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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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향토무대
(구석봉 작) - 예성강
(구석봉 작)
예성강
1968.01.19 방송
(음악)

순도와 함량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항토무대.

(광고)

(음악)

이번 주에는 구석봉 작, 예성강을 홍이현 연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악)

- 돈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랑이구나. 임이여, 내 사랑하는 아내여.

비록 몸은 망쳤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오. 어서, 어서 돌아와주오! 여보!!

(파도 소리)

- 아, 여 부인. 부인. 이러지 마. 잉? 이, 이젠 나와 같이 살게 됐으니 옛정 다 잊어버려 해고 새 정을 맺읍시다. 아...

- 이러지 말아요!!

- 아하하하...

- 정이란 하나뿐이지 둘이 있을 수가 없어요! 흐흑... 어서, 어서 내 남편한테로 돌려 보내주시오!!

흐흐흑... 어서요!! 흐흑... 아... 흑...!

(파도 소리)

(음악)

예나 지금이나 아녀자들의 절개는 천금으로도 살 수가 없고 오직 지아비 하나만을 위해 헌신적으로

바쳐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값진 인륜의 도리라 아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세태가

변하고 남녀 간에도 천금처럼 아껴오던 사랑 하나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시대가 있게 마련인지

간혹 천륜을 어기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부부의 정의를 저버리는 때도 있는 모양이어서

보는 이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구나.

(파도 소리)

후세 사람들의 정절 관념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여기 고려조 어느 서민부부의 얘기를 펼쳐보면서

선인들이 밟아온 부부의 도를 한번 되새겨보고 싶은 것은 우리 겨레의 정신을 다시 이어보자는 뜻이오

이것은 곧 지아비와 지어미와의 사랑이 천금 만금으로도 살 수가 없다는 교훈을 우리들 가슴에

새겨두자는 뜻이기도 하다.

(파도 소리)

송나라 명주에서 떠난 장삿배는 바람결만 좋으면 사흘 안에 대항에 들어서고 다시 닷새가 지나면

고려 땅 흑산도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황해 연안 섬 사이로 바람을 모아가며 서서히

육지를 바라보고 올라오게 돼있다. 이 거리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조류를 기다리며

오느라 시일이 걸려서 결국 이fp 만이면 예성강 하류 급수문에 다다케 되는 것이다.

예성강의 국제무역항 벽란도. 당시 벽란도는 국제항구로서 송나라 물건은 물론 멀리 남양 등지에서까지

배가 들어왔다. 계속되는 태평성대는 사람들에게 사치를 길러주는 법인가. 송나라 장사치들이 가져오는

물건은 책이랑 향료, 화장품, 약, 질그릇, 비단 같은 사치품으로서 고려조 사람들은 이러한 물건을

상당히 소비해버렸다.

- 아하하하.

- 아하하.

- 아, 오래간만에 육지에 닿으니까 기분이 좋구만.

- 아, 어디 가서 한잔 합시다요. 아, 속도 쿠리쿠리한데. 잉?

- 아, 한잔 좋지!

- 저기 저쪽 집이 어떻겠습니까? 하 선생?

- 저쪽 집이라니?

- 아아아, 저쪽, 장대에다 큼직하게 술이라고 써 붙인 집 있지 않습니까?

- 오, 그 집이 술집인가? 어?

- 여부 있습니까? 하 선생? 고려 땅에 들리는 사람이면 모두 저 집에 들러서 술 한 잔 마시는 게 순서로 돼있답니다.

- 하하하하하, 오오, 그래? 에에에, 저 집에 색시 있어? 응? 이쁜 색시 말야.

- 이이잉, 하도강 선생, 아직 모르시는구마이. 이히히.

- 모른다구? 내가 왜?

- 저저저저기는 색시가 있어 해기는 한데 술집 주인하고 사는 아낙네가 되놔서 아이, 곤란합니다.

