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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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74회 - 일본의 솔로몬 군도 (카달카나루 전투)
제74회
일본의 솔로몬 군도 (카달카나루 전투)
1968.01.29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어이구...어이구...
-허...내 쌀이...건빵도 없다...어...내 쌀이 어디갔어...내 쌀 내 쌀! 내 쌀...내 쌀
-어이 이거봐!
-내 쌀 어디갔어...내 쌀
-이거봐!
-누가 내 쌀하고 건빵 훔쳐갔어...
-내 쌀...내 쌀 누가 훔쳐갔어...
-시오자와! 시오자와!
-누구야...
-정신 차렸어? 이제 정신이 들어?
-으...누구야...누구야 너!
-가토다 가토
-누구라고?
-어....
-에이 자식...시오자와, 나요 너 이제 정 신 차렸구나...응?
-가토...가토로구나 내 쌀...내 쌀...내 쌀 네가 훔쳤지? 네가...응?
-뭐라고?
-내 쌀...내 쌀...건빵하고 내 쌀. 내 쌀 니가 훔쳤지? 내 쌀 내놔 빨리 내놔 자식아! 자식아! 가토 자식아! 내가 정신없는 동안에 니가 내 쌀 훔쳤지! 도둑놈! 넌 도둑놈이야!
-뭣이! 이 자식! (탁)
-아잇! 자식이 때렸어...때렸어...움,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를 때렸어! 가토 자식이..!
-어...미안하다. 미안하다 시오자와.
-흑
-내 말 들어 아무도 훔친게 아니야. 내 말 들어봐. 니가 정신 잃고 있는동안에 뺏겼어! 니 지금 목숨이 붙어있는것만도 다행으로 알아라.
-누가 뺏아갔단 말이야?
-패잔들이야...패잔병.
-패잔병? 어디 패잔병이 있단 말이야?
-내 말 들어 이 자식아. 너 부대가 우리만 남겨두고 전진한거 아니?
-뭐? 부대가 전진했어?
-그래.
-우리만 남겨두고 전진했단 말이야.
-아니, 그럼 우리 부상자들만 지금 여기 남아있어?
-그게 아직 걷지도 못하는 중상자들만 남아있단 말이야.
-넌 그때 벌써 정신이 없었구나. 의식을 잃고 있었구나.
-모르겠어.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내 말 들어봐. 부대가 떠나버리고 한참 있다가 말이야 저 정글속에서 이상한 놈들이 뛰어나왔어.
-토인이야?
-아니야. 토인은 아니야. 꼭 산적 같았어. 헝클어진 머리하고 수염이 이 어깨까지 와 닿고 아랫도리만 가리고 있단 말이야. 맨발벗고 얼굴도 몸둥이리도 시커멓고 그런 놈들이 저 정글속에서 껑충껑충 뛰어 나왔어.
-우, 우리한테?
-그래.
-뛸때 길다란 머리가 갈귀처럼 펄럭이고 꼭 말이 달리는것 같았어.
-오 그래...
-그놈들이 여기 우리한테 덤벼들어서 배낭, 참낭, 밥통까지 모두 닥치는대로 뒤지고 쌀하고 건빵 먹을걸 모조리 뺏어갔어.
-아니, 그게 어떤놈들이야?
-패잔병이야. 우리 일본군 패잔병이야. 일본말을 했거든.
-일본말을 해?
-어
-패잔병이 정글속에 숨어 있다가 부대가 상륙하면 먹을걸 훔치고 또 우리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만 있으면 습격해왔어. 먹을걸 뺏어가고 그런 모양이야.
-아니 왜 우리 일본부대가 상륙했는데 그 패잔병들도 아무 부대나 편입하면 되잖아.
-이 바보 자식아. 부대에 편입하면 또 전투를 해야하잖아. 넌 지금 목숨이 붙어있는것만도 다행이야. 저쪽 정글속에서 다른 대대와 환자들은 둘이나 죽었어.
-왜, 왜 죽었어?
-쌀을 뺏기지 않으려고 싸우다가 맞아 죽었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가 그 놈들한테 견딜수 있느냔 말이야.
-어떻게 맞아 죽었단 말이야?
-돌로 쳐서 죽였더라. 난 잘 모르겠어.
-일본 패잔병도 적이나 마찬가지군.
-시오자와 너 부상한데 어디지?
-배야...배 배에 파편이 박혔어.
-아직도 아프냐?
-아니
-아픈지 어떤지 모르겠어. 그런데 자꾸 정신이 아찔아찔하다. 땅속에 세들어가는거 같애.
-출혈이 많아 그럴거다.
-흑 가토...
-왜?
-날 용서해다오. 너보고 쌀 훔쳤다고?..패잔병들이 쌀 훔쳐간지 모르고 말이야. 흑 널 의심해서 미안하다. 날 용서해 주겠어?
-자식...별 소릴 다하는구나.
-어...용서하지?
-용서고 뭐고 어딨어 임마.
-걱정말고 빨리 나을 생각이나 해.
-가토... 넌 좀 움직일 수는 있지?
-움직일 수는있어. 허벅다리 권통상이니까 걸을순 없지만은 조금씩 기어다닐 수는 있단 말이야.
-날 좀 살려줘. 날 버리지 말고 말이야.
-뭘 어떻게 살려달라는 거야?
-이젠 쌀도 건빵도 없잖아. 먹을거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넌 기어다닐수 있으니까 먹을것도 구할 수 있잖아. 니가 먹을거 구하면 나도 좀 줘. 응? 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단 말이야. 응? 날 좀 살려줘.
-자식아 치사스러운 소리 하지마라. 혼자 먹을까봐 걱정이야? 그리고 조금 기다리면 병원선이 올거야.
-병원선이 올까?
-그럼 오고 말고.
-정말 병원선이 올까?
-온다니까 자식아.
-하...병원선이 오면 우리도 실어다 주겠지?
-그럼. 실어다 주고 말고.
-병원선 타면 어느 병원에 갈까? 라바울에 있는 야전병원에 갈까?
-글쎄.
-아니야. 라바울엔 안보낼거야. 우리모두 중상이니까 일본에 직접 보낼거야.
-어...
-일본히로시마나..에 어느 큰 육군병원에 보내줄거야.
-글쎄
-그럼 말이야 빨리 나을거야. 응? 우리집에서 편지도 오고 이따금 면회도 오고 말이야. 육군 병원에는 먹을것도 많고 간호부들도 있겠지. 응?
-흐흐흐 그럼 있고 말고.
-나으면 곧 제대시켜주겠지? 제대하면 난 그 전 공장에 가서 이번엔 2급 딸수있어. 2급. 하...그까짓거 열심히 하지.
-넌 뭐 선반공이라고 했던가?
-그래, 선반공. 입대하기 전에 난 3급이야. 몇 달만 더 있으면 2급 딸수 있었는데 그만 역장이 나오고 말았어. 이번엔 2급 틀림없을거야. 이번엔 게으름 피지말고 열심히 해야지. 응...그렇지만 병원선이 정말 올까?
-그럼 오고 말고. 우리모두 중상자들인데 안와? 커다란 새하얀 병원선 말이야 앞에는 붉은 십자가 보이고...아참 우리 도하쿠도에서 병원선 봤지?
-어...봤어! 봤어! 붉은 네온이 번쩍번쩍하는 병원선 마크가 밤에도 크게 보였어.
-그래.
-헤..헤 지, 집에 가면 이번엔 성게 실컷 먹어야지. 너 성게가 뭔지 아니?
-그럼 알고 말고. 그 젓 담그는거 아냐? 된장같은거 말이야.
-그래 맞았어. 그 성게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우리집은 사도인데 말이야 그 사도..사부시 사도야. 거기서 성게가 참 많이 나지. 에...그 성게 실컷 먹어야지. 그, 그렇지만 정말 병원선이 올까?
-온다니까 자식아. 걱정마라. 틀림없이 온다.
-어. 그럼 말이야 너희집에...제대하구서 말이야. 내 성게좀 너희 집에 보내주지. 응? 너희집에 우편으로 부치면 잘 들어가겠지?
-그럼. 오고말고. 인제 그만해. 한 잠 자라. 너무 오래 얘기하면 기운이 빠진단 말이야. 배도 더 고파지고.
-어 그래...정말 병원선이 올까?
-아 온다니까 자식아. 걱정말고 빨리 자. 응?
-어...

