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2년 2월 12일 오후 3시, 일본군이 싱가폴 일각에 돌입해서 이틀째 되는 날. AP통신의 영국인 기자 맥 다니엘은 빗발치듯 퍼붓는 탄환속을 무릅쓰고 카세이빌로 달려갔다.
- 아니, 이거 어떻게 된일이오, 검열관?
- 아, 맥 다니엘 왔나? 모두 어디 갔어?
- 내가 아나?
- 아니 검열관은 뭐하는 거요?
- 보면 모르나? 짐을 꾸린다네, 짐을.
- 그럼, 내 기사 검열은 누가 한단 말이오?
- 검열이라. 하하하. 마음대로 쓰게. 마음대로.
- 여보오 검열관! 그걸 말이라고 하슈? 당신 검열필이란 도장을 찍어줘야 내 기사를 발송할거 아니오?
- 아, 도장 말이지? 이리 내게.
- 아니, 지금부터 써야한단 말이오. 음.
- 아 그럼 뭘 그러나. 쓰지도 않구서.
- 나중 검열필 도장말 찍어달란 말이오.
- 이런 딱한 사람 봤나. 난 기다릴 수 없단 말이오.
- 음.
- 오! 그렇지. 방법이 있네. 그 백지 이리 주게.
- 어? 아니 뭘하는 거요?
- 보면 모르나? 검열 끝났네. 이 백지에 마음대로 쓰게. 모든지 쓰고싶은 대로 말이야. 검열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럼 난 이만 실례 하네.
- 맥 다니엘은 다시 포탄이 빗발치는 거리에 뛰어 나왔다. 일본군의 무차별 폭격과 포격으로 많은 건물이 부서지고 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영국인, 중국인, 말라야인 모두 한데 어울려서 파괴 된 건물 속에서 사상자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 자, 내 피요. 내피. 나도 피를 바치겠소. 얼른 내 피를 뽑아 주시오.
- 나두요. 얼른 내 피를 뽑아 저 부상자를 살려 주세요.
- 중국인, 영국인, 말라야인, 학생, 차부, 노동자 심지어 술집 아가씨들까지 병원에 쇄도해서 피를 바치겠다고 했다. 국적과 민족을 초워해서 모두 침략자 일본군에게 대항하고 나섰던 것이다. 맥 다니엘이 간신히 기사 송부를 끝내고 거리에 나왔을 때다.
- 어. 맥 다니엘 날 도와줘요. 잘 만났어요, 맥 다니엘.
- 아니, 톨리스 어떻게 된 일이야?
- 맥 다니엘, 날 도와줘요. 배를 놓쳤어.
- 아니, 하늘의 ....은 어딜갔지?
- 먼저 갔어요. 자기 혼자만 배를 타고 철수했단 말이에요. 아 글쎄 이러는 법이 어딨어요.
- 그렇지만 톨리스 너 까지 떠날 필요는 없잖아. 넌 중국인인데 뭘 그래.
- 아이 안되지요. 지금 일본군들은 닥치는대로 막 쏴 죽이고 있는걸요?
- 그들은 부두로 달려갔다. 부두에는 수 만명의 시민과 군인들로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배는 보트와 소형선박 밖에 없었다. 소총 탄환만 맞아도 침몰 될것만 같았다. 맥 다니엘과 톨리스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영국 해군의 스틸 대령을 만났다. 스틸 대령은 공보담당 장교 맥 다니엘과 친한 사이였으나 스틸 대령은 해군의 기뢰 부선함(?) 쿰2호라면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렸다.
- 함장, 우리도 태워 주시오. 두 사람 뿐이에요.
- 저 부탁 이에요. 배를 놓치고 말았어요, 네?
- 마음대로 하시오. 타든 말든 그렇지만 배는 움직일 수 없소.
- 아니!
- 아니! 왜 움직일 수 없단 말이오?
- 석탄이 없는 걸요?
- 맥 다니엘이 석탄이 쌓여있는 부두를 알려줬다. 쿰2호는 곧 그곳으로 가서 석탄을 실었다.
- 자, 함장 이제 떠납시다.
- 어, 아직 떠날수 없어요. 정식 출항 명령이 없단 말이오.
- 아 이판에 출항 명령이 어쨌다는 거요? 자, 떠납시다.
- 여보시오, 그건 당신 생각이구. 난 명령 없이는 한 발짝도 이 부두에서 떠날 수 없단 말이오.
- 그럼, 좋소. 내가 함대 사령부에 가서 출항 명령을 받아가지고 오겠소.
- 맥 다니엘과 톨리스는 부두에 버려져있는 차를 몰아 싱가폴 시내로 되돌아 왔다. 맥 다니엘은 집에 들러 도이치 포도주 한 병과 카메라 한 대 그리고 비스켓 약간을 백 속에 집어 넣었다. 다시 함대 사령부로 달려 갔다. 모두 기밀 서류를 소각 하며 철수 준비에 눈코 뜰새가 없었다.
