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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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124회 - 연합군 공세
제124회
연합군 공세
1968.03.28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1943년 7월11일 오전 1시, 이태리 시실리 섬.

연합군은 아이젠 하워 장군 휘하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이태리 시실리 섬 남단에 상륙했다.

지중해에 흡사 고무장화처럼 길죽하게 내려드리운 시실리 섬.

처칠의 표현을 빌면, 독일, 이태리 군 요새중에서 가장 물렁물렁하고 약한 아랫배에 연합군이 최초의

일격을 가했다고 했다.

상륙개시 첫날, 시실리 섬 남부의 조그마한 도시들은 거의 풀 빛 전투복을 입은 미국군으로 가득찼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자. 들어 들어. 기분 좋게 들라고. 하하하하.

아하하하. 쭈욱. 하하하."

시실리 산 향긋한 포도주 병마개는 전진에 시달린 G.I들에게 쾌적한 음향을 내며 열렸다.

"에이! 일렬로 서라. 일렬로."

"일렬로 서라."

아주 전의를 상실하고, 무서운 무질서에 빠진 이태리군 병사들은 앞을 다투어 연합군

포로 수용소 철조망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헤이! G.I 잘왔어. 잘왔어. 우리들에겐 이 철조망 속이 더 안전하단 말이야. 하하하하.

그런데 브루클린에 내 조카사위가 살고 있는데, 자네 그 소식 모르겠나? "

(비행기 소리)

독일군의 전투기 메사슈미트와 폭격기 슈트카가 맹렬한 폭격을 가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지고 있었다. 성난 독일군들은 이태리군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썩어빠진 이태리 뱃 놈 들아! 이 쓸개빠진 포체 졸도들아! 이태리 푸주간 돼지 멱다는 놈들."

포체란 무솔리니의 애칭이다.

7월 중순엔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파레루머가 점령되었다.

이끼낀 오랜 궁전이 무참하게 부서진 폐허속에 이태리인들은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소리짖음.)

미국군 제 7군은 옛날 노르망 황후들의 아름다운 궁전에 사령부를 두었다.

상륙작전의 성공에 쾌재를 부르던 처칠은 연합군에게 더욱 대담한 공격을 요구했다.

그리고 각군 참모장에게 외쳤다.

"제관들 잘 들어두게. 우리는 이태리의 정강이를 진득이 처럼, 느릿느릿 기어 올라가는게 아니야.

단번에 무릎팍에 대담한 공격을 가해야 하네. "

무릎팍이란 다름아닌 이태리 수도 로마를 가르키는 말이다.

처칠은 이 시실리 섬 상륙을 미국군에게 큰 선심을 쓰듯이 얘기 했다.

"미국군은 우리에게 감사하고 있단 말이야. 하하하하. 말하자면 우리는 미국군을 지중해의 아름다운

정원에 안내한 셈이니까. 그들은 여기서 복숭아를 따고, 저기 가서는 레몬을 따고 있으니까 말이야."

한편 영국군도 마찬가지였다.

영국군 8군 사령관 몽고메리는 느긋한 표정으로 얘기 했다.

"우린 북 아프리카 사막 전투를 끝내고 왔기 때문에 시실리에서는 즐거웠다. 때는 풍성한 여름.

나무마다 오렌지와 레몬이 익고, 포도주는 향기가 높았다. 그리고 시실리 아가씨들은 말할 수 없이

상냥했다. "

이처럼 시실리 섬의 서전은 순조롭고 유쾌하기 까지 했다.

독일군은 그 후 맹렬한 반격전을 벌였고, 일대 격전이 벌어 졌지만 이태리군 자체는 이 서전에서

이미 붕괴일보 전에 있었다.

이태리로서는 이미 전쟁이 끝난 것이다 다름이 없었다.

제 3제국 흥망의 저자 윌리엄 샤린은 이 무렵의 이태리를 아주 간결한 필체로 여실하게 표현했다.

`7월 10일 연합군이 이태리 고무장화끝 시실리 섬에 상륙했다. 패전 사상이 국민에게 그리고 군대

내부에 넘치고 있었다. 밀라노나 도리노 같은 공업도시에는 큰 스트라이크가 잇따라 일어나고

굶주린 노동자들은 빵과 자유와 평화를 찾아 데모를 벌였다. 부패한 패시스트 제도는 급속하게

붕괴되 가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 허리를 못쓰고 비틀거리는 짝패 무솔리니에게 지렛대를 떠 받혀

똑바로 서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실리가 거의 붕괴되가던 7월 19일. 무솔리니는 북부 이태리 펠드로 날아가 히틀러를 만났다.

히틀러가 마침내 지렛대를 준비한 것이다. 이것은 이 두사람의 독재자가 만나는 열 세번째 회합

이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입씨름 부리는 것은 히틀러가 맡았다.

"포체! 기운을 내게, 기운을 내. 어? "

"음..이젠 이미 때가 늦은거 같네만. 어쩌겠나. 이대로 주저 앉고 말수야 없지. 시실리 방위를

위해 우리 이태리군에게도 기갑부대를 보내주게. 항공기 하고 말이야. 항공기는 최소 2000대는 있어

야 쓰겠네."

