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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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향토무대
(이재우 편극) - 의좋은 형제
(이재우 편극)
의좋은 형제
1968.01.05 방송
(음악)

신년특집. 향토무대. 이재우 편극, 의좋은 형제.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립니다.

(음악)

새 것이라는 말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 그렇고

일 년이 시작되는 새해가 그렇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해. 365일의 기획이 여기에 있고

희망이 여기에 있고 살아간다는 가치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사람의 도리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도리를 지키는 형제간의 얘기를 들으시겠습니다.

(음악)

(귀뚜라미 울음소리)

- 휴...

- 여보.

- 음...

- 온종일 벼를 베이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주무세요. 네?

- 음...

-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 음? 으음...

- 무슨 근심 있으세요?

- 근심은 무슨 근심...

- 그럼 어째 담배만 피시고...

- 음... 여보.

- 네?

- 실은 오늘 형님이랑 난 추수한 볏단을 똑같이 나눠 버렸거든. 형님이 그렇게 나눴지.

- 그런데요?

- 그런데 지금 가만 집에 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 왜요?

- 형님 댁은 그 주렁주렁 달린 식구가 많잖아. 그러니 자연 먹새며 씀씀이가 우리보다 훨씬 크지 않겠어?

- 그래서요?

- 그래서 생각한 건데 당장 이 길로 나가 내 우리 낟가리에 있는 볏단을 몇 짐만이라도 형님네 낟가리에다가

지어 날라야겠어. 당신 생각 어때?

- 그런 일이야 내일 하셔도 되잖아요. 이 밤에 어떻게...

- 아니지. 당신은 모르는 소리야.

- 네?

- 훤한 대낮에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으면 자연 형님 눈에 띄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몇 짐 아니라 단 한 단도

안 받으실 형님이란 말야.

- 그래서 지금 나가시겠단 말씀이에요?

- 그럼, 내 부리나케 몇 짐 전하고 올 테니까 당신 먼저 자구려, 응?

- 아, 여보.

- 응? 아...

- 같이 갈래요, 저두.

- 당신이 가면 뭐해. 지게 날라야 할 텐데.

- 손 있잖아요, 오호호.

- 관둬, 몇 짐만 나르면 될 텐데 뭐.

- 아하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잖아요?

-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 좋아, 가자구. 하하하하하하하.

(음악)

결혼한 지 반년이 채 못 되는 동생 부부는 구름이 달을 가린 어두운 들녘으로 나와 자기들 낟가리에

있는 볏단을 옮겨다간 형님 댁 낟가리에다 몰래 쌓아놓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팔베개로 잠이 들었다. 한편, 형님. 초저녁에 곤한 잠이 밤중에서야 깨었다.

(음악)

- 아... 아이... 아이구... 어...

- 아... 누구여.

- 아유... 누군 누구야. 아으...

- 아니, 여보. 왜 주무시지 않고.

- 어, 좀 볼일이 있어서.

- 이 밤중에 볼일은 무슨 볼일이요? 예?

- 아, 도둑질 좀 해볼까 하는구만.

- 뭐라구요?

- 가을마당에 도둑질을 좀 해놔야 겨우살이가 편하지 않겠어?

- 아이.

- 하하하하하.

- 밤중에 주무시다가 그게 무슨 농담이여?

- 아아... 음. 여보.

- 왜요?

- 내 잠깐 들에 좀 나가 봐야겠구만.

- 뭣하시게요?

- 당신도 눈으로 낮에 봐 알겠지만 그 신혼살림에 돈 쓸 일도 많을 텐데

이 형이라는 놈이 똑같이 볏단을 나눠놨으니 하늘이 노하지 않겠어?

- 그러니 어쩌시겠다는 거예요?

- 몇 단이나마 보태줘야지 뭐.

- 아이구, 밤중에 후회하실 일을 왜 낮엔 생각 못했소?

- 하하, 아 그때 생각으로야 아, 뭐 똑같이 나누는 게 공평한 줄 알았지. 헤헤.

- 아이, 지금 나가시게요?

- 그럼.

- 당신도 참. 아, 지금이 새벽인 줄 아세요?

- 밤중이니까 나가는 게야.

- 밤중이니까 나가다뇨?

- 밤중에 나가야 남의 눈에 안 띌 거 아니야. 남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저놈의 형제는 그 얼마

안 되는 벼 몇 단도 똑똑히 나누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구 그럴 게 아니야?

- 아유.

- 세상에 부끄러운 일이지. 음.

- 아이, 녀석. 웬 젖을 요렇게 빠나?

- 아이, 아이. 뭣 하러 일어나?

- 에유, 그럼 혼자 다녀오오.

- 응. 아아, 흐흠.

(음악)

형님은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밤을 지키는 들녘으로 나와 동생의 낟가리에다 자기네 볏단을 옮겨 쌓아준다.

제 것을 주기에도 부끄러운 형님은 도둑처럼 힐끔힐끔 동생의 집을 살핀다. 잠방이에 땀이 젖는다.

어느새 먼동이 터온다. 도둑이 달아나듯 형님은 제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밝았다.

