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수도 피아노社 제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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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 1부 근세의 표정.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단군의 초상을 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1920년 4월. 동아일보가 창간된지 몇일만에 하나의 사업을 벌인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아일보의 첫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단군 영정. 현상 모집. 단군은 우리 민족의 종조 이시오. 우리 근역에 건국하신 제 1인이시오.
가장 신성하신 대위인이라. 건국하신 사업이 여견하시고, 경국하신 역사가 찬연하시고, 신성하신 혼령이 엄연하시사. 금일 오등 자손에 전케되시고, 숙케 되신지라. 우리는 악무와 존숭을 난감하는 충심으로서, 숭엄하신 단군 존상을 구하야 독자와 공익익배 하려고 자에 본사는 현상하야, 감히 존상을 모집하오니. 방호 형제는 응모하시오.
응모주의 1. 존상은 고대로 보관되었던 것을 발견하야 모사함도 양호하며, 역사적 색체를 보완케하고 신성과 숭엄과 고상을 상징하야 창작한 존상을 특히 환영함.
1. 화본 즉, 화의 종별은 제한치 아니함.
1. 화본은 일체 환부치 아니함.
1. 화본의 표봉에는 반드시 현상모집 원고나 주서함을 요함.
1. 화본의 응모기한은 4월 30일 까지 제출함을 요함.
1. 화본의 심사는 본사 편집국에서 엄정히 차를 행하되, 1등 1명, 2등 2명, 3등 3명을 선택하야,
당선된 화본은 5월 10일 본지에 발표함.
1. 상은 심사후 등급을 정하야 본지에 게재된 당선자에게 송정함. 상의 품종은 추후 발표함.
단군 기원 4253년 4월 동아일보사.
단군 영정 모집. 우리 민족이 조상으로 믿고 있는 단군 왕검의 초상화를 모집한 것입니다. 일본의 압제아래 있던 1920년대,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 이 사업을 직접 주관하셨던 유광열 씨께서 말씀하십니다.
(음성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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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의 집결. 우리의 조상 단군 왕검. 아득한 옛날에 단군 왕검께서 이 나라를 세우셨고, 우리 민족은 단군왕검의 한 핏줄로 태어난 단일 배달민족. 배달민족은 4천여년 동안 영맥을 이어왔습니다.
숱한 침략을 받고도 단군의 자손들은 면면히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1910년 단군 기원으로 4243년.
단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지 4243년이 흘렀을때, 이 나라는 엉뚱하게도 섬나라 일본에 합방을 당했습니다.
조선, 고려, 한국 등 이름으로 존재해온 이 나라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도쿄정부에서 임명한 총독이 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통분해했는가. 어쩌다가 4000여년의 전통이 있는 이 나라가 저 왜소한 일본인들의 식민지가 됐는가.
단군의 자손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동아일보사가 그 창간 첫 사업으로 단군 영정을 모집한 일도 결코 우연히 떠오른 생각은 아닐것입니다. 단군의 초상화를 모집한 것은 우리 민족 독립의
지표를 모집한 것이나 같은 뜻입니다. 1920년 단기 4253년에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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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왕검. 지금도 해마다 10월 3일이면 개천절이라 해서 기념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단군 왕검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날이 개천절이라는 것입니다. 올해는 4301년.
(음성 녹음)
안호상 박사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음성 녹음)
일찍이 독일에 유학해 서구학문에 접촉했었고, 해방 뒤엔 이 나라 문교부 장관까지 지내신 지성인 안호상 박사의 말씀입니다. 일본의 압제 아래서가 아니라 지금 독립된 이 나라에서 하신 말씀 입니다.
단군 왕검은 역사적으로 있었다. 우리의 국조시다. 종교적인 경지에 까지 승화시켜야 된다고 안호상 박사는 주장했습니다.
단군 왕검. 그 역사적인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 현재 남아있는 책중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단군왕검에 대해 기록한 책이 이 삼국유사 입니다. 그 첫째 권에 「위서에 이르기를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계셨으니,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으셨으니,
때는 당나라 고조때 전후였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옛적에 하늘의 제왕 환인이 계셨으니, 그 아드님이 환웅이라. 환웅은 큰 뜻을 품고 사람의 세상을 구하고저 할 때, 아버지 즉 환인은.
“환웅아, 내 보건대. 네가 그 큰 뜻을 이룩할만 하다. 이 참부인 세 개를 줄테니,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가라.”
“황공하옵니다. 아버님.”
