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어이구... -허...내 쌀이...건빵도 없다...어...내 쌀이 어디갔어...내 쌀 내 쌀! 내 쌀...내 쌀 -어이 이거봐! -내 쌀 어디갔어...내 쌀 -이거봐! -누가 내 쌀하고 건빵 훔쳐갔어... -내 쌀...내 쌀 누가 훔쳐갔어... -시오자와! 시오자와! -누구야... -정신 차렸어? 이제 정신이 들어? -으...누구야...누구야 너! -가토다 가토 -누구라고? -어.... -에이 자식...시오자와, 나요 너 이제 정 신 차렸구나...응? -가토...가토로구나 내 쌀...내 쌀...내 쌀 네가 훔쳤지? 네가...응? -뭐라고? -내 쌀...내 쌀...건빵하고 내 쌀. 내 쌀 니가 훔쳤지? 내 쌀 내놔 빨리 내놔 자식아! 자식아! 가토 자식아! 내가 정신없는 동안에 니가 내 쌀 훔쳤지! 도둑놈! 넌 도둑놈이야! -뭣이! 이 자식! (탁) -아잇! 자식이 때렸어...때렸어...움,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를 때렸어! 가토 자식이..! -어...미안하다. 미안하다 시오자와. -흑 -내 말 들어 아무도 훔친게 아니야. 내 말 들어봐. 니가 정신 잃고 있는동안에 뺏겼어! 니 지금 목숨이 붙어있는것만도 다행으로 알아라. -누가 뺏아갔단 말이야? -패잔들이야...패잔병. -패잔병? 어디 패잔병이 있단 말이야? -내 말 들어 이 자식아. 너 부대가 우리만 남겨두고 전진한거 아니? -뭐? 부대가 전진했어? -그래. -우리만 남겨두고 전진했단 말이야. -아니, 그럼 우리 부상자들만 지금 여기 남아있어? -그게 아직 걷지도 못하는 중상자들만 남아있단 말이야. -넌 그때 벌써 정신이 없었구나. 의식을 잃고 있었구나. -모르겠어.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내 말 들어봐. 부대가 떠나버리고 한참 있다가 말이야 저 정글속에서 이상한 놈들이 뛰어나왔어. -토인이야? -아니야. 토인은 아니야. 꼭 산적 같았어. 헝클어진 머리하고 수염이 이 어깨까지 와 닿고 아랫도리만 가리고 있단 말이야. 맨발벗고 얼굴도 몸둥이리도 시커멓고 그런 놈들이 저 정글속에서 껑충껑충 뛰어 나왔어. -우, 우리한테? -그래. -뛸때 길다란 머리가 갈귀처럼 펄럭이고 꼭 말이 달리는것 같았어. -오 그래... -그놈들이 여기 우리한테 덤벼들어서 배낭, 참낭, 밥통까지 모두 닥치는대로 뒤지고 쌀하고 건빵 먹을걸 모조리 뺏어갔어. -아니, 그게 어떤놈들이야? -패잔병이야. 우리 일본군 패잔병이야. 일본말을 했거든. -일본말을 해? -어 -패잔병이 정글속에 숨어 있다가 부대가 상륙하면 먹을걸 훔치고 또 우리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만 있으면 습격해왔어. 먹을걸 뺏어가고 그런 모양이야. -아니 왜 우리 일본부대가 상륙했는데 그 패잔병들도 아무 부대나 편입하면 되잖아. -이 바보 자식아. 부대에 편입하면 또 전투를 해야하잖아. 넌 지금 목숨이 붙어있는것만도 다행이야. 저쪽 정글속에서 다른 대대와 환자들은 둘이나 죽었어. -왜, 왜 죽었어? -쌀을 뺏기지 않으려고 싸우다가 맞아 죽었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가 그 놈들한테 견딜수 있느냔 말이야. -어떻게 맞아 죽었단 말이야? -돌로 쳐서 죽였더라. 난 잘 모르겠어. -일본 패잔병도 적이나 마찬가지군. -시오자와 너 부상한데 어디지? -배야...배 배에 파편이 박혔어. -아직도 아프냐? -아니 -아픈지 어떤지 모르겠어. 그런데 자꾸 정신이 아찔아찔하다. 땅속에 세들어가는거 같애. -출혈이 많아 그럴거다. -흑 가토... -왜? -날 용서해다오. 너보고 쌀 훔쳤다고?..패잔병들이 쌀 훔쳐간지 모르고 말이야. 흑 널 의심해서 미안하다. 날 용서해 주겠어? -자식...별 소릴 다하는구나. -어...용서하지? -용서고 뭐고 어딨어 임마. -걱정말고 빨리 나을 생각이나 해. -가토... 넌 좀 움직일 수는 있지? -움직일 수는있어. 허벅다리 권통상이니까 걸을순 없지만은 조금씩 기어다닐 수는 있단 말이야. -날 좀 살려줘. 날 버리지 말고 말이야. -뭘 어떻게 살려달라는 거야? -이젠 쌀도 건빵도 없잖아. 먹을거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넌 기어다닐수 있으니까 먹을것도 구할 수 있잖아. 니가 먹을거 구하면 나도 좀 줘. 응? 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단 말이야. 응? 날 좀 살려줘. -자식아 치사스러운 소리 하지마라. 