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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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68회 - 전투후의 미드웨이 상황
제68회
전투후의 미드웨이 상황
1968.01.23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하하하하
-아~ 한 잔 더!
-아니 괜찮겠어? 취하야
-놔라 이 자식아 잔소리 하지 말고 으하하하하
-하하하 자자
-자 노래!
-♬
-자식아 도대체가 틀려먹었단 말이야. 야마토가 왜 350마일이나 뒤에 있었어. 왜 야마토가! 자식들 전쟁 안하고 구경을 갔나! 제기랄 야마토가 우리 함공모함하고 같이 있었더라면 말이야 적기가 먼저 야마토를 습격했을거 아니야! 그따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야마토나 전함 쯤 몇체 없어도 우리 아카키는 살아남았을거 아니야 우라질 -아니야 그보다도 우리 대장이 나빴어 대장이. 나가모가 말이야. ..때문에 그 머저리 같은 히류 소류가 행방불명 됐을때 왜 무전을 쳤는가 말이야 적이 들으라고? 우리는 여기 있소~ 하고 말이야?
-하하하하
-야! 여 지구막 탐색기는 어떡하구! 그 자실들은 말이야! 적 함공모함 상공을 몇번씩이나 왔다갔다 하면서도 몰랐단 말이야. 그 밥통들이 말이야 그러고도 도내 탐색기야 그게? 에!
-그렇지!
-그 자식들 말이야 ...때문에 30분이나 늦게 떠나가지구선 말이지 적같은거 10초.. 저 수향함 5척.. 구축함 5척.. 그게 엔더프라이즈호였단 말이야. 예라이
-야야야 진주만에 적 함대 없음. 적함대 진주만에서 출격하지 않았음. 뭐야! ...
-자자자 들어! 자식들 잔소리 말고
-야야 들자 들어!
-...
-뭐? 우편물이래 우편물 우편물...
-오카미 중위님!
-음?
-오카미 중위님! 오카미 중위님 안계십니까? 사카키바라 대위님!
-어 여깄다!
-네. 다음 스기다 중위님! 스기다 중위님! 스기다 중위님 안계십니까?
-없어 없어
-무라다 대위님! 무라다 대위님!
-없어 없어
-와다이 중위님! 와다이 중위님!
-사쿠마 중위님! 사쿠마 중위님!
-죽었어! 죽었단 말이야! 다 죽어버렸단 말이야!
-도모다 중위님! 도모다 중위님!
-야! 주번 병조!
-예
-주번병조는 죽은 자식들하고 안죽은 자식들 몰라!
-네 아직 정리가 안됐습니다.
-뭘 하고 있어 임마! 모두 그 모냥이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새끼들! 야 당번!
-하!
-술 가져와! 술!
-하!

-수천명에 이르는 전사자 명단을 하루 이틀에 정리 할수는 없었다. 침몰 된 함공 모함에 주인 없는 우편물들이 이 나가노로 밀려와 산더미처럼 쌓였다. 시일이 지나감에 따라 거의 사실에 가까운 전과가 밝혀 졌다. 미국태평양함대와 일본연합함대의 피해는 점점 그 차가 벌어졌다. 미국측 피해는 함공모함 요크타운 1척과 구축함 1척 침몰 비행기 150대 전사 307명. 그런데 일본군은 함공모함 4척 순향함 1척 비행기 322기 그리고 이른바 폐하의 적자가 3500명이나 전사 했다. 미국군의 307명에 비하면 열배에 가까운 큰 손실이였다. 이 가운데에는 100여명의 정외 비행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전 참모 겐다가 일본 전국의 비행기에서 우수한 비행사들만 추려냈고 또 5년이상 10년씩이나 훈련을시킨 그야말로 명 비행사들이였다. 함공모함 한 척 건조하는데에도 3년이 걸리지만 우수한 비행사 양성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웠다. 중위대위급 젊은 장교들은 사령관과 참모들에 대한 거리낌없는 욕지거리와 술로 울분을 토했다.

-이제 우리 해군은 어떡한단 말이야.
-앞으로 우리 일본은 어떻게 된단 말이야.
-이제 우린 선수를 빼앗겼어.
-공격은 저쪽이야 미국.

-앞으로 공격해오는 것은 미국. 이점에 그들의 의견은 일치했다. 이것은 무서운 사실이였다. 공격 즉 최대의 방화. 해전에 있어 방화라는것은 패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일본은 질지 모른다. 아무도 입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은 질지 모른다. 그런말을 입밖에 냈다가는 당장에 역적, 비국민, 반전론자, 염전사상으로 몰리고 그야말로 일본도로 일도 양단될지 몰랐다. 며칠 후 기암 나가라는 구레를 떠나 하시다지마에 이르렀다. 전 연합함대가 몰려있었지만 이제 다시는 아카키 히류 카가 소류등 함공모함의 그 늠름한 모습은 볼수가 없었다.

