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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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태평양 전쟁
제31회 - (인간어뢰) 9군신 이야기
제31회
(인간어뢰) 9군신 이야기
1967.12.11 방송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명실공히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풍요한 산실로서의 명망과 평판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동아방송의 다섯번째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67년 11월 6일부터 69년 4월 27일까지 매일 밤 10시 10분부터 20분간 방송된 ‘태평양전쟁’은 모두 457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때까지 전방송의 프로그램 가운데 청취율 1위를 계속 유지해 다큐멘터리의 강세를 확인해준 작품이다.
-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지 석 달, 1942년 3월 6일자 일본의 신문과 방송은 전승 기분에 들뜬 일본인들을 또 한번 흥분과 감격속에 몰아 넣었다.


- 특별 공격대 구군신, 특수 잠항정 구군신 2계급 특진.

- 아니 도대체 특수 잠함정이 뭘까?

- 인간 어뢰야. 이 군신들이 어뢰를 타고 그냥 군함 옆구리를 들이 받았는데 인간 어뢰가 군함에 부디쳐 가는 전법이야.

- 어, 구군신.


- 신문은 구군신이라고 해서 아홉사람의 군인 사진을 크게 소유하고 대서특빌했다. 야스쿠니 진자에서는 또 구군신의 위영제가 크게 올려지고 모든 일본인들은 그 충성과 용맹에 다시 한번 감격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 그런데 좀 이상하군. 특수 잠함정은 5척이라 하고 한 척에 두 사람씩 탔다는데 어찌 군신이 아홉사람 뿐인가. 군신이 하나 모자라는거 아니야.

- 하늘의 새라도 올라 갔는가. 군신 하나가 어디 새버렸어.


- 이처럼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 제 이름은 포로 제1호, 하나 모자란다고 한 그 군신이 바로 접니다. 포로 제1호, 태평양 전쟁에 있어 일본군과 미군을 통틀어 맨 먼저 첫째로 잡힌 포로가 바로 접니다. 전쟁이 끝나 오랜 포로 생활을 마치고 쑥밭이 된 고국에 돌아왔을 때 저에게 붙여준 이름이 이 포로 제1호 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를 손가락질 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 차갑고 가시돋힌 눈들 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어쩔수 없었던 것입니다.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제 얘깁니다. 그리고 그 아홉 군신들 얘깁니다.


- 일본이 이 특수 잠항정 이라는 것에 착상한 것은 훨씬 오래전 일이었다. 그 제1호가 완성된 것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0년 초, 특수 잠항정 또는 각표적 콩잠이라고도 불렀다. 콩처럼 작은 잠수함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인간 어뢰 또는 특공대라 불렀다. 길이 24미터, 직경 1.85미터, 무게 46톤, 항속 시간은 약 5시간 어뢰 두개를 달고 2인승 적지로 달리는 새로운 무기였다. 진주만을 기습하기 석달전 구군신 중 선인 장교인 이와사나오치 해군 대위가 연함 함대장관 야마모도에게 특수 잠함정을 진주만 기습에 써달라고 청원 했었다.


- 이것으로 습격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습격한 다음 수용이 불가능 하다. 모함에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다. 반드시 죽는다는 병기가 되지 않겠는가.


- 야마모도도 처음에는 반대 했다. 그 후 여러차례 개량 했다. 마침내 11월 17일 밤.


- 저는 나중 군신이 된 아홉 사람들과 같이 마지막 축배를 나누고 모함 이 24호 잠수함을 탔습니다. 잠수함은 태평양 거센 물결을 가르며 일·러 진주만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산천 초목은 끝없이 황량한데 십리 부는 바람 피 비릿내 나는 전장 말은 가지 않고 사람은 말이 없네 일본 NHK 방송은 저녁마다 방송끝에 일·러 전쟁 때 무기 장군의 이 옛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태평양 해역에 펼쳐져 있는 전함대에 대한 암호 방송이었습니다. 외교교섭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기습 준비에 만 유감 없도록 이런 뜻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은 NHK 당국자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군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을 따름 이었습니다.
며칠 후 라디오에서는 경쾌한 재즈가 흘러 나왔습니다. 진주만이 가까워진 것을 알았습니다. 재즈는 호놀룰루 방송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진주만을 기습하기 전날 밤 잠수함 좁은 제 자리 옆에는 이나가키 병조가 자고 있었습니다. 특수 잠함정을 타고 저와 운명을 같이 할 전우 입니다. 그 자의 얼굴을 보며 저는 마지막 일기를 적었습니다.
이미 죽는 것이 결정돼 있지만 설마 죽을리야 없겠지 하고 이 시간까지 살아왔다. 장열하게 죽어가는 군인의 죽음과 인생을 맛보고 죽어가는 인간의 죽음, 죽음에 두 가지가 있을 수는 없다. 다만 이른가 늦은가 그것 뿐이라.
그런데 공교롭게도 기습이 시작될 몇 시간 전 우리 잠함정은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 이봐, 이나가키. 어때? 안되겠어?

