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오늘은 해공 신익희의 모습을 잠시 살펴봐야겠습니다. 1954년 6월 9일에 개원한 제 3대 국회에서 의장은 이기붕이 당선. 1.2대를 통해 6년동안 국회의장 직을 역임한 신익희는 이제 평의원이 됐습니다. 해공의 미망인 김해화 여사가 당시를 회고 합니다.]
(음성 녹음)
- 흠.. 여보, 마누라. 안자오?
- 네. 하암.
- 오호. 안자고 있었구만.
- 영감이 못 주무시는데, 내가 어떻게 잡니까. 벌써 몇일째 입니까?
- 흠.
(담배불 붙이는 소리)
- 집은 내놓읍시다. 이 집은 공관으로 해서 정부에다 내놓자고.
- 왜?
- 아, 왜라니? 이 집은 애초부터 나라 것이 아닌가?
- 왜 나라것이에요? 저희 것이지.
- 어허. 무슨소릴.
- 이 집. 앤더슨씨가 저한테 준 집이에요. 제 머리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앤더슨씨가 귀국하면서 나를 불렀어요. 미세스 신. 다른 사람들은 다 적산 집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남의 집 곁방 살이를 한다고 이 집을 가지라고 그랬어요.
- 허허, 그렇다고 이 집이 앤더슨씨 소유는 아니었잖나.
- 적산 아니었습니까. 관제청장도 그럽디다. 이 집. 부락 신청을 내라고. 남들은 적산 집채를 몇채를 얻어서 팔아먹었는데, 우리야 겨우 이집 한채인데, 의장 떨어졌다고 내놓으면 우린 어디갑니까? 길에 나섭니까?
- 허허. 그 마누라 철없는 소릴.
- 철이 없다니요?
- 내가 30여년간 해외로 떠돌면서 독립된 뒤에 집 한채 얻겠다는 생각을 했나? 큰 집 얻어서 호강할 생각을 했어?
- 그렇다고 독립된 조국에 돌아와서 노숙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 살아서, 독립된 나라를 본 것만해도 만족해야지. 노숙을 하던, 판자집 신세가 되던, 상관없어요. 하여간에 이 집은 내놔.
- 전 못 내놓겠어요.
- 허허. 그 무슨 소릴.
- 이 집은 제가 앤더슨씨에게 얻은 집이에요.
- 이 집. 우리가 차지하면 나라에는 공관하나 안 남게 돼.
- 이기붕씨는 서대문 집에 그냥 살 모양입디다.
- 이기붕씨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나라 재산이니, 나라에 바치자는 게야.
- 글쎄, 내 놓는 것은 좋은데 우린 어디로 가죠?
- 셋 집을 얻어.
- 셋 집은 그냥 얻나요?
- 이 여편네가 말이 참 많군.
- 말은 안하면 그럼 어떻게 해요? 세비라고 언제 제 손에 한번 옳게라도 쥐어 주셨수? 밤낮 애국지사 누구의 며느리다, 조카다, 아들이다. 사무처에 알아봤더니, 여섯달치나 앞질러서 가불하셨답디다. 무슨 돈이 있어요? 셋 집은 거저주나요? 누가? 체면때문에 누구한테 말도 못 꺼내고, 돈 한푼 없다고 하면 누가 곧이 듣겠어요. 정말 부끄러워서 말도 못 꺼내겠어요.
- 허허. 부끄러울 것도 많겠다. 하하.
- 부끄럽지, 그럼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 흠..
- 흑흑.
- 흠.
- 못 내놓겠어요. 이 집은. 누가와서 내 몰기전에 못 내놔요.
- 어허.
- 못 내놉니다. 제 손으론 못 내놉니다. 흑흑.
(음악)
(음성 녹음)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림)
- 사모님 나오셨습니까?
- 아, 김선생님.
- 별고 없으시고요?
- 아, 네. 저, 잠깐.
- 저요?
- 네. 다름이 아니라, 이거 정말 딱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 네.
- 은행 융자 좀 받을 수 없을까요?
- 융자요?
- 부끄러워서 얘기도 못 꺼내겠습니다만은 공관을 내주고 나가야 할텐데.
- 저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 그러니 어쩝니까. 돈은 없고, 은행 융자를 받아서 초가삼간이라도 마련하고, 제가 갚아드리겠어요.
- 융자가 글쎄, 요샌 대통령 명령이 하도 엄해서. 하여간에 알아보겠습니다.
- 남한테 얘기는 말고, 좀 알아봐주세요.
- 네. 꼭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음악)
(차소리)
- 집이 아주 초라하답니다.
- 우리 처지에 지금 집모양 따지게 됐습니까?
- 교통은 좋은 편입니다만.
- 하여간 고맙습니다.
(차소리)
- 흠. 여긴가?
- 네.
- 역시, 작고만.
- 아니에요. 교통좋고.
- 들어가 보실까요?
- 어, 들어가보나마나 좋습니다.
(음성 녹음)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흠. 어 그게 아주 아담한게 좋구만. 하하하.
- 목욕탕도 없습니다.
- 목욕은 밖에서 해야지. 어, 아담한게 좋아. 오손도손 재미있겠어. 집이 크면 괜히 식구도 없는데, 썰렁만 하지. 집 값도 싸고 좋지.
- 집 값이 아니에요. 은행 이자만 갚으면서 임시로 살아가는거에요.
- 하여간에 내가 살게 됐으니, 내 집이지. 아, 방이 셋이라지? 하난 우리 내외가 쓰고, 하나는 일하는 애가 쓰고, 또 하나는 사랑방으로 쓰면 되겠구만.
- 사랑방이요? 방 크기를 보세요.
(문 여닫는 소리)
- 어, 조그만한게 아담하군.
- 아담은. 초라한거지, 어찌 아담한거에요.
- 아담하지. 하하하하.
- 하하하하.
(음성 녹음)
(음악)
- 춥다. 왜 이렇게 춥지?
- 왜 그래. 한잔 더.
(술 따르는 소리)
- 술이 취하면, 따뜻해 지지.
- 흐흐. 이 집에서는 술 안마시곤 못살겠구만. 흐흐.
- 아, 왜. 겨울이니까 그렇지. 이제 날씨만 풀리면 괜찮아.
- 아, 원 집을 얻어도 뭐 이런데를 얻어가지고. 흐흐.
- 아니, 유석 집은 고대광실인가?
- 어유, 이 집보다는 낫지.
- 이 집이 더 나을껄?
- 흐흐흐.
- 아담한게.
- 하하하하.
- 하하하.
- (술 마시는 소리) 아이고, 아주머니.
- 방이 차서 어떻게 하지요?
- 흐흐. 좋습니다. 아담한게.
- (세 사람의 목소리) 하하하하.
(음악)
(입력일 : 200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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