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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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128회 - 버마의 3대 하천 / 격전지
제128회
버마의 3대 하천 / 격전지
1968.04.02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호루라기 소리)

이 자식들 뭐하고 있는거야! 빨리 빨리 기어!

(사람들의 웅성거림)

뭘하고 서있는거야 이 자식들! 빨리해라. 빨리!



원시 그대로의 울창한 정글을 다이나 마이트가 울렸다. 섭씨 35도 열대 뜨거운 태양이 이마에

불덩어리를 끼얹었다. 굶주린 수십만의 인부들, 모두 삽과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다.

흙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된 등허리가 햇빛에 번들번들 빛난다. 나무 이파리도 더위에 지쳐

늘어지고 있다. 남부 버마 산악지대. 수 십만 인부들이 삽과 곡괭이로 울창한 정글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바위산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군, 오스트레일리아군, 인도군 등 연합국 포로 6만명. 징용이란 이름으로 붙잡혀 온 현지

버마인 13만명, 일본인 5천명. 19만 5천명의 인부와 포로들이 동원되고 있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빨리 해라 빨리해! 이자식이. 이자식아!"

"으악."

"자식아! 이 자식아!"

(채찍 휘두르는 소리)

"으악."

굶주린 포로와 인부들은 무거운 곡괭이를 제대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땀이 번드르르한 등에 일본군의 회초리가 사정없이 날랐다. 핏방울이 흘러내리는 등에 열대 파리떼가

들끓었다.

포성이 울리고 탄환이 빗발치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돌격해 하던 전우가 앞으로 꺼꾸러 지는 것

만이 전쟁이 아니다. 파도 높은 태평양. 수십 척의 함대끼리 불 뿜는 함포 사격만이 전쟁이 아니다.

수 천명의 생명이 순식간에 물 속에 사라지는 해전만이 전쟁이 아니다. 죽음은 순간. 오히려 신의

지혜로운 자비인 것이다.

(음악)

일본군이 타일랜드에 진격해 갔을 무렵. 어느 날. 일본군 공병 대좌 이마에는 타일랜드 방콕에 있는

철도국 장관을 불렀다.

"어유. 고맙습니다. 뜻은 잘 알았습니다. 아. 그럼 귀관께서 지금 계획하고 있는 지역은 어딥니까?"

"남부요. 여기 타이와 버마 남부지역 국경선을 돌파하자는 거요. 여기 방콕을 시발점으로 해서,

버마 서부 해안선 도시 모르멘 까지. 철도를 연결하는 계획이오."

"방콕에서 모르멘 까지라면. 오백 여 키로나 되고, 새로 부설할 철도 거리만 해도 사백여 키로나 되

겠습니다."

"그렇소, 꼭 425키로요."

"그 거리는 일본군에서 새로 측량했습니까?"

"아.. 아니오. 항공 사진으로 산출한 거요. 어떻겠소? 철도장관 의견은"

"음.. 저더러 솔직한 말씀을 드리라면, 단념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뭐? 단념을 해?"

"그렇습니다. 대좌께서도 아시겠지만, 그 지역은 산악인들이 코끼리를 앞세워 넘어가는 일이 있을뿐,

우리 철도국 직원중에는 아직 끝까지 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히말라야 산계에서 내려오는 샴 산맥이

라고 부르는데, 평균 높이가 3천 미터, 그리고 정글은 아직 원시 그대로요. 또 중간에 도저히 돌파

할 수 없는 하천과 습지대가 있습니다."

"음.."

"퍽 오래된 일 입니다만 사실은 영국인들도 그 국경선 돌파 철도를 계획했습니다."

"오. 그래요?"

"다섯 군데나 철도 부설 예정지를 설정하고, 철도 기사들을 보내서 실제 답사까지 했습니다만 마침내

불가능하다고 단념하고 만 데입니다."

"음.."

"그 뒤, 우리 철도국 기사들을 시켜서 대강 답사해 봤는데, 그것도 아까 말씀 드린데로, 끝까지

가본 건 아니지만, 아무튼 대충 잡아서 그 철도 개통에는 5개년이 걸린다는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요.

그것도 아주 순조롭게 서두르게 해서 5개년, 일이 지연되고 사고라도 나면, 10년도 15년도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이 단념하시라는 겁니다. 5년이 걸린다고 보더라도 그 동안에 일본의 대

동아 전쟁은 끝나지 않겠습니까?"

