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쓰지 참모입니다.
-어, 쓰지 참모. 수고했소. 수고했어. 나 고노마 참모요.
-아 고노마 참모님. 전 먼저 거기 사령부 까지 돌아가겠습니다.
-아, 그래요?
-이제 전선부대는 모두 공격을 계속할 힘이 없습니다. 분하고 원통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만은 일단은 후방에 집결했다가 다시 재기 하는 도리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17군에서 가지고 있는 예비식량을 지급.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전선에 보내주십시오. 지금은 쌀이 탄환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알았소. 그렇지만 예비삭량이라고 어디 얼마 돼야지...아무튼 있는데로 긁어모아 보내겠소.
-고맙습니다. 저도 돌아가서 식량수송 일을 거들 생각입니다. 참모장님 께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알았소. 그럼 빨리 돌아오시오.
-네
-(툭)
-쓰지 참모는 전령점 당본경 아카이시 상등병을 데리고 17군 사령부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허리에 찬 반합에는 그래도 밥이 들어있었다. 아카이시 상등병이 쓰지 참모를 생각해 마지막 예비로써 간수해 두었던 두 홉의 쌀이다.
-하..하...
-정글 속에는 수많은 부상병들이 신음하며 엎드려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부상병들. 드러누운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그렇게 흔한 야자수도 해안선 일대에나 있었지, 깊은 정글 속에는 없었다.
-아...으아.....
-누구냐?
-대대장이다. 사단...사단 대대장이다.
-오..바지에 피가 많이 벴는데...지혈은 했소?
-했소. 했는데 소용 없을거요. 으..윽
-상처는 어디요?
-광통상...대퇴부구...광통상...
-기운을 내시오, 대대장. 이제 곧 후송 될거요.
-후송이요? 모르겠소. 상처는 어쩔 도리 없지만 사실은 그저께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소.
-아...아카이시! 반합 열어봐.
-네
-자, 대대장 입 벌리시오. 밥이오!
-아...헙..읍...아...
-나도 좀 줘...나도...
-흡...아 고맙소. 이제 그만 하시오. 미안하지만 저기 사병들한테도 한입 씩 만이라도 맥여주시오. 부탁입니다.
-아카이시 모두 골고루 떠먹여줘라.
-예
-모두 기운을 내라! 곧 후송 될거다!
-참모님 다 없어졌습니다.
-좋다. 보자.
-날이 저물고 정글에 비가 내렸다. 풀 잎파리로 이음을 한 막사 하나가 보였다.
-참모님 어떡하겠습니까? 말라리아 환자가 여럿이 모여 있는데 시체도 있구요.
-우리가 돌아갈 자리는 있나?
-간신히 들어앉긴 하겠습니다.
-음..할 수 없지. 이 비를 맞으며 또 갈 수는 없잖아 그러고
-들어가시죠.
-음.
-아이구.....
-아 너희들한텐 미안하다. 우리도 좀 같이 쉬게 해다오.
-환자들은 대답도 없이 누운채로 몸을 비비적 거려 자리를 비워줬다. 그 옆에 시체. 시체 머리 맡에는 재물인가, 도토리 만한 건빵 한 알이 돌맹이 위에 놓여 있었다.
-음...하 이 사람 언제 숨을 거뒀느냐?
-낮에요.
-머리맡에 건빵 한 개는? 너희들이 놓아줬나?
-모르겠습니다.
-아카이시 물통 이리 줘.
-예
-쓰지는 시체의 입술을 벌리고 물을 두 어 모금 흘려 넣었다. 그리고 합장을 했다.
-자, 우리도 이제 자지. 내 이 옆에 누울께 아카이시는 저쪽에 가 자라.
-저도 뭐 괜찮습니다. 여기 눕겠습니다.
-그래. 그럼 누워라.
-17군 사령부에 돌아온 쓰지는 곧 전문을 쳤다.
-대본영 쓰기야마 참모총장 각하. 필승의 신념으로 모든 작전 계획을 은밀히 하고 적의 배후에 돌아가서 전 병력을 일점에 집중했지만 좋아지지 못했음. 병력의 태반을 상실한 지금 회환과 통분을 금치 못함. 이는 오로지 아직도 야전 진지 공략에 대한 환념을 벗어나지 못한 소관의 과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소관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함. 실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카다루 카나루 섬 적 진지는 전면 요새화 돼있음. 이에 공략은 풍족한 탄약으로써 전공법에 의한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을것으로 판단함. 추신 지금 제 17군 참모들은 그 태반이 말라리아 환자로 활동이 불가능함. 바라건데 소관을 참모 본부측에서 면하고 즉시 제 17군에 전선 발령해 주기 바람. 이상 쓰지 참모.
