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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 관동진재와 한국인 학살(2)
제1부: 근세의 표정
관동진재와 한국인 학살(2)
1969.04.06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찬가’는 68년 10월 20일 일요일아침 8시 30분부터 30분간 첫방송을 시작했으며, 증인들의 말과 전문가들의 분석 평가를 곁들여 녹음구성 스타일을 살린 본격적인 교양물로 우리 근세사를 사건과 인물위주로 진단 평가하는 계몽성이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찬가’는 당초 제1부 근세의 표정, 제2부 외국인이 본 한구, 제3부 미래의 한국으로 구상되었으나 제1부가 70년 4월 5일까지, 제2부가 73년 9월까지 방송되었을 뿐 제3부는 불발로 끝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스물다섯 번째.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관동진재와 한국인 학살 두 번째 편을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1923년 9월 1일에 있었던 일본 관동지방의 대지진. 명치유신 이래 일본 문명이 일시에 파괴된 듯한 요란한 타격이었습니다. 대자연의 잔인한 가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들, 줄잡아서 오천 명은 되는 우리 동포가 어처구니없이 살해된 것입니다. 지진이라는 자연현상 때문이 아니라 유언비어에 날뛴 일본인들의 인위적인 공격에 의해 희생된 것입니다. 그때는 아직 여름방학 중이여서 유학생들은 대부분 귀국해 있었기 때문에 희생이 적었지만 하루하루 일거리를 얻어 호구해 나가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 참담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나치독일에게 당한 유태인의 운명보다 더 잔혹하고 무질서한 능욕에 희생된 것입니다.

(음악)

유광렬 선생은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음성 녹음)

희생자들은 그 비참한 모습만을 남기고 아무 증언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행히 그 지역을 벗어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엄격한 보도관제를 시행했습니다.

9월 7일, 조선총독부에서는 긴급칙령을 발표했습니다.

- 『유언비어취체령.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관동진재에 관한 유언비어는 일체 금한다.』

억울하건 안 하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공갈이었습니다. 9월 1일부터 11월 11일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신문을 압수, 처벌한 것이 403건. 한국 안에서 처벌한 것이 602건이 된다고 기록돼있습니다.

무조건 말을 못하게, 소문이 안 나게 눌러버리려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입이 있으되, 다물어야 했었고 원통한 그 사연들은 묻혀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도 이 사건을 도통 보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횡설수설난에 간혹 꼬집는 기사가 실리는 정도.

-『유언비어취체령이 발표된 이후 경성이나 지방에 범과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모양이다.

물론 화를 당한 자의 근신하지 못하는 행동에 다대한 책임이 불모하겠지만 당국의 본말을 전도한 정책도 착오가 불모하다. 근본적으로 왜 유언비어가 떠도는가 하는 이유를 연구하야 이에 관한 대책을 적응하는 것이 상당한 조치일 것이다.』

유언비어를 퍼트린다고 마구 잡아들이는 당국의 태도를 꼬집는 횡설수설난의 기사였습니다.

- 『지난 진재로 인하야 발생된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하니 그 중에도 포복절도할 일이 동경 서속천정에서 건물상을 하는 모 인이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는 중에 부근의 주민들이 그 사람을 조선인과 비슷하다고 하얐다. 이 말을 들은 그 상인은 당당한 일본인을 조선인에 비한 것은 불명예라고 하야 즉시 자살하얐다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 하면 이른바 조선인이 그와 같이 추악한 종족인가. 이따위 일본인은 정말

정신병자가 아니면 일종의 괴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횡설수설난에 이런 기사가 실릴 뿐, 일반기사에는 학살에 관한 내용은 일체 발표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언비어취체령은 그만큼 엄격히 시행됐습니다. 그 참혹한 학살이 있은 지 벌써 46년.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도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연로해서 저 세상으로 갔을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이 시간에는 그 사건을 생생히 증언해주실 분이 나타났습니다. 최승만 씹니다.

(음성 녹음)

동경 시내로 들어오던 전차 안에서 최승만 씨는 지진을 당한 것입니다. 파괴된 거리를 지나 다시 가족이 있는 우엔으로 돌아왔습니다. 벌써 밤이 됐습니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부서진 최씨의 집 앞에는 일본인 자경단이라는 젊은이들이 죽창이며 칼을 들고 한국인들을 붙잡아놓고 있습니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여보.

