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 전쟁의 승패에 크게 좌우한 첩보전. 미국과 일본의 첩보전은 이미 오래전 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1904년 2월 8일.
- 임시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임시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본 해군 함대가 여순함이 정박중인 로수아 함대에 기습 공격 했습니다. 2월 8일 밤 일본 해군 도고 함대는 여순함이 정박중인 로수아 제1 태평양 함대에 사전에 아무 경고도 없이 기습 공격 했습니다. 일본 함대 사령관을 해군 중장 도고 헤이하치로 이날 밤 로수아 함대 장교들은 여순 시내에 나가 댄스를 즐기고 함대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었습니다. 유슨발 불란서 루 저널지 보도. 러소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 했을 때 양국은 선전포고를 교환하지 않았다. 이제 일본은 사전에 선전포고를 한다는 국제적 도의 같은것을 문제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계를 다시 놀라게 했다. 일본 해군은 비열하게 기습됐다. 위반 행위로써 시작했던 것이다. 선전포고와 적대 행동을 하지 않고 도리어 잔인하게 일본의 ..가 모든 외교 노력을 짓밟고 평화 애호의 희망을 깨뜨리고 전쟁을 개시했다.
- 야! 했어. 했어. 했단 말이야. 도고. 도고! 러시아 함대가 뭐냔 말이야. 격멸 러시아! 격멸 러시아!
- 야마모도 이소로쿠. 젊은 야마모도 이소로쿠는 도고 함대의 승리에 흥분하고 스릴을 느꼈다. 야마모도 이소로쿠는 이 때 스무살. 해군병 학교 4학년 이었다. 1904년 일본 명치로는 37년 2월 8일. 이듬해 1905년 야마모도는 소위 후보생으로 해군 기함 미까사를 타고 일본 해전에 참가했다. 이 전투에서 야마모도는 바른 손가락 셋을 잃었다. 그리고 그의 생애의 목표를 확립 했다고 생각 했다.
- 성국의 흥패는 이 일전에 있다. 각원 일층 불여 노력하라. 이 제트 신호와 도고 제독은 내 생애의 모토다. 나는 개인의 신조, 우정, 가정생활 일체에 있어 이 제트 신호와 도고 제독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도고 제독.
- 제트 신호. 기함 미까사의 마스트에 날리던 깃발 그리고 도고가 휘하 함정에 보낸 무전 신호 이름이다. 여순항, 로수아 함대에 비열하게 기습을 감행한 도고를 숭배하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자란 야마모도 이소로쿠. 진주만에 대한 비열한 기습은 이미 이 때 부터 싹 텄다고나 할까. 야마모도는 1923년 39살에 대전, 49살이 되기 전에 소장, 1934년에 중장, 1939년 8월 30일 드디어 연합 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됐다. 그 때 야마모도의 나이 55세. 균형잡힌 체구에 눈썹이 짙은 사나이였다. 그 무렵 야마모도를 연합 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해서 해상 근무로 쫓아 버린것은 야마모도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것은 야마모도가 한 때 일·독·이 삼국동맹을 반대했기 때문에 암살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육군의 과격분자 우익단체 심지어 해군의 젊은 장교들 까지도 야마모도를 없애라는 소리가 놓았고 늘 자객이 야마모도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합 함대 사령관에 임명된 야마모도는 그 즉시로 미국에 일격을 가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의 가능성은 이미 미국 해군 제독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10년도 전인 1932년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스코필드 제독은 미국 함대 작전 계획 제 14호를 수정하고 경고했다.
- 긴급한 사태가 언제나 태평양에 존재한다. 전쟁이 바로 눈 앞에 절박해 있더라도 선전포고는 없을 것이다. 적은 아메리카 함대가 집결해 있을 때 습격해 올 것이다. 적은 타격 무기의 주체로써 항공모함을 쓸 것이다. 적은 선전포고에 앞서 하와이 제독 내지 서해안에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동경 180도 선에서 동쪽에 있는 함대는 적의 함대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180도 선은 태평양에 있어서 아메리카 해군의 방위선 제1선 이다.
