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신문을 통해서 계속 알고 있었습니다만 각하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환영이 전래없이 대대적이었다는 것은 지극히 경하하여 마지 않을 일인 줄 아옵니다.
-미국 국민들의 환영...
- 미국 역사상 최고라는 소문이 나있습니다. 각하.
- 하하하, 환영 괜찮았지. 내가 왜 환영을 받았는지 아나? 군대 때문인 것이야.
우리 군대가 강하니까 미국인들이 나를 열렬히 환영한 것이야.
- 아,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모두)
- 나라가 독립을 유지하려면 우선 경제의 독립, 외교의 독립이 있어야 하고 또한 군대의 독립이 있어야 하는 것이야.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아 한국의 인상을 미국에 심어준 성과 외에 구체적인 성과는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군사관계. 우리의 정규군을 22개 사단으로 증강하여 150만 대군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한국 측 제안에 미국 측이 동의를 했습니다. 또한 장비가 형편없는 한국군에 제트기와 대형 함정이 생기게 되었고 지상군의 화력도 미군과 동일하게 갖추게 되었고 레이다 및 특수장비도 들여오게 됐습니다. 또한 군사원조를 경제원조와 분리해서 실시하자는 데 미국이 동의를 했고 군사원조 연간 4억 2천만 달러를 요구한 것이 거의 승인되었습니다.
경제원조관계. 한국은 경제원조로 3억 8천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2억 4천만 달러를 우선 승인했고 그 지불일자를 빨리 해달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또한 부흥산업 및 원조금을 쓰는 데 있어서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치 및 외교문제. 중립국 감시위원단. 특히 체코, 폴란드 등 적성국가위원단을 철수시키는 데 미국이 동의를 했습니다.
또 일본문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 측의 부당성을 시정해야 된다는 한국의 주장이 미국 정부에 인식되었고 그때까지 유엔군 관할 구역이었던 우리나라 동부 수복지역을 한국 정부가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미행정협정 체결을 촉진시켰으나 당장의 해결은 못 보고 말았습니다. 이상과 같은 물질적 성과 이외에 물론 정신적 성과가 가장 컸던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음악)
20일 동안 이승만이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국내정국은 어찌되어 있었는가.
(비 오는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이구, 어서 오세요.
- 계시죠?
- 아, 네.
(계단 올라가는 소리)
- 아이구, 어서 와요.
- 아, 아, 뭘 하고 있나? 아하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이게 방에 비가 새서... 아하하.
(물 따르는 소리)
- 아아, 지붕 좀 고치지. 장마철에. 으이구.
(물 따르는 소리)
-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한 방울 두 방울씩 똑똑 떨어지더니만.
- 그런데 오늘은 이 모양이야?
- 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안방은 좀 어떻소?
- 아유, 거긴 더해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장마가 곧 걷히겠지.
- 으흠, 지붕은 고치고 살아야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고치긴 해야 할 텐데...
- 돈이 없구만.
- 아, 장마가 곧 걷힐 텐데 뭘 그래. 서 있지 말고 앉아.
- 아, 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남)
- 마누라, 막걸리 좀 받아와.
- 아, 아니야. 내가 맥주 좀 가져왔어.
- 그래? 수준 높군.
- 뭐, 그 정도지. 그 저, 땅콩이랑 봉지 안에 들어 있을 겁니다. 상 차리지 마시고 그냥 주십쇼.
- 네.
- 아, 이 가난은 언제나 면하노.
- 가난하다니, 누가.
- 이 박사 들어온대.
- 원조물자 좀 많이 얻어온다든가?
- 아, 그까짓 거 얻어 와서 뭘 해.
- 안 얻어오면 어떡하나? 돈 좀 들여와야 우리집 지붕도 좀 고치게 될 거 아닌가.
- 해공한테 차례가 오기 전에 먹어치울 놈들 다 있어요. 매해 몇 억 달러씩 들여와서 뭘 하는지 아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이놈들, 고대광실 짓고 남은 돈은 스위스은행에 빼돌리는 게야.
- 아... 고얀 놈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아, 이쪽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맥주병 뚜껑 따는 소리)
- 아, 뚝뚝 떨어질 땐 괜찮더니 다른 대야 들여와, 빨리.
- 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아, 궁상 좀 떨지 말라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 누가 궁상을 떨어? 지붕은 말랐을 때 고쳐야지 비올 땐 올라가질 못한대.
- 양옥을 한 채 짓지 그래?
- 하하하, 술 마셔야지. 하하하.
(컵에 술 따르는 소리)
- 자, 들어요.
- 음, 그래.
(술 마시는 소리)
- 하!
- 에이구, 시원하다. 하.
- 내후년에는 정권 잡아야지.
- 아하하. 글쎄.
- 이 박사 또 하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 개헌한다며?
- 어.
- 개헌안 통과될까?
- 되지.
- 자유당 표 많다지만 저이들도 십만선량인데 그런 짓에 뭉쳐지진 않을 게야.
- 아, 통과 안 된다고 이 영감이 물러날 것 같애?
- 안 물러나면 어쩌누?
- 하여간에, 죽기 전에는 제 발로 안 물러날 거 뻔하지.
- 그러니 선거로다 맞서서 꽈당 넘겨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 넘어갈까?
- 넘어가도록 해야지.
- 하늘이 이 나라를 돌봐주시면 되는 것이고.
- 하늘이 무심치는 않을 게야.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우리 국민이 어떻게 살겠어? 몇몇 놈들이 배가 터져 죽을 판이고 대다수 국민은 굶어죽을 판이니.
- 흐음.
지금 자유당에서는 개헌안을 내놓으려 하고 있을 때,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위해 온갖 치밀한 작전을 다 세우고 있을 때 당시 야당에서는 거기 대결해서 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심치 않으리라는 정도의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헌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저지할 조직적인 전략이 없었습니다. 막연히 통과되지 않으리라는 기대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악)
- 각하께선 국민투표제에만 계속 관심을 두신단 말야... 중임제 철폐에 관해선 전혀 모르고 계신가봐.
- 아하하, 고거야 말씀 드리나마나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승만은 자기의 영구집권을 위해 개헌한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는 체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회 자유당의 원내총무였던 이재학 씨의 증언.
(음성 녹음)
(음악)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 없도록 국민투표제를 강화해라. 그리고 이 개헌안의 핵심은 전혀 모르는 체 하고 있는 팔십 노인.
눈을 꾸버거리기를 잘하고 안면근육이 실룩거릴 뿐 그밖의 표정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 노회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쇼.
그리고 그 음흉한 노인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무조건 공손하게 구는 그 부하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쇼.
한 나라의 역사가 바뀌는 중대한 개헌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그 핵심은 논의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정치가들.
이런 자들에 의해 삼천 만의 국민을 가진 대한민국이 통치되고 있던 1954년입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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