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4월 21일 도쿄 카즈미카세키 해군성.
-고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어 고가대장.
-안녕하십니까? 대신. 왜 갑자기 부르셨습니까?
-좌우간 좀 앉으시요.
-네 무슨 일입니까? 왜 갑자기 저를 오라고 했습니까?
-하..보시요, 고카대장.
-아니, 이..이게 어찌됀 일입니까? 이 이게 사실입니까? 이 이게 사실입니까? 네? 대신! 아니 이게 정말입니까? 무슨 착오가 아닙니까?
-사실이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아니 이럴수가! 이럴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야마모토가..야마모토가...하...
-흠...이제 고가대장을 부른 이유를 알겠소?
-제가..저보고 맡으란 말씀이시군요? 연합함대를 맡으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고가대장.
-점점 우리 일본이 어찌되겠습니까? 야마모토군이 없는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그 중책을 그 큰자리를 제가 어찌 메꿀수 있겠습니까?
-벌써 폐하 제..가 났소.
-폐하께서도 저를? 그렇소. 아 그리고 부관!
-네
-그 전갈을 가져오지.
-네
-폐하께 제가 보냈소. 고가장군 신고식을 생략하기로 말이요.
-네
-폐하가 손수 내일 연합함대 사령장관 신고식을 생략한게 나로서는 섭섭하오. 군인 최고의 영예가 되는 신고식을 말이요.
-지금 그런걸 따질 땝니까?
-여기서 해군대신 명의로 임명장만 전달하게 됐는데
-좋습니다.
-부관. 나가노 총장은 어찌 됐는가?
-아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임명장이라면 나가노 총장도 합석한 자리에서 드릴려고 했는데
-상관 있습니까, 대신. 지금 주시요.
-그럼...
-네
-임명장! 해군대장 고가 미네이치 대일본제국연합함대 사령장관의 명. 쇼와 18년 4월 21일. 해군대신 스나가와 시게다오.
-곧 준비해가지고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요. 그리고 폐하를 배하해야겠소. 신고식은 생략했지만은 떠나기 전에 폐하를 한번 배하해야하지 않겠소? 부관!
-네
-국내성에 연락을 해보게.
-고가신사령관 배하일정말씀...
-네
-아, 국내성에도 고가대장이 연합함대 사령장관이란 말은 말고 그저 요코즈카 진스구 사령관이 남방 시찰을 간다고 말이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 관저에 연락을 해서 간단한 오차연을 준비시키게.
-예
-식탁 명폐도 사령장관이라는 말은 빼고
-네
-그저 요코즈카 진스구 사령관이라고만 쓰도록!
-네 알았습니다.
-이틀 뒤 새로 임명된 고가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공로 연합함대기지 트럭섬에 도착했다. 연합함대 기암 무사시.
-야, 근데 우리 장관이 전사했다는 소문이 있어.
-어? 뭐라구?
-요즘은 참모들이 좀 이상하잖아. 말도 안하고 모두 풀이 죽은것 같구 말이야.
-그 이튿날 하얗게 칠을 한 보트가 트럭섬에서 기암 무사시에 다가왔다. 장관전용 보트이다.
-전신에 흰 붕대를 감은 사관 한사람이 보트에서 내려 무사시에 탑을 올라왔다. 위생병 한 사람이 그를 부축했다. 그를 본 사병들이 모두 놀랐다. 연합함대참모장 우카키 소장 이였던 것이다. 뒤를 이어 역시 전신붕대를 감은 사람이 들것에 실려 올라왔다. 기타무라 경리 소장이였다. 끝으로 흰 상자를 안은 장교가 올라왔다. 정장을 하고 홀로 갑판위에 서있는 고가대장 시종 말이 없었다. 모든 사태를 알고 있는 오직 한 사람이다. 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골을 먼저 승함시키지 않은 것은 아직도 비밀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였지만 이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죽음은 사병들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돼었다.
-라바울에서 공습을 당했을까?
-비행기 사고래.
-아니,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자살?
-음. 여길 떠날때 장관이 이제 우리집도 옛날 우에무라 장군 집처럼 될거라고 그랬다는 거야.
-우에무라 장군이 누구야?
