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소란거림)
- 자유당 개편을 함에 있어서 나는 세가지 원칙을 내 놓을 것이니 여러분들 알아서
하시오. 세 원칙이라는 것은 첫째, 당수다 부당수다 하는 그 정부 당수제도를 폐지
해야 하는 것이고, 당을 총재 제도로 하는 것으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원칙은 현재의 중앙 상무 집행위원회를 폐지하고, 단순한 소수 집행 부서를 설
치할 거이오. 셋째, 중앙 위원제로 당을 개편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 뜻을
알았을 줄 믿소.
(음악)
[이승만이 어떤 인물인가. 그 그늘 밑에서 눈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승만의 말은
곧 절대자의 말. 이승만이 하라면 해야 한다. 총재제도가 되고 부당수제도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 때까지 부당수로서 이승만 다음에 자리를 차지했던 철기 이범석은 하루아침에
일개 평당원이 되었고, 중앙 위원은 한총 국민회, 노총 농민회, 부인회등 5개 기관단
체에서 각각 지명된 12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족청파는 서리를 맞았습니다.]
- 만송.
- 예, 각하.
- 총무 부장을 맡아.
- 예? 불민한 제가 어찌 그런 중책을 맡겠습니까.
- 중앙위원회에서도 통과가 된 모양이니까 자네는 맡아 나가면 돼. 젊고 깨끗한 이를
더 뽑아 각 부장을 임명해야 겠어. 내년 선거에 대비해야 한단 말이야.
- 알겠습니다. 각하.
(음악)
- 총무부장? 당신 그래, 중책을 맡는 다더니 겨우 총무부장이에요?
- 총무부장이면 중책이지.
- 뭐요?
- 이를테면 수석부장 아닌가.
- Boys be ambitious. 음.. 아무래도 내가 또 들어가야 할까봐.
- 어딜 들어가누?
- 어딘 어디에요. 경무대.
- 학교나 열심히 나가지. 왜 정치엔 자꾸 관심을 가지누.
- 응? 아니 당신. 그나마 각하께 불려 들어간게 누구덕인지 모르오?
- 음..
- 하아.. 여보. 여보.
[마리아. 마리아로 행사하는 한국여인. 박마리아. 이기붕의 아내. 이기붕 대두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야심있는 여인.]
- 여보. 총무부장이면 확실히 수석부장이요?
- 아, 그렇다니까.
- 그럴꺼야. Step By Step 이지. 올라가 봅시다. 여보, 내가 밀께. 아니 앞에서 끌어
드릴께.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각하.
- 오, 어서 와요. 박영만 군. 이리로.
- 네. 각하.
- 여기 싸인을 해.
- 네? 음...네.
- 됐어.
- 각하, 그게 무엇인지..
- 오.. 박군이 자유당 부장이 되는거야.
- 네?
- 조직부장을 수락했다는 싸인이지.
[이렇게 자유당 각 부장들은 싸인을 하고 임명 되었습니다. 총무부장 이기붕, 조직부장
박영만, 선전 황성숙, 정무 이갑성, 조사 진승국, 훈련 이진수, 청년 문봉재, 재무
배민수, 감찰 이범령 족청계는 완전 거세 당했습니다. 이승만의 뜻대로 새로운 출범.]
(음악)
[자유당이 새로운 출범을 하고 있을 때, 야당은 뭘 하고 있었는가. 야당, 야당이라지
만 민주국민당이 유일한 정당으로 존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민의원 의석수 20여
석 밖에 안되는 쇠퇴한 정당. 민국당의 지도자 인촌 김성수는 추존되기 전해인 1952년
5월 29일에 이승만에 대한 강렬한 항의로 일관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방송 - 만약 그에게 일편의 애국심이 있다면 지금이 어떠한 시기이며,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떠한 것이길래 국가의 비운과 민생의 고난을 모르는 척 일신의 영욕을 위하여
어찌 이다지도 난맥의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있어 나는 이 이상 단 하루도
이승만 정부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부통령을 사직한 인촌 김성수는 곧 병석에 누워 지내는 몸. 8월 20일 상경해서 계동
의 유서깊은 사랑방에 누워있었습니다.]
