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제일 바라는 것은 국민투표제를 헌법에 넣자는 것이 만일 앞으로 이완용 같은 역적이 다시 나타나서 나라를 팔아먹는다 해도 현행 헌법으로는 국회만 통과되면은 그만인 것이.
-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각하. (모두)
- 나라도 그렇고 헌법도 그래. 항상 국민 대중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을 위한 나라가 아니오. 장관을 위한 나라가 아니야. 내가 국회의원이나 고급공무원을 국민이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것은 이 때문이오. 국회의원이 잘못을 저질러 국사를 그르쳤을 때에는 국민들이 그 국회의원을 소환해서 따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 말이야. 내 이론에 틀린 점이 있는가?
- 아닙니다, 각하. 지당한 이론입니다.(모두)
- 국민투표제는 간단한 일입네다. 문제는 거이 국회의원 소환제돈데.
- 각하께선 꼭 삽입하라 하셨지.
- 이 총무.
- 예.
- 국회의원 소환제를 삽입하면 의원들이 가만히 있을까?
- 통과가 어려워집니다.
- 음, 그러니 각하께서 저러시는데 안 넣을 수도 없고... 의원들의 반발이 크죠?
- 예.
- 하아, 표 한 개씩 가지고 있다고 되게 행세들 하더만요. 선거 때 진 빚을 이 기회에 좀 갚아달라는 의원이 없나 이 통에 한 재산 모을라는 의원이 없나.
- 개헌에 가짜로 찍는 데 흥정을 하겠다는 건가.
- 그렇디요.
- 실제로 자금도 필요합니다.
- 돈... 흐흥, 정 없으면 내 집이라도 잡혀 써야지.
- 아니, 아니 뭐. 그럴 수야 있습네까.
- 돈... 그건 그렇다치고 원외세력에선 이 통에 고개를 들구 반격해 볼려고 그런다지?
-예, 에... 이번 개헌안 통과에 있어서 우리의 애로사항을 제가 정리해서 말씀드렸디요. 첫째, 자금 즉 돈입니다. 둘째, 자유당 내에 우리 반대파들이 선동할 염려가 있구요. 세째, 정부 각료들과의 절충입니다.
- 그렇지. 정부 각료들도 이번 기회에 각하께 충성을 보여주려고 그러지.
- 네째, 야당의 방해공작이야요. 현재까지는 움직임이 없더만요. 엊그저께 신익희 의원을 만났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제 어깨를 툭툭 치더만요. 마, 그러면서 ‘잘해봐요.’ 이러십디다. 그래서 ‘잘 부탁합네다.’이랬더니 얼굴을 확 바꾸면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더만요. 나 원. 민국당에서도 아마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겝니다.
- 그럴 겁니다.
- 그러나 뭐, 우리당 소속 의원들만 탁 뭉치면 야당 그까짓 꺼이 문제겠습니까?
- 기러니 딱 뭉쳐지긴 할까?
- 공개투표만 하면 문제없습니다.
- 국회법에 비밀투표하기로 명문화 돼있지 않소? 에이... 산 너머 산이군. 이 험한 길을 어찌 걷나.
-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지요. 불가능이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음악)
자유당 대표와 정부 대표와의 연석회의. 국회의장실에서 헌법 개정 초안 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자유당 측으로는 이기붕을 비롯해서 조직부장 임철호, 법사위원장 윤만석, 장경근, 한동석, 그리고 정부 측에서는 내무장관 백한성, 법무장관 조용순, 법제청 제1국장 박일경이 참석.
7월 9일.
-까놓고 얘기해서 국회의원 소환제를 삽입하면 통과가 어렵습네다. 백 장관, 조 장관 들으시라요. 아니, 국회의원이 자기들 발이 묶이는 개헌안에 찬성표 던질 수 있습네까?
- 그러나 각하께서 그 조항은 꼭 넣으라는 분부시니 저희들인들 어쩝니까.
- 여러 의원들께서 들으셨겠지만 각하의 분부가 강하십니다.
- 아, 그거 참 큰일인데. 옆에서 모시고 계신 여러 장관님들이 열심히 간하셔야지.
- 간해서 될 일과 안 될 일이 있죠.
- 아, 그러니 국회통과를 해야 개헌도 되지요. 가급적이면 정치파동 같은 거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요.
-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대통령선거까지는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그러니 이번 개헌안 상정은 만약의 경우 부결되도 할 수 없다 이겁니다.
