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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38회 - 일본의 말레이 공격
제38회
일본의 말레이 공격
1967.12.19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 홍콩 공략이 끝난 다음 일본군의 관심은 마레이 공략 이었다. 태국 서쪽 암담한 바다 정월 그믐 달이 없는 어두운 밤, 한 척의 보잘것 없는 어선이 서서히 파도를 가르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열달 전 1941년 정월 1일날, 이윽고 어선은 남부태국 어느 한적한 해변가에 닻을 내렸다.


- 자, 내리십시오, 손님.


- 대답도 없이 한 사나이가 백사장에 내렸다. 사나이는 태국과 마레이 반도 경계선 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등에는 초라한 봇짐 하나, 누가 보든지 배고픈 것을 참으며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쿠리였다. 그 당시 마레이와 태국에는 이런 쿠리들이 많았던 것이다. 사나이는 창퐁에서 빼난 콰라름풀 이렇게 전 마레이 반도를 돌아다닌 다음 싱가폴까지 갔다가 며칠 후 다시 어순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 자, 들지. 수고했어.

- 네.

- 신정 축하 술 치고는 좀 늦었군.

- 고맙습니다.


- 2월 중순께 사나이는 대만에 나타나 대북시 교외의 어떤 허스름한 집에서 술잔을 들고 있었다. 마주앉은 사람은 일본 육군 제복의 사나이였다. 그는 일본 육군의 정보 전문 장교 스치 마스노부 총장. 그리고 쿠리 차림의 사나이는 육군대학 우등생인 전 관동군 참모 아사에 시기야루 소자였다. 그리고 건물 밖에는 육군 제82부대라고 아무렇게나 갈겨 쓴 판자조각이 걸려 있었다. 이 건물 주민들은 대만에 일본 군들로부터 도깨비 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부대란 이름 뿐 인원도 몇 사람 안되고 더욱이 군기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 82부대야말로 일본이 서남 태평양 일대를 공격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학을 한 첩보 부대였다. 그리고 스치와 아사에 두 장교는 일본 육군에서 이름 난 말썽꾸러기였다. 두뇌는 명석하고 유능한데 늘 군기를 어기고 처벌만 받는 존재들이었다. 이 사나이가 이 82부대에 근무하게 된 것 부터가 그 시초는 처벌이 인연이 된 것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스치 중자님.

- 어, 아사이 군. 왠일이야. 대만항 끝까지 나타나게. 응?

- 놀러왔습니다.

- 아니, 또 무슨일 저질렀나? 응?

- 놀러왔다니까요.

- 전속은 아닐테고 좌우간 무슨 일인가.

- 이 82부대에서 일을 좀 보게 해주십시오.

- 안될 것도 없지만 데체 어찌된 영문인가.

- 그 참모본부 일 못해 먹겠습니다. 관동군에서 실컷 날치고 돌아다니다가 참모본부에 와서 책상을 끼고 앉아 있자니 당췌 따분해서 견딜 도리가 있어야지요. 그래 불쑥 생각난 김에 그만.

- 그럼, 근무지 무단 이탈이란 말인가?

- 말하자면 그렇지요.

- 그럼 또 처벌 받아야 하지 않은가. 응?


- 예상했던 대로 아사에는 곧 체포되고 재판을 받아 3개월 금고형에 처해졌다. 그 형을 받고있는 동안 스치는 몰래 아사에를 빼돌려 비밀 임무를 띄워 타이와 마레이에 파견했던 것이다. 그것도 버젓이 대만 총독부 농민기사 후지 다케시라는 병명으로 외무성 여권까지 받아가지고 들어갔던 것이다. 한편 스치는 스치대로 민간 비행기와 군 정찰기를 타고 마레이, 타이, 싱가폴 일대를 세밀하게 탐색했다.


- 제 82부대 스치 마사노부 중자. 제 82부대 스치 마사노부 중자. 82부대가 수집한 자료 일체를 가지고 참모본부에 출두하기 바람. 이상 참모본부 다나카 센이치 소장.


- 사흘 후 7월 14일 스치는 참모본부에 출두했다. 그런데 참모본부 다나카 소장이나 육군성 군무국장 부도우 소장 등 예전 스치를 적극 지원해 주던 상관들이 모두 스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울화통이 터진 스치는 중국 파견군 시절부터 오랜 친구인 참모본부 구몽 중자를 찾아갔다.

- 도데체 뭐냔 말이야. 바쁜 사람을 대만 한 끝에서 일것 오라고 해놓고 왜 모두 내 얘긴 들으려하지 않는가 말이다.

- 하하하하.

- 웃지만 말고. 뭐야. 도조가 또 나를 처벌하겠다는 거야. 응?

- 그게 아니야.

- 그럼 뭐야.

- 사정이 좀 달라졌어. 지난 6월 자네가 82부대에 처음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나.

- 어.

- 그때 그 보고서가 참모본부에서 아주 대인기 였네. 한창 모든 남방 진격에 열을 올리고 있을때니까 말이야.