- 이 무렵 진주만에는 미국 육군기 38대가 있었다. 미국은 이 병력이면 적의 공격 부대를 24시간 전에 능히 발견할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경 180도를 돌파해서 기습을 해오는 적함대를 24시간 전에 발견할수 있는가 없는가 이 테스트를 위해 이듬해 1933년 2월 미국 해군은 태평양 일대에서 대규모의 해전 연습을 했다. 진주만에서 미국 서해안 일대를 방어하는 함대는 청함대. 그리고 이 방위선을 돌파해 공격을 감행하는 함대는 홍함대. 그런데 해전연습 경과 청함대는 홍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홍함대는 방위선을 돌파하고 서해안 깊숙히 까지 침입을 했던 것이다. 수비가 공격하는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국 해군의 제독들은 새삼 놀랐다. 이 사실을 야마모도는 10년이 지나도록 잊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1941년 1월 야마모도는 연합함대 사령부의 가장 신임하는 오니시 다키지로 소장을 불렀다. 오니시는 제 10일 항공함대 참모장이었다. 오니시는 젊은 해군중장 하라다 미노루를 같이 데리고 왔다. 야마모도 사령관실, 벽에는 큼직한 태평양 지도가 걸려있고 테이블 위에는 진주만 일대의 정밀한 해도가 펼쳐져 있었다.
- 오니시 군, 미군함대에 연습 14호 개혁을 기억 하는가?
- 14호 개혁.
- 으흠하하하하. 이제 10년도 더 지난 옛날 얘기지만 미국 태평양 함대가 진주만 일대에서 벌인 연습 말이야.
- 아! 알겠습니다. 그것이 14호 개혁 이었던가요?
- 그래. 맞았네. 하라다 군도 잘 들어보게.
- 네.
- 그 때 타치 하버에서 진주만 일대를 방비하는 함대가 태평양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네.
- 그렇습니다, 각하.
- 그거야. 바로 그 때 공격하는 함대는 180도 선을 돌파 하고, 진주만을 돌파 하고, 미국 서해안 까지 육박해 갔거든?
- 그렇습니다.
-그거는 말이야. 알겠나? 또 한가지. 오니시. 트란트 이변은 알겠나?
- 아! 알고 말고.
- 하라다 군도 알겠지?
- 네. 알고 있습니다.
- 군항 안에 정박해 있는 전함이나 항공모함에 공중에서 어뢰 공격을 가할 수 있겠는가? 가능한가? 이런 연구가 몇해 전부터 여러나라 전략가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었네. 영국 커닝검 제독을 비롯해서 이태리 전략가들인데. 그래. 이태리에서 먼저 선수를 썼지. 이태리가 먼저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해 있는 순양함 크로세스토 호를 공격했단 말이야. 어뢰 공격기가 급강하 하면서 어뢰 2개를 발사 했는데 그만 어뢰는 땅 속에 박히고 말았지. 그러나 몇달 뒤 영국 항공모함 이러스토디오스 호에서 날아간 어뢰 공격기들은 타란트 항에 정박해 있는 이태리 함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단 말이야.
- 알고 있습니다.
- 어떤가, 오니시. 그만하면 내 생각을 짐작 하겠지?
- 네. 알겠습니다.
- 이 미국해군 연습 결과와 트란트 이변이 내가 진주만 기습을 구상하게 된 동기란 말이야. 어떤가, 하라다 군.
- 네. 알겠습니다.
- 그런데 기술적인 것이 큰 문제네.
- 진주만의 수심 말씀 이지요?
- 그래. 2000미터 고도에서 급강하해 발사하면 어뢰가 30미터는 물 속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 그렇습니다.
- 깊은데서는 60미터나 들어가겠는데 진주만 수심은 12미터 입니다.
- 오니시 군,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12미터 이상 내려가지 않게 하겠는가. 이것이 문제야.
- 알겠습니다. 어뢰 발사시 비행고도 어뢰에 대한 특수 장치 등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 음. 오니시 군, 부탁해.
- 네. 전력을 다해 보겠습니다.
- 고맙네. 그리고 하라다 군.
- 네.
- 하라다 군은 이 진주만 공격이 가능한가 어떤가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을 짜 보게.
- 알았습니다, 각하.
- 그 날 부터 하라다 총저는 규슈 아리아케만에 정박해 있는 항공모함 .. 자기 방에 키를 잠그고 열 흘 동안이나 틀어박혀 있었다. 마침내 하라다는 야마모도에게 그 결론을 보고 했다.
- 각하,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공격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얼만큼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 이 하라 총저는 그 뒤 12월 8일 진주만 공격에 직접 참가했다. 1945년 대자로 제대한 뒤 일본 항공 자위대 막여장 측에 있었다.
(입력일 : 200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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