(종이 부스럭 거리는소리)
- 음 허...
- 무슨 사건 또 났어요?
- 또 나설려고 그러는 구만. 이박사가 3선 개헌을 할 기세야.
- 누구나 다 예측하는 일인데요. 뭘.
- 다 알고 있었어.
- 그럼요. 그 양반이 권좌를 쉽게 물러날 분이에요?
- 알면서 가만히 있어! 응!
- 아니, 여보.
- 민주주의가 파괴되는데 가만히 누워있어?
- 아, 여보.
- 내 몸이.. 몸이..
- 여보..
(음악)
또 하나의 민국당 지도자 신익희는 국회의장. 영국 엘리자벳 여왕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우방 18개국을 역방한 그는 9월 19일에 귀국. 21일 서울 환도 첫 국회에야 나타났습니다.
- 에, 하도 오랫동안을 국회를 떠나서 국외를 돌아다녀 어제 그저께야 비로소 서울에
왔습니다. 원래 예정 계획은 두 달 가량을 예상했던 것이 여행상 사정으로 인해서 거
진 곱절 가량이나 시간이 허비된 것이올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대
한 문제가 많이 발생이 됐고, 또 처리가 된 느낌입니다.
[국회의장인 만큼 초당적인 위치를 지켜야 되는 위치에 있어야 되는 신익희.]
- 시간이 불겁하고 하니, 당신의 말씀대로 오피시어스 트립으로 비공식의 방문으로
가는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만약 사전에 약속이 있어 설비를
해줘 영접을 해주면 좋지만 만약 그러한 편의가 없는 나라일지라도...
(음악)
(종이 부스럭 거리는소리)
- 안돼! 어.. 이게 뭐더라 이게. 하하.. 아.. 이 어이..
[이 중얼대면서 안타까워 하는 사나이. 유석 조병옥의 1953년 9월의 모습입니다.]
- 정치 안해야지. 우째 이러는지. 누가 한댔나? 이것 참. 기가막혀서..
[전혀 폐인같은 사람입니다.]
- 공산당의 파괴적 행동에 관하여는 이를 절대적으로 엄단할 것이며...
[해방직후 그 서슬이 시퍼렇던 경무부장.]
(총 소리) - 내무장관으로서 나는 이 대구를 사수하기로 결심을 했으니까 여러 시민들은 동요를
말아요. 방위선입니다. 여기는 싸워야 해요. 여러분!
[이 투지로 묶여진 듯 무식한 사나이 조병옥이 폐인처럼 중얼대는 사람으로 변한 이유
는 무엇인가. 이승만이 반공포로 석방으로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했을 때.]
- 한국정부가 유엔과 미국과의 하등 사전 협의 없이 또는 양해도 받지도 않고, 엄연히
제네바 포로 협정에 규정되어 있는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이 유엔과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은
부당한 처사라고 본인은 지적하는 바입니다.
[이승만의 처사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부산에서 발표한 조병옥은 6월 24일 서울에 도착
해서 친구집에 들었습니다. 경무대에 있는 이승만과 직접 회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날아침 밥을 먹고 밖을 나가다 보니..]
- 조박사, 저걸 보시오.
- 아. 뭐야?... 응? 역적 조병옥을 타도하라?
- 사태가 심상치 않소.
- 어, 벽보들은 왜 붙여? 왜냐..
(음악)
[역적 조병옥. 거리마다 삐라가 나붙어 있는 상황. 과연 그 날밤 12시 경. 조병옥이
들어 있는 집.]
(소란스러운 소리)
- 조박사, 조박사!
- 아, 가만.
(문 두드리는소리)
- 역적, 조병옥은 나와라!
(사람들의 소리지르는 소리)
- 나와!
- 왠 놈들이야!
- 조병옥이 나와!
- 왠 놈들이야. 용무가 있으면 낮에 만나 얘기 할 것이지 야밤중에 뭣들하는게야. 이게.
- 죽여~!
(음악)
곽상훈씨가 당시 얘기를 들려줍니다.
(육성녹음)
(음악)
(입력일 : 200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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