히틀러의 열변이 시작됐다.

"포체. 잘들어. 우리들은 모든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 도이치와 이태리는 운명적인 공동체다.

우리가 하던 일을 또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수는 없다. 시실리와 이태리 본토는 이태리군이 지금 싸

울 의욕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태리 군의 전쟁 의욕이다. 원조는

얼마든지 해준다. 새로운 우리 도이치군 정예부대를 이태리 전선에 투입할 것이다. 항공기도 물론 보내

준다. 뉴보트도 얼마안돼 새로운 임무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시가 됐을때, 히틀러의 열변에 무솔리니는 심신이 피로했다.

"흠... "

"각하께, 기밀 정보가 왔습니다. "

"누구? 나야?"

"아니, 무솔리니 각하께..."

"기밀전보. 음.."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긴급 보고함. 수도 로마 지금 불타고 있슴. 적 폭격기 편대의 맹렬한 폭격을 받고 있슴.

지금 로마로 귀환하기 바람. 이상 참모총장 `

"음.. 로마가.. 로마가. 총통. 난 가야 겠네. 가야겠어. 로마가 지금 불타고 있네. 로마가.."

(음악)

그 길로 무솔리니는 로마로 달려왔다. 연합군에 의한 로마 첫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무솔리니의 심리적 정신적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로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격의

방해보다 더 심각한 것이었다. 페시즘 자체가 급속한 붕괴에 직면 있었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제국이

난장판이 되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튿날 이태리 국왕 비톨 임마누엘 3세는 무솔리니를 불렀다.

"음. 무솔리니. 이젠 아무래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네. "

쿠데타가 신중하게 준비되가고 있었다.

표면상 주모자는 주영 이태리 대사 티노로 되있었지만, 내막은 바트리오 원수와 참모총장이었다.

24일엔 파시스트 평의회가 열렸다. 검은 셔츠의 제복을 입은 평의원들. 오랫동안 무솔리니의 심복

이었던 부하들까지도 무솔리니의 실정을 신랄하게 규탄했다.

이튿날 25일 아침. 민주주의의 의회를 창설하고 왕정을 복구하자는 동의가 나와 표결에 들어갔다.

"아. 마침내, 가결됐습니다. 19대 8. 이로써 모든 정치적 권한은 다시 국왕에게로 돌아간것입니다."

땅!땅!땅. (나무 치는 소리)

무솔리니의 외상이며, 사위인 치아노 까지도 반대표를 던졌다.

21년동안의 무솔리니 독재는 어처구니없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같은 날 무솔리니는 국왕을 방문

했다.

"게임은 이제 끝났네. 무솔리니. "

"흐.. 폐하. 이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종말입니다. 고대 로마 그 위대한 제국의 부활은 이제 영영

끝나고 말았습니다. "

"자네는 사라져야 겠네. 무솔리니. "

(발자국 소리)

"수상 각하를 체포하겠습니다."

"뭐?..뭐라고? 어느 놈이! 어느 미친놈이 그 따위 수작이야! "

"명령입니다. 바트리오 원수의 명령입니다."

"바트.. 바트리오가.."

(음악)

40일 후 9월 8일 오후 7시. 이태리 수상 바트리오는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발표했다.

"본인은 조국 이태리를 대표해서 전 세계에 공표하는 영광을 가지는 바입니다. 유고한 역사를 지닌

이태리와 충성스런 이태리 국민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서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 조건을 수락할

것을 이에 공표하는 바입니다. 1943년 9월 8일. 이태리 수상 베드로 바트리오."

이때, 일본의 도조 히데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뭣이라고? 머저리, 머저리 같은 자식들. 뭐야? 뱃놈들. 이태리 뱃놈들. 배신자! 배신이야!

삼국동맹 배신이란 말이야! 단독으로 항복을 해? 쳇! 단관! 단관! "

"하!"

"외상을 불러라."

"하!"

"참모총장 불러. 나가노 군령 참모총장을 불러라. 국무국장을 불러라."

"하!"

"에이~ 바보 같은 자식들."

(음악)

이틀 후 9월9일 오후 2시 30분.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정부 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국민 제위께 고한다. 이따위 바트리오 정부는 마침내 미 영해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이는 일본,

독일,이태리 3국 동맹 맹약을 배신한 것으로서 제국으로서는 가장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그러나, 제국정부는 이미 이와같은 사태를 예상하고서 만전의 조치를 강구해온 바인 듯, 여하한 사태가

대세에 영향하는 바 추호도 없으며, 제국은 적의 필승의 신념을 공고히 하는 바이다. 한편, 아직

우리에게는 강력한 맹방. 독일이 있다. 독일과 더욱 굳게 제휴해서 숙적 미국, 영국을 궤멸할 것을

다시금 다짐하는 바이다. 이런 국민 제군에 더 일침에 분발과 협력을 바라는 바이다. 이상! 내각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

(음악)

(입력일 : 2009.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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