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피아노社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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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1부 근세의 표정 오늘은 스물 두 번째 시간으로 미국 의원단 내한을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음악)
(영문기사 낭독)
1920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는 그 1면 논설란에 영문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 ‘Welcome to the American Congressional Party.’』
『미국 의원단을 환영하노라. 오인에 항상 사모하는 자유와 정의의 나라. 인민의 아메리카. 록키산과 허드슨 강의 대자연. 워싱턴과 링컨의 대민중 청교도의 맑은 신앙으로 사회의 기초를 삼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국토에 부원을 지어 세계광명이 되고 인류의 옹호자가 되는 위대한 아메리카로부터 오는 사랑하는 형제를 우리 조선 이천 만 민중은 마음껏 환영하고자 하노라.』
1920년 우리나라에서는 3.1운동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기 전입니다. 그때 미국의 상하 양원 의원과 그 가족으로 구성된 동양시찰단이 한국에 들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라면 당시에도 민주주의의 나라, 신흥국가이지만 그 강대한 국토와 국민이 세계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던 나랍니다.
당시로서는 이상하게 보이는 코 큰 서양인들이 대거 입국했다고 해서 그 구경거리로 화제가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목격자 유광렬 선생은 당시에 미국의원단을 취재했습니다.
(음성녹음)
『형제여, 형제가 조선에 올 것을 들었을 때 우리는 비상한 긴장과 기쁨을 느꼈나니. 우리의 가슴은 뛰놀고 우리의 온몸이 떨리었도다. 기쁨과 긴장이 심함이라. 형제가 경성에 도착하는 날을 우리는 실로 손꼽아 기다렸나니 이를 가리켜 그 무엇 같다 비교할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 아기의 마음이라 할까 애인을 고대하는 연인의 가슴이라 할까. 아, 형제여. 동양에는 일각이 삼추라는 말이 있나니. 곧 기다림이 간절함을 의미한 것이라. 형제의 도착이 어찌 그리도 더디든고.』
미국 의원단을 기다리는 우리국민의 마음은 그토록 간절했었습니다. 당시의 국민들은 그것이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악재에서 신음하던 우리의 민족. 일본인들은 국제적으로 한일합방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해서 우리 한국민족의 억울한 사정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었던 땝니다. 독립을 원하고 독립을 꼭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당시의 이천 만 민족의 진심을 미국 의원단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국 의원단의 내방에 기하야 조선인의 제2차 독립운동.』
그해, 8월 17일. 동아일보는 선동조의 기사를 3면 톱으로 실었습니다. 아직 미국 의원단이 들어오기 전입니다.
『상해에서는 국민대표와 여자대표가 일행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내지에서는 각종의 수단으로 시위운동. 지난 3일 평양에서는 폭탄을 제삼부에 던지고 15일에는 신의주의 철도호텔을 격하며 일행이 경성에 오며는 여러 가지 큰 운동을 일으켜--』
고종황제의 승하를 계기로 일어난 3.1운동이 당시로서는 제1차 독립운동이라면 그 다음 미국 의원단이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해서 일대 독립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제2차 독립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거사하기 3일 전 발각, 체포된 광복단 군영 특파 결사대.』 『미국 의원단 입경 당일에 폭발할 대계획.』
『미국 의원단이 경성에 오는 당일에 거사를 하여서 총독부와 종로경찰서에 폭발탄을 던지기로 계획.』
『동지들이 모여서 연결의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체포.』
용기 있는 사나이, 김상옥 의사의 활약도 이즈음의 일입니다.
