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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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100회 - 뉴기니아 섬 분쟁
제100회
뉴기니아 섬 분쟁
1968.02.29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험준한 스탠리 산맥. 맹렬한 스콜이 내리 퍼붓고 있었다.

-어이! 각 부대 현재 위치에 정진!

-어이! 각 부대 현재 위치에 정진!

-어이! 각 부대 현재 위치에 정진.......

-스탠리 산맥을 넘은 일본군 호리이 소장은 비를 맞으며 남은 장병들에게 일장 훈실을 했다.

-아..모두 그 자리에서 들어라. 지금 우리는 적거점 포트모레스비를 내려다 보고 있다. 험준한 스탠리 산맥은 우리가 장악한 것이다. 그동안 수십개의 험준한 산령을 넘고 계곡을 건너고 무릎까지 찬 ...돌파했다. 제관들이 격은 노고를 치한다. 우리는 이제 적거점 포트모레스비에 선멸에 ...을 내리칠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길에는 많은 적이 충..하고 있다. 제관들은 아직 피로에서 회복돼지 못했다. 그러나 안전을 잊어서는 안됀다.

-포트모레스비에 대한 선멸의 철수는 끝내 내리쳐지지 않았다. 호리이 소장의 ..는 참담한 공경과 고뇌를 스스로 내 뱉는 비통한 절규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군 진지 부나를 떠나 늪 주위. 천 오백명의 장병은 이백 여명으로 줄었던 것이다. 태반이 도중에서 낙오되고 말았다. 남은 이백 여 명도 피로가 극도에 달하고 식량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식량 보급이 없는데 탄환이 있겠는가? 마침내 호리이는 굶주림과 피로에 극도로 지친 장병들을 이끌고 다시 스탠리 산맥을 넘어 되돌아 가고 말았다.

-뉴기니아 북부해안을 미국군 탐색기 한 대가 서서히 선회했다. 탐색기는 와니게라 라는 지점의 넓은 초원지대를 발견했다. 어쩌면 비행기 활주로로 쓸수 있을것 같았다. 지체없이 현지 답사가 진행되고 수송기 창륙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맥아더 장군이 공군사령관 케니장군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케니 알겠나! 뉴기니아 북부해안 와니게라. 일본군 부나 진지에서 80키로 지점. 거기 우리육군부대를 단 한명도 손상없이 수송하는 것이 자네 임무야.

-항공기로 수송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배로 갈 수 있을것 같으면은 자네를 부르겠나? 수송기 폭격기 전투기 뭐든지 다 동원하게. 단, 깜쪽같이 해치워야 한단 말이야.

-알았습니다. 사령관님.

-일본군이 모르게 가능한한 신속하게. 알겠나?

-네 곧 착수하겠습니다.

-부탁한다.

-해적이라는 별명이 붙은 케니장군. 포트몰레스비에서 와니게라 까지 미국군 일개연대 호주군 일개연대 그리고 각종 포병부대를 하룻동안에 수송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해치운 것이다.

-와니게라에 도착한 미국군은 지체없이 일본군 진지 부나를 향해 길을 닦기 시작했다. 수십대의 불도저가 한꺼번에 정글을 헤쳐가며 폭 12미터의 대로를 닦았다. 한편 미국군 2개 연대와 오스트레일리아군 제 7사단은 포트몰레스비에서 스탠리 산맥을 넘어 일로 부나로 진격해 갔다. 얼마전 일본 호리이 부대가 넘은 같은 길이지만 연합군의 진격은 훨씬 빨랐다. 지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원주민들이 다니는 길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미국군의 포격이 시작 돼었다. 와니게라에서 진격한 부대와 스탠리 산맥을 넘은 두 부대의 협공. 이른바 십자포화라는 것이다.

-삼백 일흔 둘.. 삼백 일흔 셋.. 삼백 일흔 넷.. 삼백 일흔 다섯....

-일본군 보병소위 오바타는 반공호 속에 엎드려 떨어지는 포탄의 수를 열심히 세었다. 우박처럼 퍼붓는 12센치 15센치에 거포들. 너무도 맹렬한 포격에 그만 오바타는 기가 막혔다.

-사백 하나 사백 둘...예이...아깝구나 아까워 죽겠어. 자식들... 바보같은 자식들. 오바타는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혼자 중얼거렸다. 오바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꼼짝 못하고 반공호 속에 엎드려 있다가 그만 너무도 기가 막혀 날아오는 포탄의 수를 세봤습니다. 많은 포를 한꺼번에 발사하니까 어느건지 잘 분간이 안돼었습니다만 발사음의 방향으로 대중잡아서 포..이 한시간에 오백발을 쏜다고 계산했습니다. 내가 엎드려 있는 반공호 주위에만 그렇단 말입니다. 낭비라면 그처럼 큰 낭비가 없고 문득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군을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군과 일본군의 전쟁에 대한 관념의 차이다. 무기와 인간에 대한 관념의 차이다. 미국군은 일본군 머리위에 포탄의 막을치고 폭포처럼 퍼붓는것을 승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란 그런것이고 귀중한 인명을 애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군의 포탄에 대한 관념하면 그것이 말할 수 없는 낭비이고 조소의 대상까지 돼는 것이였다. 그리고 굶주리고 병든 장병들에게 잔인하고 절망적인 최후의 돌격을 감행시키는 것이였다.

