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사람들의 고함소리)
신춘 벽두에 붙은 여야 간의 격돌. 불온문서 투입사건을 조사하자는 데 대해
자유당 측은 묵살할려 했고, 야당 의원들은 분노했고, 드디어 조병옥 의원의 등단.
(사람들의 고함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의장,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가 정부 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가지고
관심이 없는 바가 아니올시다! 그러나 국회란 국민에게 배신함이 없이 운영해 나가야 해요!
다수의 횡포를 부리면 안 돼요!!
- 뭐가 다수의 횡포요?! 취소하시오! 취소해!!
(사람들의 고함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뭐야?! 거 조용히 못해?!
(음악)
(사람들의 고함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나는 개탄하는 바예요. 왜 정당한 동의안을 다수의 횡포로 깔고 뭉개느냐 이 말이야!
- 내려오세요! 다수의 횡포가 뭐예요?!
- (마이크 음성소리)뭐야?! 니가 이리 좀 올라와봐!!
(사람들의 고함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정신 차려! 왜 이래?! 야당 국회의원 집에다가 소위 호소문을 넣어가지고
사상 시험을 해?! 혹시 신고라도 안 하는 경우에는 잡아넣겠다 이거야?!! 그래.
십만의 대표인 국회의원에 대해서 이런 어린애 같은 장난을 했는데도 가만히 있자 이 말이야?!
뭐야?! 더군다나 국방을 맡은 군에 관계되는 자가 정치에 관여를 했다. 또한 말을 들으니까
이번에 체포된 문관 김진호라는 자는 전직 경찰관이라는 게야! 경찰과 평소부터 긴밀한 연락이 있는 자야!
그러니 그 배후가 의심된다 이 말이에요! 단순한 군인이나 문관들의 장난 이상의 그 어떤 음모가 있었다 이 말이야!
근데 국회는 이 사건을 이대로 깔고 뭉개자는 게야?!! 다수의 횡포도 부릴 때가 따로 있는 거예요!
지금 내 판단에 의하면은 의석에 한 130여 명밖에 안 앉아 있어. 우리 야당 50명이 퇴장하면은 유예가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태도를 결정하세요! 오늘과 같은 경우, 다수의 횡포를 가지고 누구를 억압하려 든다면은
의사 진행은 안 되는 것이올시다! 나 이만 두겠소이다.
(발자국 소리)
- 의장!
- (마이크 음성소리)박영출 의원, 말씀하세요.
(발자국 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피차에 좋은 목적을 가지고 한 일인데 본의 아니게 된 것은 유감이올시다.
김상돈 의원의 동의는 아주 긴급한 것이었는데 흥분된 상태라서 이렇게 폐기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일단 본회의에서는 폐기됐으나 분과위원회를 따로 소집해서 해당 장관을 불러다가
조사한 뒤에 본회의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취하는 게 온당할 듯싶습니다.
- 의장!!
- (마이크 음성소리)김상돈 의원, 말씀하세요.
(발자국 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여러분, 제가 제안했다 해서 고집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제안했다 해서 여러분, 자유당 의원들은 한 명도 손을 안 들은 것으로서
다수의 무기를 가지고서 폐기를 시켜?!
(사람들의 고함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마음대로들 하쇼! 국민들을 죽이고 싶으면 죽여! 국가와 민족적으로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어떻게 해서 폐기되느냐-. 다수당인 여러분! 생각 잘해보쇼. 우리 야당들은 모두
동조하리라고 믿거니와 하여간에 저는 퇴장을 하겠습니다. 퇴장해요!!
(발자국 소리 및 사람들의 고함소리)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퇴장하기 시작.
- (마이크 음성소리)오늘은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고 이렇게 흥분된 분위기에선 아무 일도 안 될 것 같으니
이로서 산회합니다.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아, 유석.
- 왜?
- 신 의장께서도...
- 네?
- 제 방에 가서 차나 한 잔 나눌까요? 두 분.
- 음...
- 차 많이 마셨어.
- 그냥 얘기나...
- 무슨 얘기?
- 아직 화가 안 풀렸구만. 유석.
- 풀리게 됐어? 사회한답시고 그렇게 하지 마라. 어린애 장난이야, 뭐야? 야당이 얘기하는 건 무조건
묵살하고 있으니.
- 기러니 조용히 얘기를 하자구. 어때? 오늘 내가 한잔 살까?
- 조용히 얘기하겠다는 게 뭐야? 자유당 탈당하고 신당에 올 텐가?
- 아하하하하... 올라갑시다. 봐서 탈당할 런지도 모르니까. 으흐흐흠.
- 그래, 올라가지.