-그 일러 전쟁때 전쟁 잘못했다고 동네 애들이 그 집에 돌을 던졌데잖아?
-오
-그러니까 야마모토 장군 집에도 돌을 던질지 모른다는거야.
-음...
-그리고 이제 일본 최전선은 오키나와가 될거고, 오키나와가 돌파 될땐 일본이 추격당하는거야. 그때까지 자기는 살지 못할거고 살고 싶어도 살려두지 않을테니까 자기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비행기를 많이 만드는 길 밖에 없다고 했다는거야.
-음..
-그 장관이 후지이 참모하고 바둑을 두면서 늘 그런 소리를 했다는거야.
-약 한달뒤 5월 하순. 연합함대의 기암 무사시는 기지 트럭 섬을 떠나 일본에 귀환했다. 도쿄만 키사라즈 항에 입항한 무사시에서 야마모토의 유골이 비밀리에 도쿄로 운반됐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사 발표, 장의 절차, 공에 대한 추서등이 해군과 내각총리실 사이에 협의됐다. 전사 공편은 작전상의 이점 군 통수와 국민 사기에 미치는 영향등 여러점을 고려했다. 시마다 해상은 야마모토의 주소를 대 훈의 공1급 원수 자기수여로 상신하고 장례는 국장으로 할것을 내각에 상신했다. 총리 도죠 히데키는 원수 공1급은 찬성했지만 대 훈의와 자기 수여 국장은 반대했다. 이때문에 또 시마다와 도죠 히데키 사이에 장시간 논쟁이 벌어졌다. 마침내 자기수여만 제외하고 시마다의 반대로 합의를 봤다. 5월 21일 오후 3시. 도쿄 해군 기사쿠라 앞에서 처음으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사가 공표됐다. 전사한지 한달이 지나서 발표한 것이다. 유족에게는 야마모토의 오랜 친구 호리레이키지 중장이 알렸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생애가 다시 평가 됐다.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연합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됐을때.
-만약 일미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전 세계의 큰 불행이다. 지난 사변으로 이미 ....이에 다시 새로운 강적을 만난다는것은 국가의 큰 위기다. 일미 정면 충돌은 북녁 해안.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일본, 독일, 이태리 삼국동맹을 체결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본, 독일, 이태리 삼국동맹은 체결되고 말았다. 야마모토는 친미 친영파 게다가 역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었다.
-나는 우리 일본이 미국 영국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 일본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야마모토가 친미 친영이라는 비난을 들을 이유는 절대 없는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일본에 있을 뿐이다.
-총리 고노에가 야마모토에게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때
-전쟁을 꼭 하라면은 처음 일년이나 일년 반쯤은 태평양에서 마음껏 뛰고 날쳐보겠습니다. 그러나 2년 3년 부터는 자신이 없습니다.
-옛친구 사사카와 류이치씨에게 보낸 서신.
-바다에 야마모토가 있다고 모두 안심하는것은 본인으로서는 유감천만입니다. 본인은 그저 작은 ..하고 얕보지 아니하고 큰 적이라고 무서워 하지 않으며 힘껏 싸울 따름입니다. 만약 일미 전쟁이 일어난다면은 목표는 하와이 센프란시스코가 아니라 워싱턴에 진격해 백악관에서 항복의 맹세를 받아야 하며 위정당국의 ..와 그만한 각오와 확신이 있는가 없는가.
-이 서신은 끝머리 위정당국의 말만빼고 신문에 보도됐다. 그때문에 야마모토는 아주 호전적인 장군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태평양함대 사령장관 니미스 제독은 야마모토의 이 서신을 보고
-이 서신의 분명한 의도는 일본위정자에 대한 비난이다. 애마모토 제독은 아메리카에 이기는것이 위정자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군국주의 위정자들에게 분명히 지적했다. 야마모토 제독은 처음 미일전쟁은 막을려고 ..노력했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나자 또 전력을 기울여 분투했다. 야마모토는 나하고는 적이였지만 세계적인 ...제독이였다.
-천 여름 6월의 도쿄. 장례의 행렬이 서서히 지나갔다. 故 대 훈의 공 1급 원수 해군대장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국적. 일본 전국이 침울했다. 그리고 불안해 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영영 가버린 것이다.
(입력일 :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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