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방송극은 일찍이 아세아의 맹주라고 하던 군국 일본이 패망해간 생생한 증언 입니다.
- 에. 기탄없이 말씀 드리자면 지난 9월 6일에 어전회의 결정은 다소 경솔 했습니다. 외교가 성립 될 가망이 안보일 때에는 지체없이 개전을 결의 한다고 결의 했는데 이 결정은 지금에 와선 경솔 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도요다 외상의 이 발언은 군인 도조 생각으로써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전회의라면 황공 하옵게도 폐하를 모시고 연 회의, 그 회의가 경솔 했다면 신하의 입장으로서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총리 고노에가 또 도요다 외상의 의견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 전쟁은 1년 길어서 2년 까지는 지탱해 가겠지만 이것이 3년이고 4년을 끈다면 나로서는 자신이 없어요. 전쟁이냐 외교냐 그 어느 쪽에도 위험은 있습니다. 요는 어느 편이 더 위험하고 어느 편이 더 확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겠는데 본 총리로서는 아직도 외교편에 확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외교편을 택하겠습니다. 전쟁엔 자신이 없어요. 난 책임을 못 지겠습니다.
- 총리, 무슨 말씀이시오. 전쟁에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전번 9월 6일 어전회의에서 논의 됐어야 할 문제가 아니겠소. 어전회의에서 외교가 성립되지 않을 때는 대전을 결의 한다고 결정했소. 그 때 틀림없이 총리도 참석했고 동의까지 했소. 그런데 지금에 와서 책임을 못 진다면 육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소. 그럼 왜 그 때 말씀하지 않았소.
- 도조는 총리 고노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폐하를 모신 앞에서 결정된 사항을 지금에 와서 이의를 말한다는 것은 도요다 외상과 같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체 이 사람들은 폐하를 뭘로 알고 있는가. 대정 이찬 이라는 것은 폐하의 큰 뜻을 적극 받들여 들인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입으로는 대정 이찬을 외치면서 기실은 폐하를 무슨 장식품 처럼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도조는 고노에를 총리로서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튿 날, 총리 고노에는 천황 히로히도를 배알 했다.
- 폐하, 긴히 아뢰올 말씀이 있습니다.
- 무슨 말이오. 어서 해 보도록.
- 육군이 주병 문제에 대해서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일단 진주만 지역에서 절대로 철수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 육군이라고 하지만 통수부가 그렇다는 말이오?
- 통수부, 스기야마, 나가노, 양 총장은 말 할 것도 없고 육군성도 이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설득 할 도리가 없습니까?
- 그 때문에 연일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만 조금도 서로의 의견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과의 외교 교섭에서 가장 큰 난관은 아군의 불령인도지나 진주 문제와 중국에서 철병하는 문제 그리고 일본, 독일, 이태리 삼국동맹 체결 문제 입니다. 이 여러 문제와 대미 외교교섭은 근본적으로 양립 될 수 없게 돼있습니다, 폐하.
- 사태가 심히 중대한 줄 아오. 육군이 그렇게 강경 하다간 장차 어찌 되겠소.
- 폐하, 보필의 중림을 맡고있는 몸으로서 신 황마루는 황공하옵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 총리, 지금 내 치세 중 가장 중대한 안이라 생각하오. 경과 난 아무래도 운명을 같이 할 것 같소.
- 황공 하옵니다, 폐하.
- 육군을 다시 한번 설득해 보도록.
- 그날 밤, 총리 고노에는 육상 도조를 데끼가이 소우로 불렀다.
- 육상, 나는 지나 사변에 중대한 책임이 있소. 처음 시작은 어쨌든 간에 4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을 못 보고 있소. 그런 오늘날 더욱 앞길을 예측 할 수 없는 큰 전쟁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차제에 한 때 양보해서 병력을 철수하는 형색을 취하고 일·미 전쟁의 위기를 막아야 할 것 입니다. 또 이 기회에 지나 사변에 결말을 짓는다는 것은 국력의 신장을 위해서 또 국민 사상의 옳은 방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국가의 발전을 누가 바라지 않겠소만 크게 성장하기 위해선 때로 한 걸음 물러설 수도 있지 않겠소.
- 총리, 총리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오. 그러나 지금 미국에 양보하면 그들은 더욱 고압적이 될 것이오.
- 아니, 다만 조금만 물러서는 것이오. 그랬다가 다시 주둔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논의 됐던 꽃도 보고 열매도 딸 수 있는 방침 말이오.
- 아니, 꽃도 보고 열매도 따다니 총리께선 지금도 그 얘기를 믿고 있소.
- 그렇소.
- 꽃도 보고 열매도 딴다. 중국에서 일단 철병 했다가 치안 유지와 반공상 다시 진주 한다는 얘긴데 그건 미국이나 전계승의 농간이오. 미국이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아시오?