『육혈포 암살단 검거.』
『주모자 김상옥은 달아나고 상해에서 온 한군만 잡혀 동대문 밖에 사는 김상옥은 본래부터 배일사상을 품고 조선독립운동에 참가하는 듯한 혐의로 경무 당국의 주의가 엄중하던 바이번에 미국 의원단이 입경함에 대하야 무슨 음모가 있는 듯 하므로 지난 24일 오전 1시 반에 경관 일대가 돌연히 김상옥의 집에 이르러 문을 박차고 몰려 들어가 김상옥을 찾으뫼 그는 어느 틈에 벌써 지붕을 뛰어넘어 자취를 감추었고 엄중하게 가택수색을 한 결과 한군이라는 혐의자와 닉 최신식 10연발 육혈포 한 자루, 탄환 34발과 암살단 감행 계약서 외에 또 불온문서 50매를 발견하얐다.』 이렇게 김상옥 의사는 거사 전에 일이 발각되어 상해로 피신했다가 3년 뒤에 다시 서울에 잠입, 그 영웅적인 행동을 하고 최후를 마쳤던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의 우리 민중은 미국 의원단의 입경을 계기로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벌릴려고 계획했었습니다. 일본경찰은 거기에 대비해서 완벽한 경비태세를 갖추려고 노력했던 것은 물론입니다. 그리하여 1920년 8월 24일.
『미국 의원단을 영접하는 경성시는 천기까지 험악. 온 장안의 상점은 모조리 철시를 하고 서릿발 같이 무장한 경관대의 계엄은 금시에 무슨 중대사건이나 일어날 듯. 경성시가 전부 철시.
경관의 시위와 계엄, 각대각처로 물부어 셀 틈 없이 최후의 준비까지 완전히 하야 남대문으로 조선호텔까지는 철썩 같은 경관대. 길거리에서 구경도 못하게 순사는 서리같이 경계.』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날씨마저 음울하던 8월 24일. 그날 밤에 미국 의원과 그 가족 49명은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경촬은 경관연습실에서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까지 동원에서 온 시가를 공포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의원단 일행을 태운 열차가 8시 34분, 무사히 남대문역에 도착하뫼 십여 대의 자동차는 사십 여의 내의 의원과 및 그 가족을 태워가지고 경비가 엄중한 남대문 통을 지나 조선호텔에 들어갈새, 동으로 몰리고 서로 몰리는 수천 명의 구경꾼들은 부실부실 나리는 궂은 비에 몸을 적시며 한사코 연도 부근을 떠나지 않으며 수군대는 양은 자못 무슨 변동이 금시에 날듯날듯 하더니 과연 의원단을 태운 몇 대의 자동차가 예정을 변경하여 대한문 앞을 지내앨 쯤에 조선공론사 앞에서부터 대한문 앞 너른 마당에서는 돌연히 만세 하는 소리가 일어나뫼 경비하던 경관 일동은 크게 놀래여 달려들어 제지를 하며 한편으로는 눈에 띄는 범인을 모조리 잡기 시작한 즈음에 다시 만세소리가 구리게 네거리를 중심으로 삼고 크게 일어나며 천여 명의 군중은 북으로 종로네거리를 향하야 달음질을 하며 양쪽 인도로 두 떼에 나누어 만세를 높이 부르고 종로네거리까지 이르렀는데 그 사이에 경관들은 몽둥이와 칼자루로 만세 부른 듯한 사람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길에다 쓰러뜨리고 함부로 구타하야 일장에 단병접전이 일어난 듯한 처참한 광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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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독립운동으로서 시민은 봉기했습니다. 동아일보의 환영사에 나타나 있듯 우리민족이 미국 의원단을 맞이하는 것은 마치 구세주로서의 환영이었습니다. 국제적인 여론의 움직임이 없이는 독립이 성취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경찰은 얼마나 간악했는가. 한국인들의 환영은 일체 금지시켰고 위험인물은 모두 예비검속시켰고 철통같은 방어진을 쳤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의지해야 했던 당시의 한국민족에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었던 기회. 그러나 그 경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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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원단 남하. 미국 의원단 일행은 예전과 같이 경성에 하룻동안 시찰을 마치고 25일 오후 8시 10분에 하늘도 섭섭한 듯이 가는 비가 나리는 중에 특별열차로 남대문정거장을 출발하야 일본으로 향하였는데 여관에서 정거장까지와 정거장 부근의 경계는 도착할 때보다도 오히려 중하였더라.』
24시간도 채 안 되는 하룻동안의 방문을 마치고 미국 의원단은 서울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민중은 차라리 맥이 풀렸으리라고 우리는 충분히 짐작합니다. 총독부관리들의 안내에 따라 고궁이나 구경하고 훌쩍 떠나버린 미국 의원단.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히 실망하지 않은 사건들은 더러 있었습니다. 당시의 한국 병사들은 어떻게든 한국인의 뜻을 미국 의원단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끼리 환영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음성 녹음)
일본경찰은 미국 의원단의 한국인 접촉을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그 틈에서도 하나의 사건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작 25일에 청년회관에 미국 의원 환영회가 중지된 사실은 별부와 같거니와 동 회원들은 부득이 동 의원단에게 줄 기념품을 포장하기에 분주하고 더욱 환영회가 중지됨을 섭섭히 여기는 군중들은 차마 돌아가기를 아끼어하는 듯이 한 사람 두 사람 나가기를 시작하였는데 때는 하오 4시가 거의 되었더라.
