 왕족을 독립운동에 참여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고종의 둘째 아들이오 순종의 아우인 이강공을 만주로 모셔갈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습니다.
정통적인 왕자지만 나라 잃고 방탕한 생활만 하고 있던 이강공입니다.
전협이 이강공을 망명시키기 위해서 직접 나섰습니다. 비밀리에 서울에 잠입해서 우선 이강공의 저택과 가까운
공평동 3번지에 있는 집 한 채를 세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강공은 늘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몸.
접근할 기회가 좀처럼 안 생겼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안 되므로 그는 비상한 수단을 썼습니다.
전협은 돈 많은 전라도 부자로 변장했고 동지들은 자기 하인으로 꾸미게 했습니다.
값비싼 통영갓에 비단 옷을 입고 근처에 소문을 냈습니다.
- 이강공 전하께서 부산 향태 어장을 내놓으셨다고? 나는 그걸 사러 전라도에서 올라왔어!
당시 이강공 저택에 자주 출입하던 자 중에 총독부 밀정 정운복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전협의 부하 송세호는 우선 정운복에게 접근했습니다.
- 보쇼, 정 선상. 이강공 전하께서 그 어장을 파실 의향이 있다는 게 정말이오?
- 전하께선 요새 돈이 딸리는 건 사실이니까.
- 어이, 그라믄 정 선상이 나서야겄소. 우리 영감님께선 말씀이오. 그 어장 파신다는 승낙만
내리시면 당장에 계약금 삼만하라고 말이오. 거간비도 두둑이 내시겠다는 거요.
- 거간비를 얼마나 낸답디까?
- 아따, 자그만치 일만 오천 원.
- 일만 오천 원?!
- 정 선상, 나서볼 의향 없소?
- 나서보지!
(음악)
- 정 누구시라구?
- 예, 정운복 씨올시다.
- 정운복 씨? 올라오시지.
- 예.
- 올라갑시다.
- 예.
- 이 정 선상이 전하와 아주 가까운 사이랍니다.
- 오, 그렇소?
- 힘은 없지만 제가 나서 보겠습니다.
- 음... 그래보쇼!
- 그런데 그만한 현금은 직접 가지고 올라 오셨는지...
- 음... 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돈이 없을까봐 그러남? 그래, 보여주지!
- 이 돈을 보쇼!
- 우와...! 오만 원은 넘겄소.
- 인제 안심을 했담?
- 네, 뭐 제가 의심을 한 게 아니라-.
- 하하하하하하하.
- 괜찮아요. 어서 일이나 성사시켜요. 거간비 일만 오천 원은 내놓을텡께.
- 예!
(음악)
1920년 3월 중순, 전협이 이강공을 망명시키기 위해서 공작을 편 지도 벌써 여섯 달이 된 때.
공평동 3번지, 전협이 전라도 부호 행세로 살고 있는 집에 인력거 한 대가 와서 섰습니다.
밤 9시 반.
- 행차하셨습니다.
- 아, 전하.
- 이 집인가?
- 예.
- 어이구, 전하!!
- 이런 누고에 행차하신 영광.
- 이리로 드십쇼. 전하.
- 은밀히 모시고 오느라고 아주 고생을 했습니다.
- 아, 고맙소. 들어갑시다.
(문 여닫는 소리)
- 동지들!
- 예, 예.
- 꼼짝 말어,
- 아, 아니.
- 저 정가 놈은 끌어내서 묶어라!
- 예!
- 아... 아니!
- 아, 뭐야!!
- 이게 무슨 짓인가? 그대는 누군가?
- 전하, 소생은 대동단 전협 올습니다.
- 응? 대동단...? 전라도 부호라는 건 거짓말인가?
- 예, 전하. 만주에서 전하를 모시러 나온 사람입니다.
- 음? 나를?
- 전하, 대동단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려고 조직된 단쳅니다.
- 나도 얘긴 들었소.
- 그렇다면 전하.
(음악)
전협은 웅변가요 설득력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30분 동안 열변을 토하여
이강공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날밤.
(인력거 소리)
인력거 두 대가 공평동 3번지를 나서서 창의문을 향해 달렸습니다.
이강공을 만주로 모셔가기 위한 전협 일행의 행렬이었습니다.
세검정이 이 음모의 임시본부였습니다.
그날 밤, 수색발 봉촌행 열차는 이미 시간이 늦어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차를 타기 위해 그날 밤은 세검성에서 숨어서 셌습니다.
나라 잃고 방탕에 흐르는 생활로 나날을 보내던 이강공. 이제 이 땅을 떠나
해외로 가서 고투를 하기로 결심한 왕자 이강은 감회가 일어 그날 밤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음악)
- 늦은 가을바람 단풍잎 소리
내 손이 처량하고 내 피도 어여쁘다
내 소리 그치지 말라 우리 독립 만세 소리
내 빛 변치 말라 우리 형제 붉은 빛
나는 내 소리 내 빛을 따라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음악)
한편 일본 경찰 측. 이강공의 행방이 없어지자 경찰은 아연 긴장했습니다.
시내 기생집이란 기생집은 다 뒤졌으나 이강공의 모습은 안 보였습니다.
그때 경찰부에 경부로 근무하던 김태석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공명심에 날뛴 이 김태석 경부는 자기의 밀정들이란 밀정들을 총동원해서 이강공 수색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이강공이 만주로 탈출한다는 정보를 캐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만주 안동역.
안동역에서 내리는 승객 중에 면서기 모양의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듬성듬성한 누런 수염을 붙이고
덥수룩한 양복에 중절모자를 눌러쓴 사람. 이 사람이 변장한 이강공이었습니다.
(호루라기 소리 및 사람들 달리는 소리)
그러나 안동역에는 이미 경찰과 헌병들이 물샐 틈 없는 경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충성스러운 경부 김태석의 정보로 만주 일대 역마다 경계망을 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루라기 소리 및 사람들 달리는 소리)
(음악)
결국 6개월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이강공은 다시 서울로 송환되었고
전협과 그 동지들은 체포됐습니다.
정치학 교수 홍순옥 씨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체포된 전협은 8년 징역 언도를 받고 형기를 거의 마칠 즈음 병이 위독해서 가출옥.
그 이튿날인 1927년 7월 10일에 5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오랜 혼수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깨어나서-.
(흐느껴 우는 소리)
- 아... 아... 좋다... 아... 좋다...
- 여보!
- 아... 좋구나... 아... 좋아... 으....아...! 크으으...
- 아! 으으으윽!
(흐느껴 우는 소리)
(음악)
마지막 순간에 전협은 ‘아, 좋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랜 혼수상태에서 그는 한국의 독립된 모습이라도 보았는지. 용기와 지모가 뛰어났던
한 사나이의 마지막 말은 우리의 가슴을 때려주고 있습니다.
철학자 신일철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전협은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투사가 아니었습니다. 조직력이 있었고 지모가 있었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일본 통치 하에서 맹목적인 테러리스트는 많았지만 이처럼
두뇌적인 투사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의 작은 과오 때문인지
그 흔한 건국공로훈장 하나 못 탔지마는 그의 행적은 훈장 하나로 보상되지 못할 만큼
뚜렷한 바가 있습니다. 전협, 그는 가장 현대적인 사상을 가졌던 독립투사였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희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악)
말씀해주신 분, 유광렬, 홍순옥, 신일철. 그리고 기사낭독 주상현. 해설 김영배. 음악 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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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에서 대동단 사건과
전협 선생 편을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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