- 아니, 기럼 이번엔 연습 삼아 한번 해보구 부결되면 또다른 개헌안을 내놓구.
-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뜻이에요.
- 아하, 시간적으로야 앞으로 10번은 개헌안 내놓을 수 있디요. 공고기간 30일씩이네까니.
- 연습 삼아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 그럼요. 우리 원내에서 위신이 있지 그럴 수야 있습니까.
- 하여간 시일은 넉넉하다고 볼 수 있구만.
(음악)
-글쎄. 국회의원 소환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야요. 이대로 삭제해서 발표하시라요.
- 거거이 노여움을 어찌 당하지.
- 그러니까니 이거이 어디 확정된 개헌안입니까. 대통령 중임제 철폐도 우선은 안 들어가 있는 안입니다. 제헌절이라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지요. 발표하도록 하시라요. 에드발룬이지요. 한번 띄워보는 거여요. 반응이 어떤가.
- 정부 측에서 배신이라고 그럴걸.
- 아니, 장관들이 대체 뭡네까. 개헌 장관들이 합네까? 거, 괜히들 야단이야. 정말! 아, 개헌이야 국회에서 하는 거지 장관들 지들이 뭡네까! 발표하시라요.
- 그래, 해보지.
- 사인.
- 음.
그리하여 7월 17일 제헌절을 기하여 자유당에서는 개헌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정부대표와 일단 합의를 보았던 국회의원 소환제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국무총리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국무위원 즉, 장관들에 대한 개개인의 인준권을 국회에 주는 개헌안.
(음악)
(종이 구기는 소리)
- 아니, 이런 배신이 어딨습니까. 당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를 해버렸으니. 이 사람들이 돌았나. 국회의원 소환제도 빼놓고.
- 결국 개헌안이래지만 현행 헌법을 강화시킨 결과가 됐습니다.
- 아, 각하께 알려야겠습니다.
- 그전에 좀 생각을 해봅시다.
- 장경근이, 그 사람 어디가 좀 이상한 사람 아닙니까? 정부 각료들은 그들대로 또 하나의 개헌안을 발표했습니다. 민의원의 국무위원 개별 불신임권을 삭제하고 인준권을 참의원에 부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음악)
- 아, 이 친구들이 장관 노릇 100년씩 해먹겠다는 수작이야, 뭐야. 이거이! 자유당 측과 내각 측은 이렇게 개헌안을 놓고 팽팽히 대립되었습니다.
- 좋아, 경쟁이란 말이지. 의장 각하,
-응?
- 이 사람들이 우리하고 경쟁하자는 수작인데.
- 경쟁은. 우리나 장관들이나 다 이 대통령 각하를 모시는 처지 아닌가.
- 아, 글쎄 각하를 모시는 건 좋은데 개헌을 장관들이 하느냐 말입니다. 남의 고충은 모르고 이 대통령 각하의 신임이나 얻어볼라구 야단이니. 장관 노릇 10년을 하겄습니까. 100년을 하겄습니까! 하여간에 이러다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먹는 결과가 되겠시요. 흠, 정가의 보드를 꺼내는 거야요.
- 정가의 보드라면....?
-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
- 그, 그게 벌써 발표...
- 이러고 있다가는 예이제와 비부를 장관들에게 뺏깁니다.
- 그자들이 그 조항을 넣어가지고는 각하께 들어가서 ‘각하, 국회 측에서는 중임 제한 철폐를 반대하는데 소인들이 끼워넣습네다.’ 이러는 날엔 우린 앉아서 날벼락 맞는 꼴이 됩네다.
- 음, 날레 우리가 발표하십시다.
- 기래야겠군.
-예, 사인.
그리하여 7월 21일. 자유당 측의 발표로 나타난 개헌안. 그 속에는 개헌의 핵심인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의 철폐. 즉,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조항이 발표됐습니다. 공개적으로 이 조항이 나타난 것은 이 때, 즉 7월 21일이 처음입니다.
(음악)
- 아하하하하하하하하,
- 뭐가 우스워.
- 이제야 그자들이 속을 털어놨구만. 하하, 경제조항 개헌이다 국민투표제다 해서 딴 수작만 하더니. 헤헤헤헤, 하하하하. 하하하하.
- 그렇다고 뭐 우스울 게 있나.
- 이제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해공.
- 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음악)
(입력일 : 201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