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달 카날 제 17군 사령부. 대본영에서 현지 전황 시찰을 온 작전 과장 핫토리 대자를 중심으로 연일 작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하쿠다케 사령관을 비롯해서 쓰지 참모, 곤도 참모, 모노마 17군 작전주임 참모 그리고 미야자키 참모장. 미야자키 참모장은 이 17군 사령부가 라바울을 떠날때 소장 참모들의 농간으로 라바울에 홀로 남아 있었지만 카달카나루의 패진의 소식을 듣고 간신 카달 카나루에 왔던 것이다. 핫토리가 며칠동안 몸소 시..하고 들은 카달카나루의 전황은 비관적인 것이였다. 핫토리는 전황을 파악하자 단호히 카달카나루를 포기하고 후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천재도 그것을 대본영에 솔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일본 육군의 기질이라고 할까. 일본육군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속속들이 배여있는 부조리. 오만, 불손, 유아독존, 부시토.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무인의 도라는 이른바 부시토까지 혼합된 일본육군의 기질 때문이였다. 수렁이라던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심연.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이 모르는 검은 심연. 이것은 거세게 휘몰아 치는 미친 바람같이 일본육군 안에 깊숙히 부식 돼 있었다. 그것을 한 두 사람의 예지와 힘으로 일조일석에 고칠 수 있겠는가. 핫토리가 카달 카나루에서 철퇴하라고 주장했다간 당장에 비겁한 놈. 겁쟁이라는 낙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공격정면을 변경하겠다고 말한 가와구치 소장의 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공격 시간 30분전에 파면 된 사실. 또 달관의 청년 참모 구몬 중자가 대본영에서 쫒겨나 북녘 아루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사실. 이것이 곧 당시 일본 육군의 부조리를 나타낸 것이였다. 핫토리는 천재이다. 그렇지만 대본영 작전 과장이라는 지휘를 걸고 비겁한 자라라는 낙인을 찍히면서까지 카달카나루의 포기를 주장 할 만한 용기 있는 자는 아니였다. 마침내 새 작전의 윤곽이 들어났다.
-병력 또 투입.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말이야.
-다시 투입할 병력이 있겠습니까? 과장님.
-좀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야지. 마침 지금 남부지나 방면 전세가 서강 상태에 들어가 있으니까 거기서 일개 사단을 돌리고
-당장 위급한데 언제 남부지나에서 여기까지 돌입합니까? 그 보다도 38사단 주력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번 38사단에서는 일개연대 쇼지 연대밖에는 상륙 안했는데요.
-그것도 생각하고 있어. 38사단 주력은 지금 자바에 남아있는데 기왕 여기 돌리기로 했던거니까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그 쇼지연대는 어떻게 됐다고 했지? 쓰지 군?
-쇼지연대는 여기 상륙하는 길로 38사단을 떠나 2사단 예하가 됐습니다. 2사단 예하 가와구치여단과 합치기로 돼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가와구치 소장이 해임되지 않았습니까?
-음?
-그래서 쇼지 대자가 그 후임으로 여단을 맡고 있습니다. 병력은 먼저 있던 가와구치 여단병력과 쇼지연대 병력을 합쳐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쇼우지 여단인 셈이죠.
-음. 알겠어. 아무튼 자바에 있는 38사단 주력을 빨리 돌리고 한편 아주 정예부대를 추려서 룽가비행장 앞바다에 적전 상륙을 감행시키자.
-그건 어느부대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쿠마모토 6사단.
-오! 6사단.
-6사단 쿠마모토 규슈 건아들이 올라온다면 룽가 비행장을 일격에 선멸해 버릴거야. 하하하하
-하하하하
-대본영 쓰기야마 참모 총장 각하. 카다루카나루의 제반전황을 종합하건데 아직도 승산은 충분히 있는것으로 사려함. 다음 병력을 지급 지원해 줄것을 바람. 일. 지금 자바에 남아있는 제 38사단 주력을 지급 카다루 카나루에 진격 시킬것. 아울러 남부지나 나카노 중장 제 52사단을 카다루 카나루에 진출 시킬것. 이 쿠마모토 제 6사단 중 정예 일개 연대를 지급 피견할것. 룽가만 적 비행장 정면에 강행 상륙시킬 계획임. 삼. 육군 제 12비행단을 파견할것. 사. 정예 중포부대를 파견할 것이며 200문이상 중포와 충분한 탄약을 공급할것. 이상 병력으로 비올빈 바타난 반도나 코에트홀 요새 공략과 같이 기필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것을 확신함. 이상 카다루 카나루에서 작전과장 핫토리 다쿠시로.
-핫토리의 새 작전을 참모 총장 쓰기 야마가 허가 하리라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었다. 쓰지 참모와 스기다 참모가 아주 비관적인 보고를 했을 때이다.
-제반 정보를 종합하건데 ..카다루카나루의 적은 고립무언, 완전 포위 되있으며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빠져 침묵한 것으로 사려함. 따라서 지금이 일거 격멸에 좋은 기회일 것임.
-이런 쓰기 야마가 핫토리의 작전을 허가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쓰기 야마의 명령으로 지체 없이 핫토리가 요청한 부대에 진격 명령이 내렸다.
