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벽, 부키데마 고지. 졸바르 수도 도하작전에 성공한 일본군은 싱가폴 시에 돌입하자면 반드시 점령하고 돌파하지 않으면 안되는 요충이 있었다. 그것이 부키데마 고지 죽음의 벽이다. 싱가폴을 방어하는 주력부대 영국군과 호주군은 이 부키데마 고지 일대에 철통같은 화력의 방벽을 쌓았다. 멀리 해안에 쏘아 올리는 25센치 30센치의 거포 그리고 박격포 속사포에 중기관총까지 그 수많은 포탄이 하늘에서 엇갈리고 섬광을 이룰때 하늘 전체에 새하얀 벽을 이룬듯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은 이 탄원과 섬광의 벽을 새하얀 벽 또는 죽음의 벽이라고 불렀다. 싱가폴 전투에 있어서 양군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지가 바로 이 죽음의 벽 부키데마 고지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 이와자키 특파원, 도메이 통신의 고이에 특파원, 마이니치 신문에 야나기 특파원 등 많은 기자들이 전사한 것도 이 죽음의 벽 부키데마 고지에서 였다. 일본군은 이미 전사 3천을 넘었고 부상자는 6천을 헤아리고 있었다.
- 저 벽을 무너뜨려라. 저 죽음의 벽을 무너뜨려라. 저 죽음에 실벽을 쏴라. 전군이 부키데마를 ..하라. 최후의 이르기까지 포병은 죽음의 벽을 쏘고 보병 혼자 숨을 감행해라. 최후의 최후의 한 사람까지.
- 지금 들으시는 이 일본어 방송은 그 당시 부키데마 고지를 공격하는 실황 녹음 입니다. 울리는 포성도 생생한 그 실황 입니다. 그럼 원문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지금 일본군이 서있는 이 고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싱가폴 시가 일대는 화재를 이루고 검은 연기가 하늘에 치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맹렬한 포격과 폭격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바른편 후방면에는 영국군의 고사포 진지가 있는 모양 입니다. 일본기가 출격할때마다 그 전후좌우에 고사포 탄막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 고지 바로 아래에는 싱가폴 항에 이르는 도로 그 도로상에는 지금 탱크와 장갑차가 달리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보병들이 탄 장갑차가 따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에도 이 포성이 들릴 것입니다. 하늘을 울리며 지나가는 그 포의 은항 입니다.
죽음의 벽 부키데마 고지에서 양군이 처절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싱가폴 시민들은 무사태평 이었다. 머리 위로 일본군 비행기가 선행하고 시내의 여러군데 포탄이 떨어졌지만 시민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호외라고 쓴 전단이 뿌려졌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본에 단독강화를 제의하고 싱가폴을 중립도시로 만들도록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호외를 줏으려 하지도 않았다. 아델피 호텔에서는 흥겨운 재즈가 연주되고 시민들은 춤을 즐기고 있었다. 나폴스 호텔에서는 떠들고 마시고 무사태평한 장교들로 초막문을 이루고 있었다. 스트레이트 타임스지는 신문용지란으로 한장만을 발행하고 있었다. 그래도 1면 톱기사만은 매일같이 조금 지각있는 소리를 했다.
- 희망을 가지라. 싱가폴 시민 여러분. 싱가폴은 궐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궐기할 것이다.
- 지금 싱가폴 시에 있는 150만병의 양주와 6만 칼론의 백알은 곧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버리기를 희망한다.