(새 지저귀는 소리)

- 아, 새벽바람에 어딜 갔다 오세요?

- 들에.

- 어디... 아프세요?

- 아니.

- 그럼 왜 그렇게 고개를 뚝 떨어뜨리시고...

- 아, 음... 거 참 이상하다...

- 뭐가요?

- 분명히 우리 엊저녁에 우리 볏단을 형님 낟가리에 쌓았잖아.

- 쌓았죠.

- 그런데 우리 낟가리엔 볏단이 한 단도 줄지 않았단 말야.

- 그럴 리가 있어요?

- 글쎄 말야.

- 잘못 보셨겠죠.

- 아니야.

- 근데 어찌 그럴 수 있나요?

-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 으흠, 그럴 리가 없어요.

- 똑똑히 봤다구, 내가. 논둑에 표시해놓은 걸 봤다니깐.

- 정말이에요?

- 정말이지 않구.

- 어머, 그렇다면 참 이상하네요.

- 아무래도 우리가 엊저녁에 도깨비들한테 홀렸잖어. 꿈을 꿨던 모양이야.

- 꿈이요?

- 응.

- 아니에요.

- 꿈이 아니라면 우리 낟가리가 줄어들어야 될 거 아냐. 그렇잖아? 안 그래?

- 아, 여보.

- 뭐야.

- 오오, 왜 그러세요? 정말, 당신...

- 뭘?

- 정말 꿈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이 뵈네요.

- 정말이라구.

- 아이, 엊저녁에 제가 논에 빠져버린 옷, 저렇게 빨아놓지 않았어요. 좀 보세요. 저걸.

- 아... 거 참 이상하다. 분명 꿈은 아니었는데 말야.

- 새벽바람에 나가셨기 때문에 잘못 보신 거예요.

- 아니래두! 한두 번 본 줄 알아, 내가?

(음악)

(새 지저귀는 소리)

- 아니, 저 양반이 뭘 저렇게 두리번두리번 하시는 것일까? 응? 아유 참, 오늘따라 이상하셔.

여보, 왜 그래요? 당신.

- 음. 아...

- 식전바람에 어딜 갔다 오시는 거예요?

- 아, 거 참.

- 아니, 저 양반이.

- 참나 원,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구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아하하, 참.

- 무슨 소리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 말을 하면은 당신한테 실없는 사람으로 뵈고 말 테니 숫제 내 말을 안 할라는구만.

- 아유, 못 볼 걸 보셨구만요.

- 못 볼 걸 보다니?

- 뉘댁에서 허벅지를 보셨구만요. 으흐흐.

- 응?!

- 왜 그렇게 얼이 빠지셨수?

- 아, 어젯밤에 내가 분명히 우리 볏단을 아우네 낟가리에다 옮겨 쌓아줬잖아.

- 그랬죠.

- 헌데 지금 나가보니까 우리 볏단이 하나도 줄지 않고 그대로란 말야.

- 무슨, 그럴 리가 있을라구요?

- 사실이야, 내가 보기엔 외려 더 많아진 거 같다니까.

- 어머.

- 참, 사람 참 환장하겠구만.

-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말이여. 그게.

- 글쎄 말야.

- 아이구,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어요. 하늘이.

- 아니야, 참.

- 여보, 당신 혹 마음 변하신 거 아니오? 응?

- 무슨 소리여?

- 우리 볏단을 갖다 준 게 아니라 갖고 온 거 아니여?

- 천만에.

- 그런데 어째 더 많아진 것 같다 메요?

- 글쎄, 그렇대두.

- 바fms 말씀하세요. 제가 사과라도 하게요.

- 아, 당신은 내가 동생 것을 도둑질이라도 했단 말인가?!

- 그렇지 않구서야 많아질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게지.

- 아이고, 등에 업힌 애가 웃겠어요. 아,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 여보.

- 예?

- 오늘밤엔 우리 아주 초저녁부터 나가자구. 나가서 잔뜩 좀 옮겨 쌓아주자구.

- 알았어요.

- 아, 참나.

(음악)

다시 하룻밤이 지났다. 그러나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형님도 동생도 넋을 잃은 사람이 될 수밖에.

- 아이, 그렇다고 진질 안 드시면 어떡해요?

- 밥이 넘어가질 않아.

- 오늘밤에 나가 우리 또 한 번 옮겨놔 봐요.

- 오히려 오늘은 우리 낟가리가 더 커졌어.

- 더 커졌어요?

- 응.

- 정말 무슨 귀신이 붙었나 봐요.

- 음.

- 혹 당신이 우리 낟가리 형님 댁 걸로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 아니야.

- 아무래도 전 그런 것 같은데요.

- 천만에. 그건 절대 아니야.

- 그럼 어째 더 많아졌을까요 그래?

- 아무튼 오늘밤에 또 나가는 게야. 나가서 잔뜩 한번 옮겨놔 보자구. 응?

- 네.

- 참나 원.

(음악)

- 아...

- 그렇다고 이불을 쓰고 누워 계시면 어떡해요.

- 아이고... 막 생병이 나는구만.

- 일어나세요. 이 숭늉이라도 드시구서-.