- 아, 까짓 거 가난한 고려 사내 하나쯤 내가 못 구워삶을 줄 알고, 아하하하하하하!

- 힘들 걸요.

- 어쨌든 가서 보기나 하자, 어? 이럇!! 이놈의 말, 빨리 가자!!

(마차 달리는 소리)

이국정취가 넘쳐흐르는 벽란도에는 매일같이 외국 선박이 와 닿았다. 약삭빠른 고려 상인들은

송나라 장사치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차관도 만들고 기루도 두었는데 그 하구 많은 술집들 가운데서도

예성집이라 부르는 술집이 상인들의 눈을 끌었다. 한패의 송나라 상인들은 지금 커다란 당제 위에 종이 위에

술이라 써 붙인 예성집 문 앞에 마차를 세웠다.

(마차 멈추는 소리)

- 아아, 아아, 주인이 있소?

- 주인이 있소? 잉?

- 아, 네, 누구세요?

- 아하하하하, 있구만. 들어가자구. 에헤헤헤헤.

- 누굴 찾으세요?

- 아, 술 있소? 있으면 어서 술상 좀 차리시오.

- 아, 빨리!

- 네네, 어서들 오세요. 손님들.

- 아함.

- 아하하하하하, 과연 소문에 듣던 대로 이쁜 색시구만. 에헤헤헤헤.

- 아하하하하, 자, 술상 빨리 봐와야 해! 잉?! 알아해?!

- 아, 네네. 어서 안으로 들기나 하세요.

- 응.

- 여보, 손님들 오셨으니까 좀 나와 보세요.

- 아아아.

- 아하.

- 아이구! 어서 오십쇼, 객상들. 그래 이번엔 또 뭘 가지고 오셨습니까?

- 어, 비단 많이많이 가지고 와 했어. 에? 좋은 송나라 비단 많이 사서 부인 옷 많이많이 해줘야 해,

당신. 아하하하하하. 으흣, 자. 이거, 이거 송나라 비단이야. 응? 어떻소?

- 와아, 좋은 옷감이군요. 하지만 우린 돈이 없어서. 이런 옷감 살 수가 없다오.

- 이이익, 무슨 소리! 히히히히.

- 여보, 술상.

- 어어. 여, 여기다 내려놓구려.

- 으흐흥.

- 자, 목이 칼칼하실 테니까 먼저 한 잔씩 드시구려.

- 어, 좋아좋아좋아. 어서 한 잔 따르쇼. 으응? 자.

(술 따르는 소리)

-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음악)

술이 몇 순배 들어가자, 송나라 장사꾼 하두강은 마음이 커지면서 이번 장사에 한밑천 크게 잡을 생각을 했다.

그동안 주모는 몇 번이고 방에 드나들면서 술상을 날랐다. 그럴 때마다 하두강은 주모의 얼굴을 열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보면 볼수록 예쁘게 생긴 얼굴. 긴 치마저고리를 땅에 닿을 듯이 끌고 다니는 모양이

마치 선녀가 자기 앞으로 지나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배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여자가 보통 여자 같지가 않게 보여져서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하두강은 혼자 예성강 집으로 들어갔다.

- 아유, 오호호, 어서 오세요. 간밤엔 배에서 주무셨겠군요.

하두강은 이제는 친구 집같이 생각하고 선뜻 안으로 들어섰다.

- 음, 자, 부인. 아침밥 좀 주쇼. 에?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아 했더니 배가 아주 출출햅니다.

- 어머, 그러세요? 그럼 우선 술상부터 차릴까요?

- 아무거나 상관이 없어 해, 빨리빨리 가져와 해.

- 네네, 그럼 기다리세요.

- 예.

뒤미쳐 술상이 들어오고 바깥주인하고 셋이 술상을 가운데 놓고 얘기가 시작됐다.

- 아하하하하.

- 하 선생.

- 아.

- 송나라 서울은 매우 번화하다죠?