- 아니 어떻게 됐소, 신문기자.
- 빨리 떠납시다, 함장. 꾸물거릴 때가 아니야.
- 아니, 출항 명령 어떻게 됐냔 말이오.
- 출항 명령이고 뭐고 지금 기밀 서류를 태우느라고 모두 재정신이 아니야! 이 따위 고물 함정 같은거 꿈에도 생각 안해. 자, 떠나시오. 빨리!
- 그렇지만 난 떠날 수 없어요. 정식 출항 명령 받기 전엔 기다릴 수 밖에.
- 뭣이? 기다린다고?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단 말이야, 함장!
- 이 봐, 신문기자. 왜 고함이야? 난 명령에 움직이는 사람이야. 어이, 통신병.
- 네.
- 다시 사령부에 연락 해 봐. 빨리!
- 네. 싱가폴 함대 사령부. 싱가폴 함대 사령부. 여기는 쿰2호. 여기는 쿰2호. 싱가폴 함대 사령부. 안됩니다, 함장님.
- 될 때까지 하란 말이야, 통신병. 알았나?
- 네. 싱가폴 함대 사령부. 싱가폴 함대 사령부. 여기는 쿰2호. 싱가폴 함대 사령부.
- 쿰2호. 쿰2호. 쿰2호. 싱가폴 방면 함대 사령관은 이미 철수 했음. 싱가폴 방면 함대 사령관은 이미 철수 했음. 이상.
- 이봐, 함장. 그래도 못 떠나겠어?
- 못 떠나요. 정식 명령이 없는한 확인해 보기 전에는.
- 함장, 너무하지 않소.
- 함장,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단 말이야.
- 야! 빨리 떠나. 지금 당장이라도...
- 좋소! 그렇다면 떠나겠소. 그렇지만 이 책임은 내가 질 수 없소.
- 하룻밤이 지나갔다. 2월 13일 쿰2호 전면 아데키 스마트라의 선 그림지가 보였다. 갑자기 머리위에 일본기 편대가 나타났다. 낡아빠진 쿰2호의 속력은 겨우 10노트, 미친듯이 S자 운항을 하며 폭탄을 피했다. 일본기대는 쏜살같이 줄이어 쏟아져 내려왔다. 한발 또 한발 그중 한발은 기관실에 정통으로 떨어져 내렸다. 삽시간에 쿰2호 갑판은 불바다로 변했다. 마침내 쿰2호는 폭음과 전복되고 말았다. 붉게 녹슬은 큰 선복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일본기들은 바다 위에 떠있는 승객들에게 맹렬한 기총소사를 가했다. 죽음의 벽, 죽음의 새하얀 벽, 부키데마 고지 격전은 사흘 째 접어들었다. 저 죽음의 벽을 무너 뜨리라. 야마시타의 피 맺힌 절규도 소용이 없었다. 영국군의 25센치 30센치 거포들의 포격은 말할 수 없이 정확했다. 부키데마로 향하는 일본군의 시체는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다. 한때 야마시타 휘하 참모들은 야마시타에게 부키데마 고지에서 후퇴할 것을 진언했다. 그런데 야마시타는 참모들의 의견을 듣자 도리어 총 공격을 명했던 것이다. 몇 차례의 결사대를 보냈지만 모두 전멸하고 말았던 것이다.
- 각하, 부다구치 장군께서 왔습니다.
- 오, 장군.
- 안녕하시오, 사령관 각하. 하하하.
- 잘 왔소. 잘 왔소. 자, 않으시오.
- 하하하. 사령관 그 넙적한 얼굴을 보고싶어 왔소.
- 고맙소. 부다구치 장군, 같은 전선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구려. 자, 우선 한 잔.
- 오! 위스키. 어디서 났소. 귀한게 있구려. 음?
- 바시마루가 나한테 선물을 보내주지 않았겠소?
- 선물이라니. 어. 어디 영군 포로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구만?
- 맞았어. 바로 맞았단 말이오. 자, 우선 한 잔.
- 고맙소, 사령관. 사령관, 술은 싱가폴을 함락 시킬 때 까지 사령관께 맡겨 두겠소. 오늘밤엔 사단 전 병력이 부키데마 고지에 돌입 하겠소.
- 그래. 그 전에 사령관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던 거요.
- 음. 고맙소. 장군, 건투를 빌겠소.
- 스키 군!
- 네.
- 명령. 메트리지 저수지를 점령하라. 보병이 먼저 포육을 가한다음 보병부대와 해군 메트리지 저수지를 점령 싱가폴 전역 수돗물을 끊어 버려라.
- 네. 메트리지 저수지를 점령하고 수돗물을 끊도록 명령 하겠습니다.
(입력일 :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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