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종소리)
1954년 갑오년이 저물어 갑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었던 한해.
정치평론가 김동명 씨는 동아일보 송년호에 정계 1년의 회고를 썼습니다.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지어다. 빌며 맞은 이해도 어느덧 저물어간다.
돌아보건대 비원의 이해마저 우리에게는 생선 대신에 뱀을, 떡 대신에 돌멩이를
던져주고 가지 않았는가. 이제 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차곡차곡 고인 피 흔적이나
더듬어 보기로 하자.』
생선 대신에 뱀을, 떡 대신에 돌멩이를 던져주고 간 1954년.
- 『이번 선거는 금전이나 폭력이 없는 공명선거를 이룩할 것이며 민중은 진정한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잘 가려서 자유롭게 투표해주기를 나는 바라는 바이다. 』
5.20선거.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전쟁이 끝나고 처음 실시되는 선거가 갑오년에 있었습니다.
3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정계는 선거일색이 되어갔습니다. 이승만이 총재로 있는
자유당에서는 이 선거에서 처음 공천이라는 것을 실시했습니다. 자유당 공천.
- 『우리당 공천을 받는 사람은 현재 마련되고 있는 개헌안에 무조건 찬성하는 자라야만 한다.
따라서 공인증을 발부함에 있어 서약서 한 통씩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
자유당 공천을 함에 있어서 개헌안 찬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개헌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때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간에 개헌안에 찬성을 한다는 서약서를 받고야
공인증이라는 것을 발부했습니다. 그렇게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 (마이크 음성 소리)나는 자유당 공천이오. 자유당이 나를 국회의원으로 인정했다 이거야.
그러면 자유당이란 무엇이냐. 이승만 대통령께서 이끌어 나가시는 당이다, 이거여.
이 대통령께서 나더러 ‘자네, 국회의원감이니께 국회에 나가봐.’ 이러신 거다 이 말이여.
즉, 나는 대통령께서 인정을 한 입후보자다 이거여. 저 혼자 잘났다고 나선 후보들하고는
질이 다르다 이거여.
(음악)
야당은 민주국민당.
- 에, 우리당도 공천이란 것을 하긴 해야 하겠지.
- 해야지.
- 그러나... 말이 공천이지 우리가 돈을 지원해줄 수도 없는 일이오 조직을 확대시켜줄 능력도 없으니.
- 동네반장까지 동원을 해서 조직한 자유당은 어찌 따르겠소. 하여간에 우리는 입으로나마
싸워봐야지.
처음부터 열세에 놓인 민국당은 그러나 60여 명의 공인 후보자를 내긴 냈습니다.
선거전의 돌입.
- 『경찰은 엄정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선거는 자유분위기를 보장하고 있다.』
내무부 장관이 자유 분위기 공명선거를 보장했습니다. 그런데 선거전이 중반전에 접어들자-
- (마이크 음성 소리)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신성한 한 표를 얻고자-!
(사람들의 고함 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좀 조용히들 하죠!! 누꼬?!!
(사람들의 고함 소리)
- 윽! 경찰!! 경찰!!!
(음악)
- 『5.20선거는 다른 선거구에서도 모범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거니와 나의 선거구는
형언조차 하기 어려운 부정선거를 관권에 의하야 자행됐던 것이다.
자유당 후보에게는 매표의 자유, 향연의 자유, 관권감찰의 자유가 마음대로 허용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폭도들이 통행금지 시간을 이용하야 개인의 주택에다 인조폭탄을 던져서
고막이 떨어진 나의 선거운동원들이 몇몇 있었으며 또 가재와 가옥을 파괴당한 30여 명의
선거운동원도 있었던 것이다.』
(음악)
조병옥이 그의 회고록에서 모범적인 부정선거라고 규정한 5.20선거. 5.20선거는 이 나라
선거 역사상 최초로 시작된 본격적인 부정선거였습니다. 특히 경찰이 선거에 적극 개입한
관권선거의 시초였습니다.
- 다음은 서장님 말씀이 있을 텡게 조용히들 들으라고잉.
