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실록구성 다큐멘터리 정계야화
1화 - 서막
1화
서막
1970.10.05 방송
70년 10월 5일 밤 10시 5분부터 방송을 시작한 ‘정계야화’는 동명의 대담프로그램을 드라마 타이틀로 부활시킨 20분짜리 실록구성물로 6·25이후 한국정치사의 이면에 갇혔던 뒷얘기를 캐내 대단한 청취율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은 73년 1월 당국의 규제조치에 따라 폐쇄되었으며, 80년 4월에 부활될 때까지 7년 동안을 동면해야 했다.
실록 구성 정계야화. 신약의 명문 종근당 제공입니다.

(방송- 나의 정치적 원수들의 말을 듣고, 내가 병력을 이용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민국 전체를 업시 하겠다는..)

(방송- 대통령, 대통령이 될 자를 이렇게 부릅니다. 이러할 때 경악하실 분들 계실지 모르겠지만은...)

(방송- 분명 공정한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음악)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1분. 그 무더운 날에 판문점에서 휴전조인이 끝났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만 3년 1개월 그리고 이틀동안에 전쟁.

(종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

-각하, 그만 쉬셔야 겠습니다. 각하.

-왜?

-과로 하시면..

-과로?

-네. 각하.

-지금이 쉴 땐가. 전쟁이 끝났다고 나더러 잠을 자란 말이야. 이북 동포들이 다시 김일성이한테 매였어.

온 강토가 잿더미가 되었어. 전쟁하고 있을 적 보다 더 힘이 드는 때가 왔어. 잡초는 뽑고, 새로운 나무

를 심어야 해. 내가 앞장 서서.

(음악)

김기팔 극본, 안평선 연출, 첫번째 시간으로 대담으로 엮어 보내드리는 정계야화를 방송극으로 엮어 보내

드립니다.

(음악)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백만명이 피를 흘린 전쟁의 댓가는 그대로의 남북분단. 그러나 하여간의 전쟁이란

잔인한 비극은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재건. 통일의 비원은 성취 못하였어도 어서 전쟁

의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데..

(방송 - 내가 다시 지게 되는 책임은 내가 할 수만 있었으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날 최고 통치자는 우남 이승만. 만 일흔 아홉살의 노인.

(방송- 이 나라는 백성의 나라가 아닙니다. 임금의 나라에요.특권계급의 나라에요. 우리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

노인 정치가. 화려한 정치 투쟁을 가진 노 대통령에게 감히 도전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음악)

오늘 부터 매일 이 시간에 방송될 실록구성 정계야화는 1953년 휴전으로부터 이나라에 거세게 불었던

정치적인 열풍을 다루게 됩니다. 그것은 확실히 열풍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리침)

(이승만 정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8.15 선거는 무효다!..)

(방송-나는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임해왔습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

4.19 학생의거로 162명의 젊은 목숨이 희생되고, 늙은 대통령이 권력의 자리를 물러날 때까지 7년.

반 만년을 자랑하는 우리 역사로 볼 때에는 한 순간 처럼 짧은 기간 이지만은 그 7년은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의 하나로 기록될 만 합니다.

(방송- 합법적인 선거 절차로는 도저히 여당의 입후보가 이승만 및 이후보가 당선될 수 없습니다. 피고인

최인규, 이성호, 이백만, 최병환 등은 4.19인 11월 경 부터 42구삼년 12월 사이에 대학로에서 수시로

규합하여, 헌법과 대통령, 부통령선거법이 정한..)

지금으로 부터 10년 전에 있었던 역사입니다. 우리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말씀은 역사로 정의되기

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생생한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의 하나로 이 프로그램은

의의를 갖게 됩니다.

(음악)

그 청취적 열풍의 생생한 자료를 기억속에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벌써 하나 둘씩 저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방송 - 제 생각엔 우리나라 운명과도 같아서 계속적 투쟁과 인내력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 끝

에는 앞의 자아가 어떻게 해도..)

주역 이승만은 회고록 한 줄 안남기고 벌써 5년 전에 갔고..

(방송- 미진한 내가 부통령으로 중임을 맡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지금..)

인촌 김성수는 1958년, 해공 신익희는 1956년 이승만과의 결전을 눈 앞에 두고 통분의 주검.

(방송- 수술을 받아가지고 건강한 몸으로 2월 말경에는 오리라는 그런 자신을 가지고 갑니다...)

유석 조병옥 또한 1960년에..

(방송- 우리가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자 합니다...)

만송 이기붕은 1960년 4.19의 함성을 들으며 비극적인 자결을 해..

(방송- 특수 계급에게만 졸부를 만들어 줘서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이 나라 최초요. 최후인 내각 책임제 수상. 운석 장면은 1966년에..

(방송- 우리진영과 분명이 나누어 져있는 이 세계에 있어서 북경도 안가고 화성터도 안가면 한군데

밖에 갈데가 없습니다. 중립하자는 얘깁니다...)

창랑 장택상 또한 1969년에. 몇 토막의 목소리만 남긴채 생생한 역사의 자료인 주인공들은 자꾸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

한국의 국민은 정치적 관심도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 으로서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젖먹이나, 백치를 빼 놓고는 없을 것입니다. 높은정치

관심도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관심이 정상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4.19를 혁명이나 의거니 해서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영광스런 사건의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4.19는 이승만 정권을 몰아내는데 기여한 학생들의 의거였습니다.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항거한 전 민족적인 의거였습니다. 외국 세력에 대한 항거로 민족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4.19 그것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학생 내지 국민의 항거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일원인 이승만

의 통치를 거부하는데, 왜 피를 흘려야 했는가. 162명의 젊은 목숨이 정권교체를 위해 희생당했습니다.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현대민주국가에서 정상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정치에 대한 정상적인 관심을 가지자는데 역점을 두고 과거를 돌이켜 보겠습니다.

(음악)

(방송- 전쟁을 보고난 이후는 국민의 염원에 보답하기 위하야 간언을 무릅쓰고 각 지방으로중에 유세중에..)

이 것은 1956년 해공 신익희의 장례식에서 곽상훈이 한 조사의 녹음입니다.

(방송- 알던 모르던 이를 막론하고 어떠한 공항 결전에서 까지 남녀노소가 같이 혈육의 친지가 이런것이 땅을

치고 통곡하였습니다.)

통곡했던 사건입니다.

(방송- 여자는 닦고 울고, 농부를 괭이를 붙들고 울고, 남녀 학생은 울고, 산청도 울고 초목도 울었습니다.

흐흐흐흑.. 이 오열을 어찌 선생께 만을 위하여 오열하리오리까. 해공선생 이 국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음악)

실록 구성 정계야화는 이런 사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드라마로 구성해 나가겠습니다. 통곡의 역사. 그리고

때로는 환희의 역사. 안타까운 사건들과 통쾌했던 사건들. 능력이 닿는데로 그 과거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재연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송- 어제 이 대통령을 만나뵌 좌석에서 이 양반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할 때에 내 대답은..)

드라마와 함께. 실제 인물들의 목소리도 또한 여러분은 이 시간을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방송- 공명 정대한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그렇게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나는 확실히 이나라의

지도자로 되리라고 확실하고 전장에 있을 때는 오늘날 그런 시련을 통한 내 투쟁력을 발휘해가지고 그게 성패,

최대의..)

(음악)

내일 이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출연: 이승만 구민, 비서 유민석, 해설 오종환

(입력일 : 200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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