-회환과 통금을 금치 못하여 마침내 쓰지 참모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적 선멸에 즈음에 감개무량 해야하던 쓰지가 마침내 두 손을 든것이다. 쓰지는 이 전보를 하쿠다케 사령관도 모르게 발신했다. 쓰지 자신 주제 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개 참모로써 패진에 전 책임을 진다는 말, 또 자신의 인사 문제까지 청원한다는 것은 일본 군인으로써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쓰지 참모와 같은 대본영 파견 참모 쓰기다 중자도 대본영에 사과전보를 쳤다. 이틀 동안에 걸친 공격도 마침내 실패 하고 말았음. 이는 적 진지의 실정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소관의 죄로써 후회 막심함. 이상,
-대본영 파견 수재 참모 두 사람이 한결같이 두 손을 들고 만 소립니다. 쓰지의 작전 계획을 완전히 은밀히 했다는 보고는 거짓말이다. 일본군이 공격해 오는 전면 정글 속 일대에 미국군은 몰래 마이크로 폰 장치를 해놓고 바스락 소리만 나도 정확하고 맹렬한 포격을 가해왔는데 일본군이 작전 시도를 은밀히 했겠는가. 또 쓰기다 참모의 적 진지의 실정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는 고백도 우스운 얘기다. 적 진지를 잘 파악하고 있던 가와구치 소장의 말은 일거의 가치도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마침내 매정하게 일본 육군사상 일찌기 유례없이 파면 시킨것은 또 누구였던가. 만세 오번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그렇다. 가와구치 소장은 이미 먼저 번 공격때 그 초원지대까지 진출 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와구치 소장의 유임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 초원지대를 비행기장으로 오인하는 착오는 없었을 것이고 천황 히로히토에게 까지 보고하려는 추태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쓰지와 쓰기다의 전보를 받은 중앙 대본영의 태도는 또 어떤가. 참모 총장 쓰기야마는 17군 사령관 하쿠다케에게 격려 겸 위로 전문을 띄었다.
-남방 파견 제 17군 하쿠다케 사령관께. 모든 정보를 종합하건데 카다루 카나루의 적은 지금 고립무언. 포위 당할지 지극히 궁지에 몰려 침묵하는 것으로 판단함. 지금 이 시기야 말로 힘을 합해 일거에 적을 격멸할 좋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욱 ..병력을 지급 투입해 전력을 발휘해서 가능한 한 목적관찰에 매진 할 것임. 진심으로 사령관 이하 전 장병들의 건투를 기원함. 이상 육군 참모 총장 쓰기야마.
-며칠 뒤 도쿄에서 핫토리 다쿠시로 대자와 곤도 덴마치 중자가 격전지 카달 카나루에 날아왔다. 핫토리 대자는 대본영 작전 과장. 쓰지 중자와는 10여년 동안 참모본부에 같이 근무한 선배이다.
-쓰지, 자네 17군 전속은 틀렸네. 총장이 허가를 안해.
-그럴줄 알았습니다.
-총장이 자네를 돌아오라네. 돌아와서 전황 보고를 하라는거야.
-전황 보고라면은 이제 과장이 ..가서 하면 될거 아닙니까.
-내가 하는거 하고 자네가 하는게 다르지. 하하하 총장 뜻을 알겠나? 총장이 자네를 카달 카나루에서 죽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송구스럽습니다. 실패만 거듭한 저를 그처럼 생각해 주시니..
-그리고 자네한테 한가지 슬픈 소식이 있네. 구몬이 죽었네.
-네?
-구몬이 죽었단 말이야. 구몬 중자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구몬이 어디서 죽었습니까?
-아류산에서. 아류산에 전투기를 몰고 간 다음 소식이 끊어졌네.
-아니, 구몬을 왜 죽였습니까 과장님. 여기 카달 카나루에 와 보고야 비로소 구몬의 뜻을 알았습니다. 구몬같은 인재를 왜 죽였습니까?
-구몬 아리부미 중자. 대본영 항공 작전 참모이다. 참모본부 참모들은 대부분이 육군..학교, 육군 사관학교 육군 대학 이런 정식 코스를 밟은 수재들이었다. 그런데 구몬은 사범학교에서 육군 사관학교 그리고 육군 대학을 나왔다. 이런 경력때문에 구몬은 참모본부의 중대회의에서는 늘 제외됐다. 한편 구몬은 카달카날 전투를 처음부터 반대했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구몬은 자기 권한 안에 있는 육군항공 병력을 카달 카나루에 보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간접적인 의사 표시를 했었다. 그때문에 쓰지 참모와 싸우기까지 했다. 쓰지가 솔로몬 군도에 떠나기 전 일이다. 그것이 쓰지하고는 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대본영에서 콰달 카나루 전투를 반대한 오직 한 사람의 청년 장교. 그런 구몬이 그 자리에 오래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구몬은 일선 항공 전투부대에 쫒겨나고 말았다. 울분과 비애. 참을 수 없는 구몬은 단독으로 전투기를 몰아 아루샨으로 떠났다. 북녘 아루샨에 그 황량한 바다. 구몬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입력일 :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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