이때에 청년회 회관 문 앞에 난데없는 자동차를 비를 무릅쓰고 닥치더니 층계 아래에는 가슴에 찬란한 성조기 휘장을 붙인 한 명의 미국사람이 나타났다.』
“야! 미국 의원단이 온다!”
(사람들의 함성소리 및 박수소리)
오직 한 명. 한국인들 모임에 나타난 미국인, 그는 펄스맨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
『펄스맨 씨는 기립하야 답례하고 윤치호 씨의 통역으로 그는 영체있는 눈동자에 뜨거운 표정을 띠고 만장에 가득찬 조선인들을 둘러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연설하얐다.』
“(마이크 음성소리)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을 보건대, 여러분도 우리나라 청년같이 향상의 활기와 광채가 가득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학술과 특히, 공업에 힘을 써서 모든 것을 향상케 할 것이며 아무쪼록 정의와 인도로 분투하시기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이 말이 끝나자 감격에 못 이기는 군중은 손바닥이 깨어지라 하고 박수하는 소리는 청년회관이 떠나가는 듯하고 또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마이크 음성 소리)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장황히 말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였으나 내가 고국에 돌아갈지라도 여러분에게서 얻은 그 깊은 인상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H.S. 펄스맨. 그는 캘리포니아 출신 하원의원이었습니다. 펄스맨 씨의 출현이 우리 민중을 울렸던 것입니다.
만당에 감동의 눈물이 넘치고 그러나 종로경찰서장 이하 급보를 듣고 달려온 일본경찰은 펄스맨 씨를 호위해서 돌려보냈고 군중을 해산시켰습니다.
(음악)
동아일보는 그달 28일부터 3일간 제1면에 미국 내빈의 전하는 말이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미국 의원단의 내왕은 우리는 열정으로서 막고 열정으로서 보내었나니. 비록 불여의한 제반사정으로 인하야 우리가 친히 그들과 회담하는 기회를 얻지 못함은 유감이나 그러나 원래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 영혼과 영혼은 무언 중에 통하는 신비한 작용이 있나니 우리의 충정과 열의와 존경은 미국 의원단 일행의 영묘한 두뇌와 총명한 가슴에 전하야졌을 줄 믿노라.』 철학교수 신일철 씨.
(음성 녹음)
(영문기사 낭독)
『형제여, 형제가 조선에 올 것을 들었을 때 우리는 비상한 긴장과 기쁨을 느꼈나니 우리의 가슴은 뛰놀고 우리의 온몸은 떨리었도다. 형제가 도착하는 날을 우리는 손꼽아 기다렸나니 이를 가리켜 무엇과 같다 비할고.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 아기 마음이라 할까 애인을 기다리는 연인의 가슴이라 할까.』
이토록 열렬히 기다리던 미국 의원단. 일본관원의 극성스런 방해로 우리 한국인들은 그들과 차분하게 얘기 한마디 교환 못했지마는 독립을 원하는 우리민족의 마음을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노력은 대단했었습니다. 1920년 8월에 있었던 사건. 우리민족이 국제적 여론의 힘을 느끼고 국제무대에 이민족의 뼈아픈 처지를 호소할려고 노력했던 그 노력은 길이 기억되야 할 사건인 것입니다.
(음악)
나오신 분 유광렬, 신일철, 기사낭독 주상현, 해설 김영배, 음악 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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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오늘은 제1부 근세의 표정 미국 의원단 내한 편을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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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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