- 어어어, 물론 번화하지, 번화해. 응. 고려 서울보다 아마 열 갑절 더 호화해, 호화, 호화.

- 어머, 그럼 인물도 많고 물색도 참 좋겠네요.

- 응, 많이많이 좋지, 부인. 부인, 한번 가보고 싶어 해? 응? 가고 싶어 해면 내 우리 배로

실어다 드려해.

- 오호호, 가고는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외국엘 가자면 아마 힘들 거예요.

- 아, 무슨 소리. 아무렇게나 가면 되 해는 걸 가지고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 아이, 말도 마세요. 나라에서 아무나 보내주는 줄 아시나 봐. 우리 같은 서민들은 창 사기도 힘들다우.

안 그래요? 여보.

- 공연한 잡생각 말고 손님한테 술이나 쳐 드려요.

- 아, 내 정신 좀 봐.

- 하하하하하하.

- 한 잔 더 드세요, 손님.

- 어어, 따라 해. 얼마든지 따라 해, 따라 해.

(술 따르는 소리)

- 하하하, 하하하.

- 저, 가만 계세요. 내 나가서 돼지고기 안주 한 접시 썰어올 테니까요.

술잔이 한 순배 돌아가고 다시 저녁상이 들어와서 물릴 때까지 송나라 상인 하두강은

주모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돌아갈 줄을 몰랐다. 하두강은 배로 돌아갈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주인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벽에 걸린 장기를 보고-.

- 오, 주인. 장기 둬 핼 줄 알아?

- 아하, 거 뭐 조금밖에 둘 줄 모릅니다.

- 아아아아, 그럼 우리 심심하던 차에 장기나 한 번 둬 해. 에?

- 그럴까요?

- 으응.

- 여보, 술상 한 번 다시 봐와야겠소.

- 네네.

- 아니, 저, 이봐, 주인장. 우리 술만 자꾸자꾸 들 게 아니라 이번에 에, 내기장기 한 판 두면 어때 해?

- 그럽시다. 근데 무슨 내기를 한담?

- 그야 물론 비단 내기지.

- 아유, 난 비단이 없는데 어떡한다죠?!

- 아니, 가만 있자... 비단이 없으면 돈으로 다섯 냥만 내구려.

- 좋소. 자, 그럼 손님부터 길을 가보시오.

- 응, 좋아좋아. 이히히히. 이, 요놈부터 슬슬 기어 올라갈까? 음.

(장기 두는 소리)

- 음, 그놈의 말이 그쪽으로 뛰면 내 차가 위태롭겠다, 자!!

- 아!!

(음악)

-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뭘 꾸물대고 있는 거요?!

- 음...

- 포장 받으시오! 포장!

- 아, 이거이거, 외통수! 어, 고수구만!! 어허, 이거 주인장, 나 져야했어. 져했어.

-하하하하하하, 송나라 장기도 별수 없구만요. 음하하하하하!

- 나 이거 참.

두 사람의 장기는 온종일 계속됐지만 웬일인지 하두강은 지기만 했다. 하두강은

벌써 비단을 십여 필이나 잃었는데도 조금도 싫다는 내색을 않고 배에서 비단을 가져다가

술집 주인과 마주앉아 장기를 두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하두강의 비단은

이제 모두 예성강 집 주인의 차지가 돼버렸다.

- 아, 여보, 주인장. 이제 이거 배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면 좋지?

-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럼 그것마저 걸고 하시지 뭘 그러세요?

- 아하하하하...

- 배를 주시오! 응, 배를!

- 이이이, 이제 이 배를 걸고 라도 장기를 더 두어 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나 송나라 갈 수가 없어.

- 염려 마시오, 하 선생. 정 갈 데가 없으면 우리집에서 묵고 있다가 다른 배가 생겼을 때 가면 되지 않소?

- 아유, 당신, 저 사람의 배까지 가져가실 심산이시군요.

- 쉬잇, 당신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요.

