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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 순종 승하와 6.10만세
제1부: 근세의 표정
순종 승하와 6.10만세
1969.05.11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찬가’는 68년 10월 20일 일요일아침 8시 30분부터 30분간 첫방송을 시작했으며, 증인들의 말과 전문가들의 분석 평가를 곁들여 녹음구성 스타일을 살린 본격적인 교양물로 우리 근세사를 사건과 인물위주로 진단 평가하는 계몽성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찬가’는 당초 제1부 근세의 표정, 제2부 외국인이 본 한구, 제3부 미래의 한국으로 구상되었으나 제1부가 70년 4월 5일까지, 제2부가 73년 9월까지 방송되었을 뿐 제3부는 불발로 끝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피아노社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서른 번째.

오늘은 순종황제의 승하와 6.10만세 편을 보내 드립니다.

(음악)

-『창덕궁전하 승하. 26일 오전 6시 10분에 창덕궁전하께옵서 26일 6시 10분에 승하하신 뜻을 작일 오후 9시 35분에 궁내성으로부터 정식발표 하얐더라.』

1926년, 4월 27일자 동아일보. 창덕궁전하 승하. 창덕궁전하라면 순종황제를 가리킵니다.

이씨조선 최후의 왕이었던 순종. 1910년 한일합방으로 황제자리를 물러나 이왕전하라는 이름으로 창덕궁에 계시다가 승하하신 것입니다.

나라를 일본에 넘겨준 16년 되던 땝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최후의 임금이 승하한 슬픔을 더욱 느꼈습니다.

- 『호곡이 미만한 반도강산. 월색이 무광한 인산 위에 초목도 오열하는 천만중의 목소리.』

1874년, 고종11년에 유명한 명성황후 민씨의 몸에서 태어났고 1897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의 책임을 묻는 일본의 압력과 이완용 일파의 강요로 고종이 양위하자

황제로 등극해서 즉위 3년 만인 1910년에는 나라를 일본에 넘겨줘야 했던 최후의 임금.

회오리바람이 휩싸이듯한 혼란한 18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대에 살아야 했던 비운의 왕손이었습니다. 대세는 이미 어쩔 수 없었던 1910년 8월, 실권은 일본인과 이완용 일파에 뺏기고 있었다지만은 그래도 500년 사직을 지키던 황제 순종은 스스로 합방조서를 내려야 했었습니다.

- 『황제 약 왈, 짐이 부덕하야 관대한 업을 받아 임어한 이후 금일까지 유신의 정령에 관하야 급히 개혁코자 하였으나 힘이 부족하여 적약이 고질이 되어 피폐가 극에 달하였다.

급속한 시일 내에 만회하지 못하여 근심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종국을 수습키 어렵게 될 것이다.

차제에 차라리 대임을 남에게 부탁하여 완전한 방법과 새로운 효과를 주요함 만 같지 못하다.

그런고로 짐은 두려워한 남짓,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신임하던 인국 대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하여 동양평화를 돈독케 하고 파력의 민생을 보존코자 한다. 너희 대소신민은 국세와 시일을 심천하여 소요치 말고 각자 생업을 편안히 하여 일본제국의 문명한 신정에 복종하여 행복을 받으라. 짐이 오늘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 대중을 잊은 것이 아니라 다만 대중을 구하기 위한 뜻에서 나온 것이다. 신민들은 짐의 뜻을 알아라.』

1910년 8월 29일에 이 조서를 발표하여 이 나라 굴욕의 역사를 만든 마지막 임금.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이 어찌 황제 한 분을 원망했겠는가. 일본인들의 간악성, 그리고 거기 기생해서 날뛴 이완용이와 여러 반역자들을 끝없이 미워했고 무능했지만 마지막 임금의 처지를 한없이 동정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한일합방이 되고나서 원래 병약했던 이 마지막 임금.

창덕궁에 침거했고 뉴스의 초점도 되지 못한 채 살아오길 16년. 1926년에 죽음으로 다시 한 번 뉴스의 전면에 나타났고 백성들은 새삼스럽게 슬픔에 젖어 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운했던 임금의 죽음이 슬픔을 낳은 만큼 울분도 크게 낳았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끝없는 분노가 자동적으로 집약된 것입니다.

- 『긴장한 경찰당국 동정, 민심이 동요될까 염려하여 적당한 방침으로 경계할 터.』

1919년에 있었던 3.1만세사건은 고종황제 승하를 계기로 일어났던 운동입니다.