-다 없어졌어. 다 없어졌어.
-마키지마군.
-네.
-난 말이네 지난해 봄이던가...세 살 먹은 딸놈을 잃어 버렸네.
-오...어쩌다가요?
-급성폐렴이라던가...뭐라던가...
-네.
-아직 아카키를 타지 않고 지상근무를 할때인데 저녁에 퇴근해 집에 돌아가면 꼭 그 잃어버린 딸놈이 그전처럼 딸랑딸랑하고 달려나올거 같단 말이야. 어디 골목길에서나 또 방안 테이블 밑에 숨었다가 아빠 하고 부르며 말이네. 하하하...
-그러시겠죠.
-그런데 지금 이 갑판에 나오면 꼭 그때 심정이야. 저 섬그늘에서 도저히 야마토대에서 잃어버린 아카키나 히류가 불쑥 나타날것 같단 말이야. 파도를 차면서 말이네. 마키지마 파도를 힘차게 차면서 말이네. 아카키 그 내방...사관실...그 방에 앉아있으면 말이야. 막 흐뭇했어...응?
-이젠 잊어버리십쇼. 구치자 대장.

-부르셨습니까? 참모님.
-응. 좀 앉게.
-네.
-마키지마군도 고생 많았네.
-뭐 저야 뭐, 비전투원이니까...
-아 다름이 아니고 앞으로 어떡하겠는가. 안됬지만 앞으로 신문사에 돌아갈순 없고.
-네 알고 있습니다.
-에...어디 다른 함대 보내줄까? 이 기동부대는 앞으로 당분간 전투도 없을거네. 아니 이젠 기동부대도 아니지. 제1 기동부대란 명칭은 없어지고 남은 함장들만 모아서 제3 함대를 부르게 되었네.
-제3 함대요?
-그래.
-전 다른데 가고싶지 않습니다. 아 신문사에 못돌아 갈바엔 여기 그냥 있겠습니다.
-어 그런가? 고맙네.
-그런데 저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마키지마군.
-편지 한장 내게 해주십쇼.
-오 신문사나 집엔 안되지만 배본형 해군보도라면 상관없네.
-알고 있습니다. 저 참모님께서도 보도부에 좀 잘 말해 주십쇼.
-어디 보세. 부관이 검열을 하겠지만은...
-네 양말이나 셔츠 칫솔같은건 사령부에 돈을 얻어 샀습니다.
-그렇지만 이 카메라라든가 필림 원고용지는 아무래도 사에 연락해서 보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래 그편진데...
-오...소생 금번 해전때문에 소지품 일부를 잃어버렸으므로?
해전때문에는 좀 곤란해. 사정에 의해서라고 고치지 응?
사정에 의해서...사정에 의해서 소생 금번 소지품 일체를 상실해
-하하하하
-참모님. 사정에 의해서도 무섭습니다. 사고때문이라고 고쳐주십쇼. 어 그래. 그렇게 다시 쓰게.
-네.
-다시 써서 부관한테 가 보이게.
-네.

-오 어딜가슈? 치하라군.
-아 마키지마씨. 이별이야. 잘 있어요. 난 인도양에 가네.
-인도양?
-아 비행기는 잃어버렸으니까 이제 구축함하고 인도양에 가서 어뢰나 쏴대겠네. 하하하
-오 그러세요? 하하하하
-이 배에도 이젠 못있겠어. 사관실에 있으면은 자꾸 죽은 자식들 얼굴이 떠오르는구만요. 하하하
-잘 가시요, 치하라 대위.
-어 고마워.
-아니 후지다 대장님도 가십니까?
-어 난 육군 병원에 가서 며칠더 강금되있어야 한다네. 하하하
-아 수술한데가 아직도...
-아 거진 다 나았어. 잘 있게 마키지마군.
-빨리 완쾌 하십쇼. 후지다대장.

-전재민 수용소. 폐잔병 수용소라고 하던 이 우울한 함대에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 그리던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인도양이나 남태평양함대에 배속 되갔다. 나가모 중장과 구사카 참모장 겐다 참모들은 끝까지 남았다.

-그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장관 리미스제독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는 주로 정보에 의한 것이다. 기습을 감행하려던 일본군이 반대로 기습을 당했다. 일본군은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 우리 함대도 과실이 없던것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과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일본은 3배 이상이나 되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활용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해전은 일본이 16세기 말엽 한국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군사에 격파된 이후 최초의 대 패배였던 것이다. 일본은 100여명의 제일선 파일럿트를 잃었다. 그 우수한 파일럿트들의 손실은 일본 해군에 있어 가장 아픈 상처가 됐다. 일본은 일반국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상충부에 대해서도 패전을 숨겼다. 전쟁일지와 보고서에서도 패전 기록은 삭제했다. 삭제했지만 일본은 이 패전의 결과를 원상태로 돌이킬수는 없었던 것이다.

-삭제했지만 패전의 결과를 원상태로 돌이킬수는 없었던 것이다. 끝으로 처치대 회고록 중에서 이 해전의 역사적 뜻을 소개해 보자.

-이 미드웨이 해전을 계기로 해서 전쟁의 주도권은 우리 연합군이 장악하게 됐다.

(입력일 : 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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