-어느덧 밤이 깊어간다. 정글속에 밤이슬이 내렸다. 30여명의 부상병들은 정글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잠을 잤다.

-야! 제 누구야!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놈이
-흑...네. 죽었습니다.
-뭣이? 죽었어?
-네
-아니 자는게 아니고 죽었단 말이야?
-네
-언제 죽었단 말이야?
-흑...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밤에 죽었을 겁니다.
-무슨소리야? 그럼 죽은걸 언제 알았어?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모두 잠이 깼는데 이 시오자와만은 담요를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깨지 않았습니다. 깨워도 대답을 않하고...그래 담요를 제껴봤더니 죽어있었습니다.
-음...
-이름이 뭔가?
-시오자와 일등병입니다.
-초년병인가?
-네
-너도 초년병인가?
-네
-어느중대?
-상대대 아마노 중대입니다.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는 너희 둘 밖에 없나?
-모르겠습니다. 더 있는지
-그거 빨리 치워버려! 음. 넌 부상이 어딘가?
-허벅다리 입니다.
-걸을 수 있지?
-모, 못걷습니다.
-그래? 어이! 거기 아마노 중대 부상병 없나?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
-아마노 중대 아무도 없나! 짜식들 있어가지고도 대답하지 않는거 아니야!
-어이! 삼등병!
-네
-넌 부상이 어딘가!
-다리입니다.
-모두 다리구나 자식들! 길수는 있지! 포복할 수 있느냔 말이다!
-예
-어물어물 하지 말아! 그리고 그 옆에 일등병!
-네
-너도 포복할 수는 있는거지?
-네...
-그럼 너! 너! 너! 셋이서 저거 빨리 치워! 저거 시체 말이야. 어디 정글속에 버려. 셋이 기면서 굴릴수 있잖아. 굴려가지고 가 버리란 말이야. 멀리 버려야 한다.
-예...
-자 빨리 밀어...
-어...
-네...

(입력일 :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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