-라바울 해군기지! 라바울 해군기지! 뉴기니아 북쪽해안 미국군 비행장을 발견! 현재 80여 대 적 비행기 착륙하고 있음. 일본군 부나 기지에서 약 80키로 동쪽 지점임. 한편 비행장에서 일본군 진지를 향해 넓은 도로가 개통돼 있음. 도로 상 적..및 포병부대 이동..바람. 이상 해군 제 17호 탐색기 모리타 곤조.

-라바울. 일본 제 8군 사령부. 8군 사령관 이마무라와 뉴기니아 방면 제 2군 사령관 아다지 하다지오는 자못 심각했다.

-음 그렇다면 여태까지 그 비행장을 적이 쓰고 있었다는걸 몰랐군.

-그렇습니다. 여태까진 카다루 카나루가 그 지경이니까 뉴기니아엔 탐색기 한 대 뛰우지 못했습니다.

-80키로 거리라면 적 폭격기는 불과 몇 분 동안이면 왕복할수 있지 않겠소?

-그것도 퍽 오래전에 쓰고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 발견한것은 해군 탐색기 입니다만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적이 그 비행장을 쓴지 오래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적은 이미 아군진지를 사면에서 포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다가는 또 카다루카나루 처럼 참폐를 면치 못하겠습니다. 저를 곧 부나에 보내주십시오. 하루도 지체 할수 없습니다. 며칠 안으로 부나가 떨어질것 같습니다.

-하..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장군이 갈순 없지 않소? 좀더 시기를 기다려야지.

-이지경에 이르렀는데 더 기다려야 합니까?

-이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시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군사령관이 간다면 적어도 일개사단정도 병력은 같이 가야 할텐데 장군이 아시다시피 지금 일개사단 병력을 무슨 수로 뉴기니아 까지 수송한단 말인가! 여기 해군 얘긴 구축함 겨우 4척 밖에 낼수 없다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부나를 이대로 내버려둬야 한단 말입니까?

-부나에 지금 당장 시급한것은 좀 빋을만한 지휘관을 보내는 일입니다. 호리이 소장이 전사한다 ...공병대 요코야마 대좌가 지휘를 맡고 있는 모양인데?

-좀 믿을만한 지휘관으로 뽑힌것은 오다켄사쿠 소장이였다. 오다켄사쿠 소장은 라바울에 올때까지 일본 토요하시 예비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인물이다. 구축함 4척에 약 4개 대대병력을 싣고 라바울을 떠났다.

-미국군 케니장군의 폭격기들은 구축함에 맹폭을 가했다. 많은 피해를 입은 일본군 구축함들은 라바울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폭격을 가하고 돌아오고 폭격을 가하고 돌아오고 그렇게 하기를 네 차례. 겨우 뉴기니아 땅을 밟았을 때 4개 대대병력은 425명으로 줄었고 상륙지점도 부나에서 80키로나 먼 서쪽해안 이였다.

-미국군의 맹포격은 그칠줄 몰랐다. 일본군은 깊은 호를 타고 천정은 바람들이 야자수로 세겹 네겹 덮었다. 그리고 거목의 뿌리 밑에 교묘하게 숨어있었다. 부나는 뉴기니아에서도 아주 습지대이다. 호 속에 들어가면 무릎까지 물이 찼다. 낮 사이는 포격 때문에 종일 그 물속에 엎드려 있었다. 공팽이는 옷에만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머리에도 곰팽이가 났다. 포격이 멎은 밤엔 호 속에서 기어나와 곰팽이를 털고 몸을 말렸다. 드디어 맥아더 장군은 예하 알켈버거 장군에게 강력한 명령을 내렸다.

-부나를 점령하라! 부나를 점령하라! 결단코 부나를 점령하라! 부나를 점령하느냐 죽느냐 그 중 하나를 택하라!

-이 명령은 맥아더 장군이 어엿한 중장에게 내린 명령으로선 너무 심했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 알켈버거장군은 육군대학 때 맥아더 장군의 수제자 이며 가장 신임하는 부하였다.

-1942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말. 알켈버거장군의 총공격이 시작 돼었다. 장군은 진두에 나서 직접 지휘했다.

-1943년 1월 1일. 맥아더 장군은 그날 수기에 기록했다. 그것은 고난에 찬 일년의 종지부를 찍는데 아주 어울리는 일이었다. 또 그것은 희망에 찬 새해에 즐거운 스타트였다. 부나를 점령한 뒤 나는 전쟁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입력일 : 200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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