-한편 이 무렵 해전은 어떠한가.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이 솔로몬 군도 남태평양 일대는 니미스제독의 작전 구역이다. 맥아더 장군은 서남태평양 육군 사령관으로 뉴기니아 부터 서쪽을 맡고 있었다. 니미스 제독 휘하 남태평양 지휘관은 콤리제독. 그리고 카달 카나루 미국 해병 사단장은 벤더 크립프트 장군.그런데 이 무렵 콤리 제독과 벤더 크리프트 장군 사이에는 작전 면에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콤리 제독은 벤더 크리프트 장군의 카달카나루 작전에 다분히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니미스 제독은 콤리 제독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윌리엄 하루제 제독을 명했던 것이다. 하루제 제독은 자신 만만하고 적극적인 제독이었다. 10월 26일. 일본군의 총공격이 완전 실패했을 때이다. 연합함대장관 야마모토 이소록 군은 남방 방면 제 17군 사령관 하쿠다케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귀 육군의 요청으로 솔로몬 군도에 출격중인 아 해군 함공모함 및 기타 함대는 이미 그 연료가 소량 밖에 남지않았음. 따라서 귀 육군의 룽가 비행장 점령이 더욱 지연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지금 아 해군부대는 불가피 철수 하지 않을 수 없음. 양찰하기 바람.
-야마모토 이소록 군은 지체없이 일본 함공부대 사령관 곤도 중장에게 솔로몬 해역을 떠나 트록 섬으로 철수할 것을 명했다.
-남태평양 부대 사령부. 남태평양 부대 사령부 카달 카날 섬 동북방. 일본군 우세한 함공모함 및 전함대 발견. 함대는 북상 중. 속력 25루트. 이상. 제 3호 탐색기.
-하루제 제독은 지체없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엔더프라이즈. 엔더프라이즈 킹 케일 제독. 카달 카나루 동북방 북상 중인 일본군 함공모함군 공격 하라. 반복. 공격하라. 이상. 남태평양 부대 사령관 하루제.
-이때 카달 카날 동남방 산타쿠르스 제독 ..에 있던 엔더프라이즈와 호네트는 바싹 긴장했다. 엔더프라이즈에서 다시 탐색기가 이암하고 잠시 후 일본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왔다.
-이윽고 엔더프라이즈호와 호네트를 떠난 급 ..폭격기 클라망과 전투기 편대가 일본 함공모함의 무리를 향해 쇄도해 갔다. 일본 함공모함은 쇼.......쓰이 호 세척의 전함 한 척. 기타 순향함 구축함.
-삽시간에 함공모함 쓰이 호가 검은 연기를 뿜었다. 치솟아 오르는 불길. 온통 불길에 쌓인 쓰이 호는 미친듯 퇴진을 하며 해상을 돌아다녔다. 거의 같은 시각 미국군 함공모함 호네트도 일본군 폭격기의 맹렬한 포격을 받고 있었다. 호네트를 엄호할 전투기들은 훨씬 북방에 출격해 있었고 또 호네트와 엔더프라이즈는 거의 1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마침내 다섯개의 폭탄이 호네트의 비행갑판에 떨어졌다. 그 중 두개는 비행 갑판을 뚫고 경납고에서 폭발했다. 두개의 어뢰는 기계실에서 폭발해 전선과 소방펌프를 부쉬고 말았다. 기관실이 침수되고 함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불길에 휩싸이고 전신연락도 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호네트는 모든 기능을 잃고 말았다. 이번엔 미국군 함대기들의 공격이다. 북쪽에 출격했던 호네트의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일본군 함공모함 쇼가쿠와 순향함 치쿠마를 공격했다. 비행갑판에 여러개의 명중탄을 퍼부었지만 쇼가쿠를 침몰 시키지는 못했다. 약 한시간 뒤 일본군 폭격기 편대가 이번엔 함공모함 엔더프라이즈에 육박해 왔다. 마침내 엔더프라이즈도 비행갑판에 직격탄을 세개나 맞았다. 그러나 다행이도 갑판이나 견압고에 폭탄이 없었기 때문에 자폭은 면했으나 피해는 아주 큰 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북남방 산타쿠로스 해역으로 대피하라. 엔터프라이즈는 북남방 산타쿠로스 해역으로 대피하라. 순향함 포트. 순향함 포트. 순향함 포트는 호네트를 침몰시키라 호네트를 침몰시키라.
-이 해전을 미국군은 산타쿠르스 해전이라 불렀다. 일본군은 남태평양 해전이라 불렀다. 미드웨이 이후 가장 큰 해전이었다. 이 해전에 대한 니미츠 제독의 기록.
-전술적으로 볼때 산타쿠르즈 해전에서 우리 아메리카군은 패배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때는 아메리카군의 전략적인 승리였다. 곤도 중장은 항공기 100 대를 상실하고 킹 케이트 제독은 74 대를 잃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입은 피해는 숫자가 표시 하는 그 이상으로 일본군의 전황에 불리했다. 그것은 아메리카 측의 파일럿 훈련과 비행기 생산이 급속으로 증대했고 일본군을 훨씬 능가했기 때문이다.
(입력일 : 2008.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