그리하여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 세 부하와 그 밖에 3천명을 이끌고 지금의 묘향산인 태백산 아래 박달나무 아래 내려오셔서,
“예로부터 여기는 신시라 일컫으리라. ”
신의 도시. 즉 신시라 일컫고, 즉위하시니 곧 환웅 천황이시라. 농사와 명과 병과 형벌과 선악 등. 인간의 360가지의 일을 모두 다스리셨다. 그 덕화 밑에서 만물이 기쁘게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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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때, 곰 하나와 범 하나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늘 환웅에게 기원하기를.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환웅 천황은 이 곰과 범에게 마늘 20쪽 씩을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은 소원대로 사람이 되리라.”
그리하여 곰과 범은 기쁨을 안고 굴로 들어갔으니, 범은 분부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곰은 그 분부를 끝내 지켜 여자의 몸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짝 될 사람이 없어 고민했다.
“제 짝이 될 사람은 누구옵니까? 짝을 점지해 주소서.”
박달나무 아래서 기도를 하니, 환웅 천황이 이를 기특히 여겼다.
“웅녀야, 너는 내 배필이 되리라.”
“아, 황공하옵니다. 대왕님.”
그리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으니, 이분이 곧 단군 왕검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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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첫째권에 쓰여 있는 단군 왕검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천제의 아들 환웅과 곰이 여자로 변한 웅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 우리의 시조 단군 왕검이시라는 겁니다.
이 개국 얘기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1920년대 일본의 압제아래서가 아닌 1968년 오늘에 사는 우리들은 성균관 대학교 문과대학장이시며, 사학자이신 신석호 씨의 해석을 들어봅시다.
(음성 녹음)
외국침략을 받았을 때, 민족정신이 집결하는 하나의 핵이 단군 왕검이라는 그 존재의 의의는 사학자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군 설화를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외세의 침략하에 놓여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해마다 10월 3일은 개천절로 기념하고, 지금도 전국체육대회 때마다 강화도의 신단나무로 부터 성화를 날라다 불을 붙입니다. 단군 왕검께서 개국을 선언한 터전이 강화도의 신단수이라는 믿음에서 온 것일 겁니다.
일찍부터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로서 대종교가 있었습니다. 주로 연로하신 지성인들이 중심이 된, 현종회라는 단체어, 단군 왕검을 추종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단군 기원을 버리고, 서기로 바꾼것도 불과 몇해전일 뿐입니다.
단군. 그 이름은 우리민족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군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국토가 통일 안되었듯, 단군에 대한 해석도 통일되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단군에 대한 의미를 혹은 역사적인 사실, 혹은 단순한 건국신화로 받아들이고, 또 혹은 그 신화자체도 유치한 것으로 배격하는 일파가 있습니다.
단군의 개념. 그 개념을 어떻게 통일할 수는 없습니까? 사학자들이 통일된 개념을 제시해줘야 할 겁니다.
여기 비교적 젊은 사학자 두분의 대담이 있습니다. 단국대학 국문과 교수 황평학 씨. 그리고 숭의여고 역사교사이신 이만열 씨 입니다.
(음성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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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영정 현상모집. 단군은 우리 민족의 종조이시오, 우리 근역에 건국하신 제 1인 이시오. 가장 신성하신 대위인이라, 건국하신 사업이 여건하시고, 경국하신 역사가 찬연하시고, 신성하신 혼령이 엄연하시사. 금일 오등 자손에 전케되시고, 숙케 되신지라. 우리는 악무와 존숭을 난감하는 충심으로서, 숭엄하신 단군 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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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 나라가 일본의 압제아래 놓여져 있던 시절에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단군의 초상화를 모집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단군. 당신은 우리의 조상이시라는 단군 왕검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습니까? 단군이 실제 인물이라 치고,
43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단군의 초상화를 자신있게 그린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단군.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켜야 되는 시기에는 이 나라 모든 사람의 가슴에 아로새겨야할 그 초상화.
단군. 그렇습니다. 이 민족 모두의 가슴에 정확한 단군의 초상화가 그려지도록 해줘야 합니다.
맹목적인 국수주의도 무조건의 자학도 아닌, 정확한 단군의 초상화가 그려져야 합니다. 단기 4301년도의 해도 저물어 가는 이 시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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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김영식, 조명랑, 양진웅, 이영민, 김을동. 해설 김영배. 그리고 음악에 김종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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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팔 구성, 윤화식 제작 다큐멘터리 한국찬가. 제 1부 근세의 표정에서 단군의 초상을 보내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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