그리고 그 7년 뒤에 다시 한 번 국상이 났고 일본통치자들도 이 국상을 계기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충분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론인 유광렬 선생은 당시의 사정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음성 녹음)

- 『정복순사만 일천수백, 비상경계를 시작한 지 전후 사흘 동안에 경찰에 걸린 사건이 일만 수천 건에 달해 만일을 염려하야 경성일대에 경찰의 경계가 완연히 계엄령을 나린 듯이 극히 엄중하다 함은 기보한 반련이야 경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엄중하어지여 29일 밤에도 전날에 계속하야 경성 북부 일대는 무장경관, 기마경관, 정복경관, 사복경관들로 밤이 새이도록 전원 봉쇄를 당한 듯 하였는데 그 경계에 출동한 경관의 총인원 수요는 시내 각 처를 합하야 총 일천육백여 명에 달하였다 하며 또한 그밖에 요사이 밀정들이 비상히 늘어서 경성 시내에는 봉도의 슬픈 기분 가운데에도 살기가 가득하여 있다.』

각급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길거리마다 애도하는 시민들이 들끓고 경찰은 그토록 엄중한 경계망을 폈던 것입니다.

확실히 일촉즉발의 위기와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경찰은 조금만 수상한 사람이면 무조건 체포했고 밀정들을 내세워서 어떠한 사건이 없을까 탐전하는 데 혈안이 돼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지난주 이 시간에 소개한 송학선 의사의 사건이 터졌고, 갖가지 유언비어가 나돌아서 길거리는 흉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6월 8일자 동아일보.

- 『기미년 이후 민족적 중대 계획 발각. 천도교 외 각종 단체를 중심으로 제2차 모 중대한 사건을 가장 조직적으로 계획하였다가 사실이 미연에 발각되야 제작 6일 오후 4시반경부터 시내 종로경찰서에서는 대 활동을 계시하야 시내 모처에서 가장 중요한 격문선언서 오만여 장을 압수하는 동시에 천도교 간부들과 잡지 개벽사원 외 각 계통의 관계자를 팔방에서 검거하였는데 사건의 자세한 내용에 대하여는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절대로 보도치 못하게 하노라.』

3.1운동 때와 같이 천도교 계통에서부터 사건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산 당일에 살포할 계획이었던 삐라가 사전에 발각, 압수된 것입니다.

- 『한모씨 외 백여 명 검거. 』

당시의 지도층 인물들, 즉, 일본경찰 당국으로서는 위험인물들을 백여 명이나 구속했습니다.

그리고 6월 10일. 이날은 장례행렬이 나가는 인산날.

(음악)

- 『산아는 의구한데 왕손은 어디로 가시는가. 오, 오천 년 역사의 최후 인생. 』

이날, 드디어 디데이 6월 10일.

(음악)

- 『철옹성 같은 경계리에 각처에서 조선독립만세 고창.』

(사람들의 만세소리)

- 『폭발의 제1성은 학생행렬 중. 작일 오전 8시부터 돈화문을 떠나기 시작한 인산 행렬이 황금정 거리에까지 뻗치고 대여가 막 관수교를 지나갑시며 그 뒤에 이왕전하, 이강공전하가 타신 마차가 지나는 8시 40분경에 그 행렬 동편에 도열하고 섰던 시내 송현동에 있는 보성전문학교 수십 인이 활판으로 인쇄한 격문 수십만 개를 뿌리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러서 크게 소동중, 현장을 바람에 날리는 격문은 이왕전하 마차 부근에서 날렸으며 경계하고 있던 경관과 기마경관대는 학생들과 충돌되는 한편으로 연희전문학교 학생이 이에 호응하야 엄숙하던 행렬이 크게 혼잡을 이루었더라.

종로 삼정목 동양로 앞에 도열하고 섰던 중앙고등보통학교가 입으로는 역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손으로는 격문을 뿌렸는데 현장에서 오십여 명 학생이 검거되었으며 황금정도립사범학교 앞에서 역시 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뿌린 학생이 있었다.』

(사람들의 만세소리)

『기마경관대 좌충우돌. 철시된 시가에 살기충천. 극도로 혼란 중 부상자 백여 명.』

(사람들의 만세소리)

사학자 신석호 씨는 우리의 역사에 기록된 순종황제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음성 녹음)

이른바 6.10만세사건. 3.1운동의 뼈저린 경험이 있는 일본 경찰은 치밀하기 짝이 없는 경계망을 펴고 있었습니다. 대대적인 예비검속도 단행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틈에서도 우리 시민은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조직적인 만세 시위는 사전에 좌절됐지만 주로 학생들에 의해 인산날 독립을 외쳤던 것입니다.

