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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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126회 - 연합군 공세
제126회
연합군 공세
1968.03.30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카이로 회담을 마친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은 곧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날아가 스탈린과의 3자 회담을 시작했다.

테헤란 회담이 시작된 것이다.

처칠은 스탈린과 두번째 만나는 회담이지만,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이때가 첫 대면

이었다.

(차 소리)

11월 28일 오후 3시 스탈린이 통역관만 대동하고 루즈벨트를 방문했다.

스탈린은 턱 밑까지 바짝 치켜 올라간 군복 외투에 군모를 깊숙히 눌러 쓰고 있었다.

전후 미·소의 숙명적인 각축은 이때부터 비롯 되었다고 할까.

"대통령 각하. 본인이 먼저 대통령 각하를 방문한 것은 본 회담에 앞서, 귀국과

우리 소련 두 나라만이 개정한 문제에 우선 공통적인 양해를 얻고 싶어서 입니다."

"찬성입니다. 처칠 경과 나는 그저께 카이로에서 회담을 가지고 장개석 총통과 중

국문제에 대해서 아주 흥미있는 얘기를 교환했습니다."

"거, 중국얘기인데, 중국인들은 지금 아주 졸렬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 국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나쁜 것입니다."

"중국군에 대해서는 현재도 우리 미국이 보급과 훈련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이것은 계속 할 생각입니다."

"음.. 중국에 이어, 자연 논의 해야 할 것이 인도 문제인데,인도에 대한 대통령 각

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인도문제에 대해서는 스탈린 원수께서도 처칠 경과 도의하지 않는 것이 좋을겁니

다. 왜냐하면 처칠 경 자신이 아무 해결책도 없으니까요."

"인도문제는 영국의 약점이고 아픈데니까..."

"이.. 문제는 앞으로 원수 각하와 다시 논의하고 싶습니다만.. 우선 제 생각으론

인도는 하부층 부터 개혁돼야 될 것입니다."

"하부층의 개혁이라면, 혁명입니다. 인도가 혼란한 것은 현재 주민적 문화적 레벨

이 얕고, 또 지역 상호간의 연락이 불충분 하기 때문인데 이를 통합하자면 무엇보다

도 우리 소련식 혁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음악)

한시간 뒤, 오후 4시. 정식 회담에 시작됐다. 먼저 루즈벨트 대통령이 발언했다.

"아. 일본과의 대전에서 우리 아메리카는 지금 주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에 영

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 미국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 연합국의 전력은 소

모전의 이론을 기초로 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 일례를 들자면, 해전에 있

어 우리 연합국은 엄청나게 많은 일본 선박과 함정을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일본

측의 이와같은 손실은 일본의 선박생산 능력을 월등하게 상회하는 것입니다."

"우리 소비에트 정부로서는 귀 미국의 영웅적인 투쟁에 항상 경의를 표해왔습니다.

귀 미·영 양국의 대 일전의 승리를 기뻐하는 바이며, 오늘 날까지 우리 소비에트

는 대 일전에 있어 미·영 양국과 합세하지 못한 것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 이유로서는 우리 소비에트 군이 너무도 독일과의 유럽 전선에 깊이 들

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이치의 히틀러는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되면, 우

리 소비에트 군도 귀 미·영 양국과 더불어 일본 타도의 공동 전선에 참가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스탈린의 이 발언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스탈린이 공식석상에서 대 일전에 참전

할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소련이 대 일전에 실제 참가한 것은 1945

년 8월 9일이다. 그러니까 스탈린은 1년 반도 더 전인 이 1943년 말에 이미 대 일전

참가를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

이튿날 오후 2시 45분. 다시 제 2차 공식회담을 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먼저

발언했다.

"어제 스탈린 대원수께서 대 일전에 참가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만 우리 아메리카

로서도 이를 전적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러자면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

니다. 이건 우리 군사 사절단이 지금 작성한 것입니다만 공중작전과 해상작전에 대

한 우리 아메리카군의 계획입니다."

"음. 감사합니다. 이 문서는 지체없이 우리 군사 사절들에게 연구시키겠습니다."

이어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후 세계 평화기구 설치 문제를 스탈린에게 설명했다.

스탈린은 곧 불만을 표시했다.

"이 문제는 지금 대통령 각하의 제안보다 훨씬 엄중하게 해야 한다는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어제 처칠 경 께서도 도이치가 이제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 하

셨는데, 이것은 너무 낙관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후 도이치 감시를 엄중하게 하

지 않으면, 그들은 15년이나 20년안에 또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이치가 다시

침략코스를 다시 밟지 못하게 하자면 강력한 감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도이치 국내

에 또는 가까운 도서에 감시를 위한 기지를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도이치에 대해서는 본인 생각하는 또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스탈린 각하?"

"도이치 사령부 막료들을 육체적으로 숙청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숙청이라면.."

"처형입니다. 말살한다는 뜻입니다."

"오.. 하하. 그럼 스탈린 각하께선 얼마나 숙청할 생각입니까?"

"적어도 5만..아니면 10만까지 입니다."

스탈린은 이미 이 때, 적군 장교를 다수 처형하고 있었다. 이에 1943년 가을,

이미 소련 가친이라는 숲속에서 폴란드 장교 4143명의 시체가 발견됐던 것이다.