-아, 지금 숭늉이 넘어가게 됐어. 숭늉이 아니라 꿀물이라도 못 먹겠구만. 으...

- 여보.

- 아이고...

- 나도 오늘밤엔 아주 애를 좀 울리는 일이 있더라도 힘껏 좀 옮겨볼게요.

너무 상심 마시고 제발 좀 일어나셔서 한 술이라도 좀 뜨세요. 살고 봐야잖아요. 살고 봐야-.

- 아... 아...

- 기어코 안 일어나실려우?

- 아이고...

- 일어나오, 일어나서 그럴 수록에 단단히 마음에 다져야 하잖아요.

- 으... 으... 음...

- 드세요. 숭늉 구수해요.

- 여보.

- 예?

- 이왕이면 나 술 한잔 받아주오. 어?

- 술이요?

- 반 되만.

- 받아오구 말구요. 반 되 아니라 몇 되라도 받아오죠.

- 아, 역시 당신밖에 없어. 어? 하하하하.

- 아이구, 웃으시는 걸 보니 살겠구만요. 내 그럼 슁 하니 주막에 다녀오겠어요.

- 어.

(음악)

(새 지저귀는 소리)

- 어머.

- 아니. 식전에 형님, 웬일이세요?

- 자네야말로 웬일인가?

- 아, 읍내 좀 나가려구요.

- 읍내.

- 네.

- 글쎄, 형님 시동생이 병이 났지 뭐예요.

- 병이 났어?

- 네. 물을 한모금도 안 드시는군요. 글쎄.

- 오오, 그래. 대단한가 보구만.

- 열도 없이 그렇게 앓잖아요. 글쎄.

- 저런.

- 형님은 어딜 가시는 길이세요? 빈 쪽박을 이렇게 드시고.

- 아, 아, 아이. 말 말게. 우리집에도 글쎄 애기 아빠가 밥 한술을 안 들고

물 한 모금 못 마시지 뭔가.

- 어머 그래요?!

- 그래도 술은 찾아요. 술은.

- 네, 주막엘 가시는 길이시군요.

- 으응, 어서 가보게 그럼.

- 아, 네. 다녀가세요. 그럼.

- 응, 어서 가봐.

- 아이고...

(음악)

- 이 빌어먹을, 웬 놈의 해가 요렇게도 길지? 얼른 좀 훌쩍 넘어가다오. 훌쩍.

- 아이, 술은 술대로 하시고서도 안 취하세요? 빈속에.

- 그놈의 집 술이 맹물인가 봐. 맹숭맹숭해요.

- 좀 돌아다니세요. 그렇게 잔뜩 쭈그리고 앉아 하늘만 쳐다보시면 해가 넘어가 주나요?

- 이젠 낮이 무섭구만, 낮이 무서워.

- 오늘밤엔 아주 우리 낟가리 옆에다 진을 치고 밤샘을 하십시다요.

- 밤샘?

- 예.

- 그렇지. 거 참 좋은 생각이야. 왜 진작 그런 좋은 생각을 해내지 못했지? 으, 그래. 흐흐. 그래그래.

- 여보.

- 응?

- 당신 인젠 얼굴에 술기가 도는 것 같으오.

- 그렇게 봬?

- 예.

- 아, 저 오늘밤은 눈 못 부치실 테니 한숨 누우시구려.

- 아, 밤잠도 못 자는데 어째 낮잠이 오는가.

(음악)

- 잇... 으... 읏차.

- 아... 읏차, 아... 읏차. 아... 읏차!

(손 터는 소리)

아하하, 아이고.

- 이 짐을 다 쌓아놓으셨수?

- 잔뜩 날랐지 뭐. 아주 낟가리 반줄을 뚝 잘라 옮겨놨으니까. 아, 하하. 아인 자나?

- 예.

- 아하, 아니?

- 왜요?

- 가만.

- 뭐예요?

- 저기 저 시커먼 게 오고 있잖아.

- 아니, 정말. 뭐죠? 저게.

(귀뚜라미 울음소리)

- 볏짐 아니야?

- 누가 지고 오잖아요?

- 아니?! 그 뒤엔...!

- 쉬이... 죽은 듯이 있어 보자구요. 가만.

- 어... 음...

- 읏... 아... 여보.

- 네?

- 당신은 거 빈손으로 따라만 다니래니깐.

- 그럼 전 여기사 낟가리나 쌓을래요.

- 자.

- 에이.

- 아니, 시동생 아니여유?

- 흐흑, 자식. 흑...

- 역시...

- 자식... 흑흑...

- 으이구...

(음악)

오늘도 형제가 사는 마을엔 휘영청 달이 밝습니다. 사람의 도리는 지키기 어려운 것.

그러나 지켜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입니다.

(음악)

출연. 형님, 홍계일. 그의 아내, 이정선. 동생, 박웅. 그의 아내, 김수희. 해설 김영식.

음악 오순정. 효과 심재훈. 기술 김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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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순도와 함량이 약효를 보증하는 한일약품 제공. 항토무대.

이재우 편극, 의좋은 형제. 안평선 연출로 보내 드렸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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