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12월 4일,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던 야당 의원들이 닷새 만에 출석한 날.
- 하하하하하하, 반갑습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출석들을 해주셔서. 하하하하하.
- 하원의원들끼리 내버려두기가 뭣해서 우리 상원의원들이 내려왔지.
- 하하하, 상원의원?
- 그동안 하원에서는 이철승 의원하고 나하고 징계결의를 하셨다구요?
- 하하하하하하하.
- 오늘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따져봅시다!
상하 양원 합동회의, 그동안 야당 의원들은 아래층 본회의에는 참석 안 하고
2층 곽 부의장실에만 출석했다 해서 농담으로 상원의원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여야의원끼리 가시 돋친 농담을 나누었으나 대부분 굳은 얼굴들.
사사오입개헌이라는 그 역사적인 파동 뒤에 다시 만난 숙적, 개와 고양이의 대결.
- (마이크 음성 소리)야당 의원들이 퇴장하신 뒤에 국회의사당 내에 처져 있는 저희들은
물론이지만 전 국민이 깜짝 놀래서 앞으로 우리 국회가 어찌 되나 하고 대단히 우울한
가운데 지냈던 것이올시다. 오늘 아침에 다행히도 기쁘게 야당 의원 여러분들이
의사당 내에 출석하시는 것을 보고 희색이 만면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사람에 대한 징계처분 문제가 일어나서 내가 앞으로의 운명이 제명을 당할지, 다른 징계를
받을런지, 이런 것은 모르고 말하자면 이 사람 개인에게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올시다.
그러나 내 개인에 대한 유쾌치 못한 이러한 소식보다도 야당 의원 동지 여러분이 출석하신 것을 보고
그저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왕 다시 돌아오신 이상에는 여야 간에 감정을 초월하고
당을 초월해서 이 어려운 난국에 처해 있는 우리 대한민국, 우리 민족을 위해서 아무쪼록
앞으로 큰 분쟁이 없이 협조하시고 양보하는 뜻으로 나가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나의 생각을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이날, 야당 측은 두 가지 동의안을 가지고 등원했던 것입니다. 이기붕 의장에 대한 징계동의.
그리고 최순주 부의장에 대한 징계동의. 물론 여당 측에서는 전날의 단독 국회에서
곽상훈 부의장과 김상돈, 이철승 양 의원에 대한 징계동의안을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징계와 징계로 대결되는 싸움. 개헌파동 이후 원내 세력 분포가 다시 한 번 판명되는 계기입니다.
그동안 야당은 61명이 뭉쳐서 호헌동지회를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당에서는 개헌파동을 계기로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많이 생겨 있었습니다. 탈당을 결심하거나 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을 의원이 20명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은 이번 징계동의안 표결에서 표가 어떻게 나타날지
흥미로운 바가 있었습니다. 대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자유당에서 반란표가 쏟아져 나와 혹시
이기붕 의장에 대한 징계동의안이 가결되지는 않을까 자유당 측으로서는 확실히 겁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 이 총무.
- 예.
- 징계동의안 오늘 표결 못하도록 막아야디요.
- 네, 막아야죠. 임시의장만 선출하고 산회하도록 해야죠.
- 절대 오늘은 표결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내일은 일요일, 모레 표결하도록 하시라요.
- 네.
의장, 부의장이 모두 징계대상자가 됐으므로 사회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임시의장을 선출.
임시의장으로는 여당의 정문흠 의원이 뽑혔습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에, 뜻도 아니 한 의회에 돌연히 임시의장직을 맡아 어리둥절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혹 사회에 착오가 생길지래두 관대한 용서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제부터서 제96차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만, 아, 시간이 1시 정각으로부터 15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징계문제를 오늘은 일단 보류하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의장!!
- 아, 조재천 의원 말씀하세요.
징계동의안 표결을 연기하려는 임시의장 정문흠의 의사진행에 야당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규칙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회법 제16조 3항에 규정하기를, 징계동의가 제출된
때에는 곧 회의에 부위한다. 산회 후 제출된 때에는 차 회의의 의제로 해야 한다. 이렇게 명백히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징계동의가 제출된 이상에는 곧 회의에 부위해야 되는 것이고 이것을 전열시킬 순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
- 의장!
