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 전쟁의 승패에 크게 작용한 첩보전, 미국과 일본의 첩보전은 이미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던 1941년 1월 9일날 일본 우손회사 소속 태평양 항로 1만 7천톤 급의 호화 여객선 닛다마루가 오랜 항해를 마치고 하와이 호놀룰루항을 향해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 큰 배에 일등 선객이라고는 오직 한 사람 밖에 없었다. 30도 안돼 보이는 젊은 사나이, 승객 명부에는 모리무라 다다시 라고 적혀 있었다. 직업은 호놀룰루 일본 영사관에 새로 부임해 오는 견습영사. 이 사나이는 닛다마루가 요코하마를 떠나 호놀룰루에 이르는 동안 줄곧 다른 선객들의 화제에 올랐다. 견습영사라면 그리 높은 직위도 아닌데 가장 좋은 선실을 썼고 또 귀빈으로서 저녁마다 선장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그의 일등 선실 요금이 2천원 이라는 말을 들은 선객들은 더욱 놀랐다. 그의 월급의 10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던 것이다.
- 전보 왔습니다.
- 나한테?
- 네. 모리무라 선생님.
- 음. 아 고맙소. 나가 있어요.
- 네.
- 모리무라 영상, 닛다마루 호놀룰루에 도착해도 내리지 말고 선실에서 기다리기 바람. 호놀룰루 영사관 기다 총 영사.
- 기다 총 영사라.
- 모리무라는 도착한 날부터 또 영사관 직원들의 화제에 올랐다. 우선 총 영사 기다가 일개 견습영사에 불과한 모리무라를 직접 선실까지 찾아가서 정중하게 영접했기 때문이다. 열흘이 지났다.
- 아, 또 나가 볼까?
- 어. 따분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자, 그럼 수고들 하시오.
- 아니, 왜 저 저 친구 뭐야? 날마다 수영이 아니면 자동차를 몰고 다니니 말이야.
- 쉬, 외무성 고관 빽이라네.
- 어?
- 모리무라 씨의 하녀 얘긴데요.
- 어.
- 좀 이상 하데요. 방에는 늘 키를 잠궈두고 방을 치우지도 못하게 한다는 군요. 무슨 특수한 임무를 가진 군인이 아닌가 하던데요?
- 군인?
- 네. 해군장교 같은.
- 아니야. 해군장교라면 동작이 독특한 버릇이 있는데 저 친구한테 전혀 그런게 없어. 난 해군에 근무해 본 일이 있거든?
- 모리무라는 일 보다 노는데 열심이었다. 견습영사에 8급 이라는 제일 낮은 급이지만 놀러만 다녔다. 건장한 체구에 눈썹이 짙은 풍모, 돈을 잘 쓰고 유머가 있었다. 낮에는 하와이 아가씨들과 보트를 즐기고 전세 비행기를 타고 진주만 상공을 돌아 다녔다. 반에는 술을 마시고 모찌스키라는 일본 여자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에게 감상적인 시를 써 보내기도 했다. 기다 총 영사 전용 아파트. 기다와 모리무라는 문을 굳게 잠그고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암호기에 넣어 재생한 기밀 전보가 놓여 있었다.
- 고가와 대자가 오늘 친 전본데.
- 네.
- 고가와 대자 생각은 통계적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 진주만 일대를 바둑판 같은 눈을 만들어 놓고 조직적인 보고를 하라는 것이지.
- 조직적인?
- 그렇소. 군함 한 척 한 척이 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는 정확한 위치를 말하자는게요. 원문 대조 읽어 볼까?
- 네.
- 진주만 내 일제 군함 위치에 관해서 다음 요령으로 보고하기 바람. 1. 진주만을 모두 다섯 구역으로 구분함. 2. 구분은 귀관이 편리한 데로 변경해도 무방함. A수역 포드섬과 어시날 사이. B수역 포드섬 남쪽과 서쪽. C수역 진주만 동쪽 해안. D수역 진주만 가운데 해안. E수역 서쪽 해안과 해엽. 특히 항공 모함에 대해서도 부두에 정박 중인것 또는 북구에서 수리중인 것을 분명히 구분 할 것. 전함은 그 형을 명시 할 것. 이상.
- 음.
- 어떻겠소. 본은 전보 0008300 지급인데.
- 지난 월요일 보고 했으니까 급하진 않습니다.
- 이거 언제까지 보고 할 수 있겠소?
- 이틀이면 되겠습니다.
- 음. 부탁 하네.
- 모리무라는 여전히 드라이브를 하고 수영을 즐기고 술을 마시고 골프까지 했다. 정확하게 이틀 후 모리무라는 도쿄 해군군령부 제3과 정보 책임자 고가와 대자에게 비밀 암호로 보고했다.