- 어. 웬일이요?

- 어이!

- 네.

- YMCA 최승만인가?

- 네, 그렇습니다.

- 그대들, 조선인들은 듣거라. 일 열로 서라, 모두.

- 번호를 불러라. 번호! 번호를 부르라니까!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 아, 지금부터 날 따라온다!

(발자국 소리)

- 어디로 가는 겁니까?

- 잔소리 마라! 보호를 받는 행운을 감사하게 느껴라!

- 조선 사람을 모두 죽인다는데.

- 그럴 리가 있어.

- 아니에요. 지진을 틈타서 조선 사람들이 폭탄을 던지고 우물에 독약을 타고 그런다던데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서 보복을 한다는 거예요.

- 지진 때문에 모두 정신이상이 생긴 모양이오.

(음악)

오다와시 경찰서 연무장에 일단 모였습니다. 그 난리통에도 운이 좋은 한국인들이었습니다.

- 수백 명을 한꺼번에 때려죽였답니다. 조선인이면 용서를 안 한대요.

- 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단정을 냅시다.

- 비참합니다. 너무! 이럴 수가 있습니까!

- 이런 때일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문 여닫는 소리)

- YMCA 최승만 군.

- 네.

- 이리 나와.

- 네.

- 여보.

- 괜찮을 거요. 기다리고 있으쇼.

- 당신 혼자 가시면---

- 아, 별일 아닐 거요.

(발자국 소리)

- 저를 왜 부르셨습니까?

- 경시총감 각하께서 부르신다.

- 저를요?

- 조선인단체 대표들을 부르신 거다. 가봐!

(음악)

불바다가 된 동경 거리. 그 거리를 죽창이나 다른 흉기들을 들고 떼지어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최승만 씨는 목격했습니다. 무지한 친일파 박춘금이가 하던 소위 상애회의 총무라는 사람 하나와 차를 타고 히비야에 있는 경시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경시청 건물도 무너져 있고 아까이께 경시총감도 샤쓰 바람으로 폐허 속에 있었습니다.

- 앉으쇼.

- 의외의 유언비어가 퍼져서 반도인들을 살상한 것을 치안을 받은 본관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하오. 아,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 차를 내릴 테니까 돌아가십쇼.

(차 떠나는 소리)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최승만이 폐허가 된 경시청을 나서서 가족이 있는 오다와시로 오는 길. 경관 하나가 호송했는데 최승만 씨는 생명의 위기를 계속 당해야 했습니다.

- 자경단원들이 워낙 흥분해 있소.

- 흠. 다음부터는 차를 세우거든 이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시오. 수고한다는 인사. 자칫 하다가는 위험할 것 같소. 워낙 미쳐 날뛰니까.

- 알았소.

- 서라! 서라! 서라!

(차 멈추는 소리)

- 자, 빨리요.

- 아, 수고들 하오.

- 아, 조센진이지?

- 아니요. 경찰차를 모르나?

- 조센진이다! 끌고 가! 끌어내! 조센진 죽여라! 죽여!

- 조, 조센진이 아니요! 아니요!

- 넌 가만 있어!

- 난 현역 경찰이다! 이 사람은 조센진이 아니다! 내가 보증한다!

- 조센진이 아닌 모양이다. 조센진이 아닌 모양이야.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증명서를 내봐!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내려!

- 경찰이다!

(차 급히 출발하는 소리)

- 조센진이다!!

- 큰일날 뻔했군. 아.

(음악)

조센진. 한국인이면 무조건 때려죽이겠다는 살벌한 동경 거리.

미치광이들만이 날뛰는 동경 거리였습니다. 수십 번에 걸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고 오다와시 경찰서 연무장에는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그 바깥에는 자경단원이라는 미친 무리들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피를 보고 싶어 날뛰는 흡혈귀의 무리들.

(문 두드리는 소리)

- 누군가?

- 우린 자경단원들이오. 우리 자경단의 결의에 위해서 요구사항이 있어서 왔소.

(문 여는 소리)

- 서장님.

- 그렇소.

- 여기 있는 사람들은 조센진으로 알고 있는데요?

- 그렇소.

- 어떤 명목으로 이 조센진들을 여기 있게 해두셨습니까?

- 어떤 명목이라뇨?

- 조센진들을 보호하는 조칩니까? 아니면 구류 조칩니까?

- 구류요.

- 합법적인 구류 조칩니까?

