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 사흘 동안에 걸쳐 뉴델리 사건은 국회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모든 의사일정을 다 취소하고 그 문제에 대한 토론, 질의로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11월 2일.
- (마이크 음성소리)지금 이러한 동의안이 들어왔습니다. 조순 의원 외 11인으로부터
남북 협상 뉴델리 회담설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함상훈 씨를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케 할 것을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2조의 규정에 의해서 요청할 것을 결의함.
이런 동의안입니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함상훈을 국회에 불러서 직접 증언을 듣자.’
(사람들의 고함 소리)
(음악)
김기팔 구성, 안평선 제작, 정계야화 일흔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음악)
- 의장!
(사람들의 고함 소리)
- 의장!
- (마이크 음성 소리)조영주 의원, 말씀하세요.
자유당 측에서는 함상훈만을 불러 증언을 듣자는 동의를 낸 것.
야당 측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
- (마이크 음성 소리)뉴델리 회담을 운운하는 데 신익희 의원과 동행했던 김동성 씨가
빠졌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의들 어떠십니까?
동의하시는 건 어때요? 김동성 씨도 이 자리에 같이 나와야 하잖아요? 아니에요?!
그러면 이야기가 대단히 우스운데요? 동의하신 분 어떠세요? 참가해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의 고함 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어허, 아직 당국에서 범인을 취조하는 데도 반드시 피의자의
유리한 증언도 묻는 법인데 그것을 부러워하신다니 이거 대단히 딱합니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별개로다가 긴급동의를 하겠습니다! 김동성 씨를 동시에
여기 초청해서 증언을 듣자는 것을 저는 동의합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
먼저 제안자 자유당의 조순 의원은 동시초청을 거부했습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우리 국회가 수사기관과 같이 증인을 일일이 불러다가 여기
단상에서 들을 순 없습니다. 사건의 중요한 발단이 성명서에 의거해서 되었기 때문에
‘함상훈 씨 증언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심정에서 김동성 씨까지 부르자는
요청에 대해서 제가 불응을 했던 것이올시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그러면 먼저 조순 의원의 긴급동의 안부터 표결하겠습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
- 함상훈 씨 부르는 거 찬성합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장본인은 신익희 의원이요
동행했던 김동성 씨인 것은 삼척동자라도 부인 못할 사실이에요! 아이, 당신들 마음대로 하면 어떡하나!
(사람들의 고함 소리)
엉뚱한 문제를 놓고 의사당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의 항거로
함상훈의 초청과 김동성의 초청은 다 같이 가결됐습니다.
(음악)
이튿날인 11월 3일.
- (마이크 음성 소리)어제 본회의 결의에 의해서 함상훈 씨, 김동성 씨를
본회의에 출석해달라는 요청서를 서면으로 냈습니다. 그런데 함상훈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서면의 답이 왔습니다.
- 『증인 호출에 대한 회한. 귀하로부터 증인으로서 국회에 출두하라는 소환은 접수하였사오며
금 3일은 돌연 신병으로 출석키 어렵샀기 자에 문서를 앙달하나이다. 』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의원들은 어처구니없어했습니다. 다혈파 김두한 의원은 의석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 아, 뭐야!! 아, 아니, 어저께도 담화에서 말했는데 뭐? 걔가 병이 났어?! 내려가 봐, 어디!
(음악)
그즈음, 길거리에는 삐라와 벽보가 다시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 『신성한 의정 단상에 야인 함상훈을 출석시키지 말라. 민중자주연맹.』
- 『함상훈의 국회출석은 위법이다. 경고한다. 함상훈은 국회에 출석시키지 말라.
민중자주연맹.』
(음악)
- 하아... 나라가 어찌될려고 이리 소란하고. 민중자주연맹은 뭣이고 반공전열대사령부는 또 뭔고.
모두가 내 부덕한 소치야.
-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까뒤집어놓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왜 밝히시질 못하세요.
- 밝힐 것은 다 밝히지 않았나.
- 밝히긴 뭘 밝히셨어요? 정작 밝혀야 할 일은 하나도 못 밝히시고선 한숨만 쉬고 계시니.
- 아직도 내가 조소앙이를 만났다고 믿는 국민이 있나?
- 그 얘기가 아니에요.
- 거참, 사람. 아녀자가 너무 아는 것이 많구만. 에이.
- 제가 생각해도 분해서 그래요. 이런 소란을 뒤에서 조종해서 만들어놓구선
이제 와서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그런 사람이-.
- 허어, 그 가만히 있지 좀 못해?
- 창현아.
- 네.
(발자국 소리)
- 창현이는 왜 부르세요?
- 차 좀 준비해.
- 네.
- 아니, 다 저녁 때 어딜 가시게요?
- 술 한 잔 마시재. 아...
- 누가요?
- 음, 유석이.
- 네?
- 왜 놀라나?
- 유...석이 왜?
- 허허, 친구 간에 늘 마시는 술인 걸. 음.
- 아, 저, 영감.
- 왜 그래?
- 약주 어디서 하시는데요?
- 나가봐야 알지.
(문 여닫는 소리)
- 나, 그럼 다녀오지.
(차 시동 건 소리)
- 창현이, 넌 집에 그만 가봐라.
- 네.
- 그럼 혼자 가시게요?
- 혼자 가지. 그럼 손자랑 대작하나?
- 염려 마시고 들어가 계세요.
- 요샌 하두 어수선하고 뭐가 뭔질 모르겠어.
- 하하, 걱정 말고 집이나 잘 지켜요. 가자.
(차 떠나는 소리)
- 음... 함상훈 그 사람, 왜 오늘 국회엔 안 나왔을까?
- 안 나온 것이 아니라 못 나온 거겠죠.
- 못 나와?
- 네.
- 못 나올 건 뭐 있누?
- 지금 유석 선생님 만나러 가십니까?
- 음.
- 그럼 함상훈 씨 문제 때문에...
- 함상훈이하고 유석하고 무슨 관계가 있누?
음... 창현이 너두 쓸데없는 소리 들었구나.
- 쓸데없는 소리가 아닙니다.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함상훈 씨는 스케이프고우트(scapegoat)라고 그러던데요. 뭐.
- 스케이프고우트라면 희생양 말인가?
- 네.
- 쓸데없는 소리들. 너까지 그런 생각하면 못쓰느니라.
사람이란 매양 대국적으로 생각을 가져야 해.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큰 것을 생각해야지. 개인감정을 생각하면 큰일은 못해요.
뉴델리 회담설 거짓이라는 게 이미 판명된 셈이야. 다 판명됐어.
그러면 잊어먹는 게지 뭘 또 생각할 게 있나? 앞으로 누구 앞에서든
모르는 체 하는 게야. 다 잊어먹었노라.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알았느냐?
- 네.
- 음, 하하하, 거 오늘은 유석이 코가 비뚤어지게 한번 마시자고 했지.
하하하, 한번 마셔봐야지. 빨리 차를 몰아라. 기다릴라.
- 예예.
(차 소리)
(음악)
(입력일 : 201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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