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51회 - 일본의 마닐라 상륙
제51회
일본의 마닐라 상륙
1968.01.03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 여기는 마닐라 방송국 입니다. 여기는 마닐라 방송국 입니다. 임시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우리 비일빈 수도 마닐라 시를 비무장 무방비 도시로 선언 했습니다.

- 공중 또는 지상의 어떤 공격으로 빚어질 참담한 피해에서 이 도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마닐라는 국사적 목표로써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 비무장 무방비 도시임을 이에 선언한다. 어떠한 착오에 대해서도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아메리카 고등 판무관은 물론 비일빈 정부 기타 일체 군사적 시설을 가능한 한 신속히 마닐라 시 일대에서 철수 시킨다. 인명 재산에 대한 정상적인 보호를 유지하기 위해 마닐라 시 정부는 더욱 강화된 경찰력으로써 그 기능을 전과 다름없이 계속할 것이다. 시민 제위는 국법에 의해 구성된 치안 당국에 대해 복종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 생업을 영위할 필요가 있다. 이상, 1941년 12월 27일 미국 극동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 각하, 어떡하시겠습니까. 이대로 마닐라에 간다는 것도.

- 무슨 소린가, 참모장. 진격이야 진격. 일각도 지체 말고 계속 진격 하라고 수단하게. 우리 목표는 마닐라 공략이야.

- 네. 알았습니다.


- 우울하지. 야, 마에타. 물 물좀 줘 물.

- 없어.

- 우린 전우 아닌가.

- 자식, 전우가 니 할아비야?

- 물좀 줘 그러지 말고.

- 자식. 자, 한모금만 마셔.

- 아, 고맙다 전우.

- 자식. 저 자식은 뒈지지도 않나. 뭐야 이게. 적이 하나도 없는 마닐라에 가서 뭘 한다는게야.

- 혼마 한테 물어봐라. 혼마 한테.


- 섭씨 35도의 염천 아래 병사들은 모두 열간 가까운 장비를 등에 지고 있다. 열대의 태양이 이마에 불을 끼얹고 철모와 총신이 눈부시게 번쩍인다. 등, 어깨, 전투모에 까지도 땀이 배이고 뿌옇게 소금이 맺혀있다. 병사들은 비무장 도시 마닐라에 진격해 가는 것이다.
일본군은 또 마닐라 만을 폭격했다. 마닐라 만 카비트해 해군공창 일대의 요새지다. 카레빅토리아라는 옛 성터 그 성곽 속 낡은 건물 하나가 맥아더 장군의 사령부 사무실이다. 건물은 바로 카비트해 공창 요새지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다.


- 오... 사저란트, 오늘은 일본군 목표가 여기인 모양이야. 대피 시키게, 사저란트. 모두 반공호에 들어가라고 일러. 한 사람도 빠짐없이.

- 알았습니다, 각하.


-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견고한 반공호 속도 부서질듯 흔들렸다. 지축이 울리고 흙사태가 났다. 숨을 죽이고 있던 사령부 참모들이 맥아더 장군이 곁에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참모장 사드렌드 장군이 반공호 속에서 기어 나왔다. 하늘에 치솟는 불기둥, 연기 태양이 붉은 동전처럼 중천에 걸리고 요새지 일대에는 연기로 자욱했다. 그 연기 속 낡은 성벽 꼭대기에 오직 하나 우뚝 서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맥아더 장군이었다. 쌍안경을 들고 일본 폭격기 편대를 관찰하고 있었다. 폭격기는 희안하게 편대를 꾸며 요새지 상공에 침입해 왔다. 한대씩 쏜살같이 내리 박힌다. 낮은데서 쳐다보는 참모장 사드렌드의 눈엔 흡사 폭격기가 맥아더 장군의 머리위를 스치고 지나간 듯이 보였다. 폭연이 장군의 몸을 휩싸고 지나간다. 장군은 의젓하게 그대로 서있다. 그것은 기묘한 풍경이었다. 표표하기에 끝없는 하늘가 아니면 어디 이 지구의 끝에 홀로 서있는듯 했다. 의젓하면서도 그것은 고독한 모습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풍경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초연한 모습 그것은 운명에 대한 도전이었다. 잠시후 일본군 폭격기가 물러갔다. 장군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있다. 참모장 사드렌드는 얼핏 장군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 듯 했다. 예하 추격부대는 이미 거의 바트완으로 퇴각한 뒤였다. 일본군은 연일 마닐라 만 일대에 맹폭을 가하고 있다. 지각있는 마닐라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럴 때 장군은 자신의 기연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부하들과 모든 마닐라 시민들의 눈에.
그리고 그날 밤 마닐라 호텔 맥아더 장군의 거실.


