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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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105회 - 뉴기니아 섬 분쟁
제105회
뉴기니아 섬 분쟁
1968.03.06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음...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야?

-처형하는 현장입니다.

-음 이 쭈구리고 앉은 사람이 우리 아메리카 병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일기에 적혀 있습니다만은 이 군돌들과 ..은 잽 소자입니다.

-음 일기에 이 얘기를 적었는가?

-그렇습니다.

-이게 어디서 났어?

-호란지아 지역에서 보내왔습니다. 호란지아에 상륙한 우리 아메리카 군이 입수한 모양입니다. 그래 영문으로 번역을 시켰는데

-음

-필자가 종군안 신문기자가 아니면 문필과 같습니다. 문장 솜씨가 여간 능숙한게 아닙니다.

-그래? 피해 사육제라...1943년 2월 13일. 아니 2월 13일이라면은 얼마 전 일 아니요?

-피해 사육제. 1943년 2월 13일. 만약 내가 살아돌아간다면 좋은 얘깃거리가 될것이다. 그래서 이 얘기를 적어둔다. 저녁 3시 쯤 됐을까.

-보도반원 ...에 집합 확실합니다.

-누구? 나만?

-아니, 네 사람 다.

-무슨 일이요?

-코마기 대대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알았소. 어이, 쿠로카와 집합이야. 모두 집합이야.

-어 알았어.

-우리들 쿠로카와 이시구치 야다 그리고 나 네 사람은 곧 본부 앞에 집합했다.

-아아! 다 모였군. 수고들 해.

-무슨 일입니까? 대대장.

-하하하 오늘은 제군들께 좋은 구경 시켜주지. 우리 일본 부시토우 정신에 진수를 보여 준단 말이야. 음? 하하하

-아 무슨 검술 시합이라도 하나요?

-아?

-두고보게. 조금만 기다리게. 오우! 왔어.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야! 끌어내!

-핫!

-미국군 한 사람이 내렸다. 키가 늘씬하게 크고 손이 묶여있다. 포로임에 틀림없다. 머리를 짧게 깍고 짙은 남빛 군복을 입었다.

-그놈한테 물 한 모금만 맥여!

-하! 들어 이 자식아!

-포로는 지친듯 비틀거리며 걸었다.

-먹어라 이 자식아!

-자, 장교 식당에 가서 내 군도를 가져와.

-하이!

-어, 내것도 가져와라!

-하이!

-아니, 군의관도 가겠소?

-그럼요, 내가 안가고 일이 됩니까? 하하하하

-좋소! 같이 갑시다.

-저 포로를 처형하는거 아냐? 도베?

-아..그런 모양이다.

-대대장님 군도입니다!

-음, 도베군 어떤가?

-아 훌륭한 검이군요?

-이게 바로 마사문에 명검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지. 오늘은 이놈 실력을 보여주지.

-아, 아.. 대대장께서 손수 하십니까?

-어!

-포로도 앞으로 일어날 사태를 분명히 알고 있는 모양이였다. 생가했던거 보다 침착했다.

-이젠 태워!

-하이!

-도베 자네들도 타게!

-아 네.

-집총을 한 사병들이 열명가량 같이 탔다. 나와 구로카와는 군의관 옆에 앉았다.

-집합!

-어떻게 된 포로입니까, 군의관님.

-음 공군이야. 전투기 파이롯트야. 며칠전 파라쇼트를 타고 우리 진지 상공에 내려와서 붙잡혔지.

-하..장교인가요?

-물론이지.