- 아, 박순석 의원 말씀하세요.
(발자국 소리)
자유당의 박순석 의원.
- (마이크 음성 소리)이 징계 문제를 하루라도 더 전열시켜 나가면은 국민들에게 의아심을 주게 될 것이고
우리 의원 마음 가운데 이리저리 좋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니-.
(사람들의 고함 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징계동의안은 오늘 회의시간을 연장한다 할지라도 오늘 처결돼야 옳은 것입니다.
오늘 시간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즉각에 처결돼야 한다는 것이 국회법에 있는 이상 이것을
월요일에 미루지 말고 오늘 처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에, 동의하셨습니까.
- (마이크 음성 소리)예, 시간을 연장해서라도 오늘 처리하는 것이 좋을 줄 알아서 동의합니다.
- 재청이요!
- 삼청이요!
- (마이크 음성 소리)에, 그러면 오늘 즉각으로 처결하자는 박순석 의원의 동의에 대해서 가부를 묻겠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연기시키는 거야요.
- 오늘 표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 (마이크 음성 소리)에, 거수표결을 하겠습니다. 박순석 의원의 동의에 찬성하시는 분,
거수해주세요.
- 음, 손들지 마시라요!!
그날 즉석에서 표결하자는 동의안에 찬성한 의원은 69명. 과반수가 못되어 부결됐습니다.
제2차 거수표결에서도 74표로 역시 부결.
- (마이크 음성 소리)반수 이상이 못되어 미결로서 이 동의안은 폐기됐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서
산회하고 모레 월요일 10시에 다시 속개하겠습니다.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아, 뭐래! 커피 안 줘?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
- 왜 그러세요? 여보.
- 커피 한 잔을 달라고 했는데 뭣들을 하는 게야?
- 커피요? 아니, 몸도 나쁘신데 웬 커피를 마셔요?
- 머리가 아파서 그래.
- 아, 모처럼 조용한 일요일인데 왜 그리 신경질을 내세요?
- 난 커피도 못 마시는 병신이로구만.
- 여보!
- 강석이 , 강욱인 어디 갔나?
- 네, 승마하러들 나갔나 봐요.
- 이... 밤낮 나댕기긴...
- 여보, 왜 그러세요? 국회에서 징계동의안이 나왔다더니 혹시 가결이라도 될까봐서 그러세요?
- 가결됐으면 좋겠어. 차라리.
- 네에?! 아니, 그럼 당신. 국회의장을 내놓고 싶으세요?! 여보, 개헌안 통과도 이제 끝났겠다
당신 뭐가 그리 초조하세요?!
- 음...
- 아니, 어디 가세요?
(발자국 소리)
- 나 좀 나갔다 올게.
- 아유, 여보.
- 이봐, 이봐.
(발자국 소리)
- 네.
- 자동차 준비해.
- 네네.
- 여보, 어디 가시게요?
- 아... 나 좀 괴롭히지 말어.
- 아, 몸도 불편하신데 좀 쉬세요.
- 여보, 당신 왜 허무주의자처럼 구세요? 뭐가 불만이세요? 아이... 이제 우리의 뜻이 하나씩하나씩
이루어져가고 있는데, 우리의 목표, 우리의 계산이 다 맞아 들어가고 있는데 뭐가 불만이세요?!
아, 이제부턴 당신 건강만 회복되면 되는 거예요. 다른 것은 아무 걱정도 없어요.
(발자국 소리)
- 차 준비됐습니다.
- 어.
- 여보.
(발자국 소리)
- 나 잠시 다녀올게. 잠시만.
- 어딜요?
-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날 놔둬.
- 아, 맘대로 하세요. 그럼.
- 다녀올게.
(발자국 소리 및 차 떠나는 소리)
- 눈이 내릴려면 멀었나?
- 이봐.
- 네.
- 눈이 내려야 보리농사가 잘된다지?
- 예, 그렇습니다.
- 대답이 왜 그런가?
- 예?!
- 그만둬, 차나 몰아.
- 네네.
- 제기랄, 인간은 없고 형식만 있군. 권력이 뭔지, 부귀영화가 뭐야.
- 예? 무슨 말씀이신지...
- 차나 몰아!!
- 네네.
(음악)
(입력일 : 20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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