- 그런데 지금은 어떻다는거야.

- 히틀러가 신나게 소련에 밀고 들어가니까 일본도 같이 밀고 들어가야 한다는거야. 버스를 놓치면 안된다는것 같이.

- 뭐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 내 얘길 끝까지 듣게. 참모본부에서도 히틀러가 금년 안으로 소련을 굴복시킬거라고 믿는 작자들이 많다네.

- 제기랄. 돌대가리들은 할 수 없군.


- 그날 밤 스치는 그 참모본부 장교들이 모인 주석에서 그 말썽꾸러기 반항아의 본성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 도데체 참모본부가 뭐란 말이야. 참모본부가 대소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어딨는가 말이다 나는.

- 어이 스치. 스치.

- 본관은 대소전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남방진격을 봐.

- 이리 좀 나와.

- 이거 놔. 왜이래.

- 글쎄 내 말 좀 들어. 잠자코 있어. 너 도쿄에 와서 사흘밖에 안됐잖아. 여기 분위기를 알 턱이 없단 말이야. 함부로 덤비다간 이번에 정말 모가지야. 모가지. 알겠어?


- 불과 일주일도 못 가서 참모본부의 북진론은 남방진격론으로 변했다. 스치 중자는 참모본부 고위층 그리고 아직 육상지지에 있는 도조 앞에서 82부대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설명했다.


- 결론으로써 말씀드리자면 싱가폴은 바다 정면에서 공격할 때는 견고하기 이를데 없지만 후면 즉 마레이 반도 측은 사실상 방기가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저항은 예상 됩니다만 아국 전차대라면 무난히 돌파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한편 마레이 반도의 항공 병력은 수 적으로는 영군 비행기 582기 입니다만 본인이 탐색한 결과 200기에 불과 그 200기도 거의 다 실전에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 입니다.


- 스치의 보고가 끝난 다음 참모총장 스기야마가 발언했다.


- 스치 군의 보고는훌륭한 것으로 안다. 국가를 위해 스치 군에게 감사한다. 이 기회에 작전 진행속도에 대한 스치 군의 의견은 어떤가 알고싶다.

- 아군이 명치전인 11월 3일에 공격을 개시한다고 가정하면 약 2달 뒤인 정초에는 마닐라는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4달 후인 2월 11일 기원전에는 싱가폴, 5달 뒤인 3월 10일 육군기념일에는 자허, 8월 29일 29일 촌장절에는 남궁을 함락시킬것으로 사려하는 바입니다.


- 이 회의에 옵서버 격으로 참석해서 한마디 발언도 없이 긴 파이프로 담배만 피우고 있던 육상 도조가 이때 스치에게 물었다.


- 스치 공, 미·영에 대한 전쟁이 어떤 형태로 종결 될 것인지 귀관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 소관의 생각으로는 전쟁의 정점양약 즉 정략과 전투가 긴밀하게 격동을 가해서 가능한 한 빨리 종결 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 스치는 교묘하게 도조가 묻는 말을 피하고 함축성 있는 대답을 했다.
한편 마레이 방면 25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야마시타 도모유키 중장은 어떤 인물인가. 멀리 니미로쿠 사건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니미로쿠 사건이라고 해서 1936년 2월 26일 육군의극단분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예전 수상과 군 순회부 인사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야마시타도 이 사건에 관련해서 천황 히로히도의 비위를 건드렸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일본 육군은 이른바 통제파와 황도파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됐다. 통제파에는 도조 히데키 이하 부도 군무국장 등 과격파들이 속해있고 그들과 뜻이 다른 그룹은 모두 황도파라고 지목 됐다. 야마시타는 황도파라고 지명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도조와는 사이가 나빴다. 늘 만주나 중국 또는 구주시찰이라는 명목으로 변방으로 쫓겨 다녔고 또 어느 직책도 3개월 이상 넘기지를 못했다. 고노이의 제3차 내각이 성립되기 며칠 전 또 도조는 야마시타를 마주로 쫓아 버렸다. 야마시타가 고노이 내각의 육군대신이 된다는 뒷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만주에 부임해서 석 달도 못 됐을 때 야마시타는 또 마레이 군 총 사령관 내명이 있어서 일본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마레이에 보내서 죽이자는 수작일까.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야마시타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야마시타의 주임 작전참모로 스치 중자가 임명 됐다. 한 사람은 도조 일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군부내의 이단자, 한 사람은 명석하고 유능하지만 말썽꾸러기 소장 장교, 귀찮고 말썽 많은 것들을 한데 묶어서 멀리 쫓아 버리자는 심산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야마시타 사령관과 스치 작전참모가 이끄는 제 25군은 일로 마레이로 향했다.
12월 8일 새벽 4시, 마레이 동쪽 해안 심고라 앞바다에 수송선 유효마루를 내린 야마시타는 사병대와 같이 해안선에 다다랐다.

(입력일 : 2008.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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