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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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실록구성 다큐멘터리 정계야화
실록구성 다큐멘터리 - 신익희 뉴델리 사건
실록구성 다큐멘터리
신익희 뉴델리 사건
1970.12.16 방송
70년 10월 5일 밤 10시 5분부터 방송을 시작한 ‘정계야화’는 동명의 대담프로그램을 드라마 타이틀로 부활시킨 20분짜리 실록구성물로 6·25이후 한국정치사의 이면에 갇혔던 뒷얘기를 캐내 대단한 청취율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은 73년 1월 당국의 규제조치에 따라 폐쇄되었으며, 80년 4월에 부활될 때까지 7년 동안을 동면해야 했다.
(음악)

민국당의 간부 함상훈이 발표한 성명서의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은 역시-.

- (마이크 음성 소리) 북한의 조소앙과 세계여행 중에 신익희 씨가 뉴델리에서 상봉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익희와 조소앙의 상봉.

- (마이크 음성 소리) 또한 금년 3월, 북한에서 온 조소앙의 밀사 오경심이라는 여인을 신익희 씨가 만났다는 점.

오경심. 여자라는 것. 조소앙의 밀사, 오경심. 그럼 이 사건에는 여간첩까지 관계됐는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마이크 음성 소리) 우리나라 이 민족이 원치 않는 제3세력을 다름 아닌 신익희 의원이 구상할려고 했다는 것은 그 의도가 나전에 있었다는 것을, 이것을 그냥 볼 수가 없습니다!

친애하는 의원동지 여러분.

10월 29일, 국회. 자유당의 김종신 의원은 긴급 동의안을 상정했습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 우리가 수많은 군대를 조직해서 공산당을 막아낸다고 해서 농촌에서 헐벗고 자라는 농촌청년을 모아서 국군을 만들어서 공산당과 싸워 사라진 것이 수십만이오,

전 국토는 황폐화했고 우리나라는 문자 그대로 파멸상태에 이르러서 국가의 운명은 과연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때, 남북협상 운운해가지고 이러한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은 민족적 정기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서 이 문제를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 이 진상을 국민 앞에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특히 자유당 의원들은 흥분해서 떠들어댔습니다.

- (마이크 음성 소리) 남북협상, 남북협상이라면 저 공산당과 같이 지내자는 것인데 이와 같은 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원조를 받아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우리 국가 전체에 대해서 어떤 지장을 초래하는가. 이것은 자유당, 민국당의 문제가 아니올시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음악)

국회에서 뉴델리사건은 불이 붙었습니다. 뉴델리사건, 신익희와 조소앙이 만났다는 사건.

조소앙이라면은 서울 성북구 출신 국회의원이었다가 6.25때 이북으로 끌려간 정치인.

일찍이 임시정부에도 관련했고 김구, 김규식 계열로 남북통일을 부르짖던 소위 협상파.

신익희 역시 임시정부요인이 아닌가. 더구나 네루수상이 통치하던 당시의 인도는 중립국을 표방하면서 공산주의에 많이 기울어졌던 나라. 두 주인공과 무대는 너무나 그럴 듯했습니다.

그러면 이 뉴델리사건은 문제 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신익희 의장의 비서였던 신창현 씨의 증언부터 들어봅시다.

(음성 녹음)

신창현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은 우리는 뉴델리에서의 신익희, 조소앙 밀회설은 일찍부터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익희 의장이 아직 귀국하기 전, 그가 귀국한 것은 사건이 터진 그 전 해 8월입니다.

따라서 1년 전부터 신·조 회담설이 국내에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뉴델리사건을 터트린 장본인 함상훈 씨의 회고를 들어봅시다.

신익희가 위원장으로 있는 민국당에 정책위원회 부의장이요 중앙상무위원이었던 함상훈은 현재에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미 정계에서 물러난 지 10여 년.

- 『(마이크 음성소리) 친애하는 전 민국당 동지 여러분. 본당은 창당 이후, 원세훈, 김약수 등의 탈당 사건이 있었고 노일환, 김옥주 등의 국회 프락치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중대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제3세력의 본당 침투입니다.』

이 무모하리 만큼 패기만만한 성명서를 발표해서 정계는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던 함상훈 씨는,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정치생명이 끊어져 야인으로 지내는 60대.

(음성 녹음)

함상훈 씨도 신·조 뉴델리회담설이 퍼진 것은 환도 무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음악)

- 사람 잡누나, 사람 잡어. 아, 이놈들 개헌안 통과시키려고 별짓 다해!

- 그러나 사실인데 어떻게 하나. 신익희 의장이 기행문 쓰는데 뉴델리에 들렸다는 얘긴 쑥 빼고 썼다 이 말이야. 조소앙이 만나서 아닌 게 아니라 남북통일 한답시고 제3세력에 동조했는지 알어?

- 이봐, 이 사람아! 신 의장이 그럴 사람이야?! 자유당 놈들이 개헌 통과시키려고 정치파동 일으키는 거야! 아, 조소앙이 만난 게 사실이라면 그동안 수사기관에서 가만히 있었겠어?

트집이 없어서 야당 못 때려잡는 판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가만있었겠어?!

- 아, 그러나 사실인 것도 같애.

- 딱 보니 서툴러, 서툴러!

사건이 터진 1954년 10월에는 일반의 반응이 대개 그 정도였습니다.

이승만의 종신 개헌을 앞두고 야당 지도자를 때려잡자는 작전이다,

또한 의견은 혹시 뉴델리회담은 사실일런지 모른다. 두 가지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이미 이승만의 정치에 대해 일반 양식 있는 사람들은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승만의 정치역량을 의심했고 그 독자적인 성향을 의심하던 땝니다.

따라서 뉴델리사건은 이승만 일파가 조작해서 야당을 탄압하고 개헌을 강행할려는 하나의 작전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침 개헌안 상정을 앞두고 대다수 국민은 반대하고 자유당에서는 이를 강행할려고 으르렁대고 있던 때.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유당으로서도 이 개헌안이 통과할까 못할까 초조할 때였습니다. 실제로 자유당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커서 개헌통과에 자신을 못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악)

-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

- 응? 뭐가.

- 이러다간 꼭 뒤집어쓰게 될 것 같군요.

- 아, 뭘 뒤집어쓰노?

- 국회에서들 대단했다던데.

- 어, 시끄럽더구만.

- 그런데 그냥 의석에 앉아 계셨다면서요.

- 앉아 있지, 그럼 서 있나?

- 아이고, 아, 사실이 아닌 일 가지고 왜들 떠드냐고 야단을 치지 못해요?

- 아하, 거 아녀자가 쓸데없는 일에-.

- 쓸데없는 일이라니, 이러고 있다가는 빨갱이로 몰리실 판국인데.

- 나 자리 좀 펴.

- 아.

- 피곤하구만.

- 아, 네.

- 아휴, 참.

(문 여닫는 소리)

당사자인 신익희의 태도는 그렇게 담담했습니다.

다시 신창현 씨의 회고.

(음성 녹음)

(음악)

(입력일 : 201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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