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닐라 호텔 귀빈실, 14군 사령관 혼마 마사루는 아침 일찍 잠을 깼다. 비일빈 사람 보이가 아침 커피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고 말 한마디 없이 나가 버린다. 눈아래 남극의 도시 마닐라가 한 눈에 전개되고 혼마는 글자 그대로 개승장군이지만 그의 마음속은 편안치 않았다. 보이뿐아니라 지배인 청소부까지도 그에겐 침묵으로 대했다. 어쩌다가 시선이라도 마주치면은 질린듯이 재빨리 피하는 것이다. 혼마는 그들의 침묵을 저항이라기보다 조소라고 생각했다.
- 제14군 사령관 혼마 마사루 중장 귀하. 적 주력부대에 대해 하등 손상을 끼침 없이 바트완 반도에 전진시키고 무방비 도시 마닐라 시에 입성 했음은 유감된 일이오. 금우해 작전 시급히 회신하기 바람. 이상, 육군 참모총장 스키야마 하지메.
- 이미 참모총장 스키야마에게서는 짤막하지만 명령인지 논평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실랄한 지시가 내렸던 것이다.
- 접병 한사람도 없는 마닐라 시 입성은 어린애도 할 수 있다.
- 바트완 반도에 적을 놓쳐버리고 무슨 개승장군이냐.
- 맥아더 전술이 보기좋게 넘어간 것이다.
- 전 일본군의 치욕이다.
- 혼마는 모든 조소의 비난이 자기에게로 쏠린다고 생각했다. 참모장 마에다를 비롯한 참모들 그리고 14군의 주력부대인 제48선장 스치바시 중장까지도 방관할 수 만은 없었다.
- 참모장, 난 사단장으로서 참을 수가 없소. 치욕이오. 치욕. 우리 사단은 14군 주력부댄데 14군의 웃음거리가 됐으니 맥아더인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 그렇습니다, 장군.
- 어떻소, 참모장. 이대로 앉아서 이 치욕을 달게 받을게 아니라 곧 바트완에 진격해야 하지 않겠소. 바트완의 적을 추격한단 말이오.
- 알겠습니다, 장군. 사실 우리 혼마 사령관 각하께서도 같은 의견이신데.
- 그럼, 왜 안한단 말이오. 추격을 왜 안한단 말이오. 응? 왜 가만히 있느냔 말이오.
- 그게 사실은 장군을 생각 했습니다.
- 누구, 나?
- 그렇습니다, 장군. 장군이 싫어하실것 같아서.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싫어해요?
- 혼마 각하께서도 곧 추격해야 한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이지만 혹 장군께서.
- 아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내가 싫어 하다니.
- 장군의 48사단을 마닐라 공략이 끝나면은 곧 16군이 있는 화란령인도지나로 전출하게 돼있지 않습니까.
- 그렇소.
- 헌데 이제 마닐라 공략이 끝났는데 장군의 사단을 또 바트완에 진격 시킨다는 것이 혼마 각하 생각에는 미안한 모양 입니다.
- 그래요?
- 네. 그리고 우리 혼마 각하와 16군 사령관 이마무라 장군은 아시다시피 여간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 응. 그렇지.
- 그런데 장군을 바트완에 진격 시켰다가 혹시 사단이 큰 피해라도 입으면 이마무라 장군께 미안하단 생각이지요.
- 음. 혼마 각하 생각은 모르진 않겠지만 참모장.
- 네.
- 전쟁이 어디 그런 인정이나 사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오? 우리 대일본 군인이 전쟁에 임해 적을 눈앞에서 놓쳐버리다니 될 말이오? 아직 화란령인도전투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으니까 이 기회에 전력을 다해 추격해야 할 줄 아오. 나도 이 치욕을 씻어야 하겠소.
- 알았습니다, 각하. 곧 장군의 뜻을 혼마 각하께 전하겠습니다.
- 부탁하오. 이 스치바시가 적을 놓쳐버리고 떠날 순 없다고 말이오. 참모총장.
- 네, 각하.
- 제14군 작전명령 제8호. 제48사단 해군 야전에... 없음. 절차부대는 바트완 반도의 적 주력을 공격하라. 이상 제14군 사령관 육군중장 혼마 마사루.
- 대번영 육군부 명령. 제14군 이하 48사단 스치바시 병단은 지금 바트완에 들어간 제16군 ...에 정차하라. 이상, 대번영 육군부.
-14군 사령관 혼마와 참모장 마에다는 크게 실망했다. 쉽게 들었던 주먹을 채 주체할 길이 없는것이 아니라 주먹을 그대로 짤리우고 만 셈이다. 48사단 스치바시 병단은 14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력부대이다. 그것을 바트완 공격을 시작하자마자 뺏기고 만 셈이다. 당황한 혼마는 또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 제14군 작전명령 제9호. 링가엔 만 경비 나가데 군단은 1월 8일까지 바트완 전선에 질주하라. 이상, 14군 사령관 육군중장 혼마 마사루.