그것은 폴란드 장교 포로를 소련의 비밀경찰이 학살한 것이었다. 스탈린의 어처구니

없는 제의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 마디 농담을 했다.

"스탈린 대원수. 도이치 막료들은 5만명은 너무 많고, 4만9천900명 쯤이면 어떻겠

습니까? 네? 하하하하하.."

이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처칠 수상이 비로소 발언했다.

"안될 말입니다. 조국을 위해 투쟁한 군인을 무자비하게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전쟁 범죄자가 있다면은 그 들은 그 범죄에 한해서만 보상을 치뤄야 할

것이며, 또 야만적인 행위를 한 개인이 있다면은 그 행위에 대해서만 현지에서 재판

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스탈린 대원수께서 말한 정치적 목적의 사형은 본인으로서는

찬성 할 수 없소. 절대 반대합니다. 스탈린 원수.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 영국의 입

장에 언급하겠는데, 우리 영국으로서는 새로운 영토나 기지의 획득을 바라지 않소.

현재 우리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상의 것을 다시 영유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소.

그 예로서 싱가폴과 홍콩을 들 수 있겠는데, 우리 대영제국은 종국에 가서는 이 두

군데를 해방시킬 것이요. 그렇지만 그 것은 우리 영국 자신의 문제요. 우리 영국 자

신의 도덕적 이념의 문제요. 영국도 필요에 따라서 약간 신탁통치지를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은 그것은 승리를 위한 방편으로서만 용납할 수 있는 문제요. 다음 스탈린

대원수께 묻겠는데, 우리 카이로 회의의 극동에 대한 커뮤니티를 읽었소?"

"아.. 읽었소. 대체적으로 이의가 없지만, 중국을 우리 3대국과 동일하게 참가 시킨

다는 것은 아직 본인으로서는 회의적이요."

"아. 중국을 참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본인이요. 중국이 현재 약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중국은 4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소. 가까운 장래에

이 4억의 중국인을 세계적 트러블의 잠재적 원천으로 하기 보다는 차라리 친구로 해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오."

"극동 식민지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셨소. 스탈린 대원수."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데는 이의가 없소. 만주, 대만, 팽어도를 중국에 반환하는 것

도 찬성이오."

"그럼 다시 묻겠는데, 스탈린 대원수께서는 극동에 있어 어떤 영토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보시오."

"하하. 대단히 흥미있는 문제인데, 지금 이자리에서 우리 소비에트의 소망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얘기 하겠소."

스탈린은 대수롭지 않은 듯 회피했다.

(음악)

이튿날 11월 30일 저녁 8시. 영국대사관.

(박수소리)

"에. 오늘은 우리가 경의해 마지 않는 처칠 수상 각하께서 69회 생일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뜻하지 않게도 이 테헤란 회의중 처칠 경의 생일을 같이 맞이 한다는 것

은 기연이며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럼 신사숙녀 여러분. 처칠 경의 생일

과 건강을 축복해서 자. 축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박수소리)

"고맙소. 고맙소. 이 테헤란에서 존경에 마지 않는 루즈벨트 대통령과 스탈린 대원

수, 그리고 3국 대표단 여러분과 함께 내 생일을 축하하게끔, 이 날을 택해 날 낳

아주신 내 어머님께 우선 감사합니다."

(박수)

"루즈벨트 대통령께서는 그 전 생애를 약자와 자립 능력이 없는 자를 반위하고, 민

주주의 문명에 근본을 이루는 대원칙의 추진에 헌신했습니다. 1933년 공황 때는 용

기와 선견적인 행동으로서 이를 극복했습니다. 대통령이 격렬한 자유의 흐름속에서

모든 방파적 마찰과 정치적 견해의 상반을 조정 시키고, 지도한데 대해 경의와 감탄

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한편, 스탈린 대원수께서는 러시아 역사속에서 위대한 스

탈린이라는 칭호를 받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박수소리)

이윽고, 스탈린이 일어섰다.

"본인은 우선, 이번 전쟁에 있어서 기계의 중요성과 아메리카의 위대한 생산능력에

상찬과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아메리카는 항공기 월 생산량이 1만대라

는 보고를 들었는데, 우리 소비에트는 3천대에 불과하오. 아메리카가 무기 대역법

에 의해 기계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지고 말았을 것이오."

(박수소리)

끝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어섰다.

"금방 회의 중, 스탈린 원수께서도 대전이 끝난 뒤 세계 정치적 양산에 대해 붉은

색채 문제를 말씀 하셨지만, 우리 아메리카는 무지개가 행운과 희망에 상징입니다.

무지개는 여러 색채를 가지고 있고, 개인주의적이지만, 그것이 빛나는 천체로서

아름답게 조화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습관과 철학, 생활양식을 이상적을 조화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테헤란 회의는 각기 다른 철학과 사상이 세계 공통적인 선을

위해 제휴하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 하늘에 희망의 상징인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박수 소리)

1944년 12월 4일. 테헤란 회의 3국 공동 선언이 공표됐다.

전후에 영토 분할 문제, 평화기구 문제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리고 간결하고 인상적인 표현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희망과 결의를 품고, 당지에 왔다. 지금 우리는 정신과 목적을 하나로 하

고, 진정한 친구로서 이 곳을 떠나는 것이다."

(음악)

(입력일 : 200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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