- 아니, 짐을. 각하께서도 이제 떠나십니까.

- 음. 떠나야 될 것 같네. 오래 지내던 방을 떠나자니까 ....

- 그러믄요. 혹시 각하께서도 떠나시면 어떡하나 했는데 섭섭합니다, 각하.

- 괜찮아, 지배인. 잠깐 비워둘 따름이야. 곧 돌아올테니까. 그런데 지배인?

- 예.

- 한가지 부탁이 있네.

- 예. 말씀만 하십시오.

- 다름이 아니라 이 내가 쓰던 물건들 말이네.

- 예.

- 이게 나한텐 꾀 소중하단 말이야.

- 그러믄요. 소중하다 뿐이겠습니까.

- 이게 모두 내 선친이 쓰던 기념품이거든. 지배인도 알던가?

- 그러믄요. 마나님께서도 늘 얘기 하시던걸요.

- 그래. 내 선친 맥아더 장군과 전에들 비일빌 사람들의 깊은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쓰던 이 방에 이 기념품들을 남겨두고 싶어.

- 각하, 영광으로 생각 하겠습니다. 성심껏 보관 하겠습니다.

- 고맙네, 지배인.


- 이 은식기 한질은 스웨덴에 비리룸 경이 선친께 보낸거지.

- 예.

- 그리고 꽃병은 이거 중국것이지. 고대 중국 황실에서 나온건데.

- 아 예.

- 그리고 이 칠기 말이네.

- 예.

- 이건 일본것인데 이게 일본 황실에서 보낸게야.

- 오 그렇습니까, 각하.

- 지금 일본군이 침공 해왔지만 이건 일본 황실무늬가 박혀있지. 자네 보게나.

- 예. 아, 무슨 꽃잎이군요.

- 응. 국화꽃이야. 국화꽃 무늬가 박힌 것은 일본 천황이 보낸거지.

- 네.

- 아무튼 잘 보관해두게나, 지배인.

- 네.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 그 뒷 얘기지만 일본군이 마닐라를 점령했을 때에도 이 맥아더 장군이 쓰던 거실만은 침범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황 히로히도의 기념품이 소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맥아더 장군은 예하 참모들을 거느리고 카비트해만을 떠났다. 일행이 탄 조그마한 연락선은 마닐라 만 입구에 자리잡은 코레히톨 섬으로 향했다. 연락선이 코레히톨 섬에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 마닐라 만 일대에서 폭음이 울리고 붉은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카비트해만에 남아있던 공병대가 창고와 연료탱크 등을 폭파 시켰던 것이다.
1942년 1월 1일 맥아더 장군은 역사적인 바트완 전진작전을 끝내고 담화를 발표했다.


- 이 역사적인 대부대의 이동은 마닐라 시를 자유 무방비 도시로 할것이다. 마닐라 시는 이제 군사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게 됐다.


- 이튿날 1942년 1월 2일 일본군은 마닐라 시에 입성했다. 무방비 도시 맥아더 장군 휘하 연합군 주력은 고스란히 바트완 반도에 놓쳐 버리고 병사 한사람 없는 무방비 도시 마닐라에 자뭇 의기양양하여 입성했던 것이다. 마상에 높이 앉은 일본군 사령관 혼마 마사루를 비롯해 일본군은 모두가 당당했다.

(입력일 : 2008.03.24)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