6.10만세. 조직 없는 만세운동은 그만큼 지구력이 없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본 경찰 당국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짜고 임했었습니다. 그리하여 만세소리는 시내 도처에서 들렸지만은 즉각적인 검거로 진압했습니다. 수백 명이 검거됐습니다.

일본 경찰을 여유 만만한 듯 이들을 취조해서 훈계 방면했고 가장 열렬했던 열한 명의 학생만을 정식 입건해서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파문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 이 열한 명에 대한 공판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여 그해 11월 3일에야 열었습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피고는 6월 10일, 국장 당일 관수교 위에서 격문을 뿌리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는가.

- (마이크 음성소리)불렀습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그것은 무슨 목적으로 불렀는가.

- (마이크 음성소리)그거야 세 살 난 아이라도 다 알 일일 터이니 구태여 물을 필요도 없을 줄 압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피고는 조선독립운동을 희망하는가.

- (마이크 음성소리)물론 희망합니다.

그것은 맨 먼저 불려 세워진 연희전문학교 학생 이병립의 답변부터 떳떳하기 짝이 없습니다.

열한 명의 피고 중 한 명만이 변명하듯 쭈빗거렸고 나머지 열 명의 학생들은 하나처럼 떳떳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변호인 중의 한 분인 강세영 씨의 변론기록이 있습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피고 학생들이 모두 자기네 한 일에 대해서 하나도 숨김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답변하는 데는 본 변호인도 실로 감복함을 마지못했습니다. 아마 재판장께서도 이들의 거짓 없는 태도에 몰래 감심하셨을 줄 믿습니다. 피고 중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옥중에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은 거짓말을 하고라도 속히 나갈 수가 있으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양심에 위반되는 일은 결단코 안 한다고까지 말을 했고 또한 자기네 한 일이 양심에 비추어서 어디까지나 정당한 일인 줄로 믿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 나서서도 솔직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면은 이들의 의지가 얼마나 맵고 굳은 것을 가히 아실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란 세상에 무엇으로나 좌우로 제어할 수가 없는 것인데 이처럼 강렬한 의지를 가진 학생들은 징역2년이나 3년쯤을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니 전도 많은 학생들에게 아무 효과 없을 징역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행유예로 하루라도 속히 이들을 출옥케 해서 어서 학업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가장 득책인 줄로 아는 바입니다.

(음악)

그리고 일본인 재판관들도 감동을 했는가.

- (마이크 음성소리)주문. 피고인등을 각각 징역1년에 처함. 단 박하균에 대하여는 미결구류일수 중 60일을 우 본영에 산입하고 피고인 이선호, 이병립, 박두경, 이천진, 박용규, 박재형, 김재문, 황종한, 이동환, 윤현우에 대하여는 오년 간 우형의 집행을 유예함.

-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언도를 내린 다음 기자회견을 하고 재판장 강등은.

- 어, 그들의 태도가 매우 순진하고 또한 전도가 유망한 학생들이므로 재판소에서는 그 장래를 위하야 많이 고려한 끝에 그와 같이 집행유예의 처분을 한 것이니 박하균에 관하여는 보안법 위반 전과가 있어서 법률상 어쩔 수 없으므로 가엾으나 만 1년간 징역을 언도한 것입니다.

(음악)

철학자 신일철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음악)

1926년, 한일합방이 있은 지 16년 만에, 그리고 3.1운동이 있은 7년 만에 6.10만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일어났던 3.1운동이었고 순종의 승하를 계기로 일어났던 것이 이 6.10만세사건입니다.

3.1운동 때와 달리 일본침략자들은 한국의 통치에 능숙해져 있었고 치안확보가 잘돼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직적인 만세운동은 사전에 좌절되었고 그러나 피 끓는 학생들에 의한 산발적인 만세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모자급 학생들이 재판장에서 보인 떳떳함은 길이 기억돼야 합니다.

4.19로 표현된 학생들의 정의감은 6.10만세에서부터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

말씀해주신 분 신석호, 유광렬, 신일철. 기사낭독 주상현. 해설 김영배. 음악 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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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오늘은 제1부 근세의 표정에서

순종황제의 승하와 6.10만세 편을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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