- 나라 병들은 모두 40대 이상 노병들로 구성된 치안담당 부대라 병단장 나라 중장 자신도 노인이다. 장비라고는 야포가 3개중대이지만 한번 발사하면 포 전체가 1미터나 후퇴하고 마는 러·일 전쟁때의 유물이다. 거기 중기관총 소총까지도 러·일 전쟁때 쓰던 38식 더욱이 링가엔 만에서 바트완 전선까지의 거리는 200킬로 500리 길이다. 500리 길을 3,4일 동안에 강행군 하라는 명령이다. 섭씨 35도의 염천 아래 노병들은 열관 가까운 장비를 등에 지고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물을 찾으며 쓰러지는 노병들, 기어가다가 기진해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노병들, 바트완 전선에 진출했을 때에는 반수 가까이나 줄어들고 말았다. 사령관 혼마는 바트완 반도 전투에서 미군 포로들에게 소위 죽음의 행진을 시킨 죄로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총살형을 당하고 말았지만 이 죽음의 행진은 미군 포로들에 앞서 자기부하 일본군에게도 시켰던 것이다. 불가능을 불가능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군 혼마, 합리주의자인 혼마도 전세가 불리할 때는 더없이 가혹한 전쟁의 마귀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바트완 공격이 시작된지도 일주일째 미군의 15센치 거포는 정확한 겨냥으로 글자 그대로 소낙비 우박처럼 쏟아졌다. 거기 대항하는 일본군은 러·일 전쟁때의 야포와 중기관총 그리고 소총이다. 하늘에 치솟아 오르는 연기, 쓰러지고 부러지는 거목들, 울창한 정글도 삽시간에 마른 풀 한포기 남지 않았다.
- 도데체 나라병들 뭐하는거냐. 병단장이 늙어빠진데다 3....하냔 말이야. 누구 똑똑한 참모 하나 보내라.
- 소위 똑똑한 참모 한사람이 나라 병단장을 찾아갔다. 늙은 나라 병단장은 정글속 텐트에서 기어 나왔다.
- 고맙소. 그러나 현재 우리 병단에 참모 두사람이 있으니까 둘이 상의해 봐야겠소.
- 잠깐만 기다려줍시다.
- 나라 장군은 옆에있는 참모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 잘 알겠습니다, 각하. 이건 우리들의 참모를 완전히 무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린 링가엔 만 .. 벌써 병력을 반수 이상이나 잃었습니다. 만약 각하께서 군참모를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전에 우리 두 참모를 처분해 주십시오. 깨끗히 활복 자살하고 말겠습니다.
- 각하, 물론 처벌해달라는 것이 우리 본인은 아닙니다. 여태까지 병단의 명예를 위해서 싸운것이 아닙니까. 지금 여기 모자란 것은 참모가 아니라 무깁니다. 무기요. 도데체 러·일 전쟁때의 야포를 가지고 무슨 전쟁을 하란 말씀입니까.
- 뭐 내가 얘기할 것도 없이 다 들었겠지만 형편이 이지경이오. 그러니 혼마 각하께 배려는 고맙지만 이 진영대로 계속 싸우겠다고 전해 주시오.
- 알았습니다, 각하. 혼마 사령관 각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거 참 수고했소.
- 각하, 이런 굴욕은 참을 수 없습니다. 저희 연대는 전개를 돌파해서 접지에 돌입하겠습니다.
- 각하, 저희 연대도 보내 주십시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 여러 연대가 울창한 정글속으로 사라진지 사흘째 아무 소식도 없었다. 나흘이 지나고 엿새가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모두 그 천고의 정글속에서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정찰기를 띄워 정글 위에서 식량을 투하해 봤지만 모두 그 울창한 수의 나뭇가지 위에 걸리고 마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 3대 연대 중 한 장교가 나타났다. 옷은 찢기고 굶주려 해골같은 모습이다.
- 각하, 모두 철수 했습니다. 정글속에서 헤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몇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각하, 부탁 입니다.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 뭘.
- 먹을것을 좀 주십시오.
- 주고 싶지만 사실은 여기도 마찬가지네. 나도 오늘 아침에 겨우 건빵 한조각 씹었을 뿐이야. 아 참 자, 이거나 가지고 가게.
- 나라 중장은 포켓 속에서 땀에 젖은 담배 한 곽을 꺼냈다. 모두 6가치. 3가치를 뽑아 떨리는 손으로 그 장교에게 준다. 장교는 정중하게 두손으로 받아들고 말없이 사라져 갔다. 이튿날, 나라 중장은 전 병단의 앞장에 나섰다. 머리에는 수건을 질끈 동여맸다. 그리고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목에 분도가 무겁게 치켜 들려졌다.
- 돌격 앞으로! 전군 돌격 앞으로! 돌격!
(입력일 : 200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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