- 가구류 조치요.

- 가구류?

- 그럼 구류는 구류 아닌가?

- 그럴까?

- 알았습니다. 구류가 끝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수고하십쇼.

(문 여닫는 소리)

경찰서에 보호된 한국인들의 피까지 요구할려드는 자경단원들이었습니다.

구류가 아니고 단순히 보호라면 한국인들을 인계할려드는 자경단원들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헤매는 한국인들은 모조리 때려잡고 경찰서 안에까지 들어와 찾는 흡혈귀들. 지진이라는 천재지변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것을 고려한다 해도 너무 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째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피를 그토록 철저하게 요구했을까?

(음악)

전 시간에도 언급했지만 일본인들이 난동을 부린 원인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경찰 내지 정치인들의 교묘한 부채질이 작용된 느낌이 없지 않은 것입니다.

내무성 경고 국장 명의로 각 지방에 친 전보 명령문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9월 3일 발신의 전보문은

-『동경지방 진재를 이용하여 조선인들은 각 지방에서 방화하고 불온목적을 수행코자 동경 시내에서는 이미 폭약을 가지고 석유를 뿌려 방화하는 자가 있어 각 지에서는 조선 사람의 행동을 엄중 감시할 것을 요망함.』

내무성 경고 국장이 한국인들의 난동이라고 단정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인들의 행동이 그랬을까요?

9월 8일 동경 일일신문 기사.

-『조선인들이 파괴, 방화한 집에 표시를 하고 다닌다는 급보에 접한 신주쿠 경찰서에선 즉각 출동하여 조사한 결과, 청소부의 청소 확인 표시였음을 확인하였다. 』

9월 16일, 동 신문에는

- 『 작일 진화 작업을 끝마친 23개소의 지점을 조사한 결과, 방화한 흔적이 발견된 곳은 하나도 없었고 지진에 의한 자연화재임이 확인되었다.』

조금만 면밀히 조사해보면 한국인들의 행동이 아님이 판명되곤 했습니다.

어떤 한국인 어린이가 폭탄을 숨겨 가지고 간다고 해서 취체했더니 폭탄이 아니라 사과였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후지가스공장의 한국인 직공 셋이 우물에 독약을 넣는 현장을 보고 우선 때려죽이고 나서 확인해봤더니 우물에는 전혀 독약이 안 들어 있었습니다.

우물에 물을 먹으러 갔다가 맞아 죽은 것입니다. 이런 넌센스 같은 짓을.

그러나 오천여 명 동포의 목숨이 이런 넌센스 같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분하고 원통한 죽음을. 9월 8일에야 후쿠다 계엄사령관 명의로 비행기에서 삐라를 뿌렸습니다.

-『조선인에 대하여 무법한 대우를 절대 삼가하라. 모든 조선인이 나쁜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언비어는 확실히 그릇된 것이니 미혹되지 말라. 』

계엄사령부가 이런 삐라를 살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을 때는 이미 오천여 명의 억울한 죽음이 동경 일대에 나 있는 땝니다.

(음악)

오천여 명의 희생. 1923년 9월에 한국인 오천 명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죽창으로 찔려서, 몰매를 맞아서. 나치독일이 유태인에 잔혹했다지만 그것은 일단 조직적으로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조직적인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관동지진 때에 우리 동포 오천 명은 피에 굶주린 군중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희생물로서 죽었습니다. 맹수를 사냥하듯 한국인 사냥을 즐겼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역사 중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

그 인간 사냥터에서 목숨을 요행히 부지한 최승만 씨는 당시에 못했던 기록을 지금 수집하면서 외칩니다.

(음성 녹음)

나라가 없었던 1923년. 그런 참혹한 인간사냥의 재물이 된 오천 명의 동포를 보고서도 항의는커녕 눈물도 못 흘리던 시대가 지났고 이선근 박사는 당시의 참혹한 일인들의 만행을 한마디로 논평하고 있습니다.

(음성 녹음)

철학교수 신일철 씨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녹음)

(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가 1923년의 비극을 다룬 이유는 자각을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적어도 미래의 한국역사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록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음악)

자료를 주신 분 최승만. 말씀해주신 분 이선근, 유광렬, 신일철.

기사낭독 주상현. 해설 김영배. 음악 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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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오늘은 제1부 근세의 표정에서 관동진재와 한국인 학살 두 번째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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