(음악)

그 뒤 일본은 남부 버마에 거의 전역을 점령했다. 이 버마 전선은 일본군 작전에 있어, 남 태평양에

솔로몬 군도나 뉴기니아 전선보다는 또다른 뜻에서 중대한 것이었다. 버마는 일본군의 서부 전선에

있어, 현관인 셈이다. 버마 진격에 궁극적 목적은 대륙 인도점령에 있었다. 인도를 점령하면 영국이

먼저 항복하리라는 것이 일본군의 계산이었다. 한편 이른바 원장루트. 미국 장개석 군에게 원조해

주는 루트는 인도를 거쳐 북부 버마를 통과하는 산악지대였다. 인도와 버마 전역을 점령하면, 자연 미국

의 원장 루트는 절단될 것이고, 따라서 장개석 군도 항복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태평양에서

패배하는 일이 있더라도 버마와 인도를 점령하고 영국과 중국이 항복한다면 전 태평양 전쟁을 승리

로 끝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일본의 이 버마 인도 작전의 목적이었다.

이미 버마에는 수 십만 일본군이 집결해 있었다. 그런데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급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이 타일랜드 국경을 돌파하는 철도공사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하는 것이 도조

히데키나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철학이다.

도조 히데키는 이 철도 공사를 일 년내에 끝내라는 불 같은 호령을 내렸다.

(음악)

일본군 공병대 노구치 중대 본부.

쾅!

"어때 관비에? 잘 생각해 봤겠지?"

쿵쿵!

"대답하는게 좋을거야."

"으으으.. 글쎄 올시다. 암만 물어보셔도 그 말 밖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요. 나으리."

"하하하하하하. 아직도 생각을 덜 한 모양이구나. 어!"

"으으으.. 없습니다. 정말 입니다. 나으리."

"중대장님."

"어! 어떤 일이야?."

"네."

"어제 저녁에 버마인 8분대에서 도망친 여섯 놈중에 한 놈 입니다."

"다 잡았나?"

"죄송합니다. 두 놈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쾅!(책상 치는 소리)

"뭣들 하고 있어! 어?"

"핫.."

(발소리)

"음.."

쾅쾅!(두드리는 소리)

"이게, 이게 거기 너한테 대답을 시킬게야. 어떠냐?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없는 걸 어떻합니까."

"그래, 없다고 해두자! 야잇!!"

(넘어지는 소리)

"으으윽.."

"이 자식이.."

"흐윽.. 으윽.."

"어때? 대겠어?"

"대겠습니다. 대겠습니다요. 나으리."

"누구냐?"

"물 좀 주십시오. 나으리. 물.."

"음.."

(물 따르는 소리)

"먹어라."

"흐읍.. 으으윽.."

"누구냐? 그래."

"치이몹니다."

"치이모?"

"네, 그렇습니다.틀림없습니다. 나으리."

"치이모가 누구냐. 너하고 지금 감방 속에 같이 있는 놈이냐?"

"어.. 없습니다. 치이모는 도망갔습니다. 안 잡혔습니다. 나으리."

쾅!(책상치는 소리)

"뭐야!"

"으윽.."

"도망간 놈한테 뒤집어 씌워?"

"정말입니다. 나으리. 절대 거짓말은 안합니다."

"너 혼자만 붙잡히지 않았다는 걸 알아둬라. 다른 놈한테도 물어 볼테니까."

"정말입니다. 물어봐 주십시오. 나으리. 거짓말 안합니다."

"좋다. 넌 도망해서 어디 가려고 했어?"

"사실은.. 도망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으리. 집에.. 집에 잠깐만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집에?"

"그렇습니다. 나으리 틀림없습니다."

"집엔 왜?"

"딸 년이. 제 딸 년이 앓아서 죽게 됐다고 소식이 왔습니다. 그래 죽기 전에 딸 년 얼굴만 잠깐

보고 다시 오려고 했습니다."

"몇 살이냐! 딸이."

"다섯 살입니다."

"너희 집이 어디냐?"

"아카칸 입니다."

"아카칸?"

"여기서 한 30리 쯤 되는 산속입니다. 나으리."

"으응. 그래? 네 딸 년이 앓는 다는 소식은 누구한테 들었냐?"

"편지가 왔습니다. 나으리.. 여기.. 여기 있습니다.. 나으리 편지.."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오호. 이거 버마 글이구나. 누가 썼냐?"

"저, 제 아내가 썼습니다. 나으리."

"읽어봐라!"

"네."

"관비에, 이 편지가 당신한테 까지 가겠는지 모르겠군요. 이장님 한테 갔다가 겨우 당신이 있는

곳의 주소를 알았어요. 얼마나 고생이 심하세요. 알릴 얘기는 다름이 아니라, 피나가 몹시 앓

고 있어요. 벌써 열흘도 더 됐어요. 날마다 아빠를 찾으며 울고 있어요. 아무래도 피나를 살리지

못할 거 같아요. 먹을 거라도 있으면, 우리 피나를 살릴.. 흑흑.."

"빨리 읽어라!"

"예.. 여보, 돌아오세요. 한번만 돌아와서 허기라도 가지고 우리 피나.. 우리 피나가 죽기전에

한..한번만 와서 보고 ... 흑흑흑.."

(음악)

(입력일 :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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