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나하고 낭산은 빼놓고 정당을 새로 한다며?
- 누가 그러던가?
- 누군 누구야. 여행 떠나기 전에 장면 씨 만나서 얘기를 안 했어? 조봉암이와 장면 셋이서 정당을 새로 만들자고.
- 뭣이라고?
- 잡아뗄 성질의 얘기가 아니에요! 해공, 그런 식으로 하니까 뉴델리 회담설이 나도는 게야.
- 응? 뭣이!
해공과 유석의 대립. 정치적 위치론 해공 신익희의 명망이 높았고, 그래서 민주국민당에서는
그를 위원장으로 추대했습니다. 민주국민당은 한민당과 국민당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정당.
그러나 국민당 계열이라면은 신익희 한 사람뿐이라 할 정도로 세력이 약했고 조병옥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모두 한민당 계열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민당 계열이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이 그들로서는 불만이라 할 수 있고 또 신익희 측에서는 허울 좋은 위원장 자리만
차지하고 자기의 직계 참모가 없는 데 대해 불안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인촌 김성수가 병으로 눕게 됐을 때 한민당 계열 인사들을 설득해서 신익희를 위원장으로 추대하게 했지마는
그리고 야당의 단합이라는 사명감 때문에 승복하고 있었지마는 한민당 계열의 인물들은 신익희의
지도체제에 만족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김성수가 병석에 누우니 한민당계의 보스는
조병옥입니다. 조병옥은 그 관록으로나 야심으로나 신익희에 능히 필적할 만한 인물.
그런데도 정치적인 명망으로는 1954년 당시에 항상 신익희의 다음에 있는 처지였습니다.
조병옥은 민국당의 고문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익희와 조병옥은 둘이 다 1894년생으로
동갑네였습니다.
- 야, 내가 해공만 못한 게 뭐 있어? 어? 해공만 못한 게 뭐 있느냔 말야!
술 취한 조병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은 여럿이 있습니다. 나이도 동갑이지만은
신익희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조병옥 또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학벌이나 지식으로도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해방 뒤의 활약도 조병옥은 군정청 경무부장으로
이 나라 치안의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적인 위치는 항상 신익희 다음에 조병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익희도 그렇고 조병옥도 그렇고 두 사람 다 정치적인 거물에 소질 있는 인물,
영웅적인 기질을 갖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성격은 대조적이었습니다.
1952년 피난시절의 대통령 선거 때 정치파동을 일으키고 발췌개헌이라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이승만이 대통령직선제를 만들어 출마하려 할 때,
- 해공, 우리 가만히 있어?
- 그러면 어쩌누? 워낙 악착같이 정권 잡겠다는데 내버려둬야지.
- 내버려둬? 아, 민주주의가 파괴되는데 그냥 보고 있어? 어떻게든 이번에 이 박사 당선을
저지시켜야 돼요.
- 저지가 되나?
- 그러니까 우리가 그의 독재를 저지해야지!
- 글쎄...
- 어허, 답답하구만. 해공이 대통령 나서, 이번에.
- 응?
- 내가 부통령 나설게. 우리 러닝메이트로 나서자구. 이대로 내버려두다가는 그 노인이 무슨 짓을
할런지 몰라요. 이 나라, 이 국민을 어디로 끌고 갈런지 모른단 말야! 이번에 대통령, 부통령 나서서
꼭 당선되자는 건 아니구 최소한도 이승만의 무능하고 치사한 정치적인 술책을 대중에게
계몽이라도 시키자, 이 말이야. 아, 싫어?!
- 좀 생각을 해봐야지.
- 생각은!
- 에... 우리국민에게 알려지기를 우남은 국부라 이 말이야.
- 국부? 아, 그런 인물이 이 나라의 아버지야?!
- 하여간에 그렇게 알려진 사람이니 너무 우남을 때려 부수면은 이 불쌍한 국민의 우상을
때려 부수는 결과가 된단 말이지.
- 우상은 때려 부숴야지! 그게 무슨 말인가?
- 음...
- 도대체 답답하구만, 해공.
- 글쎄...
