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웅성거림)
[1954년 6월 9일 수요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안팎은 혼란이 빚어질 정도로 인파가 밀려닥쳤습니다.
제 3대 국회가 개원하는 날.]
- (마이크 음성소리) 국회법 제 6조에 의해서 최고 연장자가 임시의장의 직무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 최고
연장자이신, 강원도 정선군 출신 전상여 의원을 소개합니다.
(박수소리)
- (마이크 음성소리) 예. 불초한 전상여가 팔십 노인으로서, 대한민국 제 3대 민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성스러운 개헌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의원여러분과 더불어 반갑게 생각하는 동시에, 더욱이 사회까지
하게 되어서 대단히 외람스럽고 미안한 감을 금치 못하는 바 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정치인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닙니다. 다만 순진한 농민으로서 농촌에서 일했고, 농촌에서 늙었음으로 농촌 실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대개 몇 마디 말씀을 드려서 우리가 앞으로 양단된 국토를 통일하자면은..
- 저기, 세번째가 김영삼이죠?
- 음.
- 겨우 스물 다섯살이라죠?
- 응. 그래.
- 헤헤헤. 여자도 있네?
- 으응, 김철화라는 사람.
(사람들의 웅성거림)
- (마이크 음성소리) 그럼, 재적의원 2/3 이상의 출석이 있으므로, 의장선거를 개시코저 합니다. 지금부터
투표를 개시합니다. 의원 여러분은 호명에 따라서 투표용지 배부서에서 명패와 투표지를 받아서 기표소에
가서 피 선거자의 성명을 기입한 다음,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명패는 명패함에 각각 투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부르겠습니다. 윤보선 의원, 김두한 의원..
- 네.
(발자국 소리)
- 해공, 자신있소?
- 자신? 후후후후.
- 저 사람들 암호투표 한다던데.
-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
- 비밀투표하면은 자유당에서도 해공표가 많이 나온다는 거에요.
- 거, 이기붕씨 하라고 내버려둬요.
- 오, 장 의장님.
- 음.
- 뭐?
- 장 의장님.
- 뭐?
- 이번에 의장 된다면서?
- 말 말어.
- 왜? 떨어질거 같은가?
- 틀렸어. 자유당표 깰려고 그랬는데, 암호투표 한대.
- 음하하하하.
[암호투표.]
(음악)
[먼저 이충환 씨의 증언을 들읍시다. 당시 자유당 소속 의원이었고, 현재 신민당 정무위원으로 있는
이충환 씨는 그때까지는 자유당의 주체세력이라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음성 녹음)
- 이번에 행동통일을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들에게나 대통령 각하께, 우리당의 위신이 안선단 말이에요.
알았습니까? 여러분은 각도 대표들이시니까. 장경근 의원이 그 방법을 소개해드릴테니, 잘들 들으세요.
- 예. 이거이 아주 합법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도 법에 어긋나는 방법이 아니야요. 투표지에다가 이기붕이라고
쓰는데, 잘 보시라요. 먼저 경기도. 경기도는 이.기.붕. 이 자는 언문으로 쓰고, 기붕 두자는 한문으로
쓰는거에요. 알았죠?
- 네.
- 다음 충북. 충북은 어떻게 하는 거 하니. 잘 보시라요. 이.기.붕. 이 자는 한문으로 쓰고, 기붕은
언문으로 쓰는거에요. 그러니까는 경기도하고 충청북도는 반대로 쓰는 거에요. 알았지요?
- 네.
- 강원도 들으시라요.
- 예.
- 강원도는 그냥 한문으로 쓰시라요. 근데, 꼭 옆으로 써야 합니다. 행서. 알겠습니까?
- 예.
- 다음 경북. 경북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기붕. 이렇게 다 언문으로 쓰는데, 꼭 옆으로 쓰시라요.
언문으로 행서를 하는거에요.
