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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 Y.M.C.A
제1부: 근세의 표정
Y.M.C.A
1969.05.18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찬가’는 68년 10월 20일 일요일아침 8시 30분부터 30분간 첫방송을 시작했으며, 증인들의 말과 전문가들의 분석 평가를 곁들여 녹음구성 스타일을 살린 본격적인 교양물로 우리 근세사를 사건과 인물위주로 진단 평가하는 계몽성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찬가’는 당초 제1부 근세의 표정, 제2부 외국인이 본 한구, 제3부 미래의 한국으로 구상되었으나 제1부가 70년 4월 5일까지, 제2부가 73년 9월까지 방송되었을 뿐 제3부는 불발로 끝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피아노社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서른한 번째.

오늘은 YMCA 편을 보내 드립니다.

(음악)

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기독교청년회.

- 『기독교청년회는 성격대로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믿어 그 신앙과 생활에서

그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청년들을 하나로 뭉치고 또 그 힘을 합하여 청년들 가운데

그의 나라에 확장을 힘쓴다. 』

YMCA는 일종의 기독교 기관입니다. 영국인 조지 윌리암스에 의해서 1855년에 창립된

이 기관은 물론 세계적인 조직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청년회라면은 단순한 기독교 기관이라는 의미를 초월한 기관입니다. 일본의 통치 하에

있을 때 종로에 있는 기독교청년회는 독립의 상징이었고 젊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유광렬 선생은 YMCA의 연혁을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 사람을 덕, 지, 체의 세 방면으로 양성하는 것이 이 YMCA라는 조직체의 근본이니 만큼

덕, 지, 체, 세 가지 양육은 우리나라와 가정과 신체상에서 긴요한 조건인 것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의 침략으로 파괴를 당할 적에 YMCA 건물이

불에 소화당해서 몇 해 동안을 집 없이 전재민으로 지내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서울 종로에

YMCA회관이 불탄 이전 자리에 큰 집을 굉장하게 지어서 이전 것보다 못지않게

지어놓아야 될 것이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얘기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YMCA를

지어놔야 되겠다고 해서 덮어놓고 내가 그래서 돈을 내라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지으세요.

이제 우리는 공산당 놈들에게 보라는 듯이 거기에다 훌륭한 집을 지어야 될 것이니

다른 얘기가 없습니다.

1958년, 당시 대통령 이승만 씨가 YMCA회관 재건을 위한 연설입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었고 또 YMCA와도 일찍이 관계를 맺은 일이 있는 이승만 씨의 연설은

다분히 독선적인 면이 있지마는 YMCA회관 재건을 위해 전 국민의 협조를 요망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YMCA는 1903년 10월 28일에 정식으로

창립됐습니다. 1903년이라면 아직 을사보호조약 전입니다. 그 삼년 전인 1900년에

상해 YMCA 총무로 있던 윌리아더 라이언 씨가 한국에 왔습니다. 물론 한국에

YMCA를 설립하기 위한 예비공작이었습니다. 라이언 씨는 다섯 달 동안 머무르면서

당시에 이미 전도 사업을 하고 있던 서양인 선교사들을 만나 한국의 사정을 조사했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셀러, 게일 등 세 사람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 한국에는 상류계급의 인사들이 모일 장소가 없으므로 집회장소가 긴급히 필요합니다.

- 에... 작년에 저두 YMCA를 설립하고자 했으나 한국 황제께서 허락치 않으셨습니다.

회원 모집은 민영환 씨와 같은 귀족 출신의 사람들과 배재학당 학생들과

헐버트 씨가 경영하는 학교 학생들과 각 교회에서 세례 받은 청년에게서 가능할 것입니다.

- 교회가 접촉할 수 없는 층의 청년들이 한국에는 많은데 YMCA 방법으로 하면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회관이나 돈보다는 간사, 즉 일꾼이 더 중요합니다. YMCA는 절대로 정치의 도구가

되거나 정치적인 중심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면밀한 검토 끝에 1903년 9월 28일 황성기독교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습니다.