- 그럽시다.
(음악)
(술잔 부딪치는 소리)
- 아.
- 정치란 참 힘든 거구만. 참 어려워...
- 많이 늘었더구만, 뭐.
- 나 같은 약질은 해먹기가 어려워.
- 에, 약하고 강하고가 뭐 문젠가요.
- 아... 기야 기렇겠죠. 유석, 불온문서 투입사건 우리당은 관계없어.
- 관계없겠지.
- 진심이야. 헌병대에서들 철없이 한 짓인 모양인데.
- 그렇겠지, 문관 아이들이 명령도 안 받고 마음대로 했겠지.
- 유석, 내 말 진지하게 들어줘. 그것이 누구라 해도 좋아. 범인이 내 측근이래도 좋아.
이번엔 꼭 진상을... 진범을 잡아서 국민 앞에 내놓을 테야.
- 믿어보지. 정치한답시고 난 자꾸 나쁜 사람이 돼가는구만. 인간을 잃어가.
신 의장께선 잘 모르시지만 저하고 유석하고는 일제시대 자주 만나곤 했습니다.
같은 실직자로, 나라 잃은 청년으로 호흡도 맞고 그랬는데 아... 어쩌다가 이렇게 원수처럼
됐습니다 그려. 정치가 뭔지... 따지고 보면 야당이고 여당이고 다 같은 사람들인데.
- 아, 넋두리 듣기 싫어.
- 아니, 왜?
- 가야지. 넋두리 들을 시간 있어?
- 아, 좀 앉아요.
- 음...
- 어떡할 거야? 불온문서 사건은 해결한다고 그랬고 곽 부의장은 어떡할 텐가?
- 어, 그 문제도 의논껏 잘해야지.
- 기자회견에서는 큰소리 치고서, 곽상훈 씨가 사표를 내야 한다며?
- 아, 아니야.
- 이랬다저랬다 제길.
- 아, 유석.
- 아, 이 의장.
- 예.
- 의장이란 초당적이어야 합니다. 이게 원칙이에요.
- 기렇겠죠.
- 에, 적어도 국회의장의 처지로서는 그런 발언 삼가해주세요. 부의장더러 사표를 내야 한다니요.
- 제가 모든 점이 부족해서 그만...
- 여야 협조도 그렇습니다. 얘기로 협조가 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옳은 방향으로 가면 되는 겁니다. 어느 길이 옳으냐
견해차이라면 서로 토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린애가 봐도
명확히 그른 것을 가지고 옳다고 우기고 있으니 이래놓고 협조를 하자, 여야를 초월하자,
아량을 가질 쪽은 여당입니다. 이 의장, 야당이야 정치를 해서 부귀영화를 누립니까, 권력을
뒤흔듭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고생 무릅쓰고 정치를 하고 있는데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만난단 말씀이에요. 사사오입 얘기 같은 것은 지난 얘기니 안 하겠습니다. 그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요. 곽 부의장은 뭐를 잘못했습니까? 사사오입이 글렸다고 외쳤다 해서 불신임 결의를 해요?!
-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던 탓이올시다.
- 음...
- 예끼, 우격다짐으로 할 짓은 다해놓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 유석,
- 난 잘 알아. 우리가 뭐 하루 이틀 사귄 사인가? 일제 때 남의 집 사랑방 떠돌던 룸펜 시절부터 난 잘 알아.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갑시다.
- 앞으로 정말 잘 부탁합니다. 불온문서 사건도 그렇고 곽 부의장 문제도 그렇고 꼭 해결 잘해드리겠습니다.
- 알았어, 건강이나 유의해.
- 음... 안녕히...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
(음악)
- 훌륭한 인물들이야. 유석 같은 배짱.
- 조병옥 씨 배짱 빼놓으면 뭐 있어요?
- 부러워...
- 부럽긴. 당신도 배짱을 부리구려.
- 아...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고 조병옥 씨 지가 배짱을 부리면 뭘 해요. 힘이 있어요?
당신이야말로 한번 배짱을 부려볼 위치죠.
- 그럴까?
- 아, 아니... ‘그럴까’가 뭐예요? 앞으로 당신 말 한마디면 천하가 다 부들부들 떨 판인데. 안 그래요?
- 아하하하하하...
- 여보, 당신에겐 꼭 한 가지 걱정이 있을 뿐이에요.
- 뭔데?
- 건강.
- 그렇지.
- 제발 건강해주세요.
- 내 마음대로 어디 되나.
- 조병옥 씨한테 부러운 건 배짱이 아니라 건강이에요.
- 기렇군. 건강... 아...
(음악)
(입력일 : 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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