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 피아노 社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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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 1부 근세의 표정. 오늘은 단발랑 강향란 편을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단발랑 화류계에서 학창에. 머리깎고 남복한 여학생. 그는 한남 권번에 강향란.』
1922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
『여자 해방이니, 사회주의니 무엇이니 떠들고 야단치는 것도 실로 사회에 중대한 현상이니와 요사이 경성 시내에는 어떤 여학생이 머리를 깎고 남자 양복에 캡 모자를 쓴 후,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고 하여 일반사회에서는 이야기에 꽃이 피게 되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 “저게 여자란 말이지?”
- “한남 권번에서 날리던 기생이래.”
- “아, 왠 남복인고? 미쳤구만 그래.”
- “말세지. 말세여.”
(전차소리)
『과연 반만년 옛날부터 조선 여자로는 그의 머리를 면류관으로 알고 여자의 자랑거리고 알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 중노릇을 하는 여자 외에는 머리를 깎은 여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이 머리를 깎은 여자는 산에 들어가 중이 되기 위하여 머리를 깎은 것이 아니오, 자기의 무슨 주의와 자기의 이상을 위하여 머리를 깎은 것이라 한다. 불란서나, 독일이나 다 구미 각국에는 모든 것을 남자와 같이 살아보겠다는 의미로 머리를 깎고, 남자의 양복을 입는 여자가 많이 있으나, 조선에서는 남자와 같이 살아보겠다는 무슨 주의와 이상을 가지고 머리를 깎은 여자는 이 여자가 처음이다. 그 여자는 과연 누구이며, 그의 머리 깎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 여자는 원래 한남 권번에 있던 강향란, 22세라는 기생으로, 4∼5년 전에는 경성 화류계에 이름이 높아서 화류계에 출입하는 남자로는 그를 알지 못하는 자가 없었으며, 그리고 그의 한 번 웃고, 한 번 노래하는 아양은 여러 풍류 남자로 하여금 그의 정신을 취게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비록 화류계에 몸을 던졌을지라도 사람으로 생긴 이상에는 다만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고, 의미있게 살고저, 많이 헤매였으며, 많이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자 재작년 가을 어느 날 밤. 시내 모 요리점에서 어떤 청년 문사와 술을 마시고, 달을 희롱하며 재미있게 얘기하다가, 마침내 그 남자와 장래를 언약하고 그 해 11월에 기생업을 폐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장래에 행복이..』
(음성 녹음)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언론인 유광열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 녹음)
(노래)
기생. 요새는 술 따르는 작부와 동의어로 쓰이는 기생.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는 신라시대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 24대 진흥왕 때에 화랑의 전신인 원화가 기생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이 있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필연각기에
‘우리 동방에는 원래 기생이 없었으나, 유기장의 유종인 양수창이 있어 수토에 따라 유랑하였으니, 고려의 이의민이 그들로 기적을 만들었는 바, 이것이 기생의 시초다.’
이의민은 12세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기생이 생긴 것은 800년 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척 쪽이라면 고기잡이와 해초를 뜯으며 유람하는 사람들 입니다. 물론 천한 직업의 사람들이죠. 기생은 천한 계급의 여인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기생이 본격적으로 번창한 것은 역시 이조시대. 관기라 해서 중앙과 지방, 각 관청에 기생이 꼭 있었습니다. 기생은 관청소속 이었습니다. 기생을 관장하는 기생청이 있어서 천한 계급이면서도 교양인으로서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기생들이 상대하는 남자가 궁중의 상류 고관들이나 교양이 있는 유생들이었으므로 자연히 자신이 교양을 쌓지 않으면 안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생은 역시 남자들의 노리개였습니다. 남성 우위가 철저했던 사회구조에서 하나의 편리한 노리개로서, 그 존재의 의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기생들도 나라없는 설움을 안고 궁궐과 관청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이제 기생은 관청소속이 아니라 해방된 자유인. 그러나 나비처럼 꽃처럼 가무와 기예만을 알던 그들은 궁 밖에 나와서도 자치적인 기생 활동을 했으니, 그것이 소위 권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유인이 되서도 자진해서 노리개가 되야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강향란은 한남 권번에 소속했던 기생입니다. 1918년 발간된 조선 미인 보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명기 강향란을 소개한 란이 있습니다.