- 1941년 2월 10일 일본군은 싱가폴 시 일각에 돌입했다. 오전 6시 영국군 사령관 파스발 장군은 기관총 소리에 잠이 깼다. 일본군이 싱가폴 경마장 근처까지 진격해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곳은 장군의 숙소인 나폴스 호텔에서 자동차로 겨우 7분 밖에 안걸리는 거리였다. 장군은 거리에 나가 봤다. 언제나 복잡하던 거리에는 사람 하나 차 한대 보이지 않고 기묘한 광경이었다. 하늘에는 일본 정찰기 한 대가 흡사 먹이를 찾아 헤매는 매처럼 선회하고 있었다. 장군은 주검의 거리를 혼자 서성대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오가 지날무렵 일본군 정찰기는 길쭉한 나무상자 여러개를 투하했다. 나무상자는 곧 싱가폴 영국군 총 사령관 파시발 장군에게 전달됐다. 그것은 일본군 야마시타 사령관이 파시발 장군에게 보내는 메세지 였다.
- 일본군 사령관은 무사도 정신에 입각해서 제 마레이군 사령관인 각하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영광을 가집니다. 본인은 전통적인 영국 정신을 발휘하여 용감하게 고군분투한 가운데 싱가폴을 방어하고 있는 각하의 군대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전황은 이미 싱가폴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상 헛된 저항을 하는것은 무고한 비 전투원을 희생시키고 철저한 전쟁의 참화를 초래할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무익한 저항은 각하의 휘하 영국군의 명예에 아무런 기여도 못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본인은 각하가 이 권고에 따라서 거무 무의미한 저항은 단념하고 지체없이 전 전선에 걸쳐 전투를 중지하고 군사사절을 파견하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에 반해 여전히 저항을 계속할 시는 철저하게 싱가폴을 공격할 것입니다. 본 권고를 끝내면서 각하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1. 군사사절이 전진해 올 길은 부키데마 가로 정한다. 2. 군사사절은 큰 백기 및 영국기를 들고 약간명의 호위병을 수양할 수 있다. 이상. 1942년 2월 10일 대일본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
- 싱가폴 방면 사령관 파시발 장군에게 명령. 싱가폴 방면 사령관 파시발 장군에게 명령. 귀관은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전투를 계속하여 필요하다는 시가전을 전개하라. 적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그들에게 손해를 주는 귀관의 행동은 기타 전선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귀관의 사정은 십분 양해한다. 그러나 계속 용전분투 하기 바란다. 여월한 일이 있더라도 싱가폴을 사수하라. 싱가폴을 사수하는 것이 귀관의 의무다. 이상. 영국군 총사령관 웨벨 대장.
- 그날 밤 25군 사령관 야마시타는 작전참모 스치 마스노부 중자를 불렀다.
- 스치 군,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가.
- 네, 각하.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아직도 그 항복 공고문이 파시발 손에 안들어간 것이 아닌가.
- 각하, 정찰기가 그곳을 무려 21개나 싱가폴 시가지에 투하 했습니다. 그 21개 중 하나도 파시발한테 안들어갈리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 음. 그럼 파시발이 받기는 받았는데 아직 항복할 의사가 없단 말이지?
- 그렇습니다, 각하.
- 음. 그렇다면 말이야. 스치 군.
- 네.
- 10센치 가능포와 15센치 가능포 부대를 진출시켜 싱가폴 시내 전역에 포격을 가하도록 명령하게. 그리고 부키데마 고지에는 기타 삼포, 야포, 박격포 등으로 계속 포격하도록. 탄환이 있는 한 포격을 계속 하라고 명령하라.
- 네.
- 그리고 보병사들은 계획대로 부키데마 고지에 결사대를 투입 하도록.
- 알았습니다, 각하.
- 지금 여러분이 들으시는 이 일본어 방송은 그 당시 25군 작전참모 스치 마스노부 중자의 말입니다. 1942년 2월 11일 일본군은 비행기로 항복 권고문을 투하 했지만 밤이 되도록 회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보병도 다시 맹렬한 포격을 가했다. 영국군도 300문 가까운 대포로 부키데마 고지에 집중 사격을 가해왔다. 이때 10센치 15센치 중포가 도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중포로 싱가폴 시내에 포격을 가했다. 청취자 여러분, 이 포성은 일본군이 싱가폴 시내를 포격하는 그 당시의 생생한 실황 녹음 입니다.
(입력일 : 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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