- 네. 이거 틀렸는데요? 심도 조정기 뿐이 아니라 나침반까지 고장이 났습니다.

- 뭐? 나침반이?

- 네. 나침반이 아주 수리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 어떡한다. 나침반 고장이면 단 100미터도 못 갈거 아니야.

- 죄송합니다, 잠장.

- 아 뭐 이나가키 병조 탓인가. 할수 없지. 단념하는 수 밖에.

- 그렇지만 진주만 어구까지 와서 이대로 돌아 갈수야 없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잠장.

- 괜찮아. 걱정마. 이번 서전엔 빠지더라도 살아 있으면 또 다음 기회가 얼마든지 있어.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야. 개중할 필요는 없는거야.

- 그렇지만.

- 괜찮아. 괜찮아. 함장한테 얘기해서 이번에 우리 잠함정 만은 빠지도록 하지.

- 네. 알았습니다.

- 어이, 고마키 소위.

- 네.

- 출격준비 어떻게 됐어? 모두 끝났는데 아직 수리가 안됐나?

- 틀렸습니다. 심도기 뿐 아니라 나침반 까지 고장 났습니다.

- 뭐? 나침반 까지?

- 그렇습니다, 함장.

- 수리가 안되겠는가?

- 불가능 합니다.

- 그럼 고마키 소위는 어떡하겠소.

- 글쎄올시다.

- 글쎄올시다 라니. 무슨 소리야.

- 네.

- 아니, 못가겠단 말인가?

- 아 아니옳습니다. 나침반 고장으로썬 도저히 그러니까 수리해가지고서.

- 수리가 불가능 하다고 하지 않았나. 또 지금 당장 출격해야 되는데 언제 수리를 해. 응?

- 죄송합니다, 함장님.

- 도대체 고마키 소위는 여태까지 어떻게 훈련 해왔소. 이제 마지막 순간에 와서 결전에 앞서 태도가 분명치 않아. 해군장교 한 사람 키우는데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리고 얼마나 많은 국비가 든다는 것을 고마키 소위가 모르지는 않겠지.

- 죄송합니다, 함장님. 제 생각엔 나침반 고장이면 단 100미터도 못 가고 따라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 어뢰가 있지 않은가 어뢰가. 나침반 고장이면 어뢰가 있잖아. 어? 어뢰를 가지고 부딪히면 될거 아닌가. 응?

- 알았습니다, 함장님. 가겠습니다. 절 보내십시오.

- 각오가 됐는가?

- 네.

- 가서 얼른 준비 하시오.

- 네.


- 이윽고 우리 조그마한 잠함정은 몸부림을 치듯 모함을 떠나 바닷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죽을바엔 깨끗하게 군인답게 죽어 보자. 나는 떠나기 전 전신에 골고루 향수를 뿌렸습니다. 나침반 따위 고장 안나도 죽고 나도 죽고 아무래도 죽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죽는 바엔 임무를 완수하고 어뢰를 큼직한 전함 옆구리에 힘껏 찔러넣고 죽는다는 그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것을 함장은 좀 오해했던 모양 입니다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함장을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캄캄한 물 속에서 나침반 고장으로 방향도 모르고 그저 달리기만 했습니다.


- 이나가키 병조. 부상.

- 네.


- 헛! 갑시다. 빨리. 빨리.

- 아하하하하. 봤지 이나가키. 불빛 말이야.

- 네. 봤습니다.

- 큰일날뻔 했다. 진주만이야 진주만. 앞이야. 바로 앞에와 떠오를게 뭐야.
이나가키, 침모를 돌려.

- 네.

- 멀찌감치 떨어져 있자.

- 네.


- 잠함정이 서서히 부상해서 흡사 수영할 때 물 속에서 나온 사람이 머리의 물을 털듯 전신을 털고 있는 순간 망막이 비친것은 밝은 불빛 이었습니다. 어디 항구로 보이는 붉은 등 푸른 등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듯 했지만 거리는 훨씬 멀었을 것입니다. 당황한김에 가깝게 봤을 것입니다. 또 진주만이라고 단정 했지만 그것도 의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마오이나 어디 다른 항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 이나가키, 자나?

- 아니요.

- 어딘지 모르겠는데. 또 한번 올라갈까?

- 네.

- 잘해! 잘해!


- 순간 가까운 거리에 있던 구축함이 전속으로 달려왔다. 이윽고 구축함은 폭뢰를 쏘아 올렸다.

(입력일 : 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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