- 그렇소. 틀림없는 일 입니다.
- 그건 믿을 수 없소. 설사 믿을 수 있다해도 군의 사기를 위해 절대로 그럴 순 없소.
- 음.
- 대체 총리 생각을 너무 비관적이오. 우리 일본 약점을 너무 잘 아니까 그렇겠지만 미국은 미국대로 약점이 있을 것이 아니오. 이건 결국 성격의 문제요. 총리와 저의 성격의 차요. 인간은 때로는 잘 차려놓은 무대에서 눈을 감고 뛰어 내릴 필요가 있지 않겠소.
- 뭐? 뛰어 내려요?
- 그렇소.
- 눈을 감고 뛰어 내린다. 음. 그야 한 개인으로서는 그럴 때가 일생에 한 번이나 두 번쯤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2600년의 오랜 국체와 1억 백성들을 생각하면 책임있는 자가 그렇게 경솔한 짓을 할 수 있겠소?
- 인간은 때론 잘 차려놓은 무대에서 눈을 감고 뛰어 내릴 필요가 있지 않겠소. 도조의 이 마지막 한 마디는 나중에 까지 크게 문제가 됐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 전쟁 재판인 이른 바 도쿄재판 때 이 한 마디는 도조가 고노에에게 개전의 결의를 촉구하고 강요한 말이라 한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됐다. 이튿 날, 다시 정예각려회의가 열렸다. 이 날 도조는 개회 벽두부터 흥분해 있었다.
- 미국과의 외교 교섭은 지난 4월 부터 지금까지 6개월 동안이나 계속 해 왔소. 이 이상 교섭을 계속 한다면 꼭 성취 시킨다는 확신이 필요하오. 9월 6일 어전회의 결정은 10월 상순에 이르러도 외교가 성공 할 가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지체없이 개전을 결의 한다는 것이었소. 그런데 벌써 그 10월 상순이 지나 오늘이 10월 14일이오. 우리 육군은 이 결정에 따라 이미 수 십만의 병력을 동원했소. 그리고 중국과 만주에서 이미 많은 병력을 남방에 전출 시켰소. 선박도 많이 증발 했소. 지금까지 증발한 선박은 총계 200만 톤이 넘는 막대한 것이오. 이 모든 조처가 국가 및 국민생활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클 것이오. 도요다 외상 발언은 지금 육군이 불령인도 지나에 진주해 있기 때문에 외교 교섭을 방해 한다고 했는데 본 육상의 생각으로써는 오히려 외교가 우리 육군을 방해하고 있소. 확신도 없는 외교를 언제까지 끌고 갈 셈이오. 그것은 우리 육군의 작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오. 육군은 이제 9월 6일의 어전회의 결정을 존중해서 미국과의 외교 교섭을 철회해 버리기를 요구하오. 이제 육군은 개전을 결의하는 것이 불가피 하다고 생각하오. 9월 6일 어전회의에는 총리 이하 전 각려가 동의한 것이오. 그 결정대로 국책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책임을 지고 총 사직을 해야 마땅할 것이오. 어전회의 결정 사항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정부가 폐하에 대한 보필의 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오. 그러니까 총 사직을 하고 새로운 국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오.
- 마침내 도조는 폭탄 선언을 하고 말았다. 개전을 결의 하라는 폭탄 선언에 이어 고노에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한 제1의 화살을 쐈던 것이다. 정예각려회의에서 고노에 내각을 무너뜨릴 첫 번째 화살을 쏜 도조는 육군성으로 돌아오자 재빠르게 다음 조치에 착수 했다. 그날 밤 스즈끼 기획원 총재가 총리 고노에의 데끼가이 소우에 찾아 왔던 것이다.
- 도조 육상이 총리에게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 아 그러세요? 수고가 많습니다.
- 육상은 이 이상 총리 각하와 만나고 싶지 않답니다. 결국은 서로 감정을 상할 뿐 예전의 친분까지도 흐리게 할 것 같아서 지금은 뵙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더러 잘 말씀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 아 그렇습니까? 저도 이제 더 만나봤자 소용 없으리라고 생각하던 중 입니다만.
- 아무튼 여기서 전쟁이냐 화해냐 결정 지을 수 없습니다. 9월 6일 어전회의에 참석한 내각은 책임을 지고 총 사직을 단행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조 육상으로서는 총리에게 대단히 여쭙기 어려운 말씀이오나 후계의 내각에는 히가시 구니노미야 전하를 추천 하는게 어떻겠는냐 그런 의견이신데.
- 순간 고노에는 표정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이미 파국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조의 제2의 화살이 이처럼 재빨리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입력일 :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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