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아, 아, 이것이 어찌된 일이야?! 어찌된 일이야!
- 음...
- 아... 누가, 어느 놈이 배신을 했어. 어?! 대답을 해봐요. 이 총무!
- 면목 없습니다.
- 누구야? 어? 배신자가 누구야! 어떤 놈이야!!
- 아.. 그거이 참, 으흠, 못 믿을 데는 여자라더니, 정말 못 믿을 건 국회의원이란 자들이구만요.
- 당신들은 가 표로 찍었소? 응?!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진정하시라요, 의장 각하.
- 난 진정 못해. 내가 어떻게 경무대에 들어가서... 들어가서 뭐라고 그러지? 난 못 들어가.
통과는 문제없다고 큰소리 땅땅 쳐놓고, 아, 내가 어떻게...
- 여보, 그렇다고 해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 그럼 어떡해?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
- 아... 엎질러진 물인데. 여보, 한 번 실패했으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죠.
- 다음 기회가 어디 있어?! 마지막이야... 난 마지막.
개헌안 부결. 그것도 통과선인 136표에서 한 표가 모자라는 135표. 어째서 자신만만하던
개헌안 통과가 그런 결과로 나타났는가. 자유당으로서는 안타깝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개헌안 표결에서 표의 분포가 어찌 되었길래 그런 결과가 나타났는가.
당시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이재학 씨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음성 녹음)
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화가 날 만큼 개헌안 부결은 천만 의외의 결과였고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국회의 분포를 보면은 자유당이 137명, 민국당 15명, 무소속동지회 31명, 순 무소속 20명.
이재학 씨가 149명이라 하는 것은 자유당 137명과 무소속 중에 포섭된 12명까지 포함해서
계산한 숫자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 자유당 측으로서는 불순분자 14명이 부표를 던졌다고
이재학 씨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정계에서의 해석은 좀 다릅니다.
자유당 내부에서 개헌안을 반대하는 의원이 애초부터 많았다는 사실은 이 방송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부에서 부표를 던진 의원이 10여 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개헌 파동 뒤에 12명의 의원이 자유당을 탈당했습니다. 그리고 임흥순 의원이 이끄는
무소속동지회에서 7, 8명이 개헌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무소속 의원에서 포섭된 수보다 자유당 내부에서 반발한 숫자가 불행하게도 많았다는 점에
개헌안 부결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
개헌 파동에서는 숱한 일화가 생겼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경상도 출신 국회의원 이 모 의원의 일화.
(차 소리)
- 봐라, 김 군.
- 예.
- 거 참 이상터라.
- 뭐가요? 의원님.
- 가, 부라 카는 것을 우째 쓰노?
- 예?!
- 거 차 좀 세우거라.
- 예.
(차 세우는 소리)
- 니, 한자 쓸 줄 알제?
- 예.
- 가 자랑 부 자를 한자로 좀 써보거라.
- 예.
(종이 만지작거리는 소리)
- 가는 이렇게 쓰고-.
- 응?
- 부는 이렇게 씁니다.
- 맞제?! 이런 사람들 있나?
-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 네모꼴이 양쪽 다 안 있나?
- 예?
- 어떤 것이 가 자고?
- 이것이 가 자입니다.
- 아이코, 아이, 큰일났데이. 오늘 말이다. 개헌안 투표 안 있었나. 이거는 누구한테 말하지 말거래이.
- 예.
- 가르쳐주는데 네모꼴 있는 자를 지우라카대. 투표지를 받고 네모꼴 있는 자를 지웠제.
아따, 이거 지우고 보니 이쪽에도 네모꼴이 안 있드나.
- 그래서요?
- 그래서 양쪽 다 안 지웠나?!
- 예?!
- 에이고, 사람들. 가르쳐 줄라 카면 똑바로 가르쳐 줄 일이제. 양쪽 다 네모꼴이 들어가 있는 어느 걸 지우란 말이고?!
개헌안 한 표차로 부결됐다지?
- 예.
- 사람들 참, 똑바로 가르쳐줄 일이제. 쯧쯧쯧, 가만있어 막 김 팍 쌔부렸다!!
(차 소리)
이 의원과 운전수의 대화입니다.
이 모 의원은 불행하게도 까막눈, 일자무식이었습니다. 일찍이 토목공사장 인부로 출발해서
돈을 벌고 국회의원까지 됐지마는 글자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당
공천을 받고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고 국회의원이란 간판을 걸고 이 나라 토목공사를 도맡다시피
해나가던 인물입니다. 지혜는 대단했던 인물입니다. 국회의원 당선비화를 보면은 송아지를
1000마리쯤 사서 선거구 각 마을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길러서 쓰라는 것인데 국회의원 선거 연설에서는
- (마이크 음성 소리)내 이번 선거에서 돈 많이 쓰고 있는데. 하여간에 당선이 되야제. 떨어지믄
파산 지경인데 파산하면 난 우짜노? 여러분, 여러분께 길러서 쓰라고 준 송아지를 거둬다 파는 수밖에 더 있나?!
송아지 많이 컷제? 다 크기도 전에 내가 거둬간다 카는 게 내 참말로 양심상 도리는 아닌데 우짜노?!
국회의원 떨어지면 파산하는 사람 한둘인가 말이다.
부정선거로서는 일찍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 그만큼 똑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부를 못해서 글자를 전혀 읽을 줄 몰랐던 것입니다.
국회의원 하나가 가 자, 부 자를 읽을 줄 몰라서 무효표를 만든 것입니다. 만일 이 국회의원이 제대로
글자를 읽을 줄 알았던 들 136표로 아무 말썽 없이 개헌안은 통과됐을 것입니다.
(음악)
- 아... 으음.
경무대, 개헌안 부결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들어온 국회의 이기붕, 최순주, 장경근.
죄를 짓고 훈육주임실에 끌려가 있는 중학생들 같은 모습. 사색이 다 돼있는 얼굴들.
(문 여닫는 소리)
- 아아아... 으음.
- 오, 왔구만. 앉으라고들. 왜들 안 앉어?
- 괘, 괜찮습니다.
- 아... 다 저녁 때 웬일로들 들어왔나?
- 으으음...
이승만의 표정은 예상 외로 명랑했습니다. 개헌안 부결 소식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어쩐 일인가.
셋은 더욱 불안했습니다.
- 오늘 개헌안 표결이 있었다지?
- 예, 각하. 절 죽여주십쇼, 각하. 으으으윽...
- 음...
- 어르신, 제 불찰로 말미암아 흑... 개헌안은 그만... 흐흐흑... 백 서른다섯 표밖에 못 얻었사옵니다. 각하.
으으으윽...
- 백 서른다섯 표... 내 들었어.
- 각하...
- 백 서른다섯 표... 그만하면은 충분하지. 모두들.
- 예에에... 아.
- 늦었는데 그만들 나가봐.
- 옛날엔 좀 쓸 일이구만. 늦었는데 나가들 봐.
- 예에...
- 예예...
(문 여닫는 소리)
- 저... 아... 아니, 각하께서 뭐라고 하셨지?
- 어리벙벙합니다, 저두.
- 장 의원.
- 음... 저두 머리가 띵 하구만요.
- 음... 그만하면 충분하지. 그만하면 충분하지...
‘그만하면 충분하지. 이승만의 말. ‘그만하면 충분하지.’ 그것은 무슨 뜻인가.
개헌안이 부결됐는데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그만하면 충분하지.’
이 말 한마디가 이 나라의 역사를 뒤바꾸게 됩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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