(음악)
[자유당이 의원총회를 계속해서 열면서 그런 기묘한 암호투표 공작까지 하고 있는 동안, 야당인 민국당은
어찌 했는가. 물론 수수방관. 겨우 15표를 가지고 뭘 하는가. 이기붕이라는 인물이 의장으로서 부적격자인
것을 뻔히 알고 있다해도 어쩔수 없는 일. 신익희의 비서였고, 현재 대한조선공사 상임감사 신창현 씨의
회고를 들어봅시다.]
(음성 녹음)
[신익희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대세는 어쩔수 없이 기울었다는 판정을 하고,
그는 의장선거에는 관심조차 표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 다음은 칠곡군 장택상 의원.
- 조병옥이라고 써 넣게.
- 농담 말아! 흠.
- 흐흐흐흐.
- (마이크 음성소리) 다음은 금릉군 김철화.
- 예.
- (사람들의 웃음소리 및 박수소리) 하하하하.
- 명판이 어딨는교?
- 여기 있습니다.
- 아, 예. 고맙습니다.
- (마이크 음성소리) 다음. 김우동.
(발자국 소리)
- 선생님.
- 오.
- 아, 이철승 의원. 누굴 썼나?
- 비밀입니다.
- 자기 이름 써 넣진 않았겠지?
- 전 의장 못하나요?
- 해봐. 그럼.
- 그러나 저러나 저기 좀 보십시오. 저게 무슨 꼴들 입니까? 저게.
- 암호투표 한다지?
- 예. 일일이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 있을까봐 저러고 있군요.
- 아, 대한민국 국회수준 높구만.
- 에이, 너무 합니다.
- 국회가 뭐가 어떤가?
- 예?
- 대한민국 국회는 이미 전통이 확립됐어. 3대 국회의원들이 그런게야. 일부 국회의원 수준이 낮지,
국회의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야.
- 1.2 대도 의원들이 저 모양 입니까? 글자 쓸 줄 모르는 의원도 있다면서요?
- 유무식은 상관없는 일이야. 나라 사랑하는데, 꼭 유식한 사람만 한다는 법은 없어요.
- 흠.
- (마이크 음성소리) 다음은 이용범 의원.
- 예.
(발자국 소리)
- 이 의원?
- 왜?
- 자신 있습니까?
- 글자?
- 음.
- 열심히 했으니까. 자신 있습니다. 안심하소. 하하하.
(발자국 소리)
- 흠.
- 다되가는 군요.
- 그래?
- 경남 끝나가고, 강원도 남았습니다. 벌써 당선권에 들어섰을 거에요.
- 그럴까?
- 4명 결석이니까, 100표만 되면 당선이지요.
- 지금 112표째 들어갑니다.
- 최순규씨 어딨나?
- 아, 예. 최 의원님. 최 의원님.
- 저요?
- 예. 이리좀 오세요.
(발자국 소리)
- 최 의원.
- 예.
- 취임 연설 준비됐소?
- 예. 대강 준비했습니다.
- 야당 의원들에게 자극적인 문구는 없겠죠?
- 예. 그냥 평범하게 할 예정입니다.
- 그럼 됐어요. 흠.
- 하하하하. 저기 야당의원들 좀 보세요. 풀들이 죽었구만. 확실히.
- 장 의원 아이디어가 주효했군.
- 하하하. 뭘요.
- 이번 아이디어 확실히 기발했어.
- 아뇨. 뭐 보통이지요. 하하하.
- (마이크 음성소리) 투표 안하신 의원 안계십니까?
- 벌써 끝났군.
- (마이크 음성소리) 안 계시면은 투표함을 닫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명패함을 열고, 명패수를 점검
계산하겠습니다.
[이제, 투표 결과가 나옵니다. 투표한 의원수는 199명. 장경근의 계산대로 꼭 100표만 나오면은 과반수로
당선.]
- (마이크 음성소리) 지금부터 개표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음악)
(입력일 :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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