- 아아, 흠. 이 마을은 좌익이 많은 것으로 내가 알고 있는디. 6.25때 인공 지지한 사람 많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그래서 이번 선거에도 야당을 지지하기로 아주 마음속으로 작정들 했다고?!
투표하는 날 마음대로들 찍으소. 표 나온 것을 보면 우리가 다 알 테니께.
야당표 한 표가 나오면은 이 마을에 빨갱이 하나가 여태 남아 있다는 증거요.
열 표가 나오면 빨갱이 10명이 여태 숨어있었다 증거라 그거여.
경찰이 본격적으로 개입.
- 아이고, 아이고!! 나으리!! 지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 산림법 위반 모르나? 이 솔가지가 증거 아니가?!
- 아이고, 이 마을에서 다 나무 떼는 사람이 어디 있는교?!
- 말이 많다! 니 빨갱이 아니가?!
- 아이이이이... 아니올시다, 용서해주시소.
야당 성향이 있는 집안에 와서 솔가지 하나라도 있으면은 산림법 위반. 제삿날 술 조금 담구면은
밀주 단속이라고 잡아 가두었습니다. 경찰이 선거를 주관하는 이 불행한 전통.
(음악)
선거 결과, 자유당 공천자가 99명 당선. 무소속이 89명. 민국당은 겨우 15명밖에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민국당의 참패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자유당으로서도 만족한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99명이라면은 3분 2선이 까마득했습니다. 정계 1년의 회고에서 김동명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3분지 2선의 확보는 물론이요 할 수만 있으면 제3대국회를 자유당 일색을 꾸며 볼려던 원대한 계획이
이렇듯 무너지니 당 수뇌부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실로 눈 딱 감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기울인 결과가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자유당의 비원인 개헌안의 결과는 어찌 될 것인가. 』
그러나 자유당으로서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서울 지방법원장 김준원 판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담화를 발표.
- 『이번 선거전에서 위법행위를 한 자는 가차 없이 적발, 처벌할 방침이다.』
위법행위를 한 자를 처벌한다. 그러면 그 대상은 자유당 의원들이었는가.
아닙니다. 89명의 무소속 의원들이 대상이었습니다.
- 에험, 날 보고 부정선거를 했다고? 보소, 적반하장도 유만부득이지! 날 입건하겠소?!
잡아 가둘려든 자유당 당선자들을 잡아 가둬야지!!
- 아, 영감님. 흥분하실 게 아니라 제 말씀 좀 들으세요.
- 뭘 들으란 말이야?!!
-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습니까?
- 뭐라꼬?!
무소속 의원들에게 협박을 가했습니다. 김동명의 글에는 다시-.
- 『야당계 선량들의 전전긍긍하는 꼴이란 차마 못 봐줄 정상이었음은 물론이오.
이러는 동안 40명에 가까운 무소속계가 귀순하는 꼴이란 눈 뜨고 보아주기엔
거북한 광경이었으니.』
40여 명의 귀순. 즉, 야당계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 뒤에 자유당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헌안을 제안할 쯔음엔 이미 136명으로 자유당 의원 수는 불어나 있었습니다.
136. 3분지 2선. 자유당으로서는 대망의 3분지 2선을 이렇게 확보했던 것입니다.
(음악)
그리고 개헌안. 개헌안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 결국 그거였어. 이거였어.
- 우남은 어쩔려고 이러누... 어디까지 갈려고 그래.
- 헌법에 미비점이 있느니 어쩌느니 야단이더구만 자기의 영구집권 조항이 없다는
뜻이었군 그래.
- 아... 못난 사람. 우남은 이 책임을 똘똘 뭉쳐서 혼자 짊어져야 해!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한 조항을 초대대통령에 한해 없애버린다. ’,
80살이 넘은 노인이 헌법을 뜯어고쳐서까지도 권력의 자리를 물러나지 않을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승만 개인을 위해서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비극적인
이 개헌안 파동은 1954년에 있었습니다. 1954년 갑오년, 말띠.
(음악)
(입력일 : 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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