- 아, 어떡하시겠소? 하 선생. 배를 잡히고 한 판 마저 끝장을 내봅시다.

- 음...

- 자, 우물쭈물할 것 없이 이리 오시오! 음.

- 응? 저, 가만 주인장, 이... 날더러 배를 걸고 두라지만 주인장 당신은 그럼 뭘 걸고 둬야 해겠어?

- 음, 난 이 배당을 다 걸고 두면 되지 않겠소?

- 어머, 이렇게 귀한 비단을 다 걸고 두시게요? 당신?

- 당신은 글쎄, 가만 있으래두.

- 아, 안 돼해, 그 비단하고 배하고 안 돼해. 배가 몇 곱절 더 비싸해.

- 그렇다면 내 이 집을 걸리다!

- 이잉, 난 집이 소용이 없는 사람이야. 에? 집이 소용이 없는 사람이야.

- 정 그러시다면 당신 마음대로 말씀하시죠.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걸고

둘 자신이 있소.

- 음... 우리 배하고 맞먹을 만한 거, 당신 집에 꼭 하나 있어해.

- 무엇이든지 말해보쇼. 장부의 말은 천금 무게가 나가는 것인데 에, 내가 거짓말이야 하겠소!

- 그래? 정말이야? 잉, 정말이야?

- 아,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미더워 하는 거요?

- 무엇이든지 약속해지? 좋아. 그럼 저, 당신, 당신, 당신 부인 거시오.

- 으응?! 아니?!

- 에구머니나.

- 내 안사람을?!

(음악)

새로 시작된 장기, 아내를 건 장기에서 예성강 집 주인은 하두강에게 무참히도 패하고 말았다.

- 하하하하하하하, 이, 장부의 한 말씀이 천금 같다고 했으니 어서 내기 시행하쇼. 시행해.

- 아뿔싸, 내가 왜 이런 내기를 했던고. 아... 아...

(음악)

(파도 소리 및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아하하하하하, 아아, 이? 어찌됐거나 이히히, 하 선생, 용 잡았소이다. 이? 헤헤헤.

하여간 잘 챙겼다네, 잘 챙겼어.

- 하하하하하, 자, 돛을 올려해.

- 예!

- 이방인 많이많이 잃고 고려 계집 팔아다가 송나라 공양 해를 이랴. 돛을 올려해라!!

- 흐흐흐흑흐흑...

(파도 소리)

하두강은 주모를 싣고 송나라로 향했다. 예성강 집 바깥주인은 뒤늦게 갯가로 다가와서

멀어져가는 하두강의 배를 보고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 이놈, 하두강 놈아!! 비단도 싫다! 내 마누라를 도로 내놔라! 내 마누라를!

넌, 넌 나를 속이고 내 사랑을 가져갔구나! 아...! 으윽, 이놈, 하두강, 이놈아!!! 으윽!

(파도 소리)

(음악)

- 임이여, 내 잘못이오. 금전으로 정을 뗄 수는 없소. 송나라 장사치에게 속은 것을. 임이여, 어찌 하오리까.

여운만리 먼 나라로 떠나간 님은 언제 다시 오겠소. 떠나신 빈 집 홀로 눈물지으며 기다리는... 으윽... 장부의 마음이여.

(파도 소리)

한편 배를 타고 떠난 주모는 살같이 달리는 배 속에서 얼마를 울었는지 기진맥진해서 그대로 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어찌된 노릇인가.

(파도 소리 및 사람들의 비명 소리)

- 선주, 선주, 선주님, 배가 자꾸 옆으로 기울어해서... 큰일났소!

- 할 수 없는 일이야. 내 이곳을 몇 번 지나고 이런 변은 처음 당하는 일일세. 이거 웬일이야!

- 억울한 사람이 배 안에 타고 있어서...

- 뭐?!

- 그렇다는군요, 선주님.

-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으서 해.

(입력일 : 201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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