‘강향란 18세. 보시오. 한남 권번 기생 강향란을 보시오. 대구 태생이오. 18세 인데, 14세부터 기안에 이름을 올려, 남도 도리와 정제모를 배웠으며, 오동추야 밝은 달과 춘풍도리’
해설문장이 과장된 듯도 싶으나, 기생 강향란은 가무에 뛰어난 인기있는 기생이었던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부어 집 아들과 종사해서 유명한 강명화와 동갑으로서, 서로 인기를 다툰 명기 입니다. 이 기생 강향란이 스물 두살 나던 해에 단발을 하고 남자양복을 입고 서울 거리를 활보한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그 기사를 2회에 걸쳐 실었습니다. 남장여인.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진기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 놀랄만한 일을 저질렀을까. 거기엔 하나의 러브스토리가 개입됩니다.
『 그러자 재작년 어느 가을 밤에 시내 모 요리점에서 어떤 청년 문사와 술을 마시고, 달을 희롱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그 남자와 장래를 언약하고..』
- “향란이, 기생으로 그냥 지내기엔 네 청춘이 너무 아까운거 같구나.”
- “후훗, 제 운명이지요.”
-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지. 향란이 사랑하오.”
- “아이, 후훗.”
- “기생 집을 벗어나자.”
- “저 같은게 어떻게.”
- “신학문을 배우는거야.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나하고 새 도움을 꾸미는 거야. 자, 용기를 가지고.”
- “아이, 제가 신학문을, 그저 선생님과.”
- “우리의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거요. 운명을 바꿔주는거요. 향란이.”
- “아이.”
(음악)
『 그 해 11월에 기생업을 폐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장래에 많은 복이 있으리라고 고대하고 고대하면서 시내 적선동에 사는 김 모라는 남자에게 열심으로 글을 배웠으며, 작년 9월에는 비로소 시내 도화동에 있는 배화여학교 보통과 4학년에 입학하였다. 그는 화려한 장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어디까지던지 열성과 부지럼을 다하여 힘써 공부를 하였는데, 빠른것은 세월이라. 그 해 가을에 불같던 단풍과 나리던 눈이 스러져 버리고, 다시 새해가 와서 산과 들에 봄 기운이 불어놓는 새학기를 닿아서 그는 우등 성적으로 그 학교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하였다.』
기생 강향란. 청년 문사의 사랑과 자신의 결단으로 새출발을 시작한 겁니다. 오늘이나 옛날이나, 화류계에서 자기 몸을 빼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뭇 남자의 노리개로서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추던 기생이 용약 학생의 몸으로 돌아가 공부에 열중한 사실. 강향란의 의지와 두뇌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근대 한국여성이 자각하는 과정에서의 한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 화려한 공상은 일장의 춘몽. 죽자하던 한강길도 허사, 삭발은 마지막 수단인가. 배화 여학교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강향란은 더욱이 가슴이 뛰는 기쁨을 이기지못하여 자기는 승리의 꽃이 만발하고 수정의 시내가 흐르는 아름답고 어여쁜 벌판을 지나가는 행복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열심에 열심을 더하고 부지런에 부지럼을 더하여 밤을 새워가며 힘써 공부하였는데, 언간 산과 들을 곱게 단장하였던 꽃은 부질없이 불어오는 늦은 봄바람에 그만 애처로이 떨어져버리고 여름이 되어 이곳 저곳에 푸른 물방울이 떨어질 듯한 녹음이 가득함이 되었다. 장래 행복을 꿈꾸고 공부만 하기에 딴 생각이 없었으나,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은 모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평지에 바람이 불고 꽃봉오리에 미친 서리가 나리는 것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인가보다. 그에게는 꿈에도 생각치 아니하였던 무서운 벼락이 그의 머리위에 떨어졌다.』
(음악)
-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나로서도 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향란이.”
- “흑흑.”
- “용서하오.”
- “흑흑.”
- “냉정한 놈이라 침을 뱉어도 할 말이 없소.”
- “흑흑.”
- “그러나 향란이. 학업은 계속하시오. 나하고 헤어진다고 해도 앞날의 행복은 빌겠소. 미안하고. 이제 그만 가겠소.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길 빌면서.”
- “흑흑흑.”