혼자 먹을까봐 걱정이야? 그리고 조금 기다리면 병원선이 올거야. -병원선이 올까? -그럼 오고 말고. -정말 병원선이 올까? -온다니까 자식아. -하...병원선이 오면 우리도 실어다 주겠지? -그럼. 실어다 주고 말고. -병원선 타면 어느 병원에 갈까? 라바울에 있는 야전병원에 갈까? -글쎄. -아니야. 라바울엔 안보낼거야. 우리모두 중상이니까 일본에 직접 보낼거야. -어... -일본히로시마나..에 어느 큰 육군병원에 보내줄거야. -글쎄 -그럼 말이야 빨리 나을거야. 응? 우리집에서 편지도 오고 이따금 면회도 오고 말이야. 육군 병원에는 먹을것도 많고 간호부들도 있겠지. 응? -흐흐흐 그럼 있고 말고. -나으면 곧 제대시켜주겠지? 제대하면 난 그 전 공장에 가서 이번엔 2급 딸수있어. 2급. 하...그까짓거 열심히 하지. -넌 뭐 선반공이라고 했던가? -그래, 선반공. 입대하기 전에 난 3급이야. 몇 달만 더 있으면 2급 딸수 있었는데 그만 역장이 나오고 말았어. 이번엔 2급 틀림없을거야. 이번엔 게으름 피지말고 열심히 해야지. 응...그렇지만 병원선이 정말 올까? -그럼 오고 말고. 우리모두 중상자들인데 안와? 커다란 새하얀 병원선 말이야 앞에는 붉은 십자가 보이고...아참 우리 도하쿠도에서 병원선 봤지? -어...봤어! 봤어! 붉은 네온이 번쩍번쩍하는 병원선 마크가 밤에도 크게 보였어. -그래. -헤..헤 지, 집에 가면 이번엔 성게 실컷 먹어야지. 너 성게가 뭔지 아니? -그럼 알고 말고. 그 젓 담그는거 아냐? 된장같은거 말이야. -그래 맞았어. 그 성게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우리집은 사도인데 말이야 그 사도..사부시 사도야. 거기서 성게가 참 많이 나지. 에...그 성게 실컷 먹어야지. 그, 그렇지만 정말 병원선이 올까? -온다니까 자식아. 걱정마라. 틀림없이 온다. -어. 그럼 말이야 너희집에...제대하구서 말이야. 내 성게좀 너희 집에 보내주지. 응? 너희집에 우편으로 부치면 잘 들어가겠지? -그럼. 오고말고. 인제 그만해. 한 잠 자라. 너무 오래 얘기하면 기운이 빠진단 말이야. 배도 더 고파지고. -어 그래...정말 병원선이 올까? -아 온다니까 자식아. 걱정말고 빨리 자. 응? -어...
-어느덧 밤이 깊어간다. 정글속에 밤이슬이 내렸다. 30여명의 부상병들은 정글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잠을 잤다.
-야! 제 누구야!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놈이 -흑...네. 죽었습니다. -뭣이? 죽었어? -네 -아니 자는게 아니고 죽었단 말이야? -네 -언제 죽었단 말이야? -흑...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밤에 죽었을 겁니다. -무슨소리야? 그럼 죽은걸 언제 알았어?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모두 잠이 깼는데 이 시오자와만은 담요를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깨지 않았습니다. 깨워도 대답을 않하고...그래 담요를 제껴봤더니 죽어있었습니다. -음... -이름이 뭔가? -시오자와 일등병입니다. -초년병인가? -네 -너도 초년병인가? -네 -어느중대? -상대대 아마노 중대입니다.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는 너희 둘 밖에 없나? -모르겠습니다. 더 있는지 -그거 빨리 치워버려! 음. 넌 부상이 어딘가? -허벅다리 입니다. -걸을 수 있지? -모, 못걷습니다. -그래? 어이! 거기 아마노 중대 부상병 없나?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 아무도 없나! 짜식들 있어가지고도 대답하지 않는거 아니야! -어이! 삼등병! -네 -넌 부상이 어딘가! -다리입니다. -모두 다리구나 자식들! 길수는 있지! 포복할 수 있느냔 말이다! -예 -어물어물 하지 말아! 그리고 그 옆에 일등병! -네 -너도 포복할 수는 있는거지? -네... -그럼 너! 너! 너! 셋이서 저거 빨리 치워! 저거 시체 말이야. 어디 정글속에 버려. 셋이 기면서 굴릴수 있잖아. 굴려가지고 가 버리란 말이야. 멀리 버려야 한다. -예... -자 빨리 밀어... -어... -네...
(입력일 :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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