- 진주만 일대에 지형 상황 수급 구분을 다음과 같은 로마자로 보고 하겠음. 1. 해군 조선소 수령 도쿠KS 2. 해군 조선소 도쿠 KT 3. 포드섬 부근 정박지 FV 4. 포드섬 주위 FZ 다음 9월 28일 현재 정박한 함정 KS구역 텍사스급 군함 1척, FV 수역 인디아나 포리스형 1척, 준 순양함 1척, FZ 수역 호놀룰루급 오마하급 경 순양함 7척, 구축함 26척, 기타 와이키키 해상 잠수함 1척. 이상.
- 모리무라의 비밀 통신은 모리무라가 179번째로 보낸 보고였다. 호놀룰루에 부임해 온지 얼마 안 된 사이에 179번째로 보낸 보고였다. 호놀룰루에 부임해 온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179번이나 보고를 했던 것이다. 모리무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기다 총 영사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놈팽이도 주정뱅이도 아닌 아주 우수한 스파이 였다. 본명은 요시까와 해군소위. 해군병 학교 시절엔 우등생 이었다. 모리무라의 비밀 전보는 곧 하와이에 있는 미국 육군의 비밀 통신소에서 캐취 했다. 전문은 곧 워싱턴으로 보내졌다. 빨간 기계 일명 매직은 이 무서운 암호 전문을 무난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곧 영문으로 번역이 됐다. 번역고나 크라머 중령은 곧 육군 정보부에 프라톤 대령에게 보고를 했다.
- 진주만을 바둑판이라.
- 그렇습니다.
- 바둑판 처럼 잘 아는 암호 통신은 이번이 처음 입니다.
- 음. 조금 이상하군.
- 프라톤 대령은 이 전문을 육군 정보부장 마일즈 장군에게 보고했다.
- 바둑판이라.
- 그렇습니다, 부장.
- 하하하하. 프라톤 군, 일본군은 별걸 다 알고싶어 하는군. 전번에 포착한 암호 전문은 물가를 보고 하라던데.
- 네.
- 그것도 호놀룰루 뿐 아니라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센프란시스코, 하바나 까지. 하바나의 밀가루 값과 고기 값을 비밀 전보로 알릴 이유가 뭐겠나.
- 그렇지만 부장. 이 바둑판 말씀 입니다.
- 아, 걱정말게.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유조선 수, 소집되는 흑인들 상황, 프레마톤에 있는 수리중의 군함, 필리핀에 있는 맥아더 장군의 항공력 규모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 싱가포르 까지 보고 하니까 진주만에만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는 볼 수가 없네.
- 프라톤 대령은 그래도 안심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해군 정보부장 윌킨슨 대령을 찾아갔다.
- 프라톤 대령, 이건 수새있는 것이네.
- 수새?
- 그렇지. 일본군이 공새보다 수새 있다고 봐야 하네. 수새를 위한 성격이야.
- 무슨 소린가.
- 일본군이 바둑판을 짰다는 것을 말면 진주만 함대들이 얼마만큼 빨리 출격 할 수 있겠는가. 태평양에서 해전이 벌어졌을 때 아메리카 태평양 함대가 좁은 진주만에서 몇 시간 걸려서 출격 할 수 있겠는가.
- 그럴까?
- 아, 틀림없어. 그러니까 이건 수새지. 진주만에 공격을 가한다는 의도는 아니야. 이건 일본군들의 되지못한 학자 취미일세. 하하하하. 아! 프라톤 대령, 함대라는 것이 어디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서 적의 공격이 오길 기다리고 있나.
- 그야 그렇지 않지.
- 그거 보게. 자네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네. 일본군도 마찬가지야. 그런 바보같은 짓은 안한다고 생각하네.
- 프라톤 대령은 윌킨슨 대령의 너무나 낙관적인 해석에도 동조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안심을 했다. 그래서 이 무서운 전보는 하와이 함대 사령관 킴멜 제독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서류철 속에 끼워넣고 말았다. 그러나 이 미군 장성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전쟁의 불안은 있었지만 일본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비열하게 진주만을 때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견습영사 모리무라 다다시, 사실은 우수한 스파이 요시까와 소위는 여전히 드라이브를 즐겼다. 전세 비행기로 하와이 상공을 날아 다녔다.
- 이하하하하. 아하하하하.
- 정열적인 하와이 아가씨와 진주만 보트 놀이를 즐겼다. 밤이면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셨다. 체육관에서는 검도사범 골프에 야구까지 즐겼다. 프라톤 대령은 2700만 분의 1 태평양 지도를 한 장 사다가 벽에 걸었다. 일본군의 암호 전문을 받았을 때 마다 그 관계되는 지점에다가 하나씩 잉크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10월 13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두 달 전 10월 13일 그는 또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지점은 펄 하버, 진주만 이었다.
(입력일 :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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