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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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96회 - 일본의 솔로몬 군도 (카달카나루 전투)
제96회
일본의 솔로몬 군도 (카달카나루 전투)
1968.02.24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아우스텐산 최후의 날. 정글의 절규 찢어지고 뒤집히는 정글. 곤두서는 흙과 모래. 단말마의 비밀. 하늘이 울리고 지축이 흔들린다. 최후의 공격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군도를 뽑아든 오카연대장이 일어섰다. 붉게 피맺힌 눈. 이그러진 얼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얼굴이 아니였다.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

-무슨 소린지 외친다. 호..속을 기어나온 사병들이 비틀거리며 내달린다. 모두 거꾸러 지고 만다. 비틀거리고 거꾸러지고.

-일어서 일어서!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전원집합! 전원집합! 살아있는 사병은 집합해라! 살아있는 사병은 집합해라! 살아있는 사병은 집합해라!

-으..으윽

- 집합해라! 살아있는 사병들은 집합해라!

-기적은 있다. 그 단말마의 지옥 속에서도 50 여 명이 살아남았다. 250여 명..겨우 500평방 미터 밖에 안되는 일본군진지에 미국군의 155미리 유탄포 포탄 일천칠백 발이 떨어졌던 것이다. 한평에 세발 이상의 밀도로 떨어진 것이다.

-모두 들어라! 오늘 밤을 기해 아우스텐산을 철수한다. 아우스텐산을 사수하기 3개월 많은 전우를 잃었다. 이제부터 출발! 적 진지를 돌파해서 해안까지 강행군 한다. 출발에 앞서 다시 한번 진지 속을 삳삳히 찾아 봐라.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병이 있으면 마지막 숨을 거두게 해줘라! 총을 써서는 안됀다.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총검과 죽창을 써라. 십분 뒤 다시 이 자리에 집합해서 출발한다. 곧 시작해서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병이 있으면 마지막 숨을 거두게 해줘라.

-하룻밤이 지났다. 50여명이 떠난 오카 연대는 20여 명으로 줄었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도중에서 미국군 탐색대와 몇차례 교전을 했다. 전쟁에 악귀같던 오카연대장도 마침내 전사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병력은 꼭 한 사람 오비 야스오 소위뿐. 오비는 울창한 정글 속을 홀로 걸었다. 지치면 아무데서나 자고 깨면 풀뿌리 나무 열매를 먹으며 무작정 걸었다. 며칠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 어느날 오비는 문득 인간의 소리를 들은것 같앴다. 정글 속에 엎드려 살펴 봤다. 일본군이다.

-아...아...! 으아악! 아아아! (쿨럭)

-비틀거리며 나왔다. 손을 휘젓고 소리를 질렀지만 목이 막혔다. 일본군이 달려왔다.

-아...아.....

-오비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1943년 2월 1일 밤 11시. 콰달카날 섬 에스페런스 해안에 집결해 있던 일본군 제 1진이 떠났다.구축함 8척 승선인원 5414명. 이틀 후 2월 4일 야밤. 일본군 제 2진이 콰달 카나루를 떠났다.

-다시 사흘 뒤 2월 7일 밤. 마지막 승선이 시작되었다. 야노대대. 700여 명의 보충병으로 구성된 야노대대도 겨우 100여 명이 살아 남아 승선했다. 그러나 대대장 야노중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오카연대. 꼭 한사람만 남은 오비 야스오 소위도 승선했다. 끝으로 제 17군 사령관 하쿠다케 중장이 사병들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구축함에 올라섰다.

-오이! 오이! 남아있는 사병은 없는냐! 오이! 섬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느냐 ! 있으면 소리를 질러라! 있으면 소리를 질러라! 없으면 떠난다! 없으면 떠난다!

-소리는 어두운 정글을 울리고 밤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울창한 정글 속에 버리고 온 중환자들과 부상병들의 신음소리가 이 해안까지 들릴 리는 없었던 것이다. 17군 사령관 하쿠다케 중장이 비틀거리면서 구축함 사령실에 다가왔다.

-이리 주게. 내 한마디 하겠네.이리 주게.

-네

-아..(쿨럭쿨럭) 콰달카나루에 남아있는 장병들. 너희들의..너희들의...명복을 빈다! 너희들의 명복을 빈다!

-콰달카나루의 전투는 끝났다. 장장 6개월에 걸친 참극의 콰달카날 결전이 끝난것이다. 이때 미국군 패치장군의 주력부대는 콰달카날 해안을 떠나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한편 보병 161연대는 서쪽해안에서 동쪽으로 진격했다. 이틀 후 2월 9일 양군은 에스페란스 해안에서 마주쳤다. 해안선 일대에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빈깡통, 냄비, 종이 부스러기, 총검, 철모. 미국군들은 그만 소리도 지를수 없이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패치 장군은 지체없이 리미스 제독에게 일본군 퇴각을 보고했다. 그 끝 귀절은...

-아무튼 이제 일본군 도쿄 급행은 그 종창역을 잃었음. 콰달카날이라는 종창역을 앞으로 영구히 잃었음. 이상.

-미국의 저명한 전사평론가 모리슨 박사의 증언.

-세계해전 사상 일찍이 이처럼 감쪽같이 감행된 철수 작전은 없었다.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리미스 제독의 증언.

-일본군 철수 작전. 그 재빠른 솜씨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본군. 특히 일본 해군의 세력은 미드웨이 해전 이전까지는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카달카나루를 침공할때에 피하세력은 각종병력과 무기를 종합해서 거의 비슷했다. 한편 카달 카날의 지리적 위치는 쌍방 기지에서 거의 같은 지리에 있었다. 일본군은 라바울에서 560마일. 아메리카군은 에스피산대에서 560마일. 그러나 보급에 있어 아메리카 군은 일본군을 압도했다. 카달카날 3만 6천명 일본군 중 2만 3천명이 전사하고 천명이 포로가 됐고 겨우 만 삼천명이 살아 돌아갔다. 그러나 아메리카군의 승리는 이런 숫자에 있는것이 아니다. 카달카날을 기점으로 아메리카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이 공세를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이 끝날때 까지 꺾지 못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카달카날 전투로 말미암아 우리는 일본군이 체제, 통세의 본질을 삳삳히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은 반드시 아메리카가 승리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대본영 해군부 발표! 솔로몬 군도 카다루카나루 방면 전황! 과거 6개월 동안에 걸친 카다루카나루 공방전은 끝났음. 아! 육,해 ,공군은 ..의 목적을 달성하고 2월 상순 당당하게 카다루 카나루 섬을 철수 했음.

-전과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이 발표. 일본인들도 속지는 않았다. 일본의 군사평론가 이토 마쓰도리옹의 증언.

-카달카날의 전략적 퇴각은 2월 상순에 끝났다. 육 해군은 6개월 동안의 악전고투에서 해방 되었다. 그러나 해방도 하룻밤일 뿐. 그 다음 부터 미국군의 공세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그칠 줄 몰랐다. 6개월 동안의 일본군 항공기 손실은 팔백 아흔 세대. 비행사 손실은 이천 삼백 예순 두명에 이르렀다.

-콰달카날 찾는 이 없는 열대고도. 콰달카날. 어두운 정글과 습기 찬 초원. 지금도 누워있다. 이만 여의 백골, 녹슨 철모, 녹슨 총검. 어두운 초원을 스치고 정글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스란 바람소리 빗소리. 이만 여 원혼들의 호국소린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울부짓는가.

(입력일 : 20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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