흥사단 이사장이시고 YMCA 이사이기도 한 이용설 박사는 당시 YMCA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음성 녹음)

(음악)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황성이라는 이름을 없애고 중앙기독교청년회라고 고쳤고

일인들의 계속적인 탄압으로 조선기독교청년회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탄압은

받았지마는 한국의 기독교청년회는 그 독립성을 유지했습니다. 나라는 일본인들에게

먹히고 있을 때 적어도 이 나라 사람들이 독립적인 운영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YMCA는 나라 잃은 청년들에게 매력을 주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운명하기 직전까지 활약한 것도 YMCA를 통해서였습니다. 끊임없이 독립정신을

청년들에게 불어넣어줬고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고 행동했습니다.

이용설 씨의 말처럼 YMCA가 체육보급에 앞장선 것이야말로 큰 공헌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09년 YMCA에 유도부가 창설될 때 이상재 선생께서는 감개 어린 말을 했습니다.

- 여러분, 이 도장에서 장사 백 명만 양성하는 겁니다.

장사, 즉 힘을 쓰는 사람 백 명만 양성하자. 그것은 곧 한일투사 백 명을 양성하자는 뜻입니다.

(음악)

- 지금으로부터 약 오십 년 전의 얘깁니다. 그때 10대의 풋나기이던 나는 공상에 들떠

거리를 헤매다가도 피곤하면 종로 YMCA에 들어가서 잡지를 읽었습니다.

하숙집이 춥고 스산하면 스팀으로 훈훈한 YMCA 독서실을 찾아간 거예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면 꼭 일요강좌가 있었습니다. 김창제 선생, 이상재 선생,

홍병선 목사님 등이 연설을 해주셨습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들러서 잡지를 읽고 훌륭한 강의도 들을 수 있던 곳. 추위에 떠는

젊은이들이 훈훈하고 몸을 녹일 수 있던 곳, YMCA는 젊은이들의 요람이었습니다.

(음악)

종로 YMCA회관은 1908년에 지었습니다. 구황실을 비롯한 미국인 워너메이커 씨의

기부로 세웠던 옛 회관은 6.25사변 때 불에 타버렸습니다. 1958년에 당시의 이 대통령까지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벌려서 극장 매표구에서 모금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거대한 건물은 재건된 것입니다. 호텔이 들어서고 이발소, 다방, 구ent방 등은 물론

슬롯머신이라는 도박기계까지 설치됐습니다. 연중무휴에 실내 풀까지 있는

이 회관은 현재로서 동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YMCA회관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가입할 수 있는 이 YMCA는 모든 사람이 시설을 이용하고

보람 있는 활동을 하도록 개방돼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오늘의 YMCA는 일제치하의

YMCA는 다릅니다. 항일, 그리고 독립이라는 큰 목표가 있던 일제치하에서는

이 나라 청년들의 꿈을 키워주고 울분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지마는

오늘날에는 그런 방향의 이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동양 최대의 회관을 가지고

이 정도 청년들의 활용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현재 YMCA 총무 전택부 씨는 말합니다.

(음성 녹음)

(음악)

일제치하에서는 탄압도 많이 받았습니다.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민족적인 당면과제인

독립정신 함양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1938년에 조선총독부에서는 YMCA의 모든 사업에 대해서 정지령을 내렸습니다.

회원들은 해산되고 혹은 투옥됐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1945년, 해방과 함께

대한YMCA연맹이 조직됐으나 사회적인 혼란기라서 별 활약을 못했습니다.

게다가 1950년, 6.25사변이 나면서 회관까지 불에 타고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이 나라 현대사 수난의 역사이듯 YMCA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철학교수 신일철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음성녹음)

(음악)

일제치하에서도 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YMCA.

이 나라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YMCA.

큰 건물, 그 속에 있는 호텔이며 수영장이며 갖가지 상점들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YMCA 자체에는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는 오늘인 것 같습니다. 영화관 표 값에

십 환, 이십 환씩 얹어내서 우리가 헌금한 돈이 그 건물에 들어 있습니다.

YMCA는 그 건물보다도 정신적인 전통이 더욱 훌륭합니다.

대중도 YMCA에 대해서 관심을 보여줘야 하겠고 YMCA 자체도 단순한 건물 경영주처럼

보이지 않도록 무슨 사업이고 보다 현대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전개하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음악)

말씀해주신 분들, 이용설, 전택부, 유광렬, 신일철. 해설 김영배. 음악 김종삼.

(입력일 : 20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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