(음악)
『 이것은 지나간 6월 11일의 일이었다. 그는 그 날로 후에 시내 통동 71번지에 있는 그의 주인집에서 대략 3시간 동안이나 그집 뒷 문을 열어놓고 인왕산 머리의 붉은 저녁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얼음과 같이 싸늘한 사회의 무정을 한 없이 저주하고, 한 없이 원망하다가 필경은 이러한 세상에선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면서 고생살이를 계속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세익스피어의 말과 같이 약한 자는 여자이나, 돌연히 큰 변을 당한 강향란은 이 후에는 다시 살아갈 길이 없으며, 또는 자기의 장래는 눈물과 한숨으로 거친 벌판과 같다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마침내 죽기로 결심하고 그의 주인인 김춘자라는 부인에게 유서를 남겨놓고..』
(음악)
‘ 많은 사랑에 대하여 한 푼의 공로도 갚지 못하고 슬피 세상을 떠나오. 어찌 죽어 옳은 귀신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박명한 이 사람은 이 괴로운 세상에서 더 살아 있을 수가 없어, 최후의 생명을 끊으려고 주인문을 떠나옵니다.’
『 그 날 10시경에 강향란의 초췌한 그림자는 한강 철교위에 나타나게 되었다.』
- “흑흑흑.”
『 이에 강향란은 영명히 흐르는 푸른 물과 빛나게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이며, 무섭게 떠드는 경성의 시가를 번갈아 보며 그의 눈물을 뿌려 자기 치마를 적셔가면서 무정한 세상을 몇 천번 저주하다 에라, 세상 만사를 그만 단념해 버리자. 아, 나는 죽는다. 하고 치마를 쓰고 물로 들어가려할 때.』
- “향란씨! 아니.”
(발소리)
- “아이.”
-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 “김 선생님. 이 것좀 놔주십시오.”
- “안됩니다.”
- “놔주세요.”
『 이는 하늘이 도와주심인지 그를 도와주는 신이 뜻밖에 나타났다.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던 김 모라는 남자가 한강에 산보를 나왔다가 물로 뛰어들어가려는 그를 보고 마침내 그의 치마자락을 잡아당겨 필경은 그를 구원한 것이다. 그 사이에는 두 사람 사이에 눈물과 피가 맺힌 서러운 사정의 얘기가 있었다. 이리하여 구원을 받고 위로를 얻은 강향란은 시내 청진동 141번지에 있는 자기 어머니 집으로 가서 밤을 새도록 모녀가 목을 놓고 슬피 울었다 한다.』
‘그러나 이미 구원을 받은 저는 언제까지나 울 기만 할 수 없었습니다. 전 결심을 했습니다. 저도 사람이며,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입니다. 남자에게 의지하거나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그릇된 일임을 느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는데 있지 않을까요. 제 고통도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 이리하여 그는 남자와 같이 살아보겠다는 의미로 지나간 14일 오후에 시내 광교에 있는 중국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남자의 양복을 입었다. 배화 학교에서는 머리 깎은 여자는 다닐 수 없다고 퇴학을 시켰으므로 그는 방도로 서대문 안에 있는 정직 강습소에 다닌다고 한다. 아, 그의 앞길은 과연 어떠할까.』
(음성 녹음)
남장여인. 요새는 아주 드문 예는 아니지만, 1922년에 서울 거리에 나타난 남장여인은 확실히 세상사람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음엔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도 한 때 명기였고, 학생이었던 강향란이라는 사실. 더구나 사랑에 실패했다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됐을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강향란의 남장에 주목하는 것은 그런 피상적인데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리개로서의 기생. 자의식이 용납되지 않은 직업의 여인이 자기 의지에 의해 행동했다는 사실에 눈을 돌리십시다. 1920년대의 완고한 시대. 기생 뿐아니라 모든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대우를 못 받았고, 또한 여성들 스스로도 자기의 개체를 자각하지 못한 남자들의 부속물로 살아가던 때입니다. 여성들의 자기개체의 자각.
(음성 녹음)
(음악)
한국여성의 자기개체의 자각.
‘저도 사람이며,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입니다. 남자에 의지하거나,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그릇된 일임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는 곳에 있지 않을까요. 제 고통도 제가 알지 못하던 곳에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 부르짖은 강향란의 외침은 여성들의 자각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각은 필요하며, 또한 정당하다는 것은 그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
나오신 분. 안정국, 양진웅, 김진동, 김태연, 이광세, 이영민
기사 낭독 조명남. 해설 김영배. 그리고 음악에 김종삼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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