해공 신익희가 이승만에게 직접 도전하기를 꺼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성격 자체가
투쟁적인 면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석 조병옥은 투사라 할 만큼 투쟁적이었습니다.
해공이 무사원만주의라면 유석은 투지에 넘치는 사나이였습니다. 둘이 다 대인다운
기질이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더없이 가까웠으나 내면적으로 대립이 있었다는 것.
뉴델리 사건의 원인도 거기에서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습니다.
(음악)
다시 뉴델리 사건의 발설자 함상훈 씨의 회고. 함상훈 역시 조병옥과 같은 한민당 계열의
인물이었음을 아십쇼.
(음성 녹음)
10월 25일이라고 함 씨는 회고하지만 정확하게는 10월 19일입니다. 1954년.
(음성 녹음)
- 에-, 김지웅이라는 사람 왔소?
- 예. 밖에 있습니다.
- 그러면 들어오라고 해서 들읍시다.
- 자, 잠깐, 저... 그런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온 것이 어떨까 생각되는디.
- 왜?
- 우리 당원도 아니고 신분도 잘 모르는 사람인디 불러도 괜찮겄소?
- 내가 뉴델리에서 조소앙이를 만난 것을 본 듯이 얘길 한다며?
- 아... 봤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서 들었다는 거겠지.
- 어디서 들어? 좌우간 잘 알고 있다니 어떻게 잘 아는지 우리 직접 들어봅시다.
내가 남북협상을 했는지 안 했는지.
- 아, 그거야 해공이 직접 안 만났다고 해명을 하면 되지 않소?
- 내 일은 어찌 내가 해명을 하누?
- 보소들, 해공의 태도를 보니 조소앙이를 만났을 턱이 없고.
- 아니, 내 태도가 뭐 어떻소이까?
- 이런 문제 가지고 근본도 모르는 사람 불러들일 수 있나. 위신이라카는 게 있어야지.
- 아, 그러나 해명은 들어야죠.
- 글쎄, 해명이라카는 거야 해공이 여기 있는데-.
- 나는 내 얘기를 못하겠단 말씀이에요.
- 이봐요, 해공.
- 왜?
- 해공이 당 외 인사를 자꾸 신뢰하는 것이 오늘날 이 결과를 낳았어요.
- 아니, 그게 무슨 뜻이야? 뜻이 어렵구만.
- 우리당 위원장으로서 당내 일에만 전념을 해도 우리 당이 잘될까 말까 한데 당 외의 일을
너무 신경을 쓰지 말란 뜻이야.
- 아니, 내가 당 외의 일에 신경을 쓰다니, 자유당에 신경을 썼나?
- 이봐, 해공. 뉴델리 밀담설이 나도는 것도 내 판단에 의하면은 해공의 처신이 좀 잘못돼서 그래.
- 응?! 쉽게 얘기를 해요.
- 뉴델리가 아니라 영국여왕 대관식에 떠나기 전부터 해공은 민국당을 나가서 신당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면서.
- 뭣이?
- 사실이 아니라고 그럴 텐가?
- 무슨 소리?
- 내 입으로 얘길 할까?
- 해봐.
- 나하고 낭산은 빼놓고 정당을 새로 한다면서?
- 아니, 누가 그러던가?
- 누군 누구야? 여행 떠나기 전에 장면 씨 만나서 얘길 안 했어?! 조봉암이와 장면이 셋이서 정당을 새로 만들자고!
- 뭣이라고?!
- 잡아뗄 성질의 얘기가 아니에요! 해공, 그런 식으로 하니까 뉴델리 회담설이 나도는 게야!
- 뭐, 뭣이?!!
- 민국당을 깬 사람이 누군가? 어? 우리가 위원장으로 추대를 했더니 깨버리고 신당을 하랬어?!
어?! 뭐냔 말야!! 이게!!
- 유석, 너무 과격하오.
- 참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음악)
(음성 녹음)
10월 20일자 국도신문에는-
- 『고민하는 민국당, 주류혁신파 대립 극미묘. 신익희 위원장, 조소앙과 뉴델리 밀회.』
이로부터 뉴델리 사건은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
(음악)
(입력일 :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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