- 트럭은 넓은 초원지대를 달렸다. 엔진은 쾌적한 소리를 냈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붉은 저녁해는 이미 서산에 넘어갔다. 저녁 하늘의 거대한 검은 구름덩어리가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듯 솓아올랐다. 오래지 않았다. 이제부터 목격할 광경이 떠올랐다. 심장이 크게 고동했다. 난 힐끗 포로쪽을 봤다. 초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이젠 아주 체념한 모양이다. 트럭 위에서 먼 산과 바다를 휘둘러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것일까. 그 크고 깊은 눈은 조용하고 깊었다. 난 문득 가엾은 생각이 들어 눈길을 돌려버렸다. 초원지대를 벗어난 트럭은 해변가 탄탄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해군 경비 지구를 벗어나 육군 경비 지구에 들어섰다. 초원과 정글속에 보초들이 서있다. 어제 폭격을 당한 모양이다. 길 양 옆에 생생한 구동이 여러개 패이고 빗물이 흔건히 고여있었다.

-아 그럼 끌어내!

-하!

-일으켜 세워.

-일어서!

-카...! 이제부터 너를 죽인다! 우리 대 일본제국 부시토우 정신의 전통에 따라 너를 일본도로서 죽인다. 일본도는 부시토우 정신의 정.... ..스 소령. 너는 비록 포로의 몸이지만 부시토우 정신의 은총을 받는것이다. 그 전에 할말이 없는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 없는가?

-포로는 뭔가 몇 마디 중얼 거렸다.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원스라는 한마디만 분명히 들렸다. 아마 단번에 일도에 죽을것을 희망하는 모양이다.

-...! 알았다! 아 ..!

-하!

-이 놈을 저 구댕이 앞에 갖다 세워라.

-하!

-그리고 사병들은 착검시켜.

-하!

-가라!

-3부대 착검! (칭칭칭)

-부대의 이...을 위해 마주서라!

-시간이 됐다. 폭탄에 뚤린 큰 구멍에는 물이 고여있었다. 포로는 구댕이 옆에 섰다. 총에 칼을 꽂은 사병들이 구댕이 주위에 막아섰다.

-앉으라고 해!

-앉아!

-포로는 시키는 대로 앉았다. 침착하다. 쭈그리고 앉아 목을 길게 빼들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사나이다. 무섭도록 담이 큰 사나이다. 아메리카인이 이 처럼 담이 큰것을 처음 알았다. 난 포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앞으로 일분. 아니 30초나 20초면 세상을 하직한다. 문득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겪은 적의 폭격의 적개심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지만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가엾은 생각이 앞선다.

-(칭)

-코마이 소좌가 일번도를 뽑았다. 마사무네의 명검. 아까 떠나기전 부대 앞에서 구경한 그 마사무네의 명검이다. 어두움이 밀려왔다. 밀려온 어둠 속에 마사무네의 명검은 뿌옇게 빛났다. 나는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쳤다. 코마이 소좌는 칼등으로 포로의 귀덜미를 가볍게 서너번 두드렸다. 이윽고 두 다리를 버티고 두 손으로 칼을 높이 쳐 들었다. 가슴은 심한 방망이질을 했다. 순간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야!

-휙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탁탁탁)

-사병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놀라운 재주이다. 단 한 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핏방울이 주르르 흐르는 일본도를 비스듬히 비켜쥐고 서있는 코마이 소좌의 입가엔 회심의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창백한 목. 인형처럼 창백한 목이 저만치 땅바닥에 굴러있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은 단 일초. 조금 전까지는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하...감각이 정지한 듯 했다.

-대대장님 놀랍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똑똑이 봤소? 군의관?

-그럼요, 참 명검의 명수 과히 이 신의 경지라 할만 합니다. 하하하하

-하하하

-도베군 똑똑히 봤나?

-아 네...

-우리 일본 부시토우의 정수야. 이것이 부시토우의 진정한 정의야. 부시토우는 인정의 도란 말이지. 찬라의 목숨을 끊지.

-하하하하 지금쯤 벌써 극락에 가 있을 겁니다. 극락 ..가 ..을 겁니다. 대대장님.

-그래..묻어라.

-사병들이 폭탄 구멍에 밀어넣었다. 이미 날은 아주 어두웠다. 바람도 슬픈듯 정글과 초원을 스치며 뭔가 한가닥 소리하고 간다.

(입력일 : 200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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